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21 15:37최종 업데이트 26.07.21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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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당대의 지성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절망이 켜켜이 쌓이는 여름이다. 역대급 폭염 속 한낮에는 거리를 걷는 것조차 두렵다. 폭염과 산불, 홍수와 가뭄이 세계 곳곳에서 시민의 일상을 무너뜨린다. 정부는 AI-반도체 산업에 '몰빵'하며 코스피 상승이 '먹고사니즘'의 본질인 것처럼 말하지만, 일자리를 못 찾는 청년이나 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는 점점 힘들어지기만 한다. 정부가 AI 산업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몰아가는 동안, AI는 무엇이고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우리 삶과 노동, 민주주의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묻는 민주적 토론과 숙의는 실종됐다. 오늘을 살아내기도 힘든데 내일은 더 불안하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거대한 물살에 휩쓸려 정신없이 떠다니는 느낌은 나만의 것은 아닐 것 같다.

런던을 비롯한 유럽이 올 여름 기록적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산불, 홍수 등 재난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런던을 비롯한 유럽이 올 여름 기록적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산불, 홍수 등 재난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유튜브 MBC뉴스 갈무리

심화하는 기후위기, 파국으로 치닫는 세계

유엔개발계획(UNDP, 개발도상국의 빈곤 퇴치와 지속가능발전을 지원하는 유엔 산하 기구)이 발간한 '기후사전'은 기후위기를 '극단적 날씨와 자연재해, 해양산성화 및 해수면 상승, 생물다양성 손실, 식량 및 식수 불안, 건강에 대한 위협, 경제적 혼란, 이주, 심지어 폭력적 분쟁과 같이 지구의 기후가 변화함으로써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심각한 문제들'로 정의한다. 폭염과 홍수를 넘어 먹고사는 일이 점점 힘겨워지는 것,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 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형해화되는 현실이 기후위기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잘 알려져 있다. 산업혁명 이래 지금까지 유한한 지구 위에서 무한 성장을 추구해온 결과로 지구의 생명을 유지해 온 생태 시스템에 탈이 났기 때문이다.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더 많은 자연을 파헤쳐야만 사회경제가 유지될 수 있다는 믿음이 끝내 인간이 살아갈 조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것이 기후위기의 본질이다. 공존·공생의 가치를 버리고 소수에 의한 성장의 무한 질주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기후위기에 맞서 153개국 1만 1000명이 넘는 세계 과학자들이 2019년 '기후 비상 경고'(World Scientists' Warning of Climate Emergency)를 발표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채굴과 생태계에 대한 과잉 착취를 신속히 줄여야 한다는 문제의식의 발로다. GDP 성장과 부의 추구가 아니라 인간의 기초적 필요의 충족과 불평등 감소를 우선하는 경제정책으로의 방향 전환도 제기됐다. 이를 통해 생태계 보존과 인간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들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이야기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2015년 세계 198개국은 기후재앙을 막기 위해 온실가스를 줄이는 공동의 노력을 약속하는 파리기후협약에 조인했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2도 이내로 제한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 약속은 경제성장과 국가경쟁력이라는 명분 앞에서 번번이 뒤로 밀려났다. 위기가 깊어지면 속도를 줄여야 하는데 오히려 가속페달을 더 세게 밟는 경향이 강화되었다. 낭떠러지가 눈앞에 있는데도 옆 차를 추월해야 한다며 질주하는 꼴이다. 날씨가 미쳤다는 소리가 종종 들리는 시절이다. 미친 것은 기후가 아니라 파국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이 세계가 아닐까.

2016년 9월 21일 뉴욕시 유엔 본부에서 열린 유엔 파리협정 발효 행사에서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가 연설하고 있다. 파리협정은 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채택된 국제적 기후변화 대응 협약이지만 경제성장과 국가경쟁력이라는 명분 앞에서 무력해지고 있다.
2016년 9월 21일 뉴욕시 유엔 본부에서 열린 유엔 파리협정 발효 행사에서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가 연설하고 있다. 파리협정은 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채택된 국제적 기후변화 대응 협약이지만 경제성장과 국가경쟁력이라는 명분 앞에서 무력해지고 있다.위키미디어커먼즈

3대 메가 프로젝트, '개발독재'의 다른 이름

이런 질주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재명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다. 작년부터 'AI 3대 강국'을 외치던 대통령은 지난 6월 29일, "새로운 역사," "대도약," "균형 발전," "압도적 성장, 확실한 성과", "초격차 산업 강국," "대체불가 대한민국" 등의 수사를 동원해 반도체·피지컬 AI(로봇과 자율주행차 등 물리적 실체를 가진 기기에 탑재되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묶은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참여 기업들의 계획을 모두 합치면 최대 4700조 원대에 이르는 투자로, 올해 정부 총지출 예산(728조 원)의 6배가 넘는 규모다. 대통령은 이 성과가 "앞으로 대한민국의 20년, 30년을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발표 3일 후 충남 아산에서 열린 '충청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는 "무한경쟁의 시대 … 첨단 제조 역량과 인공지능 활용력은 국력이고 경제력이고, 그리고 안보력이고 국가 경쟁력의 핵심 지표"라며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이 길로 가지 않으면 "도태의 위험"에 빠질 수 있음도 경고했다. '속도전·거점전·선도전' 전략과 '총력 지원 체제'와 같은 전쟁의 언어까지 동원되니, 과거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의 국가 총동원 구호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박정희가 그랬던 것처럼, 이런 대규모 국가 동원 프로젝트가 어떤 비용을 요구하는지, 화려한 수사 뒤에서 국토가 어떻게 파헤쳐질 지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킨다. 거대한 산업단지와 데이터센터는 엄청난 전력과 물을 필요로 하고, 이를 공급하기 위해 가뜩이나 좁은 땅에 촘촘히 들어선 논과 마을, 강과 산 위로 발전소와 송전선로, 댐과 각종 기반시설이 건설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이는 한국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기후위기 대응도 지체된다.

파괴되는 것은 기후와 생태계만이 아니다. 이 사업은 애초 대기업과 금융자본, 그리고 해당 기업의 주식을 많이 보유한 일부 계층에 이익이 집중되는 구조라는 비판도 받는다. 반면 발전소와 송전탑, 물 부족과 오염, 소음 공해 등으로 인한 피해는 농촌과 지역 주민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기업은 토지와 전력, 용수와 정책금융을 지원받고, 사업이 성공하면 이익을 가져가지만, 실패에 따르는 부담과 환경·사회적 비용은 국가가 세금과 공공요금으로 떠안게 된다.

7월 16일 한국은행이 3년 6개월만에 기준금리를 연 2.50%에서 2.75%로 0.25%포인트 올리며 긴축 국면으로 전환한 것은 이런 불평등이 더 심화될 수 있음을 예고한다. 대출에 의존해 살아가는 청년층과 저소득층, 영세 자영업자는 더 큰 부담을 떠안게 되지만, 메가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에는 정책금융과 규제 완화, 기반시설이 제공될 것이다. 서민에게는 물가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고통 분담을 강요하면서, 시민의 혈세를 동원해 일부 기업과 자산 보유자의 성장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셈이다. '성장'을 명분으로 이익은 소수가 사유화하고, 비용과 위험, 손실은 사회가 떠맡는 불평등 구조는 이렇게 악순환된다.

6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하이닉스 회장 등과 함께 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서남권 등에 대규모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김선철 기후정의활동가는 이같은 무한 성장 정책이 기후 위기는 물론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6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하이닉스 회장 등과 함께 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서남권 등에 대규모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김선철 기후정의활동가는 이같은 무한 성장 정책이 기후 위기는 물론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연합뉴스

'무한 성장'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사회

모든 것이 성장의 수단으로 환원될 때 민주주의는 실종된다. 정부는 타운홀미팅을 열어 시민과 대화한다고 하지만, 정작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하고 어떤 성장이 필요한지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시민에게 허용되는 것은 짜인 계획 안에서 지역별 보상을 위한 세부 방식을 논의하는 일뿐이다. AI는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다른 미래 옵션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선진국' 대한민국의 재원을 어디에 우선 배분해야 하는지는 토론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심지어 기후위기 대응마저 '에너지 전환=새로운 성장 동력=세계 시장 개척'과 같은 공식으로 환원된다. 무엇을 얼마나 생산하고 소비할지는 묻지 않은 채 에너지원만 바꾸면 지금의 성장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이미 실패로 드러난 전략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이런 식으로 정부가 마이크를 독점한 채 담론의 경계를 설정하면, 시민의 공론장은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아니라 정해진 정책에 동의를 조직하는 무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미래를 생각하다 보면 우울함과 무력감이 밀려오지 않을 수 없다. 나만 이런 것은 아닐 것이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누군가는 영끌을 통해 주식과 부동산시장으로 뛰어들지만, 더 많은 이들은 무력감과 정치적 냉소주의에 빠져들고 있다. 불안과 불만을 함께 해결할 공적 전망이 사라진 자리로는 혐오와 배제,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극우적 정치가 파고든다. 서로에 대한 적대를 숨기지 않는 거대 양당이지만, 오로지 기업을 앞세운 무한 성장과 개발을 최고의 경제정책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 결과 생명의 전제인 기후와 환경은 계속 파괴되고, 대안이 사라진 정치는 끊임없이 분노만 재생산하면서 우리 사회를 더 깊은 파국으로 밀어 넣고 있다.

싸우는 이들이 희망, 새로운 미래를 그리자

2024년 8월 8일 다양한 부문을 대표하는 400 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907 기후정의행진 조직위가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를 내세우며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선포식을 열었다. 김선철 기후정의운동가는 갯벌을 지키기 위해, 송전탑을 막기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는 이들속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2024년 8월 8일 다양한 부문을 대표하는 400 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907 기후정의행진 조직위가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를 내세우며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선포식을 열었다. 김선철 기후정의운동가는 갯벌을 지키기 위해, 송전탑을 막기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는 이들속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연합뉴스

이와 같이 절망적인 현실에서 희망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파괴를 파괴라 부르고, 멈춰야 할 것 앞에서 멈추라고 요구하며,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이들에게서 나오지 않을까. 8년째 핵발전소가 생산한 전기를 저장할 양수발전소에 맞서 삶터와 일터인 잣나무숲을 지키고자 싸우는 홍천 풍천리 주민들, 4대강 사업 이후 독성물질 마이크로시스틴을 품은 녹조 물로는 농사도, 안전한 삶도 이어갈 수 없다며 대책을 요구하는 낙동강 유역 시민들 말이다.

또한 건강한 지구 생태계를 위해 필수적인 갯벌, 혹은 생명력 가득한 산을 깎아 바다를 메워 신공항을 짓겠다는 위험천만한 계획에 맞서 싸우는 시민들, 수도권과 소수 대도시 주변 산업단지에 전기를 보내기 위해 농촌 공동체를 가르며 들어서는 송전탑에 맞서는 농촌 주민들, 그리고 3대 메가프로젝트가 자연과 지역민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새로운 개발독재라고 비판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중첩된 위기의 시대, 지구의 생명 시스템과 다수의 안전한 삶을 지키는 이들이며, 공동의 미래에 대한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어야 하는지를 되묻는 민주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이 아닌가.

결국 우리의 희망은 내란을 몸으로 막아낸 시민들의 민주주의 의식과 직접 행동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제 '내란 청산'은 단지 권력을 가진 소수 세력간 자리바꿈이 아니라, 내란을 낳았던 해악적인 정치경제 체제 자체를 청산하는 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더 빠른 성장과 더 높은 주가가 아닌, 좀 더 안전한 삶, 충분한 돌봄, 평등한 경제, 깨끗한 물과 공기, 노동할 권리와 쉴 권리, 공동체의 결정권에 기반한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멈춰 세워야 할 것은 멈춰 세우고, 지켜야 할 것을 지켜야 한다. 외치자. 그리고 각자 할 수 있는 행동을 하자. 이 절망의 여름, 파괴에 맞선 이들과 손 잡으며 희망을 키우자.

김선철 가후정의운동가
김선철 가후정의운동가본인

필자 소개 : 김선철은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민주노총 기후교육팀, 체제전환운동조직위원회, 녹색당 등에서 활동하는 기후정의운동가다. 풀뿌리에서 시작되는 사회운동 활성화와 이슈와 부문을 뛰어넘는 사회운동의 연결에 관심 가지고 교육, 조직화, 연구, 글쓰기 작업을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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