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09 17:15최종 업데이트 26.07.0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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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환자단체연합회 관계자들이 2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모 급여화보다 생명과 직결된 중증질환 치료보장이 우선이다"라며 정부의 탈모치료제 급여화 사회적 숙의 과정 추진에 반대하고 있다. 2026.6.29연합뉴스

'추진'에서 '중단'으로 극적인 상황 반전

발단은 작년 12월 대통령의 지시였다.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대통령은 "요즘은 (탈모를)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해 보자"라고 지시했다. 이에 보건복지부 장관은 "(탈모는) 생명에 영향을 주는 질환은 아니다. 미용적인 것은 다른 부분도 건강보험 적용을 안 하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에둘러 부정적 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로서는 당연한 반응이기도 하다. 자가면역질환인 원형탈모가 아닌, 일반적인 탈모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국가 사례가 없기도 하거니와 중증질환이나 필수의료조차 충분히 보장하고 있지 못한데 웬 탈모인가?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가속한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랬던 보건복지부가 6개월여 만에 방침을 선회했다. 그 사이에 청와대와 보건복지부 간의 조율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아니나 다를까? 보건복지부의 탈모 건강보험 적용 추진과 이에 대한 공론화 계획 발표 이후 "탈모보다 키가 생존의 문제", "저출산 대책으로 비아그라도 급여화하라"는 비아냥에서부터 "청년 매표"라는 정치적 비판까지 쏟아졌다. 환자단체, 의료계뿐 아니라 병원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둔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도 정책 우선순위 문제를 지적했다.

그런데, 공론화 토론회를 불과 며칠 앞두고, 보건복지부는 돌연 토론회를 취소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연내 건보 적용은 어려운 상황,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라고 밝혔다. 불과 얼마 전까지 "결론이 나면 지체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공언했던 터라, 이런 상황 반전은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탈모 건강보험 적용, 못할 정책은 아니다

질병성 탈모가 아닌, 일반적인 탈모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국가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례가 없다는 것이 탈모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절대적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판단하는 일반적인 기준은 임상적 효과성, 효율성(비용효과), 안전성이다. 이런 기준에 따라 각국은 중증질환, 필수의료 분야의 의료서비스에 우선순위를 두고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동시에 고유한 문화적 전통과 사회적 공감대에 따라 특색 있는 건강보험 적용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건강보험제도의 원조 국가인 독일은 온천, 운동, 기후요법, 영양교육 등을 포함한 예방재활서비스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이 중 기후요법은 기온, 습도, 기압 등 자연환경을 치료의 일부로 이용하는 것으로 치료 휴양지에서 숙식하며 의사의 처방에 따라 산책, 운동, 명상, 호흡 훈련 등을 수행한다. 건강보험 적용 기간은 통상 3주이고, 외래형 기후요법은 숙식 비용을 본인이 부담하지만(일부 보조금 지급), 입원형 기후요법은 숙식 비용까지 건강보험이 보장한다.

프랑스는 100여 개의 공인 온천 시설에서 매년 수십만 명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온천 치료를 받고 있다. 의사의 처방을 받은 환자는 온천 시설에서 3주 동안 머물면서, 온천욕, 수중운동, 진흙 치료, 마사지, 영양 교육, 건강 교육 등을 제공받는다.

이 외에도 일본, 헝가리, 체코 등도 재활 치료의 일부로 온천을 활용하고 있고, 독일, 스위스 등의 일부 건강보험에서는 자연 요법에도 보험 적용을 하고 있다. 이들 국가가 건강보험 재정이 남아돌아서 이런 서비스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해당 국가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사회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이런 서비스를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것이다.

숲길 산책, 명상, 온천욕, 진흙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탈모에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말란 법은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각국은 근원적인 치료가 아니라, 환자의 고통을 경감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성격의 의료서비스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만 있다면, 탈모 건강보험 적용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사안이다.

부정확한 정책 목표, 논란을 자초했다

탈모 건강보험 적용은 건강보험의 역할에 대한 발전적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부정확한 정책 목표와 논리 때문에 스텝이 꼬였다. 어떤 의료서비스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목표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경제적 부담 경감이다. 대통령의 발언과 보건복지부의 설명에 비춰 보면, 탈모 건강보험 적용의 목표는 여기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러나 이 정책 목표는 설득력이 떨어지고, 끝없는 논란만 낳게 된다. 현재 탈모 치료 비용은 한 달에 3만 원 이내 수준이다. 이조차도 부담되는 이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생존의 문제'로 탈모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감당 못 할 정도의 비용은 아니다. 이에 반해 그동안 많은 개선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중증질환, 희귀 질환 등의 비용 부담은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탈모에 쓸 돈을 정말 절박한 중증환자, 희귀 질환자에게 쓰라는 우선순위 지적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건강보험 적용의 두 번째 목표는 해당 의료서비스를 공적 관리 영역으로 포함하는 것이다. 비급여로 있을 때는 가격이 천차만별이고, 해당 의료서비스를 누가 어떻게 얼마나 이용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가격이 표준화되고, 의료서비스 이용 통계도 잡힌다. 해당 건강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적인 관심사로 인정하는 의미도 있다. 탈모 치료가 여기에 해당한다. 의료기관에 따라 치료비가 들쑥날쑥하고, 재정 추계 자료가 없는 데서도 알 수 있듯 기초통계조차 없다. 정책 목표를 여기에 맞추면, 연간 2천억 원에 육박하는 건강보험의 추가 지출이 발생한다는 억측도 해소할 수 있다. 일반적인 건강보험 외래진료의 본인부담률은 전체 비용의 30%인데, 탈모 치료에 대해서는 본인부담률을 80~90%로 올려서 건강보험의 추가 부담을 최소화하면 된다. 건강보험이 비용의 10~20%만 부담하면서도 공적 관리 영역으로 포함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 가격 표준화와 비록 액수는 적지만 전체 비용의 일부를 건강보험이 부담하면서 환자 부담도 현재보다는 줄어든다.

탈모 건강보험 적용은 비급여로 방치된 의료서비스를 공적 관리 영역으로 포함하는 정책 목표로 추진했어야 한다. 그간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기 위한 역대 정부의 정책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대한 만큼의 체감 성과를 얻지 못했던 이유는 비급여의 무분별한 팽창 때문이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문재인 정부는 예비급여제도를 도입, 본인부담률을 차등 적용하는 방식으로 비급여를 공적으로 관리하고자 했다. 이재명 정부는 비급여 관리 목표를 더욱 강화한 관리급여제도를 도입, 과잉진료와 상업주의 의료의 대표 격인 도수 치료를 첫 번째 대상으로 삼았다. 이미 비급여 관리 정책의 수단은 갖춰져 있는 셈이다. 이런 정책 수단을 활용해서 비급여 관리 정책을 확장하는 사례로 탈모 건강보험 적용을 거론했다면, 사회적 논의의 전개 양상은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뒤엉킨 정책 과정, 불신과 오해를 야기했다

속도감 있는 정책 추진은 이재명 정부의 큰 장점이다. 대통령의 의견과 지시를 생중계하는 직접 소통도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탈모 건강보험 적용은 이런 속도감과 소통이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했다.

위(청와대)에서 떠밀고, 밑(부처)은 떠밀리는 모양새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공론화 토론회를 한다고 했지만, 결론을 이미 내려놓은, 형식적인 통과 의례로 인식되었다. 대통령의 의지와 지시로 탈모 건강보험 적용이 추진된 것을 전 국민이 뻔히 아는 상황에서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갑작스럽게 정부 정책이 번복되었다. 청와대는 청와대대로, 부처는 부처대로 모양이 우습게 되었고, 국민은 정부가 충분한 검토도 없이 졸속으로 정책을 추진했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대통령 공약과 국정 과제에 대해, 청와대와 부처의 온도 차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부처가 대통령의 의지와 관심에 따라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립, 이행하도록 이끄는 것은 청와대 참모진 본연의 역할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의지와 관심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청와대 참모진과 부처 간의 충분한 협의와 조율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정책의 목표, 우선순위, 논리, 실행 방안을 가다듬어서 정책의 완성도를 높이고, 대국민 설득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탈모 건강보험 적용이 이런 정책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의문이다. 먼저 던져보고, 되면 하고, 안 되면 말고 식이면,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떨어지게 된다.

청년 대책의 일환으로 탈모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는 듯한 뉘앙스도 쓸데없는 오해를 부추겼다. 문재인 정부 때도 청년층 지지가 하락하거나 부정적 여론이 불거지면 청년층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정책들을 발굴, 발표하곤 했다. 그러나 별 소용이 없었다. 정부가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정책을 펴면, 정책 수요자들은 이를 귀신같이 알아챈다. 각박한 청년의 삶을 보듬기 위한 정책적 노력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정치적 지지를 얻으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정책적 시도는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탈모 건강보험 적용 논란

탈모 건강보험 적용 여부는 건강보험의 향후 역할에 대한 사회적 토론의 유용한 소재가 될 수 있었다. 기존의 건강보험 역할은 신체적·정신적 질환을 치료하는 의료서비스를 보장하는 데 치중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건강 개념이 삶의 질, 사회적 관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이에 반해, 건강보험의 역할은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한바탕 소동극으로 끝나버린 탈모 건강보험 적용 논란이 못내 아쉽다.

운동 경기나 영화에서 극적 반전은 관중과 관객들에게 짜릿한 흥분을 준다. 그러나 국정 운영에서 극적 반전은 국민에게 불안과 불신을 안긴다. 더군다나, 무언가를 하는 것에서 하지 않는 방향으로의 극적 반전은 더욱 그렇다. 논란의 여지가 크고,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사안일수록, 명확한 정책 목표와 충분한 정책 조정 과정 그리고 국민의 마음을 얻는 내실 있는 공론화가 중요하다. 이렇게 해야, 대통령 발언의 무게를 지킬 수 있고 성공적인 정책도 만들 수 있다.

이진석서울의대 교수포럼사의재
* 필자 소개 : 이진석은 현재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로 재직하며, 의료제도와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회 위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 등으로 활동했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 정책조정비서관, 국정상황실장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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