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게트두어 달에 한 번 오래된 단골 빵집에서 가져와 냉동고에 보관한다.
김재근
언제부턴가 바게트를 좋아하게 되었다. 입안에서 두 계절이 만나는 맛 때문이었을 것이다. 겉은 가을 낙엽처럼 바삭하고 속은 봄 구름처럼 촉촉한 느낌. 가마솥에서 막 긁어낸 누룽지 닮은 입천장이 벗겨질 정도로 투박한 겉과 솜사탕처럼 푹신하게 감싸는 보드라운 속, 그리고 촘촘한 기공에 숨은 은은한 발효 향,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밀가루와 물과 소금과 이스트, 네 가지 기본적인 재료로만 만들어, 밀의 향과 발효의 깊이가 오롯이 드러난다. 이것 외에 다른 재료가 들어가면 바게트가 아니라고, 출생지인 프랑스에서는 법으로 정했다지. 화려한 재료가 없어도 깊은 맛을 내는 점이 어쩌면 장떡과 닮았는지도.
주말 아침은 대개 바게트와 함께한다. 두어 달에 한 번 단골 빵집에서 가져와 냉동해 두었던 걸 느긋하게 해동한다. 오븐에 살짝 구워내면 갓 구운 빵의 풍미가 마술처럼 되살아난다. 소박이용 오이처럼 잘라, 세로로 갈라서 겉이 안으로 들어가게 감싼다. 상처 없이(?) 온전히 즐기기 위한 나만의 비법이랄까.
대개는 발사믹 식초와 바질 페스토를 알맞게 섞은 올리브 기름에 적셔 먹는다. 버터를 바르기도 한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도 버터 바른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으며 자신만의 모더니즘을 만들어 갔다니 꽤 운치 있는 조합이다. 살구잼을 더하면 맛이 사치스럽게 변한다. 마요네즈에 마늘을 넣으면 풍미가 한층 깊어진다. 올리브 기름 가볍게 바르고 가는 소금 성기게 내리는 첫눈처럼 아주 살짝 뿌리기도 한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불현듯 떠오른 생각, 바게트에 장떡의 기억을 입혀 보면 어떨까. 올리브 기름에 다진 마늘과 청양고추 잘게 썰어 넣고 참깨 곱게 빻아 뿌렸다. 고추장으로 색을 입히고 조선간장으로 향을 더한 뒤 마요네즈로 농도를 맞추었다. 바게트에 얇게 펴 발라 한입, 순간 낯선 음식에서 오래 전 여름이 불쑥 걸어 나온 듯했다.
한 조각의 빵이 그해 여름으로 데려다 놓았다. 매미 울음으로 가득했던 고향의 여름으로. 식구들의 여름을 지켜 주시던 어머니 곁으로. 음식을 먹는다는 게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만이 아니라, 시간을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는 것처럼.
▲메리골드와 옹기고향 마을가는 길에서.
김재근
올해도 여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고향 마을 아침, 창문을 여니 밤새 식은 공기 방 안으로 넘어온다. 대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맑은 목청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바게트에 장떡의 기억을 담은 스프레드를 바른다. 오늘의 여름과 오래된 여름이 한 식탁에 마주 앉는다.
어쩌면,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장떡이 아니라, 그 장떡을 만들어 주던 어머니의 손길이었고, 그 손길이 지켜 주었던 그 시절의 여름이었을지도. 바게트 한 조각을 베어 문다. 끝내 돌아갈 수 없는 그 여름을 천천히 오래 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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