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15 16:47최종 업데이트 26.07.1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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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부처 업무보고에서 보고 내용을 경청하고 있다. 2026.7.15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연합뉴스

정부가 촉법소년의 기준 연령을 만 14세 미만에서 만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성평등가족부는 공론화 과정에서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을 받는 연령대를 강력·중대·반복범죄에 한해 '만 10세 이상, 만 13세 미만'으로 낮추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고 보고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낮추긴 낮춰야 할 것 같다"라며 기준 연령의 하향에 찬성했다. 다만, 일부 범죄에 대해서만 낮출 것인지 모든 범죄에 대해 낮출 것인지, 1년을 낮출 것인지 2년을 낮출 것인지 등은 계속 논의하자고 이 대통령은 말했다.

형사책임연령 하향에 제동 건 조봉암

14세 미만을 형사처벌하지 않게 된 것은 일본 형법이 시행된 1912년부터다. <형사정책연구> 2012년 봄호에 실린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교수의 논문 '형사책임연령 하향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일본 형법이 한반도에서도 효력을 가지게 되면서 14세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하는 형사미성년의 연령이 우리 사회에도 정착"됐다고 기술한다.


일본에서는 그 제도가 1908년부터 시행됐다. 이것이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를 거쳐 1953년의 대한민국 형법 제정에도 영향을 미쳐 "14세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라는 현행 형법 제9조로 이어지게 됐다.

대한민국 형법 제정 당시, 14세 이하로 낮추려는 시도가 있었다. 1953년 6월 26일 작성된 <제16회 국회 임시회의 속기록 제10호>에 따르면, 형사미성년 연령이 포함된 형법 제2장 제1절을 심의하기 직전에 조봉암 국회의장대리(국회부의장)는 "이의 없으시지요?"라며 건너뛰려 했다.

그때, "이의가 있습니다"라며 제동을 거는 의원이 있었다. 친이승만 계열인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으로 당선된 백남식 의원(경북 상주을)이었다. 백남식은 소매치기(쓰리)가 주로 12~14세에 의해 저질러진다면서 연령 하향을 건의했다. 그의 발언은 이랬다.

"현재 다액의 피해를 당하고 있는 쓰리 관계는 대개 열두 살, 열세 살, 열네 살이 주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열네 살로 하면 이 쓰리의 조장이 대단히 많이 될 줄 생각합니다. 그러므로써 이것을 13세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 의원은 주장하는 바입니다."

조봉암은 "백남식 의원은 너무 성급하십니다"라며 면박성 발언을 던졌다. 제2장 제1절에 대해 이의가 없느냐고 물었는데 형사미성년 연령에 관한 별도의 제안을 하는 것은 너무 급하지 않느냐는 지적이었다. 조봉암은 "시방 여기 이의를 묻는 것은 '제2장 죄, 제1절 죄의 성립 및 형의 감면' 여기에 대한 이의가 있느냐 물었던 것입니다"라며 주의를 줬다.

백남식의 제안은 곧바로 표결에 부쳐졌지만, 부결됐다. 소년 소매치기 범죄는 심각했지만, 이것이 형사책임연령 하향을 추동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 형법하에서도 형사책임연령이 14세로 굳어지게 됐다.

오늘날의 형사책임연령은 옛날과 비교하면 높은 편이다. 조선시대에 형법전 기능을 수행한 <대명률직해>의 명례율(名例律)은 "90세 이상, 7세 이하는 비록 죽을 죄를 저질러도 형을 가하지 아니하되" 반역죄의 경우만 예외를 둔다고 규정했다. 이 시대에는 7세 이하가 촉법소년이었던 셈이다.

위의 <형사정책연구> 논문은 "고대 율령국가시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형사미성년의 연령을 7세로 규정하였다", 영국의 경우에는 "13세기 무렵부터 형사책임연령의 기준이 7세로 굳어"졌다고 설명한다. 1856년 이전의 미국 텍사스주에서는 7세였고, 1871년 이전의 독일에서는 8세였다고 논문은 말한다.

모든 나라들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왕조국가시대의 형사책임연령은 지금보다 낮았다. 그랬던 것이 19세기 후반부터 많은 국가들에서 높아지기 시작했다.

지난 2월 영국에서 발행된 <범죄행동과 정신건강(Criminal Behaviour and Mental Health)> 제36권 제1호에 실린 에니스 델메이지(Enys Delmage) 외 18인의 공동논문 '세계 각국의 형사책임 최저연령 - 역사, 체계 및 미래'에 따르면, 스웨덴에서는 1864년에 원칙적으로 15세가 되고, 핀란드에서는 1889년(시행은 1894년)에 15세가 되고, 포르투갈에서는 1911년에 16세가 됐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일본이 14세로 상향하고 한국도 그 영향을 받았다.

현대인들은 인간의 생애를 대체로 영아기-유아기-아동기-청소년기-청년기-중년기-노년기로 구분한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이전의 농업경제시대에는 아동기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다. 아동기를 다른 시기들과 구분해 고유의 특징을 부여하는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희박했다.

보호의 대상인가, '작은 성인'인가

지난 3월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 연령 사회적 대화 협의체 1차회의에서 노정희 사법연수원 석좌교수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오늘날 같으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에 농사일이나 집안일을 거드는 아이들이 대다수였던 시절에는 아동세대가 '작은 성인'의 시기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었다. 아동기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던 결과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1181년에 제작돼 오스트리아 클로스터노이부르크 대성당에 보관된 '홍해를 건넘'('베르룅의 니콜라우스' 작)이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 속의 아이들을 보면 순간적으로 놀랄 수도 있다. 이들은 몸은 아이인데 얼굴은 연로하다. 아동을 작은 성인으로 간주하던 시대의 관념이 상징적으로 투영된 작품이다.

프랑스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1914~1984)가 쓴 <아동의 탄생>은 인류가 아동 세대에 대한 인식을 가진 것은 17세기 이후라고 분석한다. 아동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는 이 시기부터 아동을 거룩하게 여기고 특별히 보호하는 문화가 서구사회에 출현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기독교에서 '아기 예수'가 강조된 것도 이때부터라고 그는 지적한다.

아리에스는 17세기 이후에 기독교적 도덕주의가 확산되면서 아동을 부도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두드러졌다고 말한다. 어린이에 대한 존칭도 이때부터 쓰였다고 한다. "친애하는 어린이 여러분" 같은 표현이 유럽의 예법서에 등장한 것은 이 시기였다고 한다. 이런 흐름이 확산되는 속에서 형사책임연령을 10대 중후반으로 상향하는 현상이 19세기 후반부터 나타났다. 형사책임연령은 아동보호 경향과도 관련을 갖는 사안이다.

공업경제시대에는 열살 이전의 아이들이 산업 현장에 투입되는 일이 줄어들었다. 공업화 초기에는 그 전처럼 10세 미만이 광산이나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일이 많았지만, 19세기 중후반부터는 이런 현상이 감소했다. 이 시기부터는 10대 초중반은 돼야 미숙련 노동자로 고용되는 일이 많아졌다.

농업경제시대 같았으면 집안일이나 농사일을 했을 열살 전후의 아이들은 공업경제 정착과 함께 생산에서 배제되기 시작했다. 19세기 중후반부터 이런 현상이 확산되는 속에서 형사책임연령을 10대 초중반으로 올리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났다.

농업경제 때는 농사일이나 집안일을 감당할 수 있는 일곱여덟 살쯤 돼야 형사처벌 대상이 됐다. 공업경제로 진입한 뒤에는 10대 초중반쯤 돼야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현상이 확산됐다. 당대의 보편적인 노동을 감당할 나이냐 아니냐도 형사책임연령 책정과 무관치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소년범죄의 흉포화·상습화 등이 촉법소년의 연령 문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1953년의 국회 토론에서 나타나듯이, 소년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은 1950년대에도 있었지만 그 시대의 형사책임연령 책정에 영향을 주지 못했다. 아동보호 문제나 노동 감당능력 같은 여타 문제들도 오래 전부터 이 문제와 연동됐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여타 문제들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힘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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