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북부 랴오닝성 다롄에 위치한 다롄 롱커 파워 유한공사의 바나듐 레독스 흐름 배터리 시스템
신화/연합뉴스
지난 5월, 스위스의 에너지 기업 '플렉스베이스(FlexBase)'는 스위스 라우펜부르크(Laufenburg)에 약 10억 달러를 투자하여 세계 최대 규모의 레독스 흐름 배터리(Redox Flow Battery, RFB) 시설을 짓는다고 발표했습니다.
먼저 레독스 흐름 배터리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스마트폰이나 전기차에 사용하는 배터리는 대부분 '리튬 이온 배터리'입니다. 부피가 작고 가벼우면서도 전기를 압축해 많이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 노트북, 전기차처럼 휴대하거나 이동해야 하는 제품에 주로 쓰입니다.
반면 리튬 이온 배터리는 화재와 폭발 위험이 있어 안정성 면에서 불안 요소가 있고, 충·방전을 반복할수록 성능이 떨어져 수명이 짧아집니다. 또한 겨울철 한파 같은 극단적인 온도 변화에 취약해 배터리 용량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레독스 흐름 배터리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한 새로운 형태의 배터리입니다. 에너지를 저장한 액체 전해액을 외부 대형 탱크에 따로 보관하며, 이 액체를 순환시켜 전기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액체 전해액 속의 물질이 전자를 얻는 '환원 반응(Reduction)'과 전자를 잃는 '산화 반응(Oxidation)'을 연속적으로 일으키며 전기를 저장하고 내보내는데, 이 두 화학 반응의 영문 앞 글자를 따서 '레독스(Redox)'라고 부릅니다.
레독스 흐름 배터리의 가장 큰 장점은 압도적인 안전성입니다. 전기를 만드는 전해액 성분에 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과열되더라도 불이 붙지 않으므로, 화재 위험성이 0에 가깝습니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쓸수록 성능이 떨어지지만, 흐름 배터리는 충·방전을 수만 번 반복해도 전해액의 성질이 변하지 않아 수명이 사실상 무한합니다. 수명이 20년 이상으로 길 뿐만 아니라, 배터리 수명이 다하더라도 탱크 내부의 구성 물질을 거의 100% 재활용할 수 있어 자원 낭비가 없는 친환경 배터리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용화를 가로막아 왔던 단점도 있습니다. 대형 액체 탱크를 활용하기 때문에 에너지 밀도가 낮아 리튬 이온 배터리에 비해 훨씬 넓은 부지가 필요하고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듭니다. 스마트폰이나 자동차처럼 부피가 작아야 하는 곳에는 쓸 수 없습니다. 또한 액체를 순환시키는 펌프를 계속 구동해야 하므로 전력 손실이 발생해 전체적인 에너지 효율이 다소 떨어진다는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점은 광주·전남 반도체 산단에 적용되는 순간 강력한 장점으로 뒤바뀝니다. 호남은 전국에서 재생에너지가 가장 풍부할 뿐만 아니라, 대규모 배터리 저장 시설을 지을 땅이 넉넉합니다. 따라서 이동할 필요가 없는 고정형 대규모 ESS 장치로서 레독스 흐름 배터리를 도입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리튬 대신 흔한 소금 성분을 이용해 가격 경쟁력을 높인 나트륨 이온 배터리, 전기 에너지를 대량의 열로 바꾸어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다시 전기로 전환하는 카르노 배터리(Carnot Battery)등 재생에너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기존의 리튬 배터리 기반 BESS(Battery Energy Storage System : 배터리 에너지 저장 시스템)에 대규모 레독스 흐름 배터리 같은 장주기 배터리 시스템을 추가하고, 여기에 이미 검증된 호남의 양수발전 시스템까지 이중 삼중으로 연계한다면 기상 변화와 관계없이 365일 24시간 안정적인 반도체 팹 운영이 가능해집니다.
혁신을 거듭하는 재생에너지
우리의 삶을 통째로 바꾼 스마트폰의 효시, 아이폰이 처음 등장한 것이 2007년입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은 그때와 비교해 연산 속도는 3만 배, 인터넷 다운로드 속도는 1만 배 이상 폭발적으로 빨라졌으며, 카메라 성능이나 저장 공간 역시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인류가 기후위기에 대응해 본격적으로 재생에너지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폰의 등장보다 2년 앞선 2005년 교토의정서 발효 시점부터입니다. 그 후 20년 동안 재생에너지 역시 발전 효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전력을 저장하고 송배전하는 계통 기술 또한 혁명적인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인텔은 이미 전 세계 제조 시설 모두 재생에너지 전환율 99%를 달성했습니다.
INTEL
과거에는 재생에너지가 환경에는 좋지만 비용이 비싸고 다루기 힘들어 실제로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면, 지금은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과 자동차 제조사들이 재생에너지만을 사용해 제조한 부품이 아니면 더 이상 구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우리 반도체 기업의 경쟁자인 마이크론은 미국, 중국, 말레이시아 등 주요 생산지역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율을 100% 달성했습니다. 인텔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제조시설을 다 더 해서 99%의 전환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30년 이후 재생에너지가 기업 간 혹은 국가 간 무역장벽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면 재생에너지 전환율 30% 수준에 불과한 우리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고 말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햇빛이 안 들고 바람이 안 불면 반도체 공장이 멈추게 되니 원전을 더 지어 보완하자는 주장은 20년 전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실상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정직하지 못한 선동일 뿐입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의 인사말. “재생에너지 중심의 탈탄소 녹색문명으로의 대전환”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웹사이트
지금 기후에너지환경부 웹사이트에 가면 장관의 이런 인사말을 볼 수 있습니다.
"탄소문명을 종식시키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탈탄소 녹색문명으로 대전환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우리의 모든 사고와 활동은 지구에 생태적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게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존립근거입니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탈탄소 녹색문명으로의 대전환"으로 가는 길에 원전이 끼어들 자리는 없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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