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가격이 오르고 있는 이유는 결국 다주택자 규제의 부작용 때문이다.
이정민
진보가 간과한, 다주택자의 두 가지 생산적 역할
진보 쪽 인사들은 다주택자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역대 진보 정부는 한결같이 '투기 근절'과 '불로소득 차단'을 강조해 왔다.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 이재명 정부가 모두 그렇다. '다주택자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견해들은 모두 다주택자의 두 가지 생산적 기능을 간과하고 있다.
다주택자는 두 가지 생산적 역할을 한다. 첫째, 전월세의 공급자다. 간단한 사고 실험을 해보자. 서울 안에서 다주택자가 0명이 되면 전월세 공급은 어떻게 될까? 전월세 공급도 0개가 된다. 다주택자가 사라지면 전월세도 사라진다. 다주택자가 줄어들면 전월세 공급이 줄고, 전월세 가격은 폭등한다.
둘째, 다주택자는 신규 주택 공급을 받아주는 '최초의' 수요자 역할을 한다. 역시 사고 실험을 해보자. 서울에 다주택자가 0명이면 주택 공급은 어떻게 될까? 서울의 신규 공급도 멈추게 된다.
현재 다주택자 규제의 두 축은 2020년 '7·10 대책'과 2025년 '10·15 대책'이다. 7·10 대책은 취득세 중과, 종합부동산세 중과, 양도소득세 중과를 한꺼번에 밀어붙였다. 취득세 최고세율은 무려 12%다. '가급적 집을 사지 말라'는 신호다. 주택의 신규 공급은 수요자가 있어야 작동하는데, 부동산 시장에서 '수요를 억제하면' 반드시 '공급 억제'로 귀결된다. 양도소득세는 3주택 최고세율이 82.5%, 2주택 최고세율이 71.5%에 이른다. 지나치게 높은 양도세는 결과적으로 '매물 잠김'을 촉진하게 된다.
7·10 대책이 '세금 중과'를 통한 다주택자 억제책이었다면, 10·15 대책은 한 차원 더 강력하다. 10·15 대책의 토지거래허가제는 '전세를 끼면' 거래가 안 된다. 사실상 '전세 낀 사람의 거래 금지법'에 가깝다. 7·10 대책과 10·15 대책이 결합하면, 그 귀결은 전세 급상승 → 전세의 월세화 → 월세 급상승이라는 악순환이다. 최근의 전월세 급등은 바로 이 두 대책의 부작용으로 작동하는 측면이 강하다.
그렇다면 전월세 급등은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유권자 중에서 전월세에 가장 민감한 층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20대, 30대, 그리고 부분적으로 40대 전반부까지다. 전세와 월세가 오를수록 이들의 정치적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종부세 이야기로 되돌아올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종부세'를 통해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 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가격이 오를수록 종부세를 더 많이 올렸다. 데이터로 확인되는 사실이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문재인 정부는 '주택분 종부세'를 총액 기준으로 약 15배 인상했다. 임기 첫해인 2017년 3878억 원이던 주택분 종부세가 2021년에는 5조 7000억 원으로 불어났다. 불과 4년 만이다. 그 결과 2021년에는 '서울 지역 아파트 4채당 한 채'가 종부세 대상이 됐다.
종부세는 언제나 '한강 벨트 초토화세'로 작동한다. 그런데 지금 더 무서운 것은 '전월세 폭등'이다. 종부세가 한강 벨트의 자산 보유층을 자극하는 세금이라면, 전월세 폭등은 자산 없는 20·30세대의 주거비 부담을 증폭시킨다. 전월세 폭등은 '20·30세대의 반(反)민주당 정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정책, 임차인의 눈으로 접근해야
좋은 부동산 정책은 '임차인의 눈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전월세 세입자야말로 주거 약자층이다. 따라서 전월세 공급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그러자면 2020년 7·10 대책과 2025년 10·15 대책에 대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서울의 보수화는 '역사적 필연'이 아니었다. 역대 진보 정부와 민주당이 부동산 정책에서 '좌편향' 요소가 강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작용의 성격이 강했을 뿐이다. 부동산·종부세가 이슈가 아닐 때, 서울은 민주당에 우호적이었다. 2024년 4월 총선에서 범진보가 범보수보다 8.1%포인트를 더 득표했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진단이 틀리면 처방을 잘못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처방은 문제를 키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서울의 보수화는 '부동산 가격 상승 때문'이 아니었다. 부동산 가격을 잡는다는 명분으로 종부세를 과도하게 올리고, 최근 다주택자 규제의 부작용으로 전월세 가격이 올라간 사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지금이라도, '임차인의 눈으로' 부동산 정책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전월세 공급 활성화를 최우선 정책 과제로 사고해 보자.
여담으로, 이재명 대통령은 청와대 기자간담회에서 '전세는 사금융이며, 전세가 사라지는 것은 정상화 과정'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바 있다. 그러나 시민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나라 전세제도에 대해 전국 평균으로는 '장점이 더 많다'라는 의견이 54%, '단점이 더 많다'라는 의견이 28%였다. 그런데 서울의 경우 '장점이 더 많다'가 66%, '단점이 더 많다'가 22%였다. 전세의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가장 높은 곳 역시 서울이다. 생각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