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28 11:52최종 업데이트 26.07.2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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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폭염으로 인해 일본 정부가 도쿄 및 기타 현에 열사병 경보를 발령한 가운데, 일본 도쿄 스가모 지역의 지조도리 상점가를 양산을 든 행인들이 걷고 있다.
지난 23일 폭염으로 인해 일본 정부가 도쿄 및 기타 현에 열사병 경보를 발령한 가운데, 일본 도쿄 스가모 지역의 지조도리 상점가를 양산을 든 행인들이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우나에 온 줄 알았네. 이렇게 더운 데서 어떻게 사니?"

지난주 도쿄를 방문한 한국인 지인이 손 선풍기를 얼굴 가까이에 갖다 대며 말했다. 높은 습도에 땀은 좀처럼 마르지 않고, 달궈진 아스팔트에서는 열기가 치솟았다. 몇 분만 걸어도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나는 올해로 일본 생활 18년째인데, 해마다 "올해가 가장 더운 것 같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뉴스에서도 올여름은 "이제껏 없었던 더위"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매년 '가장 뜨거운 여름'이 갱신되는 건가 하는 두려움마저 든다.

전 세계적으로 폭염으로 인한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국내에서 열사병으로 숨진 사람은 2160명에 달했다. 올해 들어선 7월 중순까지 벌써 약 1만 2000명이 열사병으로 응급 이송됐다.

폭염은 '재난'이다

지난 22일, 일본 도쿄의 무더운 날 37도 섭씨를 표시하는 전광판. 일본 당국은 전국 일부 지역에서 기온이 40도 섭씨에 도달하거나 이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열사병 경보를 발령하고 예방 조치를 당부했다.
지난 22일, 일본 도쿄의 무더운 날 37도 섭씨를 표시하는 전광판. 일본 당국은 전국 일부 지역에서 기온이 40도 섭씨에 도달하거나 이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열사병 경보를 발령하고 예방 조치를 당부했다. EPA/연합뉴스

이처럼 폭염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이어지자 일본 정부는 '폭염'을 지진, 태풍 같은 재난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2024년부터는 '열사병 특별경계경보'라는 제도가 새롭게 도입됐다. 이 경보는 기온, 습도, 복사열을 포함해 산출하는 '폭염지수(WBGT, 습구흑구온도)'를 기준으로 발령된다.

경보가 발령되면 재난 대응 체제가 즉시 가동된다. 먼저 한국의 무더위쉼터에 해당하는 '쿨링 셸터'가 개방된다. 지자체는 재난 문자와 방재 방송으로 시민들에게 외출을 자제하고 냉방기를 적극 사용할 것을 요청한다. 복지 관계자들은 독거노인 등 폭염 취약계층을 방문해 안전을 확인한다. 학교나 공공 기관의 야외 행사는 중지된다.

얼마 전, 도쿄의 최고 기온이 38도 가까이 올라간 날 '온열질환 예방 무더위 쉼터'라고 적힌 노란 깃발이 곳곳에 세워져 있는 것을 봤다. 시청이나 마을 공민관 같은 공공시설은 물론 약국이나 개인 병원, 교회 등도 무더위 쉼터로 지정되어 있었다.

그중 한 곳, 카페와 보건소 등이 운영되는 복지 시설 안에 들어가 봤다. 노란 깃발 아래, 무료 급수기와 함께 의자가 설치되어 있었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틀어진 실내에는 시민들이 물을 마시거나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 역시 잠시 땀을 식힌 뒤, 가지고 있던 물병에 차가운 물을 가득 채워 다시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집 근처 복지시설에 마련된 무더위 쉼터와 무료 급수기
집 근처 복지시설에 마련된 무더위 쉼터와 무료 급수기박은영

이 같은 폭염에 가장 염려가 되는 이들은 실외 노동자들이다. 우리 집 근처에도 공사 중인 현장이 있는데,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일하는 노동자들을 볼 때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여름철 산업 재해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특히 건설 현장에서는 2024년만 해도 31명이 온열 질환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사고를 줄이기 위해 일본 정부는 지난해부터 사업장에서의 온열질환 예방조치를 의무화했다. 폭염이 예상되는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휴식시간을 보장하고, 만일을 대비해 응급조치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소홀히 하는 사업주는 행정 처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공조복을 착용하고 주차 안내 중인 경비원
공조복을 착용하고 주차 안내 중인 경비원PhotoAC

근래 들어 이 같은 현장을 지날 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인부들의 옷차림이다. 예전에는 한 여름에는 상의를 입지 않고 수건 하나를 머리에 두르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근래에는 반대로 겨울에나 입을 것 같은 두툼한 조끼를 입고 작업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한 여름에 왜 저런 두꺼운 옷을 입나 싶어 가까이서 살펴보니, 조끼 양쪽에 작은 선풍기가 달려 있었다. 외부 공기를 옷 안으로 순환시켜 땀의 증발을 돕는 '공조복'이라 불리는 작업복이다. 2004년 소니 엔지니어 출신의 시가야 히로시(79)씨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이후 지금은 실외 노동자의 여름철 필수 장비로 자리 잡았다.

집 근처 대형 슈퍼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어르신도 얼마 전부터 이 공조복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장을 보러 가는 길에 인사를 건네며 "그거 입으면 좀 시원하세요?"라고 물으니 "입고 안 입고는 천지 차이"라며 "이거 없으면 밖에서는 오래 버티기 힘들었을 거야"라고 덧붙였다.

냉각팩에, 냉각판초까지... 이거 없으면 생명이 위험하다

이 같은 공조복 외에도 폭염을 대비한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화장품 회사 팬클(FANCL)과 인쇄업체 토판(TOPPAN)이 공동 개발한 '시온(示温) 스티커'다. 체온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스티커 속에 그려진 사람 얼굴 그림에 땀이 맺힌다. 체온 변화를 스스로 인지하기 어려운 어린이와 고령자에게 위험 신호를 알리기 위해 고안된 제품으로, 내년 상용화를 목표로 실증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두드리면 즉시 차가워지는 휴대용 냉각팩도 인기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도 얼마 전 휴대용 냉각팩을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최고기온이 39도에 달했던 날, 아이는 냉각팩을 사용하며 하교했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도보로 15분 거리인데, 아이는 "오늘은 이거 덕분에 시원하게 왔어"라고 말하며 아직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는 냉각팩을 꺼내 놓았다.

지난해 오사카 엑스포를 계기로 관심을 모았던 '냉각판초'도 올해부터 시중에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비옷처럼 생긴 이 판초는, 물에 적신 뒤 가볍게 짜 입으면 수분이 증발하며 열을 빼앗아 체온 상승을 억제한다. 휴대가 간편하고 상반신을 다 덮을 수 있어, 야외 공연이나 스포츠 관람을 즐기는 사람들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처럼 폭염에 대비한 다양한 상품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지자체도 다양한 폭염 관련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일례로 내가 거주하는 도쿄의 경우, 6월부터 수도요금의 기본요금이 4개월간 면제된다. 생활비 부담을 덜어 시민들이 전기요금 걱정 없이 에어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유락초역에 설치된 무료 급수기. 도쿄 전역 1000여 곳에 이 같은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유락초역에 설치된 무료 급수기. 도쿄 전역 1000여 곳에 이 같은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도쿄도 수도국

무료 급수기 설치 사업인 '도쿄 워터 드링킹 스테이션(Tokyowater Drinking Station)'도 확대되고 있다. 우에노공원, 아사쿠사, 오다이바 등 주요 관광지를 포함해 도쿄 전역 약 1000곳에 무료 급수기가 설치돼 있다. 물병만 있으면 누구나 차가운 식수를 채울 수 있으며, 스마트폰으로 전용 지도에 접속하면 가장 가까운 급수기의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폭염 속 시민과 관광객의 탈수를 예방하기 위한 생활 밀착형 정책이다.

18년 전 내가 처음 일본에서 겪었던 여름은 덥고 습하긴 했지만, 선풍기 한 대로 견딜 만한 날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일본의 여름은 양산은 기본이고 냉각 링, 냉각팩까지 챙겨야 안심하고 집을 나설 수 있을 정도다. 매미 소리와 풍경(風鈴, 작은 종) 소리를 들으며 한낮의 산책을 즐기기에는 일본의 여름은 이미 너무 뜨거워져 버렸다.

본격적인 무더위와 함께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이번 여름은 아이들과 어떻게 이 폭염을 견뎌낼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예전에는 "여름은 원래 더운 계절"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이제는 아이들을 집 밖으로 내보내기조차 망설여진다. 이제 일본의 여름은 생명을 지키기 위한 대비가 필요한 '재난급으로 위험한 계절'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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