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일본군 위안부 역사부정 대응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기 용인 처인고 학생 2명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윤근혁
20년 교사 생활을 토대로 단언하면 학생들은 수업보다 교실 생활에 영향을 더 많이 받습니다. 역사 수업 시간이 바뀌는 것에는 관심 없어도 자리를 언제 바꿀 것인지는 매일 묻습니다. 교사의 질문에는 입을 꾹 다물고 있어도 오늘 급식 메뉴는 기가 막히게 읊어댑니다.
저는 담임을 맡으면 학생들과 매일 아침마다 학급회의를 합니다. 교실은 혼자 공부하는 공간이 아니라, 하루 6시간 이상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그 안에서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출발점이 학급회의입니다.
안건은 자리 배치, 지각, 수업 태도, 학급비처럼 사소한 일상의 문제입니다. 학급회의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이해와 조율을 통한 '공감 능력 향상'입니다. 예를 들어, 지각을 반복하는 학생이 있어 이유를 묻자 학원 수업이 늦게 끝나 어쩔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학교보다 학원을 우선하는 태도를 비판했고, 당사자는 부모의 요구라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난상토론 끝에 담임교사가 보호자와 학원 시간을 조정해 보기로 했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함께 등교를 돕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모든 경우가 이렇게 원만하게 풀리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학생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학급회의는 잘못을 단죄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서로의 맥락을 이해하고, 다른 의견을 듣고, 갈등을 조정하는 연습의 장입니다.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매일 작은 규모의 '검증'과 '조율'을 경험합니다. 얼굴을 마주한 채 반박 당하고, 다시 이해 받는 경험입니다. 온라인에서는 좀처럼 얻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이러한 경험이 축적될 때 민주주의는 교과서에서 배우는 개념이 아니라 생활이 됩니다.
이러한 효과는 개인적 체감에 그치지 않습니다. 2016년, 저는 연구자와 함께 1년 동안 이 학급을 직접 관찰하고, 설문과 인터뷰를 통해 그 효과를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정태윤·윤종필, '민주주의 학급운영의 설계와 그 효과: 학급회의를 중심으로', <열린교육연구> 제26권, 2018). 연구 결과 학생들은 공적인 자리에서 자기 의견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를 길렀으며,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실제로 개선된 사례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이 전부는 아니다
역사교육 강화가 만능열쇠가 아니듯, 학급회의만으로 지금 당장 모든 문제가 마법처럼 해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교실에서 아무리 좋은 소속감을 쌓아도, 하교 후 몇 시간 씩 소비되는 온라인 콘텐츠의 영향력을 상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교실 민주주의 공동체 경험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토론 중심 교육, 전문 상담 지원 활동,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와 대응 등이 함께 가야 합니다.
저에게 "페미들에게 유리한 거잖아요"라고 말했던 학생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그 말은 그 학생이 스스로 만든 게 아니라, 어딘가에서 흘러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억지로 지우려 애쓰는 대신, 그 학생이 매일 아침 학급회의에서 자기 생각을 말하고, 반박 당하고, 이해 받는 경험을 쌓아가길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10대들이 쓰는 거친 언어는 단일한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온라인 알고리즘, 입시 경쟁 구조, 세대 간 소통 단절이 뒤엉켜 있는 문제를 교실 하나가 전부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지금 어떤 말을 하는 학생이라도, 그 말은 그 학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교사가 어떤 경험과 관계를 만들어 주는가에 따라 그 말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배재고 사건이 남긴 숙제는 큽니다. 그러나 그 답을 학생에게 어떤 딱지를 붙이는 데서 찾을 수는 없습니다. 답의 일부는, 교실에서 매일 반복되는 작은 회의 시간 속에서 교사가 학생을 믿고 기다려주는 그 관계 안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