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23 07:16최종 업데이트 26.07.23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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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나노코리아 2026'에서 관람객들이 삼성전자 부스를 살펴보고 있다. 반도체 수출 호조로 지난 5월 우리나라가 국제 교역에서 60조원에 가까운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8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나노코리아 2026'에서 관람객들이 삼성전자 부스를 살펴보고 있다. 반도체 수출 호조로 지난 5월 우리나라가 국제 교역에서 60조원에 가까운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연합뉴스

우리나라 수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그중에서도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의 대표 상품입니다. 1993년 이후 세계 시장 1위를 놓치지 않고 있죠. 현재 메모리 반도체는 크게 D램과 낸드플래시로 나뉩니다. 속도는 빠르지만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지워지는 D램이 약 60%,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유지되는 낸드플래시가 약 40%의 비중을 차지합니다.

D램의 역사는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IBM의 로버트 데나드 박사는 1966년 '1트랜지스터-1커패시터' 구조의 현대적 D램을 발명했습니다. 이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기업은 인텔입니다. 인텔은 1970년 최초의 상용 D램 칩 'Intel 1103'을 선보이며 세계 메모리 시장 1위에 올랐습니다.


이후 승승장구하던 인텔은 1980년대 들어 큰 벽에 부딪힙니다. 일본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미쓰비시, NEC, 도시바 등 일본 기업들이 우수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D램 시장에 대거 진입했기 때문입니다. 주력 제품 가격이 폭락하며 심각한 적자에 시달리던 인텔은 1985년 D램 사업을 전격 포기하고, 기술 장벽과 마진이 높은 중앙처리장치(CPU) 사업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2020년에는 낸드 사업부마저 SK하이닉스에 매각(솔리다임 설립)하면서 메모리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했습니다.

SK하이닉스의 중국 우시 팹
SK하이닉스의 중국 우시 팹 SK하이닉스

반도체 산업은 크게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 포함)로 나뉩니다. 두 분야는 생산 및 판매 방식이 완전히 다릅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규격화된 표준 제품을 대량 생산합니다. 컴퓨터 메모리를 교체할 때 삼성전자 제품을 빼고 SK하이닉스 제품을 꽂아도 아무 문제 없이 작동합니다. 이처럼 제품 간 차별화가 어렵기 때문에 생산 단가를 얼마나 낮추느냐(원가 경쟁력)가 곧 생존의 핵심입니다(인공지능(AI) 시대에 고대역폭메모리(HBM) 이후 일정 부분 차별화가 진행되고 있기는 합니다).

반면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는 고객사 요구에 맞춰 연산·처리 칩을 제작하는 다품종 맞춤형 구조입니다. 인텔 CPU가 꽂혀 있던 자리에 AMD CPU를 꽂으면 작동하지 않는 식입니다. 기술 난도가 높고 프리미엄이 붙어 메모리 대비 높은 마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인텔의 철수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속성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기술력 못지않게 수익성을 뒷받침할 원가 구조를 유지하지 못하면 아무리 거대한 공룡 기업이라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인텔이 떠난 후 메모리 시장은 일본 기업들이 독식하다시피 했지만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일본의 독주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이후 독일, 대만 등의 수많은 기업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어 한동안 춘추전국시대를 이뤘고, 여기에 한국의 삼성전자와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가 그 틈새를 파고들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규격화된 표준품이다 보니, 시장 수급에 따라 가격이 폭락할 때마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 간에 참혹한 치킨게임이 벌어졌습니다. 누군가 망할 때까지 생산량을 늘리고 가격을 낮추는 일이 반복된 것입니다.

이 가혹한 치킨게임 끝에 독일 키몬다, 일본 엘피다, 대만 모스텍 등 수많은 기업이 문을 닫거나 인수합병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도태되지 않고 오히려 불황기에도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 300mm 웨이퍼 전환과 미세공정 혁신을 이루어내며 생산 원가를 극단적으로 낮췄습니다.

결과적으로 수십 개에 달하던 메모리 기업은 D램 3강(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 낸드 플래시의 다자 체제로 정리되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원가 경쟁력이 핵심

SK하이닉스가 나스닥 주식예탁증서(ADR) 거래를 개시한 10일(현지시간)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주요 경영진이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나스닥 타워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나스닥 주식예탁증서(ADR) 거래를 개시한 10일(현지시간)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주요 경영진이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나스닥 타워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한국이 글로벌 1, 2위를 독식하게 된 배경에는 극단적인 원가 절감 성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원가 절감의 핵심에는 한국에 대규모 팹을 구축하고 운영해 온 환경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의 모리스 창 전 회장은 한 토론회에서 "TSMC 미국 오리건 공장의 반도체 제조 비용은 대만보다 50% 더 비싸다"며 미국 내 팹의 경쟁력 부재를 지적했습니다. "1997년 설립 당시 오리건 공장의 생산 비용이 대만과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순진한 판단이었다"고도 털어놓았죠.

인건비, 전력·용수 등 인프라 비용, 부품 및 장비 공급망의 집적도가 제조 원가를 결정합니다. 미국은 반도체 생산 시설을 일찌감치 동아시아로 이전한 결과 산업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고, 반면에 한국과 대만은 우월한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반도체 산업 구조의 세부적 차이는 있지만, 한국과 대만의 팹 운영비용은 유사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가 경쟁력이 생명인 메모리 팹의 특성상, 국내 기업들이 해외 생산 시설을 지을 때 미국이나 일본 대신 중국을 선택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와 다롄에 각각 생산 기지를 두고 있습니다. 미·중 갈등으로 미국의 투자가 제약되지 않았다면 중국 내 확장이 더 이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기업이 미국에 메모리 팹을 지은 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삼성전자가 1997년 가동을 시작한 미국 오스틴 팹은 원래 D램을 생산하던 공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높은 인건비와 인프라 비용으로 인해 동아시아 거점 대비 단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때마침 2000년대 후반 모바일 시대가 열리며 애플 등 미국 빅테크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위탁생산(파운드리)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결국 삼성전자는 오스틴 팹을 D램 라인에서 시스템 반도체 및 파운드리 라인으로 전격 전환했습니다. 미국에 파운드리 팹을 짓는 것은 경제적 타당성이 있습니다. 엔비디아, 애플, 퀄컴 등 주요 고객사가 미국에 모여 있어 높은 생산 비용을 프리미엄 단가로 상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텍사스주 테일러에 건설 중인 팹 역시 파운드리 전용입니다.

그러나 메모리 팹을 미국에 짓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D램과 낸드는 규격화된 표준품이므로 미국에서 생산했다고 해서 고객사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비싼 건축 인건비, 공기 지연, 막대한 운용 비용은 메모리 반도체의 핵심인 단가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훼손합니다. 초기에 정부 보조금을 지원 받더라도 수십 년 간 누적될 운영 손실을 감당할 메모리 기업은 없습니다.

미국 오하이오주에 건설 중인 인텔 반도체 생산시설
미국 오하이오주에 건설 중인 인텔 반도체 생산시설인텔

최근 언론을 통해 "SK하이닉스가 미국 오하이오주에 위치한 인텔 팹을 인수해 메모리 생산 거점으로 삼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와 큰 파장이 일었습니다. SK하이닉스 측은 "인텔 팹 인수를 추진하거나 결정한 바 없다"며 공식 부인했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과 상무부 장관의 대미 투자 압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최태원 회장이 여건만 맞다면 어디든 팹을 지을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가고 있어 시장의 불안감은 쉽게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도 미국의 압박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며 한국의 팹 투자를 줄이고 미국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주장입니다. 미국 정부의 압박이나 통상 환경의 변화가 거세더라도, 자국 중심의 이익을 탐하는 정책에 끌려다닐 이유는 없습니다. AI 시대가 개막하며 메모리 공급망의 주도권이 생산 기업으로 이동했고, 선단 메모리를 제대로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은 현재 전 세계에 단 셋뿐입니다. 반도체 팹을 어디에 짓느냐보다 메모리 반도체 확보가 더 급한 상황입니다. 주도권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게다가 SK하이닉스는 이미 인디애나주에 첨단 패키징(HBM 후공정) 공장 투자를 결정하며 미국 정부의 정책적 요구에 충분히 부응했습니다. 후공정과 달리, 막대한 운용 비용이 소요되는 선단 공정 D램·낸드 웨이퍼 제조 팹을 미국에 차리는 것은 사업적 자해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굳이 미국 메모리 팹 카드를 검토할 만한 명분을 찾자면 'RE100(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 달성입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2030년까지 공급망 전체에 RE100을 강력히 요구하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국내 여건상 목표 달성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풍력과 태양광 인프라가 풍부한 미국에 팹을 두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RE100 대응을 명분으로 삼더라도 미국 메모리 팹 구축은 본말이 전도된 해법입니다. 막대한 원가 상승과 운영 부담을 안고 미국으로 향할 것이 아니라, 풍부한 태양광과 해상풍력 자원을 갖춘 호남 지역 등에 'RE100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기 조성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근본적인 대안입니다. 국내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확충해 원가 경쟁력과 RE100을 동시에 확보할 길을 두고, 천문학적 운영 손실이 예견되는 미국 메모리 팹 진출을 맴도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 기업이 미국에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지를 조성해야 한다는 허황되고 무책임한 주장에 현혹될 이유가 없습니다. 통상 압박에 휩쓸려 기업의 생존 기반을 흔들 것이 아니라, 글로벌 주도권을 쥔 메모리 강국으로서 중심을 잡고 산업의 본질과 원가 경쟁력을 지키는 현명한 결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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