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맞잡은 손아이와 맞잡은 손
안유림
조문별 제·개정 이유서에서 두 제도는 쌍둥이였다. 기대하는 입법 효과는 둘 다 '육아친화적인 공직여건 조성'. 문서 안에서 두 제도를 구별하는 논리는 없었다. 그러나 다섯 달 뒤 공포된 법에서 육아휴직 확대는 즉시 시행으로 바뀌어 있었다. 난임휴직은 6개월 유예로 남았다.
88건의 의견 중 난임휴직을 말한 것은 두 건이었다. 한 건은 난임휴직에도 승진소요기간 산입을 검토해달라고 했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질병휴직과 다를 바 없는 반쪽짜리 정책이라고 썼다. 다른 한 건은 육아휴직 연령 상향과 난임휴직 신설을 한 문장에 나란히 놓고, 두 제도 모두 유예를 줄이거나 없애달라고 했다.
물론 유예에는 이유가 있다. 난임휴직은 공무원임용령 등 하위법령의 세부 정비가 필요해 6개월 뒤 시행되고, 그때까지는 종전처럼 질병휴직을 쓸 수 있다. 절차의 언어로는 흠잡을 데가 없다. 다만 육아휴직 확대 역시 예고안에서는 같은 6개월 유예였다가 즉시 시행으로 바뀌었다.
'질병'이라는 이름 아래서
나는 난임휴직이 아직 없던 시절, 질병휴직으로 그 시간을 통과한 한 선배를 기억한다. 이 법의 입법예고가 있기 전의 일이다. 다행히 아이가 찾아왔고, 휴직은 육아휴직으로 이어졌다. 선배는 떠나면서 기관에 질병휴직 급여 개선 의견을 남겼다. 자신에게는 다시 해당될 일 없는 제도였다. 다음 사람을 위한 한 줄이었다. 이 글을 쓰며 그때의 심정을 물었다. 답은 이랬다.
"난임휴직 대신 질병휴직이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내면에 갖고 있던 '내가 문제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실제화 되는 느낌이었달까요. 난임 자체가 여성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들고 자존감도 떨어지는 경험이었는데, 질병의 일환으로 프레임이 씌워지니 내심 씁쓸했어요. 휴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긴 했지만요."
이름이 하는 일이 있다. 그리고 규정엔 그 이름이 쓰인다. 지금까지 난임 치료로 휴직하는 길은 하나, 질병휴직뿐이었다. 인사혁신처 예규가 "불임·난임치료를 포함한 질병휴직"이라고 못 박고 있어서다. 그런데 질병휴직은 내가 원해서 쓰는 휴직이 아니다.
공무원의 휴직은 두 갈래다. 육아휴직처럼 본인이 신청하는 휴직(청원휴직)이 있고, "신체·정신상의 장애로 장기 요양이 필요할 때" 기관이 명령하는 휴직(직권휴직)이 있다. 질병휴직은 뒤쪽이다. 그러니 난임 치료로 휴직하려는 사람은 서류 위에서 스스로를 '장애로 일하기 곤란한 사람'으로 정의해야 했다. 선배가 말한 '실제화되는 느낌'은 예민한 사람의 과잉 해석이 아니었다. 질병휴직 서류가 실제로 그렇게 요구하고 있었으니까.
이름의 주소를 옮기는 일
이번 개정으로 난임은 질병이라는 이름을 벗는다. 지금까지 질병휴직 안에 얹혀 있던 난임 치료가, 법전에서 육아휴직 바로 옆 칸에 제 이름의 자리를 얻었다. 자리가 바뀌면 성격이 바뀐다. 기관이 명하는 직권휴직에서, 내가 신청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되는 청원휴직으로.
개정 이유서에 적힌 신설 취지도 한 구절로 요약된다. "공무원 본인의 의사에 따라." 그러니까 이 개정은 치료비나 휴직 기간을 늘리는 일이기 전에, 이름의 주소를 옮기는 일이다. 질병의 옆자리에서 육아의 옆자리로. 환자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이 이름이 옮겨오는 데 6개월이 더 걸린다.
나는 이 개정을 반긴다. 다만 늦게 도착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입법예고 의견 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아이들은 매일 돌봄을 필요로 하고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즉시 시행을 요구하는 논리였고, 여전히 맞는 말이다. 다만 이 문장에 절실함의 순서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세월이 기다려주지 않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시간만이 아니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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