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10 14:05최종 업데이트 26.07.1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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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숏폼 콘텐츠가 대세인 시대에 느림에 주목합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성공보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드라마나 예능에서 마음의 위로를 얻고 인생의 지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김지은의 그거 봤어?'에서 다루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 마주 보고 있는 큰 상가가 둘 있다. 1~2년 사이에도 가게가 몇 번이나 바뀐다. "오랜만에 그 가게에 가볼까?" 하고 나섰다가 "어머, 없어졌네?" 하고 발길을 돌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텅 빈 가게 앞에 '임대 문의'라고 붙은 안내문을 볼 때마다 밥벌이의 힘겨움을 생각한다.

오직 매출로 생존을 가리는 요리 서바이벌

저녁 식사를 하며 재미 삼아 보려던 예능 <스트릿 레스토랑 파이터>를 시청하며 그 텅 빈 가게들이 생각났다. 이 프로그램은 요식업계의 유명인 20인이 오직 장사 매출만으로 생존을 겨룬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할 수 없다. 첫 번째 미션은 '100만 원 매출 레이스'다. 조력자 한 명과 팀을 이뤄 먼저 매출 100만 원을 달성한 팀은 즉시 생존하고 매출을 달성하지 못한 마지막 두 팀은 탈락한다.

1차 미션 상권 공개 장면공개된 상권(세종시)의 지도를 참가자들이 보고 있는 모습.tvN스트릿레스토랑파이터

미션 장소는 직장인 상권 세종 정부 청사 인근이었다. 같은 상권 정보를 보고도 각 팀의 분석이 달랐다(아래는 인터뷰 내용 일부, 괄호 안은 선정 메뉴).

- 곽동훈 : "구내식당에 있을 법한 메뉴는 패스해야 합니다. 저는 고객의 니즈를 봅니다. 세종에 없는 메뉴를 할 겁니다(대왕 치미창가).
- 조서형 : "테이블 세팅이 4인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단체팀은 함께 먹는 메뉴를 주문할 겁니다(함양파 찹쌀 누룽지닭 세트).
- 홍석천 :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52:48입니다. 전 여성을 공략해 예쁘고 건강한 메뉴를 할 생각입니다(단새우 아보카도 타르타르).

곽동훈 셰프 매장 '제일번' 앞의 대형 TV 모습지나가던 손님들이 가게 앞 먹방 영상을 보고 해당 음식의 구매로 이어졌다.tvN스트릿레스토랑파이터

"직장인 상권에서 단새우 아보카도 타르타르라니. 첫 번째 미션에서 바로 탈락하는 거 아냐?"
"치미창가도 안 될 거 같은데. 멕시칸 음식은 주로 저녁에 맥주랑 먹지."

남편과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손님들은 "이런 건 세종에서 먹어 볼 수 없는 메뉴인데?" 하고 타르타르를 주문했다. 먹방 영상이 나오는 매장 앞의 대형 TV를 보고 "나 이거 봤어! 요즘 유행이야" 하면서 치미창가를 주문했다.


조서형 셰프 팀은 상권 분석이 적중해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목표 매출을 넘겼다. 그러나 음식을 제때 내지 못 해 주문 취소가 이어졌고 결국 생존 결정이 번복됐다. 점심 장사 시간 안에 매출 100만 원을 달성한 팀은 의외의 두 팀, '더 소스'와 '볼라볼'이었다.

조서형 셰프의 '별은 내가슴에'에 주문 취소가 들어오는 모습음식이 빨리 나가지 못해 취소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tvN 스트릿레스토랑파이터

최상현 셰프 팀인 '더 소스'는 오픈 시간 30분이 지나서까지 주문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 게다가 가게 앞 포스기까지 고장이 났다. 임기학 셰프 팀인 '볼라볼'은 재료를 챙기기로 한 팀원이 토마토 캔을 빠뜨리고 왔다. 팀원은 죄송하다며 어쩔 줄 몰라했지만, 임기학 셰프는 체크하지 않은 자신의 잘못도 있다며 서둘러 완숙 토마토를 사서 문제 해결에 힘을 쏟았다.

'더 소스'의 포스기 고장으로 줄이 길게 서자, 사람들은 맛집인 줄 알고 그 뒤로 줄을 섰다. 예상치 못한 행운이었다. 포스기가 정상화 되고 주문이 밀려들었으나 메인 메뉴가 하나라 큰 무리 없이 대처할 수 있었다. 또 3월임에도 햇빛이 센 날씨에 주목해 아이스크림 메뉴를 넣었던 것이 신의 한 수였다. 포스기 고장이 오히려 득이 되는 운도 있었지만, 그 전에 남다른 전략이 있었다.

임기학 셰프는 자신이 평소에 하는 파인 다이닝의 조리법과 다른, 빠르게 음식을 내는 방식이 오히려 "신난다"고 했다. 어떤 미션이 주어지든지 자신은 한 그릇 안에 프랑스를 잘 담아 내고 싶다고도 말했다. 그 목표를 놓지 않으면서 국밥집처럼 빠르게 음식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미션을 잘 완수했다.

'신난다'는 임기학 셰프의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어떤 미션이 오더라도 '한 그릇 안에 프랑스를 담겠다'는 다짐을 들었을 때도. 먼저는 흥미, 그다음은 목표, 그리고 그 후에 세부 전략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지난주 방영된 3화에서는 브레이크타임에 오전 장사의 경험을 토대로 거의 모든 팀이 메뉴 수정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오전 장사에서 꼴찌를 한 '아궁이' 팀은 메뉴를 자신이 가장 잘하는 돼지갈비로 바꿔 결국 막판에 탈락을 면했다.

오전에 없던 '버터돼지갈비'를 주력 메뉴로 바꾼 '아궁이'팀자신 있는 메뉴로 바꾸며 재료비 179,600원의 마이너스를 안고 저녁 장사를 시작한 '아궁이' 팀. 그러나 결국 생존이 확정됐다.tvN스트릿레스토랑파이터

밥걱정이 밥걱정으로 끝나지 않게

시장을 분석하고 전략을 세운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운이 따르기도, 따르지 않기도, 예상이 맞기도, 빗나가기도 한다. 꼭 우리의 삶 같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게임이 아니고, 예능도 아니고, 생존이다.

며칠 전, 저녁을 먹으며 40대 후반의 남편이 "나 이제 길어야 5년이야"라고 말했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남편의 현실적인 말에 뜨끔했다. 남편만 그런 것은 아니다. 올해 초 나도 내가 너무 철없이 소설 습작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AI에게 내 이력을 입력하고 내가 지금 소설을 쓰는 게 맞는지 물었다. AI는 내 이력을 고려하여 유아교육 상품 기획 업무를 제안했다. 나도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며칠 뒤 개강 예정이던 소설 합평 수업을 취소했다. AI가 추천해 준 일은 외주를 받을 땐 곧잘 했는데, 혼자 하려니 아무래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여섯 달이 지났다. 당시 내가 취소했던 수업은 인기 강좌라 다시 신청하기가 쉽지 않아 지금은 그보다 한 단계 낮은 소설 입문 수업을 재등록해서 듣고 있다. 누가 봐도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이지만, 자꾸만 쓰는 일에 마음이 가서 그 근처를 서성인다.

나는 조금 더 신나는 일을 하며 생계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만들고 싶다. 흥미가 없는 일을 하며 목표와 전략 없이 쏟아지는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생계를 꾸리는 일이 점점 무거워질 수밖에 없으니.

'밥걱정'(얼마나 많은 사람이 밥을 걱정했으면, 밥과 걱정이란 각각의 단어가 띄어쓰기 없는 하나의 단어가 되었을까)이 '밥걱정'으로 끝나지 않게 걱정을 딛고 목표와 전략으로 나아가는 나만의 방법을 찾는 중이다.

예고에는 2라운드 미션이 공개되었다. 스트릿 비어 페스티벌에서 두 개의 레스토랑이 동일한 가격으로 1:1 대결을 펼치며 둘 중 하나의 레스토랑만 생존하는 미션이다. 과연 또 어떤 전략과 열정이 시청자를 매료시킬지, 사뭇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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