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화 속의 합창> 스틸컷
소니픽처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암살된 '사라예보 사건'으로 발발된 제1차 대전은 제국주의의 팽창과 과도한 군비 경쟁 그리고 민족주의의 분출이 얽힌 불행한 결과였다. 만약 빌헬름 2세 독일 황제가 비스마르크의 조언을 받아들여 식민지 팽창 정책을 전개하지 않았다면 유럽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아니, 적어도 천만 명이 넘는 죽음과 희생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라예보 사건'은 발칸 반도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자 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이를 견제한 러시아 제국의 갈등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세르비아 민족주의 청년이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세르비아의 뒤를 봐주고 있던 러시아가 맞대응을 하며 세계 대전의 도화선에 불이 붙은 것이다.
전쟁은 합리적 판단 없이 서로 맺어진 동맹 문서에 따라 삽시간에 불타올랐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러시아 제국이 맞붙자 각자 동맹 관계에 있던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포성이 울렸고, 이에 위협을 느낀 영국이 프랑스를 돕기 위해 참전을 결심한 것이다.
순식간에 타오른 전쟁의 불씨는 유럽 전역을 뒤덮었다. 새파란 젊은이들이 늙고 오만한 지도자들의 결정에 따라 사지로 뛰어들었다. 이들은 소모품이었다. 한 치의 땅을 뺏기 위해 목숨을 잃으면, 또 다른 병사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1차 세계 대전에서 15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렇게 많은 희생이 있었던 이유는 전술과 무기의 비대칭성 때문이었다. 전투기, 전차, 기관총 같이 무기 앞에서 장군들은 '돌격 앞으로'를 외쳤다. 참호전은 이런 구시대 전술의 비극적 결과였다.
1916, 1917, 1918
1916년 영국 요크셔, 1917년 프랑스 크루자이유 숲, 1918년 프랑스 라 말메종, 세 장면은 마치 한 영화 속 장면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두 다른 영화다. 1차 세계 대전이라는 배경과 그 속에서 소모품으로 희생되는 젊은이들에서 세 영화는 만난다.
2025년 개봉한 <포화 속의 합창>(The Choral)은 1916년 영국 요크셔 램스덴 마을 합창단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시의원이자 방직 공장주, 덕스버리는 합창단의 운영자이자 후원자다. 그는 오랫동안 해왔던 합창 공연을 준비하려 하지만 18세 이상 남자들은 모두 징집 되어 마을에는 젊은 남자를 찾을 수 없었다.
전통적으로 문화적 지위를 과시하는 모임이었던 마을 합창단(Choral Society)은 자본가 계급이나 중산층 이상이 주도하는 '그들만의 리그'였다. 그러나 전쟁으로 합창단원이 구성조차 어려워지자, 덕스버리는 큰 결심을 한다.
노래만 할 수 있다면 모두 단원으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독일 유학에서 돌아와 사람들의 불신을 받던 거스리 박사를 지휘관으로 영입했다. 우여곡절 끝에 램스덴 합창단은 에드워드 엘가의 '제론티우스의 꿈'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해석을 하며 공연을 끝마친다.
서로 다른 계급과 인종으로 구성된 합창단의 열연에 전쟁으로 침울하던 마을 사람들은 치유를 받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합창단원 중 징집 명령을 받은 세 명의 청년은 기차를 타고 전쟁터로 떠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세 명의 영국 청년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2020년 개봉한 <1917>에서는 그 단면을 볼 수 있다. <1917>은 독일군의 기만 전술로 전멸 당할 위기에 있는 영국군에게 공격 중지 편지를 전달하는 한 병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17년 4월, 독일군은 전략적 후퇴를 하며 영국군 데번셔 연대 1600명을 유인하는 전술을 시행했다. 이를 파악한 에린모어 장군은 두 병사에게 막중한 임무를 부여했다. 전달할 내용은 단 하나. '독일군 함정 구역을 가로질러 2대대 매켄지 중령에게 공격 중지 명령서를 직접 전달하라'. 참호를 나온 두 병사가 목도한 광경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사방엔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체와 쥐들만 바글거렸다. 아마 1916년 램스덴을 떠났던 그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도 이러했으리라.

▲영화 <1917> 스틸컷
스마일이엔티
두 병사 중 한 명은 독일군에게 죽음을 당하고, 살아남은 한 병사 스코필드는 홀로 막중한 임무를 맡는다. 그리고 간신히 도착한 2대대. 하지만 매켄지 중령이 이미 공격 명령을 시행한 후였다. 기관총과 포탄 속에서 군인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가운데, 스코필드는 지휘부로 전력 질주를 한다. 다행히 에린모어 장군의 친서가 전달되고, 데번셔 연대는 무의미한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2022년 넷플릭스에서 제작된 <서부 전선 이상 없다>(Im Westen nichts Neues)는 1918년 11월, 1차 세계 대전이 마무리되는 시기, 독일군의 시점에서 전쟁의 광기와 참혹함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되었다.
소설과 영화 모두 애국주의의 허상, 전쟁 속 인간성 말살과 단절 그리고 국적과 상관없이 전장에서 소모되는 젊은이들의 비극을 전달한다. 주인공 파울은 애국심에 불타 독일군에 자원입대 하지만 전장에서 애국심은 사치에 불과했다.
병사들은 돌격 명령에 왜 죽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스러져 갔다. 여러 전투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파울. 그는 동료의 죽음 뿐 아니라 적들의 죽음에서 자신의 인간성마저 사라져 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오직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희망만이 그를 버티게 할 뿐.

▲<서부전선 이상없다> 포스터
넷플릭스
1917년 러시아가 볼셰비키 혁명으로 전선에서 이탈하자 독일은 모든 힘을 '서부전선'에 집중했다. 그러나 영국의 해상 봉쇄로 물자 보급이 끊기고 예비군마저 바닥나면서 전쟁을 이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폭동과 반발을 견디지 못하고 빌헬름 2세 독일 황제가 퇴위한 후 들어선 새로운 공화국 정부는 서둘러 휴전 논의를 진행했다. 마침내 목적조차 희미해졌던 전쟁은 1918년 11월 11일 폭주를 멈췄다. 그러나 파울이 속해있는 부대의 지휘관은 광기 속에 최후의 돌격 명령을 내린다.
피비린내 나는 참호전, 온몸에 피와 진흙을 뒤집어쓴 채, 프랑스 병사와 대치하던 파울은 등 뒤에서 들어온 칼에 심장을 찔린다. 그리고 참호 밖에서 들리는 외침. '휴전! 오전 11시다! 사격 중지! 오전 11시다!' 파울이 세상을 떠난 그날, 사령부 공식 보고서에는 단 한 줄만 기록되었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 한 젊은이의 우주가 완전히 소멸된 날이었음에도, 전쟁을 일으킨 군 수뇌부에게는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였다는 결말이 전쟁의 반인륜성을 극렬하게 폭로하고 있었다.
전쟁 속 맥주
세 영화 중 맥주가 등장하는 건 <포화 속의 합창>뿐이다. 공연을 일주일 앞둔 젊은 단원들이 동네 펍에 모여 잔을 기울이는 장면. 웃고 떠드는 청년들 곁에, 전쟁에서 한쪽 팔만 잃고 돌아온 상이군인이 홀로 앉아 있다. 지옥에서 돌아온 자와 곧 그 지옥으로 떠날 자들. 이 어색한 네 사람을 잇는 유일한 끈은, 같은 공간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그런데 그 맥주가 서로 달랐다. 얼핏 모두 어두운 에일, 포터처럼 보였지만, 상이군인 앞에 놓인 병에는 '스트롱 에일(strong ale)'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올드 에일인지 스톡 에일인지까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그것이 오래 묵혀 두었다가 꺼내 마시는 술이라는 점이었다.
스트롱 에일은 알코올 도수가 강한 어두운 맥주다. 지하 나무통에서 몇 해고 숙성했다 때가 되면 꺼내 마셨다. 상이군인은 잃어버린 팔을 찾아 달라는 농담을 남기고, 그 어둡고 강한 에일을 단숨에 비운 뒤 자리를 떴다. 아마 그날의 한 잔이, 청년들이 고향에서 마신 거의 마지막 맥주였을 것이다. 1차 세계 대전의 참호에는 맥주가 없었다. 부피가 크고 쉽게 산패 하는 데다 도수까지 낮은 맥주는, 한자리에서 몇 년을 버텨야 하는 참호전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럼과 브랜디 같은 증류주였다. 작고, 독하고, 오래가는 술. 영국군은 'SRD'가 찍힌 도자기 항아리에 럼을 담아 보냈다. 원래 SRD는 'Supply Reserve Depot(보급 예비창)'의 약자였지만, 병사들은 이를 'Service Rum Diluted(물 탄 군용 럼)', 'Soon Runs Dry(금세 바닥난다)'처럼 비틀어 불렀다.
프랑스군에게는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와 과일 증류주 오드비(eau-de-vie)가 보급되었다. 병사들은 이 독한 술을 '뇨올(gnôle)'이라 불렀다. 증류주는 돌격 직전의 공포와 한기를 눌러 주는 진정제였지만, 실상 죽음을 향해 등을 떠미는 술이었다.
맥주는 정반대였다. 총성의 공포 없이 이웃들과 마시는 술이었다. 그래서 맥주가 사라진다는 건 일상이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다. 일상이다. 맥주는 그 일상의 이름이자,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 다시 마시겠다는 약속이었다.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 스틸컷
넷플릭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보는 내내, 램스덴을 떠난 세 청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그 청년들과 파울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경 하나를 사이에 두었을 뿐, 돌아가 다시 맥주를 마시고 싶었던 비슷한 나이의 소년들이었다.
이 녀석들이 제발 살아 돌아와 건강한 몸으로 램스덴 펍에서 다시 맥주를 마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맥주가 참호전의 참혹함을 씻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을 것 같아,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수천 만 명의 젊은이들이 하늘에서는 상대를 겨누던 총칼 대신 맥주를 들고 서로를 위로했으면 좋겠다. 램스덴을 떠나 전장으로 향하던 세 젊은이들을 위해, 포화를 뚫고 진창을 건넌 스코필드를 위해, 그 너머에서 죽음을 맞이한 파울을 위해. 오늘은 무도한 국가 권력으로 죽음을 맞은 모든 이들을 위해, 한 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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