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센터의 GPU와 HBM을 잇는 'AI 혈관'으로서 광모듈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노라이트
2026년 7월 17일, 세계 광모듈 1위 기업 이노라이트(InnoLight, 中际旭创)가 홍콩증권거래소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했습니다. 조달 목표액은 당초 50억 달러에서 기관 투자자들의 강한 청약 수요에 힘입어 약 70억 달러(약 546억 홍콩달러, 한화 약 10조 4천억 원)로 상향되었고, 2019년 알리바바 이후 홍콩증시 최대 IPO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도체 회사도, AI 플랫폼 회사도 아닌 '광모듈 회사'가 올해 최대어가 된 이 사건은 AI 인프라의 패권이 이동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흔히 AI 인프라를 GPU와 HBM로 보고 엔비디아의 연산과 삼성,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대역폭이 성능을 좌우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 통념은 절반만 맞습니다. 수만 개의 GPU가 하나의 두뇌처럼 작동해야 하는 초대규모 클러스터에서 연산 속도만큼 중요한 것은 데이터를 옮기는 속도입니다. GPU 간 데이터 동기화가 전체 훈련 시간의 30~50%를 잡아먹는 순간, AI의 승부처는 칩이 아니라 칩과 칩 사이의 '연결'로 옮겨갑니다. 광모듈은 바로 그 연결의 물리적 실체이며, 이 시장이 홍콩 IPO 최대어를 탄생시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광모듈이 AI 클러스터의 성능을 규정한다
광모듈은 전기 신호를 광 신호로 광 신호를 다시 전기 신호로 바꾸는 인터페이스 부품입니다. 정의는 단순하지만 AI 시대에 그 위상은 '주변 부품'을 넘어섰습니다. 구리 케이블은 3~5미터 이상 고속 전송이 불가능하지만 광케이블은 수 킬로미터까지 손실 없이 데이터를 나릅니다. 그래서 클러스터가 커질수록 광모듈은 기하급수로 늘어납니다. 전통 데이터센터는 GPU 1개당 광모듈 3개면 충분했지만 전광 아키텍처 AI 클러스터는 9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광모듈의 중요성은 수량에만 있지 않습니다. AI 훈련에서 GPU 간 데이터 동기화는 전체 시간의 30~50%를 차지하는데 연산 칩이 아무리 빨라도 그 칩들을 잇는 광모듈이 느리면 시스템 전체가 그 속도에 묶입니다. AI 인프라는 이미 "네트워크가 곧 컴퓨터(Network is the Computer)"인 국면에 들어선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중국은 역발상을 꺼냈습니다. 만들 수 없는 첨단 반도체를 정면으로 좇는 대신, 초고속 연결로 그 한계를 우회하는 전략입니다. 화웨이는 2026년 타오 법칙(τ 법칙)을 발표하며 경쟁의 축을 '얼마나 빠른 칩을 만드느냐'에서 '신호를 얼마나 빠르게 보내느냐(시간)'로 옮겼습니다.
그 결정체가 Atlas 950 SuperPoD로, 자체 개발한 링거 2.0(LingQu 2.0, 灵衢2.0) 광인터커넥트(Optical Interconnect) 프로토콜로 통신 지연을 2마이크로초에서 200나노초로, 10분의 1로 낮췄습니다. ZTE(中兴通讯) 역시 OEX 무배선판 아키텍처와 dOCS 광스위칭(Optical Switching) 칩으로 지연을 100나노초 수준까지 단축했습니다.
화웨이와 ZTE가 슈퍼노드에서 광통신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반도체의 한계를 더 빠르게 연결함으로써 시스템 전체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반도체 봉쇄 시대에 중국이 택한 전략적 우회로이며, 광모듈은 그 전략에 크게 기여하는 물리적 실체입니다.
중국은 전세계 광모듈 시장 패권국
광모듈 시장에서 중국의 위상은 우위를 넘어 지배에 가깝습니다. 2025년 글로벌 상위 10대 광모듈 기업 중 7곳이 중국 기업이며 고속 제품으로 갈수록 그 지배력은 더 강력해집니다. 800G에서 중국의 점유율은 60~70%대, 차세대 1.6T에서는 사실상 독점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이 지배력의 정점에 이노라이트가 서 있습니다.
회사는 4년 연속 세계 1위를 지키며, 800G 광모듈에서 40~55%, 1.6T 광모듈에서 50% 이상을 점유하고, 엔비디아의 최대 광모듈 공급사로서 엔비디아 1.6T 조달 물량의 80%, GB200 플랫폼 1.6T의 70%를 독점 공급합니다. 엔비디아의 2026년 광모듈 조달량이 2,000만 개로 상향되면서 이노라이트의 수주 잔고는 2027년까지 채워졌고, 구글·메타·AWS·마이크로소프트와의 장기계약도 견고합니다.
실적은 이 수요를 그대로 증언합니다. 2025년 매출 382억 위안(약 8조 4000억 원)을 기록한 이 회사는 2026년 1분기에만 매출 194.96억 위안(전년 대비 192% 증가, 약 4조 3000억 원), 순이익 57.35억 위안(전년 대비 262% 증가, 약 1조 2600억 원)을 올렸습니다. 단 한 분기 이익이 2025년 연간 순이익 107.97억 위안(약 2조 3700억 원)의 절반을 이미 넘어선 것입니다.
그런데 이노라이트 한 회사의 역량만으로 이 독주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진짜 힘은 생태계에 있습니다. 장강삼각주, 주강삼각주, 우한 광구에 집적된 광통신 클러스터는 부품 국산화율 90% 이상을 실현합니다. 중국이 파는 것은 광모듈이 아니라 광모듈을 8주 안에 수십만 개 만들어내는 산업 생태계 그 자체입니다.
미국은 설계의 우위
미국은 양산 경쟁을 포기하는 대신 기술력으로 앞섭니다. 광모듈의 '두뇌'인 고속 DSP 칩은 브로드컴과 마벨이 90% 이상을, 200G EML 광칩은 루멘텀과 코히런트가 사실상 독점합니다. 중국이 아무리 조립을 잘해도, 핵심 부품은 미국을 거쳐야 합니다. 이 병목은 자본으로 더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엔비디아는 2026년 3월 코히런트와 루멘텀에 각각 20억 달러, 마벨에 20억 달러, 코닝과도 파트너십을 맺으며 광통신에 총 65억 달러를 쏟아부었습니다. 루멘텀은 2026 회계연도 3분기 매출 8억 8백만 달러(전년 대비 90% 증가)를 기록했고, 200G EML 매출은 한 분기 만에 두 배로 뛰었습니다. 미국은 광모듈을 만들지 않지만 광모듈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관문을 팝니다. 이것이 중국의 아킬레스건이며 중국이 우회로로 실리콘 포토닉스와 CPO에 집중하는 이유입니다.
기술은 속도전이고, 판은 실리콘 포토닉스로 넘어가는 중
광모듈의 기술 진화는 속도전입니다. 400G가 주류이던 2023년에서 불과 3년 만에 800G가 양산되고 1.6T가 상용화되며, 세대 교체 주기가 4년에서 2~3년으로 짧아졌습니다. 2026년은 800G의 대량 확산과 1.6T 상용화 원년이 겹치는 해입니다. 1.6T는 2026년 2000만 개 안팎으로 급증할 전망입니다.
더 근본적인 전환은 소재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실리콘 포토닉스는 CMOS 공정을 그대로 활용해 광소자를 제작합니다. 기존 반도체 팹에서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뜻이며 시장 점유율은 2030년 60%에 이를 전망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간 CPO(Co-packaged Optics)는 광엔진을 스위치 ASIC 칩 바로 옆에 패키징해 전력 효율을 극대화합니다. 엔비디아의 실리콘 포토닉스 기반 스펙트럼-X 이더넷 스위치는 기존 대비 5배의 전력 효율을 내세우며, 2026년 하반기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CPO의 본격 상용화는 2027~2028년입니다.
한국 강한 기술 역량, 약한 생산 기반
AI 경쟁은 이제 연산(칩)·메모리(HBM)·연결(광모듈)의 삼위일체로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만들기'에서, 미국은 '설계하기'에서 각자의 패권을 굳혔고 한국은 그 사이에서 '미래 기술'을 축으로 한 독자적 길을 모색해야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한국의 기술적 역량은 결코 빈약하지 않습니다. ETRI는 224GB/s 전계흡수변조형 광원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오이솔루션은 1.6T·CPO 로드맵을 공개했으며, 삼성전자는 실리콘 포토닉스 공동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술력을 상용화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받을 내수시장이 부재하다는 점이 가장 큰 약점입니다. AWS·메타·구글 같은 하이퍼스케일러가 없어 국내 800G·1.6T 수요가 사실상 전무하며, DSP와 EML 광칩의 해외 의존도도 여전히 높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약점이, 미국의 대중국 제재라는 외부 충격과 맞물리면서 전환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FCC의 중국 내 인증 실험실 자격 박탈, 이노라이트의 1260H 리스트 등재, 중국산 제품에 대한 12.5% 추가 관세 부과 — 이 모든 조치들은 글로벌 광모듈 공급망에 인위적인 균열을 내고 있으며, 그 틈새는 한국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적 방향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대체 공급자'로서의 포지셔닝입니다. 중국 기업들이 규제의 사정권에 들어서면서 미국 빅테크들은 공급망 리스크 분산을 위해 중국 외의 대체 공급처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기술력과 생산 안정성을 무기로 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특히 1260H 리스트 등재로 직간접적 퇴출 압력을 받는 이노라이트의 공백은 한국 기업들에게 실질적 기회입니다.
둘째, 'FCC 인증 허브'로서의 역할입니다. 중국 내 인증 실험실의 공백이 발생하면서, 중국 업체들조차 미국이나 동맹국 소재 실험실에서 재인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한국은 지정학적 중립성과 우수한 테스트 인프라를 활용해 이 인증 시장을 선점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제품 수출을 넘어 서비스 수출로 이어질 수 있는 전략적 포인트입니다.
셋째, '핵심 소재의 안전판' 역할입니다. 중국의 인듐포스파이드(InP) 수출 통제는 미국 광칩 제조사들에 직접적 타격을 주고 있으며, 이는 한국이 생산하는 고순도 InP 기판이나 광학 부품에 대한 수요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양 진영 어느 쪽에도 종속되지 않는 '기술 중립적 공급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전략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선결 조건이 있습니다. 국가 AI 컴퓨팅 센터의 조기 구축과 '국산 광모듈 우선 구매' 제도를 통해 내수 시장을 창출하고, DSP 정면돌파 대신 CPO·ELSFP·실리콘 포토닉스 인터포저 등 차세대 기술에 집중하며, ETRI의 연구 성과를 신속히 기업 매출로 전환시키는 체계가 필요합니다.
2027년까지 3.2T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2028년 CPO 양산에 성공하며, 2029~2030년에는 광칩·DSP 국산화를 통한 공급망 자립을 이룰 수 있다면, 한국은 '추격자'에서 '경쟁자'로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숲의 관점에서 보면 명확해집니다. GPU가 나무라면, HBM은 양분이고, 광모듈은 나무와 나무를 잇는 균근 네트워크입니다. 지금 세계는 더 큰 나무를 심는 경쟁을 넘어, 나무들을 하나의 숲으로 엮는 지하 신경망을 누가 소유할 것인가를 두고 다투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신경망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한국에게 이 숲에서 자신만의 뿌리를 내릴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생태계를 선점하는 자는, 토양에 뿌리가 내릴 때 이미 그 자리에 있는 자입니다. 한국이 이 숲에서 한 그루 나무로 남을지, 아니면 숲 전체를 잇는 균사가 될지는 — 미국의 제재를 어떻게 읽고, 그 틈새로 얼마나 빠르게 뛰어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 광모듈 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질문이며 지금이 바로 그 답을 써 내려가야 할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