▲원/달러(빨강)와 대만달러/달러(파랑)가 출렁인 정도를 20일 단위로 잰 그래프. 회색은 달러 자체의 출렁임이다. 짧은 구간들을 빼면 대부분의 기간 빨간 선이 파란 선 위에 있다.
강명구
그림이 말해주는 사실은 단순하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원화의 일상적 출렁임은 연 9.2%로 대만달러의 5.6%를 크게 웃돌았고, 날짜별로 짝지어 비교하면 평균 1.86배였다. 심지어 세계 모든 통화의 상대가 되는 달러 자체의 출렁임(달러인덱스 기준 5.9%)보다도 컸다.
더 결정적인 것은 주가와 환율의 연결이다. 이 기간 코스피가 하루 3% 이상 급락한 날은 25번 있었다. 그때마다 원화는 같은 날 평균 0.38% 절하됐다. 통계적으로 뚜렷한 반응이다. 대만은 어떤가. 3% 이상 급락일이 8번 있었지만 대만달러의 반응은 통계적으로 뚜렷하지 않았다. 같은 나쁜 소식이 한 나라에서는 그날로 환율에 새겨지고, 다른 나라에서는 새겨지지 않는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가. 대만에서는 외국인이 주식을 판 돈이 곧바로 달러로 바뀌어 나가지 않는다. 외국인이 월간 사상 최대로 대만 주식을 판 지난 6월에도, 대만 중앙은행 집계에 따르면 대만의 외환수지는 오히려 116억 달러 순유입이었다. 판 돈의 상당액이 대만달러 예금에 그대로 머물렀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만 중앙은행은 환율이 흔들리면 한국 당국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개입해 막는다. 요컨대 파는 것은 계기일 뿐이다. 그 계기가 환율까지 흔드느냐 마느냐는 나라의 구조가 정한다.
나가는 돈이 많아서인가
"그래도 한국은 개인들이 해외로 들고 나가는 돈이 워낙 많지 않으냐"는 반론이 나올 법하다. 규모를 재 보자.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순매수는 한 달 151억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당국이 증권사들의 해외투자 마케팅을 중단시킬 만큼 흐름은 거세다. 그런데 대만에는 이보다 큰 상시적 유출이 있다. 대만 생명보험사들은 굴리는 돈의 70%가량을 아예 해외에 두고 있다. 환율 변동에 그대로 노출된 몫만 대만 국내총생산의 4분의 1 규모로 추산된다. 나가는 돈의 크기로 따지면 대만이 한국 이상이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대만달러가 더 안정적이다. 유출이 많아서 약하다는 설명은 여기서 무너진다.
차이는 돈의 양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나가느냐다. 대만의 해외투자는 큰 보험사 몇 곳이 규칙적으로 실어 나른다. 그래서 정부가 보험사 관련 규정 하나만 고쳐도 외환시장의 달러 흐름을 조절할 수 있다. 이 수단이 너무 강력해 '뒷문 환율 관리'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게다가 연 1500억 달러로 불어난 무역흑자 덕에, 대만의 해외투자는 나라 안에 넘치는 달러를 내보내는 배출구 역할까지 한다.
한국의 유출은 수백만 개인이 만든다. 환율과 수익률에 따라 한꺼번에 몰렸다가 한꺼번에 빠져나간다. 최근 순매수 1위 종목이 미국 반도체지수를 3배로 추종하는 초고위험 상품일 만큼 그 성격도 공격적이다. 이 흐름 앞에서 정부가 쓸 수 있는 수단은 증권사에 광고 자제를 요청하는 것이 전부다. 문제는 유출의 크기가 아니다. 정부의 손이 닿는 유출이냐, 닿지 않는 유출이냐다.
1998년 대만은 막았고, 1999년 한국은 열었다
답을 먼저 말하면, 27년 전에 갈라진 길이다. 아시아 금융위기 때 두 나라 모두 해외 투기 자금에 통화를 공격당했다. 그 경험에서 대만은 1998년, 해외의 투기 거래가 자기 나라 환율에 손대지 못하도록 차단벽을 세웠다. 한국은 정반대로 1999년, 해외 시장과 국내 환율을 잇는 통로를 열어 줬다.
이 답은 필자 혼자의 주장이 아니다. 수급론에 대한 가장 결정적인 반박은 당국 스스로에게서 나왔다. 서학개미와 외국인 매도를 내세우던 외환당국은 지난 6월, 해외에서 벌어지는 원화 투기 거래를 환율 쏠림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쪽으로 진단을 바꿨다. 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가 연이어 투기성 거래를 지적했다. 과녁이 바뀌었다는 것은 이전 진단이 틀렸다는 자인이다.
당국이 지목한 그 투기판의 이름이 차액결제선물환(NDF)이다. 어려운 이름이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원화를 실제로 주고받지 않으면서, 런던과 뉴욕에서 원화 시세의 오르내림에 돈을 거는 해외 시장이다. 흔히 이 시장의 존재 자체를 원화 약세의 이유로 꼽지만, 절반만 맞는 얘기다. 대만달러 투기판도 원화 못지않게 크다. 지난해 전 세계 차액결제선물환 거래에서 원화가 20.4%, 대만달러가 19.6%로 나란히 세계 2, 3위였다. 결정적 차이는 투기판의 크기가 아니라, 그 판에서 정해진 가격이 국내 환율로 전달되는 통로가 있느냐다.
대만은 아시아 금융위기 한복판이던 1998년 5월, 국내 은행이 이 거래를 취급하는 것을 금지해 통로를 끊었다. 이 차단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해외에서 아무리 대만달러에 베팅해도, 그 판돈이 대만 국내 환율을 직접 흔들지 못한다.
한국은 정확히 반대로 갔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4월 이 거래를 국내 은행에 허용해 통로를 열었다. 그 뒤로 서울 외환시장이 닫힌 밤사이 미국의 고용지표, 연방준비제도 회의, 지정학 뉴스가 쏟아지면 해외 투기판이 그것을 소화해 원화 값을 정하고, 다음 날 아침 서울 개장과 동시에 그 값이 국내 환율이 된다. 원화는 이렇게, 아시아에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세계가 대신 내다 파는 통화가 됐다.
두 길의 결과는 데이터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래 그림은 이 기간 두 통화의 하루하루 움직임을 분포로 그린 것이다.

▲가로축은 하루 변동폭, 세로축은 그런 날이 며칠이었는지다. 원화(왼쪽)는 옆으로 넓게 퍼져 있고, 대만달러(오른쪽)는 0 근처에 빽빽이 몰려 있다.
강명구
원화의 분포는 옆으로 넓게 퍼져 있다. 크고 작은 변동이 일상이라는 뜻이다. 대만달러의 분포는 0 주변에 좁게 몰려 있다. 평소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만 눌린 압력이 쌓이면 가끔 크게 움직인다. 이번 표본 직전인 2025년 5월 대만달러가 이틀 연속 4~5%씩 급등한 것이 그 드문 사례였다. 시장에 상시 노출된 통화와, 당국의 관리 아래 있다가 가끔 급변하는 통화. 개방과 차단이 만든 차이다.
이 구조는 원화 약세의 모양도 설명한다. 이 기간 원화의 하루 최대 절하 폭은 2.1%에 그쳤다. 위기 때처럼 폭락한 날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244거래일에 걸친 약세 국면 동안 낮은 수준에서 서서히 절하돼 왔다. 한 번의 폭락이 아니라 밤사이 조금씩 내린 값이 쌓인 결과다. 공황이 아니라 구조가 만든 약세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대만이 옳았다는 것은 아니다

▲지난 6월 15일, 대만 타이베이의 대만증권거래소 사무실 내에서 한 사람이 대만 증시 차트를 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여기까지 읽으면 대만이 정답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한국과 대만의 구조적 차이는 실수가 아니라, 자본시장 선진화 전략이 서로 달랐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국채지수 편입, MSCI 선진시장 편입 추진, 외환시장 24시간화, 원화 국제화라는 개방 노선을 스스로 골랐고, 그 길에서 이행기의 변동성은 어느 정도 예정된 비용이다.
대만의 안정에도 대가가 따른다. 통화를 낮게 눌러 온 대가로 국민의 구매력이 억눌렸다는 논쟁이 '대만병'이라는 이름으로 진행 중이고, 생명보험사에 쌓인 국내총생산 4분의 1 규모의 환위험은 미래로 미뤄 둔 위험이며, 2025년 5월 대만달러가 사흘 만에 9% 치솟은 것은 눌린 압력이 한꺼번에 분출된 순간이었다. 요컨대 대만은 오늘의 안정을 사고 위험을 내일로 보냈고, 한국은 개방을 사고 비용을 오늘 치르는 중이다.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정당한 전략의 갈림이다.
그래서 문제는 개방 전략이 아니다. 전략과 모순된 실행이다. 개방을 택한 한국은 차단을 택한 대만보다 지켜야 할 규율의 기준이 오히려 높다. 국내의 소란이 곧장 환율로 전송되는 구조를 스스로 골랐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가 서학개미를 되돌리겠다며 국내 증시에 변동성을 주입했다. 대만처럼 하지 않아서 문제가 아니라, 대만처럼 하지 않기로 한 나라답지 않아서 문제였던 것이다.
올바른 처방은 제대로 된 진단에서 비롯된다
서학개미와 외국인 매도는 실재하는 압력이다. 그러나 같은 압력을 받는 대만달러가 훨씬 안정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구조다.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개인 중심의 유출, 해외 투기판의 가격이 국내 환율로 직행하게 만든 1999년의 NDF 거래 허용, 그리고 그 통로를 타고 원화가 떠맡게 된 아시아 리스크의 대리 통화라는 역할이 그것이다.
처방은 개방을 완성하는 것이다. 첫걸음은 이미 내디뎠다. 이달 가동된 외환시장 24시간 체제, 해외 투기 거래의 국내 흡수, 뉴욕·도쿄에서 원화를 예금하고 빌릴 수 있게 하는 국제화 계획은 밤사이 원화 값을 정해 온 해외 투기판의 권한을 서울로 되찾는 조치들이다. 다음은 개인의 해외투자를 기관으로 모으는 일이다. 퇴직연금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의 해외투자 유인을 키우면 수백만 개인의 유출이 연기금과 펀드를 거치는 흐름으로 바뀌고, 대만식 통제 없이도 예측 가능해진다.
근본 처방은 자본이 떠날 이유를 줄이는 것이다. 원화를 떠받치는 힘은 결국 실물이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로 돌아오는 흐름에서 나오는데, 지금은 수출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마저 환전하지 않고 외화예금에 쌓아 두는 형편이다. 유출의 뿌리는 낮은 주주환원과 지배구조 불신이다. SK하이닉스의 나스닥 상장에서 미국 투자자들이 같은 회사 주식을 서울보다 25% 비싸게 산 것이 그 증거다. 상법과 배당과 지배구조 개혁이 곧 환율 정책이다. 그리고 정부 스스로 지킬 원칙이 하나 남는다. 국내 시장에 변동성을 주입하지 않는 것이다. 두 종목 레버리지 ETF 사태가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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