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라우터 7월 첫째주 랭킹. 10위 중 8개가 중국모델이다.
오픈라우터
2026년 7월, 세계 최대 AI 모델 API 집약 플랫폼인 오픈라우터(OpenRouter) 개발자들이 가장 많이 호출하는 상위 10개 모델의 명단에서 GPT도 제미나이도 보이지 않습니다. 불과 1년 전 이 플랫폼의 주인이었던 두 이름이 사라진 자리를 딥시크와 샤오미와 미니맥스가 채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을 대표하는 깃발은 단 하나 앤트로픽의 클로드만 남았습니다.
이는 벤치마크 점수가 아닌 API를 호출하는 전 세계 개발자들의 '현실 선택'입니다. 마케팅 문구도, 조작 가능한 시험 성적도 없이, 실제로 어떤 모델이 호출되었는가 하는 원장(ledger)만 남습니다. 그 원장이 내리는 결론은 글로벌 AI 모델 시장을 중국이 주도하기 시작했다는 팩트입니다.
미국 진영의 소멸 위기
2025년 7월만 해도 이 플랫폼의 주간 총 토큰 사용량은 약 2조에 불과했고, 미국 모델이 70%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주간 총량은 45조를 넘어 20배 이상 폭증했습니다. 그런데 그 거대한 파이의 정점, 가장 많이 쓰이는 상위 10개 모델의 85%를 중국이 가져갔습니다.
같은 기간 앤트로픽의 점유율은 29.1%에서 13.3%로 내려앉았고, 이제 여섯 개의 중국 모델이 클로드 위에 있습니다. 미국 진영에서 벌어진 일은 '후퇴'가 아니라 '소멸'에 가깝습니다. 구글과 오픈AI는 상위 10위 안에 이름 하나 올리지 못하고 개별 등재선 아래 'Others(기타)' 범주로 밀려났습니다.
영어권 시장, 코딩에 더 많이 쓰이는 중국 모델
중국 모델은 중국 인구가 많기 때문에 볼륨이 높은 것일까요. 그런데 데이터는 영어권 사용자 상위 모델 가운데 중국 모델이 87%를 차지합니다. 영어라는 미국의 홈그라운드에서조차, GPT도 제미나이도 개별 등재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앤트로픽만이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더 나아가 가장 정교한 작업으로 여겨지는 파이썬 코딩만 떼어놓고 보면 중국의 비중은 90%까지 오릅니다. 범위를 좁힐수록 기술 난도가 높은 영역으로 갈수록 중국의 점유율이 더욱 높아집니다. "중국 모델은 값싼 벌크나 처리한다"는 통념은 세 층위에서 연속으로 무너집니다. 중국 모델은 이미 '값싼 대체재'가 아니라 '핵심 워크로드의 기본 인프라'가 되었습니다.
압도적인 가격 전략과 추론 성능
그렇다면 무엇이 이 흐름을 만들었는가. 원인은 네 가지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가격입니다. 중국 상위 모델은 대부분 가중치가 공개된 오픈웨이트이고 백만 토큰당 1달러 미만에 거래됩니다. 상위 10개 안에서 가장 비싼 클로드 오퍼스와 가장 싼 딥시크 V4 플래시의 출력 토큰 가격 차이는 무려 139배에 달합니다. 개발자가 '충분히 좋은 성능'을 '139배 저렴한 가격'에 얻을 수 있다면 굳이 프리미엄 모델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특히 기업단에서 에이전트를 구동할 때 이 가격 차이는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됩니다.
둘째는 무료 티어를 활용한 시장 선점 전략입니다. 텐센트(Tencent)는 백만 토큰당 6센트(입력)에 불과한 유료 프리뷰로 먼저 사용자들을 모은 뒤, 이를 무료 버전으로 전환하며 영어권 시장에서 단숨에 1위에 올라섰습니다. 이는 볼륨을 먼저 장악한 뒤 수익화하는 전형적인 플랫폼 전략입니다.
더 깊은 층위에서, 무료로 뿌려 확보한 대규모 실사용 상호작용은 학습이 허용된 경로에서 다음 세대 모델의 훈련 연료가 됩니다. 쉽게 말해 공짜로 쓸 수 있게 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쓰고, 더 많은 사람이 쓸수록 모델이 더 똑똑해지고, 더 똑똑해진 모델은 다시 더 많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바로 이 되먹임 고리가 중국 모델들의 빠른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숨은 동력입니다.
셋째는 성능의 추월입니다. 주목할 것은 성장의 방향입니다. 저가 대량형 모델의 주간 성장률이 5%에 머무는 동안, 고난도 추론형인 딥시크 V4 프로와 즈푸(Z.ai)의 GLM 5.2는 각각 30% 안팎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시장은 단순히 '싼 모델'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싸면서도 고난도 추론과 에이전트 업무를 처리하는 모델'로 수요가 빠르게 업그레이드되고 있습니다. 중국 모델은 이제 '가성비'를 넘어 '성능' 영역에서도 미국을 위협합니다.
넷째는 성능의 수렴입니다. 6월 공개된 GLM 5.2는 미국 폐쇄형 프론티어의 약 6분의 1 비용으로 코딩·에이전트 능력에서 그에 근접해, 실리콘밸리가 "미니 딥시크 모먼트"라 부르는 충격을 만들었습니다. 더 이상 성능의 우위만으로 시장을 지킬 수 없는 국면에 들어선 것입니다.
토큰은 빼앗겼어도 돈의 절반은 앤트로픽이 가져간다
그런데 이 데이터는 '토큰 점유율'이지 '수익 점유율'이 아닙니다. 오픈라우터 실현 평균 기준 클로드 오퍼스의 토큰 단가는 딥시크 V4 플래시의 약 23배이며, 출력 정가로 환산하면 139배까지 벌어집니다. 그 결과 앤트로픽은 토큰의 12~13%만 처리하면서 플랫폼 전체 지출의 절반 이상을 가져갑니다. 볼륨의 12%, 돈의 절반입니다. 앤트로픽이 미국의 마지막 보루로 살아남은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여기에 한 겹의 구조가 더 있습니다. 중국 모델은 볼륨의 승자이지만, 오픈소스화를 택한 순간 수익층 자체를 인퍼런스 호스트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해외에서 딥시크나 GLM을 호출하면 그 연산은 대개 외부 호스트의 서버에서 일어나고, 토큰 매출도 그 호스트가 가져갑니다. 반면 폐쇄형인 앤트로픽은 자신의 매출을 온전히 회수합니다.
지금 벌어지는 것은 미·중 대결이라기보다, 수익층을 통제하는 폐쇄형과 수익층을 포기한 오픈웨이트의 구조 대결입니다. 오픈AI와 구글이 오픈라우터에서 사라지고 앤트로픽만 남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이 최고의 성능으로 폐쇄형 수익 구조를 끝까지 지킨 자만이 살아남았다는 뜻입니다.
볼륨 전쟁은 기울었고, 수익 전쟁은 이제 시작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두 개의 시장이 나란히 동시에 굴러갈 것입니다. 하나는 가장 싼 모델이 이기는 시장이고, 다른 하나는 신뢰와 최고 성능에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고급 시장입니다. 중국은 전자를 앤트로픽은 후자를 쥐고 있습니다. 볼륨 전쟁은 이미 기울었지만 수익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습니다.
2026년 하반기부터 2027년까지의 격전지는 고난도 추론 및 에이전트 워크로드가 될 것입니다. 딥시크 V4 프로와 GLM 5.2의 성장률이 이를 예고합니다. 중국 모델은 가격 우위를 유지한 채 추론 능력을 고도화하며 미국의 마지막 프리미엄 영역까지 잠식할 것입니다. 오픈AI와 구글의 복귀는 현재로서는 불투명합니다. 이들이 돌아오려면 가격을 90% 이상 낮추든지 아니면 앤트로픽을 성능으로 이기든지 둘 중 하나를 증명해야 하는데 중국 모델도 초각을 다투며 격차를 좁히고 있습니다.
앤트로픽이 지키는 두 고지, 매출과 프리미엄 브랜드조차 안전하지 않습니다. 세쿼이아(Sequoia)의 데이비드 칸은 이 구조가 항공업을 닮아간다고 지적합니다. 높은 고정비, 낮은 한계비용, 독점의 부재. 그런 시장에서 가격은 결국 한계비용까지 내려갑니다. 성능이 계속 수렴한다면 프리미엄 가격결정력도 언젠가 침식될 것입니다. 미국 언론이 "오픈소스 AI가 앤트로픽을 아직은 해치지 않는다"고 쓸 때 그 '아직'이 이 전쟁의 시한폭탄입니다.
미국 테크 기업들조차 중국 모델로 갈아탔다
실제 미국 주요 기업들의 선택은 이 흐름을 더욱 확실하게 증명합니다. 코인베이스는 GLM 5.2와 Kimi 2.7을 전사 엔지니어의 기본 모델로 채택해 AI 비용을 절반으로 줄였고, 에어비앤비는 고객 서비스 AI를 GPT에서 알리바바의 Qwen으로 전환해 속도와 비용 효율성을 모두 확보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 Copilot Cowork의 구동 엔진으로 DeepSeek V4 도입을 검토 중인데, 이는 애저 클라우드에 자체 호스팅해 데이터 보안을 유지하면서 중국 모델의 경제적 이점만 취하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읽힙니다.
데이터 기업 스노우플레이크는 GLM 5.2가 클로드와 대등한 성능을 훨씬 낮은 가격에 제공한다고 평가했고, 개발 플랫폼 버셀은 GLM 5.2 도입 첫 주 일일 토큰 볼륨이 약 27배 폭증하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AI 스타트업 린디는 클로드에서 딥시크로 전면 전환해 수개월 내 수백만 달러를 절감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가격과 성능을 모두 잡은 중국 모델의 확산은 멈출 수 없는 흐름이 되었으며, 커서(Cursor)와 쇼피파이처럼 중국 오픈소스 모델을 도입한 기업들이 미국 의회의 조사 대상이 될 정도로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채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기업 지출 관리 플랫폼 램프의 2026년 6월 보고서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딥시크가 미국 기업의 신규 소프트웨어 구매 1위에 등극했습니다.
결국 2026년 7월의 데이터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승패의 결론이 아니라 하나의 숙제입니다. 미국과 중국을 균형 있게 바라보고, 그 사이에서 한국이 갈 길을 스스로 그려내는 일입니다. 개인이 어떤 모델을 쓰는가는 취향의 문제이지만, 경영자나 정책 결정자의 입장에서는 이 두 시장을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경영의 층위에서는 '워크로드별 최적가'를 기준으로 모델을 라우팅하고, 저가 대량 작업과 고난도 추론 작업의 경로를 분리하는 멀티 트랙을 운영하는 방식이 합리적입니다. 정책의 층위는 더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합니다. 가중치가 공개된 모델은 국경에서 막을 수 없습니다. 수출 통제가 하드웨어를 겨냥하는 사이, 소프트웨어는 이미 국경도 언어도 없이 확산됐습니다.
그렇다면 정책의 초점도 '어떤 모델을 쓰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 모델이 어디의 어떤 인프라에서, 누구의 데이터로 돌아가는가'로 이동해야 합니다. 공공·금융·의료처럼 데이터 주권이 중요한 영역에서는 모델의 국적보다 추론이 일어나는 위치와 데이터 처리 방침이 더 본질적인 규율 대상입니다. 동시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 생태계에 종속되지 않으려면 소버린AI를 밀고 나가면서도 다양한 경로를 확보하는 '멀티 벤더 전략'이 국가 차원에서도 필요합니다. 우리의 숙제는 아무도 대신 풀어주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