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 발효 조미료 숨발라(Soumbala)의 원료와 완성 형태. 왼쪽 그릇에는 네레나무 씨앗이, 오른쪽 그릇에는 삶고 발효시켜 동그랗게 빚은 숨발라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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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일이 현미경도 연구실도 없던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오늘날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바실러스균이라는 미생물 이름을 몰랐지만, 메주가 잘 뜬 냄새는 알았다. 말리의 여성들도 아미노산이라는 말을 몰랐지만, 네레 씨앗이 언제 숨발라가 되는지 손끝과 코끝으로 알았다.
부엌은 살아 있는 실험실이었다. 장독대는 배양실이었고, 사바나의 햇볕과 바람은 건조실이었다. 현미경 대신 냄새를 맡았고, 계량기 대신 손으로 만졌고, 논문 대신 세대의 기억으로 전했다.
인간은 미생물을 명령하지 않았다. 미생물이 일할 자리를 마련했을 뿐이다. 콩을 삶고, 메주를 매달고, 장독을 햇볕 아래 두었다. 네레 씨앗을 삶고, 잎에 싸고, 사헬의 뜨거운 바람 아래 말렸다. 미생물을 알기 전부터, 인간은 미생물과 함께 사는 법을 알고 있었다.
숨발라를 만드는 노동은 대개 마을 여성들의 몫이었다. 씨앗을 모으고, 삶고, 껍질을 벗기고, 발효시키고, 말린다. 뜨거운 날씨 속에서 불 앞에 오래 서야 한다. 발효가 됐는지 손끝과 코끝으로 살펴야 한다. 온도계보다 몸의 감각이 먼저 필요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의 장독대가 떠올랐다. 겨울철이면, 콩을 삶고 메주를 빚고, 볏짚에 매달아 띄우고, 장을 담그고, 햇볕 좋은 날 장독 뚜껑을 열던 사람들. 가족의 밥상을 위해 시간을 다루던 어머니들의 손.
발효는 기술이면서 돌봄이다. 한 번 만들어 끝나는 음식이 아니다. 날씨를 보고, 냄새를 맡고,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사바나의 여성들과 한국 장독대 앞의 어머니들은 만난 적 없지만, 같은 일을 해왔다. 재료를 살리는 일. 가족을 먹이는 일. 부족한 환경에서 깊은 맛을 만드는 일이었다.
식민지와 내전을 견뎌낸 기억의 맛
말리의 역사는 찬란함과 상처를 함께 품고 있다. 중세 말리는 금과 교역의 제국이었다. 사하라 남쪽 금이 북쪽 소금과 만나 사막을 넘었다. 근현대의 말리는 프랑스 식민 지배와 쿠데타, 내전과 가뭄의 시간을 지나왔다.
그 역사 속에서도 숨발라의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외부 권력이 행정과 언어를 흔들어도 혀끝의 기억까지 빼앗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시장에서 숨발라를 사고, 냄비에 넣고, 곡물 반죽과 나눠 먹었다. 그 냄새는 "우리는 이땅에 살아있다"는 조용한 웅변이었다.
소울푸드는 정권보다 오래 남는다. 이브 학장이 숨발라를 이야기할 때 표정이 달라진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UM6P SHBM 조리 실습실에서 열린 학생 대상 한국 발효 특강 기념사진. 제일 왼쪽의 이브 사마케 학장을 비롯해 조리복을 입은 학생들과 진아에프앤씨 이찬재 실장, 송연실 대표가 함께했다. 이날 학생들은 한국 발효와 한식의 맛 구조를 배우고, 절인 올리브에 김치 양념을 입힌 올리브김치를 직접 만들어보았다.
이찬재
한국과 말리는 멀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반도국이다. 말리는 사하라와 사헬, 사바나가 이어지는 내륙국이다. 발효 앞에서는 이상하게 가까워진다.
처음엔 된장이 문을 열었다. 왕신된장의 냄새와 맛이 이브 학장에게 숨발라를 떠올리게 했다. 한 걸음 들어가자 숨발라는 청국장과 메주 초기 발효 쪽에 가까웠다. 청국장과 숨발라는 단백질 풍부한 씨앗을 따뜻한 곳에서 띄워 구수한 향과 감칠맛을 만드는 음식이다. 된장은 메주를 만들고 소금물에 담가 장독에서 오래 익힌다. 길이도, 방식도 다르다.
왕신된장은 숨발라 이야기를 불러낸 감각의 열쇠였다. 청국장은 숨발라를 이해하는 과학의 다리였다. 된장은 숨발라와 함께, 음식의 바닥을 만들어주는 문화의 친척이었다. 다른 대륙, 다른 나무, 다른 기후. 같은 질문이 남는다. 어떻게 오래 먹을 것인가. 어떻게 냄새를 맛으로 바꿀 것인가. 어떻게 부족한 재료로 깊은 식탁을 만들 것인가.
된장에서 숨발라로
마라케시에서 모로코의 향신료를 만났다. 우우리카 계곡에서는 타진을 먹었다. 아틀라스 산맥의 물과 바람이 모로코 식탁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았다.
그 사이 가장 깊은 문은 뜻밖에도 우리가 가져간 된장에서 열린 것이다. 한국에서 가져간 된장이 이브 학장에게 말리의 숨발라를 떠올리게 했다. 한국의 콩 발효와 서아프리카의 네레 씨앗 발효가 마라케시의 한 식탁 위에서 만났다. 그 순간 발효는 특정 지역의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결핍을 견디고 맛을 만들어온 문명의 언어처럼 보였다.
콩은 메주가 되고, 청국장이 되고, 된장이 된다. 네레 씨앗은 숨발라가 된다. 재료는 달라도 사람들은 시간을 빌려 맛을 만든다. 그 맛은 누군가에게 고향이 되고, 누군가에게 기억이 된다.
발효는 결핍의 산물이다. 결핍이 늘 불행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때로 결핍은 문명을 다른 방향으로 밀어붙인다. 고립은 문을 닫지만, 그 안에서만 가능한 깊은 맛의 문을 열기도 한다는 것을 말리의 숨발라에서 다시 깨달았다.
말리의 숨발라는 그런 음식이었다. 부족함이 낳았지만 부족함을 넘어선 음식. 고립이 빚었지만 한국의 장독대와도 맞닿은 음식이었다. 이 질문은 이제 UM6P SHBM 강의실로 이어진다. 발효의 감칠맛과 모로코 향신료의 균형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다음 여정에서 올리브김치와 액젓, 향신료의 세계를 함께 놓고 이 질문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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