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20 16:29최종 업데이트 26.07.2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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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정민철 후보자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공명선거 실천 서약식에 참석하고 있다.
8.17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정민철 후보자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공명선거 실천 서약식에 참석하고 있다. 유성호

20대 후반에 겨우 취직에 성공해 스타트업 기업에서 일하며 어렵사리 목돈을 모았다. 처음 급여를 받을 때야 하고 싶은 게 많으니 쇼핑과 외식도 하고,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거나 클럽에 놀러 가며 유흥도 열심히 즐겼다. 하지만 이렇게 살다간 갑작스레 큰돈이 필요할 때, 기댈 곳이 전혀 없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미래를 설계할 수도 없을 만큼 좁아터진 원룸에서 평생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나를 덮쳤다. 그렇게 사람이 알뜰살뜰 살게 된다. 쇼핑, 외식, 유흥이 일상에서 금방 사라졌다. 옷은 필요하면 중고로 사 입고 외식도 배달도 필요할 때가 아니면 아예 하지 않았다. 이유가 없으면 사람도 잘 안 만난다. 그렇게 씨앗자금이라 할 돈을 모았는데, 이상하게 씨앗은 싹을 틔우거나 몸집을 키우지 못했고 돈이 조금이라도 불어나면 급전이 필요한 상황에서 모두 사라졌다. 30대 후반에 가까워진 지금도 매해 그런 일이 반복 된다.


그리고 몇년 째 씨앗으로만 남아 있는, 지난 시간 아등바등 모아 매년 정기예금통장에서 잠만 자는 그 돈이 딱 2000만 원이다.

나는 이 돈의 존재를 거의 잊고 산다. 하지만 이 2000만 원을 하루아침에 선뜻 쓸 수 있나하면 그렇지 않다. 나름의 유일한 비빌 언덕이기 때문이다. 이 돈이 갑자기 떠오른 건 얼마 전 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 예비경선 기탁금이 갑자기 2000만 원으로 인상되었다는 기사를 본 이후다. 민주당은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새로 뽑는 전당대회를 8월로 앞두고 있다. 그리고 지난 전당대회까지 예비경선 기탁금은 500만 원이었다. 즉 네 배에 달하는 금액으로 수직 상승한 셈이다. 이미 단단한 경제적 기반을 닦아 가용 자산이 충분하거나 혹은 대출이라도 여유 있게 융통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2000만 원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반대의 조건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은 높은 확률로 청년층일 것이다.

청년 정치인에게 불리한 민주당 전당대회 기탁금 규정

8.17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김형남 후보자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공명선거 실천 서약식에 참석하고 있다.
8.17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김형남 후보자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공명선거 실천 서약식에 참석하고 있다. 유성호

왜냐하면 청년들은 중장년층만큼 자산을 형성할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간이 갈수록 물가는 높아지지만 임금이 이를 제대로 쫓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시대의 청년들은 부의 축적은 커녕 대부분 겨우겨우 버티는 삶을 살아왔다.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마지못해 쉬는 청년도 태반이다. 기성 정치인으로서 이미 형성된 지지 기반이라도 있다면 기부금이라도 끌어모을 텐데 후발주자인 청년 정치인들에겐 이마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을 대변하듯 기탁금 인상 소식이 전해진 이후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하는 두 청년 정치인이 쓴소리를 내놓았다. 김형남 최고위원 예비후보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 "후보 등록을 이틀 앞두고 (기탁금을 공개하는)공고가 올라왔다"라며 "이렇게 되면 아무 때나 목돈 2000만 원을 써도 문제없을 만큼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청년 정치인이자 최고위원 도전자인 정민철 예비후보 역시 "이전 전당대회 사례를 보며 자금을 준비하던 청년들에게는 너무 큰 상승이다"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누군가는 39세 이하 원외 청년에게 기탁금을 50% 할인해 주고 있지 않느냐는 반문을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1000만 원이라고 해도 여전히 기존의 500만 원에서 두 배나 오른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그리고 후보 마감 이후 예비경선까지는 며칠의 시간만이 주어지며 연설 기회도 온라인 연설 1회만 주어진다. 전국 순회 행사 같은 건 없다. 예비경선을 통과하지 못하면 기탁금은 그렇게 사라진다. 그런데 대학원 한 학년 등록금을 내는 데도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청년들이 처한 현실이다. 이런 정도의 일에 1000만 원을 쉽게 지출할 수 있는 청년은 한국 사회에 거의 없다. 실제로 김형남 예비후보는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1000만 원을 내도 선거다운 선거를 치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마감 시간까지 고민했다"는 입장을 올리기도 했다.

기탁금만 문제일까? 민주당이 청년 정치에 진심인지 의아한 이유

그런데 김형남, 정민철 두 예비후보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민주당 최고위원 후보자 이전에 '선출직 청년최고위원' 자리의 공공연한 도전자였다는 점이다. '도전자였다'고 표현하는 건 두 사람이 포기를 해서가 아니다. 청년최고위원 제도가 부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9일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는 2030 표심이 이탈하는 상황을 우려하며 '청년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을 넘어 청년이 직접 정치하는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며 선출직 청년최고위원제의 도입을 의결했다. 이 제도는 다섯 석인 최고위원 자리 중 하나를 청년 정치인의 몫으로 배정한다.

하지만 이 제도는 결국 도입되지 않았다. 선거의 규칙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최고위원회의의 문턱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친청(친정청래)계와 친명(친이재명)계가 '선호투표제'를 채택하는 대신, 청년최고위원제 부활을 무산시키는 식의 거래를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다(친청계는 선호투표제와 청년최고위원제 도입을 모두 반대해왔다). '선출직 청년최고위원' 제도가 없다면 비(非)청년최고위원 후보들이 경쟁하고 차지할 자리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된다. 가장 힘없는 청년들의 자리를 야합의 카드로 삼은 셈이다.

청년들이 과연 누구에게 이입하겠는가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8.17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김민석, 고민정, 정청래, 김보미, 송영길 당대표 후보자,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박선원, 이건태, 이성윤, 김용, 박성준, 박승원, 정민철, 한민수, 서미화, 최민희, 김영호, 임미애, 신계륜, 김형남 최고위원 후보자들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공명선거 실천 서약식에 참석해 서약서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8.17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김민석, 고민정, 정청래, 김보미, 송영길 당대표 후보자,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박선원, 이건태, 이성윤, 김용, 박성준, 박승원, 정민철, 한민수, 서미화, 최민희, 김영호, 임미애, 신계륜, 김형남 최고위원 후보자들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공명선거 실천 서약식에 참석해 서약서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유성호

젊음이 곧 유능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제로 여러 정당의 청년 정치인들이 기득권 정치인보다 더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인 경우도 있었다. 때문에 청년최고위원제 도입에 회의적인 일부 정치인들은 상징적인 자리에 청년들을 앉힐 게 아니라 이들의 의제를 반영할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다만 그럼에도 나는 청년 정치인들에게 최고위원과 같이 '지위'를 주는 제도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비록 좌충우돌할지 몰라도 청년 정치인들이 주요한 무대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그래야 정치에 '다음'이 생긴다. 이건 민주당 만이 아니라 모든 정당이 공유하는 문제다. 순환되지 않는 물은 결국 썩기 마련이다. 정치는 결국 사람이 한다. 다음 사람이 보이지 않거나 혹은 그들이 성장할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그 당에 무슨 미래를 기대하겠는가. 그런 면에서 선출직 청년최고위원 도입을 부결하고 전당대회 출마 기탁금 산정에 있어 청년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민주당의 행보는 무척 실망스럽다.

나는 정치가 청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들의 불안과 욕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정책과 비전에 반영하는 게 무척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충분조건이 아니라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유권자로서 나는 내 삶을 중심에 놓고 어느 정치인이 나를 더 잘 대변할 것인지 선거 때마다 치열하게 머리를 굴린다. 하지만 정치는 감정의 영역에 있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리 내게 적합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라도 나와 지나치게 동떨어진 삶을 사는 탓에 심정적 거리가 너무 멀다면, 그 후보를 지지할 의향이 강하게 생기진 않는다. 그러니 민주당에 묻고 싶다. 2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씨앗 자금 2000만 원을 쥐고 '이거라도 없으면 너무 불안하다'며 전전긍긍하는 내가 어떤 후보에게 더 마음을 열 수 있겠는가. 갑자기 인상된 기탁금 앞에서 그 돈을 마련하기 어려워 동분서주 하거나, 혹은 이것이 이렇게 쓸 가치가 있는 금액인지 끝까지 고민하는 사람이겠는가. 아니면 이 기탁금 액수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겠는가. 그리고 지금의 청년들은 과연 전자와 후자 중 어떤 사람에 가깝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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