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08 11:18최종 업데이트 26.07.0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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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루에다를 떠났다. 며칠간 와이너리를 돌던 발걸음이었다. 길은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마드리드에서 저가항공 라이언에어를 탔다. 목적지는 모로코 마라케시. 비행은 짧았다. 마음의 거리는 짧지 않았다. 스페인 포도밭을 벗어나 북아프리카 붉은 도시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비행기가 내려앉았다. 탑승교는 없었다. 계단을 밟고 활주로에 내렸다. 캐리어를 끌고 청사까지 걸었다. 건조한 바람이 얼굴을 훑었다. 햇빛이 따가웠다. 공기부터 달랐다. 활주로 저편으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붉은 흙먼지가 발밑에서 풀썩였다. 캐리어 바퀴가 아스팔트 위를 덜컹거리며 굴러갔다.

이브 사마케 UM6P SHBM 학장의 집 부엌에서 이브 학장과 진아에프앤씨 송연실 대표가 함께 요리를 준비하고 있다. 리야드 호텔 대신 셰프의 집을 택했기에 가능했던 장면으로, 모로코의 향신료와 한국 발효 이야기가 한 부엌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이찬재

'아, 모로코구나.'

몇 분만에 여행의 감각이 바뀌었다.


공항 밖에는 모로코 UM6P대학 SHBM 이브 사마케(Yves Samaké) 학장과 부인 나탈리가 서 있었다. 우리를 SHBM 특강 강사로 초청한 이였다. SHBM은 모하메드 6세 국왕의 이름을 딴 호스피탈리티·비즈니스 경영학교. 아프리카 관광·호텔 산업의 인재를 키우는 곳이다.

쉰다섯 안팎, 말투는 부드러웠다. 몸가짐은 단정했다. 오래 최고급 호텔 주방을 책임진 사람의 여유가 있었다. 뿌리는 복합적이었다. 어머니는 에어프랑스 승무원 출신 프랑스인. 아버지는 프랑스 철도청에서 일한 아프리카 말리 출신. 그는 리츠칼튼 계열 호텔 주방을 거친 셰프이자 교육자였다. 독일 출신 부인 나탈리와는 워싱턴DC 리츠칼튼에서 만났다고 한다.

공항에서부터 그의 차를 탔다. 그 순간부터 마라케시는 혼자 보는 도시가 아니었다.

리야드 대신 셰프의 집

이브 사마케 UM6P SHBM 학장 집 식탁에서 함께한 저녁 시간. 왼쪽부터 이브 학장, 부인 나탈리, 송연실 진아에프앤씨 대표가 음식을 나누며 모로코의 식문화와 한국 발효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찬재

출국 전, 이브 학장이 물었다.

"리야드 호텔에서 묵겠습니까, 우리 집에서 묵겠습니까?"

리야드는 마라케시 전통 가옥을 개조한 숙소다. 안뜰과 분수, 타일 장식을 품은 공간. 그가 소개한 곳은 나탈리 친구가 운영하는, 마라케시 최초의 리야드 호텔이라 했다.

답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셰프의 집을 골랐다.

호텔 숙박비는 카드로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셰프의 식탁에서 나누는 시간과 음식, 그런 분위기는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장을 함께 보고, 집밥을 먹고, 밤마다 음식 이야기를 나누는 3박4일. '세계의 발효를 찾아서'를 위한 여정으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음식은 접시 위에서만 태어나지 않는다. 시장에서, 장바구니에서 먼저 태어난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택한 것이다. 한국의 발효를 찾아온 우리가 모로코에서 먼저 만난 건 발효가 아니었다. 향신료였다. 큐민과 계피, 강황과 후추의 냄새가 여행의 첫인상이었다.

저녁거리를 사러 간 시장

마라케시 구시가지의 중심, 제마 엘프나 광장 인근에서 찍은 기념사진. 수크와 시장 골목으로 이어지는 이곳은 마라케시의 가장 활기찬 공간으로, 넓은 광장과 붉은빛 건물들이 북아프리카 도시에 도착했음을 실감하게 했다.이찬재

도착하자마자 시장으로 갔다. 관광이 아니라 그날 저녁을 위해서였다. 이브 학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학장이 아니라 셰프의 눈이었다. 간 곳은 유명 수크(재래시장)가 아니었다. 마라케시 시내 벨바카르 현대상가. 이름은 현대식이지만 안은 현지인의 삶 그대로였다. 흥정 소리, 오가는 손, 고르는 눈길.

시장은 눈보다 코로 먼저 열렸다.

좁은 골목으로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닭들이 뛰어다녔다. 노점마다 채소와 과일, 절인 올리브가 쌓였다. 토마토는 붉었다. 가지는 윤이 났다. 양파와 감귤, 양배추가 흙냄새를 풍겼다.

향신료 가게 앞에서 발이 멈췄다. 큐민, 강황, 파프리카, 계피, 고수, 민트가 작은 산을 이루었다. 노랑, 붉은색, 갈색, 초록이 뒤섞였다. 큐민의 구수한 냄새, 계피의 단내, 민트의 청량함, 파프리카의 매운 온기가 겹쳤다. 자루마다 향신료가 넘칠 듯 쌓여 있었다. 상인은 손바닥으로 가루를 쓸어 담으며 저울 눈금을 가늠했다. 저울추가 흔들릴 때마다 먼지 같은 향이 공중으로 흩어졌다.

노점 사이로 박하차 냄새가 스쳤다. 좌판엔 말린 무화과와 대추야자가 켜켜이 쌓였다. 정육점 앞엔 손질된 양고기가 걸려 있었다. 피 냄새와 향신료 냄새가 뒤섞여 낯설고도 강렬했다. 마라케시는 사하라 교역로와 지중해·중동·유럽의 길이 만나는 서쪽 끝 도시다. 향신료 더미는 관광 상품이 아니었다. 사막과 바다를 잇던 오래된 교역의 냄새였다.

가장 유명한 향신료는 라스 엘 하누트. '가게의 최고품'이라는 뜻이다. 정해진 조리법은 없다. 가게마다, 집집마다 배합이 다르다. 열 가지에서 수십 가지까지 섞는다고 한다. 가게 한쪽 향신료 분쇄기가 돌았다. 손님이 고른 향신료를 넣으면 기계가 갈았다. 그 순간 향이 확 올라왔다. 막 갈린 향은 날카롭고 생생했다.

한국의 발효가 냄새를 다른 맛으로 바꾸는 기술이라면, 모로코의 향신료는 냄새를 향으로 다시 배열하는 기술이었다. 며칠 뒤 UM6P SHBM 특강에서 이 질문을 다시 만나게 된다. 향신료가 만드는 균형과 한국 발효 조미료가 만드는 감칠맛의 균형은 어떻게 다른가. 절인 레몬과 올리브도 짠맛과 신맛을 뿜었다. 말린 과일과 대추야자, 견과류도 쌓여 있었다. 시장은 그 자체로 부엌이었다.

다시 카르푸로, 모로코 와인을 사다

마라케시 카르푸 매장의 향신료 코너. 큐민과 강황, 파프리카, 계피 등 모로코 음식에 쓰이는 대표 향신료들이 가득 진열돼 있었다. 시장의 향이 대형마트 안에서도 이어지는 듯했다.이찬재

재래시장을 나와 대형마트 카르푸로 향했다. 목적은 와인.

조금은 뜻밖이었다. 모로코는 무슬림이 다수인 아랍권 국가다. 그런데 와인이 있었다. 숨겨진 물건이 아니었다. 현지인도 살 수 있었다. 이브 학장이 모로코 와인 몇 병을 골랐다. 프랑스인들이 포도 품종과 양조 기술을 들여왔다고 했다. 메크네스와 아틀라스 산맥 기슭이 산지다.

"모로코는 연간 약 4천만 병을 생산합니다. 수출은 5% 수준이고 대부분 자국에서 소비됩니다." 그의 설명이었다.

무슬림 나라에서 와인이 만들어지고, 그 대부분이 그 나라 안에서 소비된다. 프랑스 식민의 흔적이 한 병의 발효주 안에 남아 있었다. 아틀라스 산맥의 고도와 대서양의 영향이 포도 재배에 필요한 온도차를 만든다. 더운 북아프리카에서도 균형 잡힌 포도가 자라는 이유다.

재미있는 장면도 있었다. 카르푸 매장은 현지인에게는 와인 영수증을 내주지 않았다. 되파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모로코에서 와인은 금지와 허용, 종교와 관광 사이 어딘가에 놓인 물건 같았다.

셰프의 '무기고' 같은 부엌

집으로 돌아오자 셰프의 주방이 움직였다. 야채가 씻기고, 고기가 손질됐다. 팬이 달궈지고, 냄비가 끓었다. 주방은 화려하지 않았다. 다만 갖춘 것이 많았다. 벽에는 온갖 칼이 꽂혔다. 선반엔 냄비와 팬, 소스와 향신료, 절임과 저장식품이 줄지었다. 고기 민칭기계도 있었다.

이 공간은 집의 부엌이면서 셰프의 무기고 같았다. 전쟁의 무기가 사람을 해친다면, 셰프의 무기는 사람을 살린다. 칼은 자르고, 팬은 익히고, 향신료는 맛을 깨운다. 칼 하나, 병 하나에도 손의 기억이 묻어 있었다. 어떤 칼은 호텔 주방 시절 선배 셰프가 준 선물이라 했다.

올리브오일도 특별했다. 집 마당엔 올리브나무가 수십 그루. 직접 짠 기름을 쓴다고 했다. 마트에서 산 평범한 올리브오일이 아니었다. 기름이 팬 위에서 데워졌다. 큐민과 파프리카, 마늘과 허브 향이 올라왔다. 한국 부엌에서 된장과 간장이 음식의 바닥을 잡는다면, 이 부엌에서는 향신료와 올리브오일이 먼저 움직였다.

이브 학장의 손놀림엔 군더더기가 없었다. 속도와 순서가 몸에 배어 있었다. 어떤 향신료를 먼저 넣는지, 고기는 어디까지 익히는지, 그는 웃으며 설명했다. 요리는 말보다 먼저 움직였다.

칼끝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양파 써는 냄새가 매캐하게 퍼졌다가 이내 기름 냄새에 묻혔다. 냄비 뚜껑이 들썩이며 김을 뿜었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주방의 불빛과 냄새만은 환했다.

우우리카 계곡, 강가의 타진

호텔과 다른 아침이었다. 주방 소리가 들렸다. 식탁엔 빵과 올리브, 치즈, 과일, 커피.

인상 깊었던 건 오렌지주스. 마당 오렌지나무에서 나탈리가 열매를 직접 따와 그 자리에서 즙을 짰다. 병에 담긴 주스가 아니었다. 나무에서 식탁으로 곧장 이어진 한 잔이었다. 올리브는 기름이 됐다. 오렌지는 아침 주스가 됐다. 이 집 식탁은 시장과 마트만이 아니라 마당의 나무에서도 시작되고 있었다.

다음 날 이브 학장은 우리를 아틀라스 산맥으로 이끌었다. 차로 두 시간, 목적지는 우우리카 계곡(Ourika Valley) 끝의 세티 파드마(Sti Fadma) 마을. 우우리카 계곡은 하이 아틀라스 북쪽 사면. 마라케시 사람들이 도시의 열기를 피해 산과 물을 찾는 곳이다. 붉은 평야가 끝나고 산자락이 시작된다. 강을 따라 마을과 과수원, 작은 식당이 이어진다.

아틀라스 산맥 우우리카 계곡 끝자락의 세티 파드마(Sti Fadma) 마을에서 맛본 모로코 전통 타진. 강가 식당 ‘카페 레스토랑 후세인(Cafe Restaurant HOUSSAINE)’에서 셰프와 나탈리 부인이 뾰족한 흙냄비 뚜껑을 열자, 고기와 채소, 올리브와 향신료가 낮은 불의 시간을 지나 뜨거운 김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찬재

산맥은 도시의 물줄기이자 저녁 바람, 시장의 채소와 강가의 타진을 가능케 하는 근원이었다. 길은 만만치 않았다. 차는 절벽길을 달렸다. 몇 년 전 지진의 흔적도 보였다. 산사태 자리, 아직 복구 중인 구간. 무너진 흙은 더 붉었다. 더 거칠고 날것에 가까운 붉은색이었다. 절벽은 가까웠고 길은 좁았다. 그러다 물소리가 들렸다. 건조한 산길 끝의 물소리는 뜻밖의 안도감이었다.

도착한 곳은 강가의 작은 식당, '카페 레스토랑 후세인(Café Restaurant HOUSSAINE)'. 노란 간판 아래 푸른 벽, 그 뒤로 초록 나무와 붉은 암벽. 안쪽엔 흙으로 빚은 타진 냄비들이 줄지어 있었다. 원래는 강물에 발을 담그고 먹는 자리라 했다. 그날은 물살이 거셌다. 비가 많이 왔거나 산 위 눈이 녹은 탓이었다. 강은 돌을 치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빠르게 흘렀다. 우리는 안쪽 테이블에 앉았다.

타진이 나왔다. 뾰족한 뚜껑을 열자 뜨거운 김이 확 올라왔다. 둥근 흙냄비 안에 고기와 양파, 감자, 당근, 올리브, 말린 과일, 허브와 향신료가 함께 익어 있었다. 국물은 진했다. 향은 깊었다. 시장에서 맡았던 큐민과 라스 엘 하누트의 냄새가 김 사이로 되살아났다.

식당 안은 숯불 냄새로 가득했다. 옆 테이블에서도 뚜껑이 열릴 때마다 김이 피어올랐다. 강물 소리가 벽 너머로 끊임없이 들려왔다. 파리 한 마리가 접시 위를 맴돌다 날아갔다. 흙냄비는 만졌을 때 손이 델 만큼 뜨거웠다.

타진은 음식 이름이자 원뿔형 뚜껑 흙냄비의 이름이다. 재료를 한 냄비에 넣고 낮은 불에서 오래 익힌다. 뚜껑은 수증기를 가두고, 흙냄비는 열을 천천히 품는다. 물이 귀한 땅에서 수분과 맛을 붙잡는 조리법이다.

타진은 발효 음식이 아니다. 다만 발효와 같은 질문을 품고 있었다. 거친 냄새를 어떻게 부드러운 맛으로 바꿀 것인가. 물이 귀한 땅에서 어떻게 재료의 시간을 붙잡을 것인가. 한국의 발효가 장독 속에서 미생물과 시간을 빌린다면, 모로코의 타진은 흙냄비 속에서 향신료와 낮은 불의 시간을 빌렸다.

감자와 당근은 모양을 지킨 채 익었다. 양파는 달게 풀어졌다. 올리브는 짠맛과 씁쓸함을, 말린 과일은 은근한 단맛을 냈다. 향신료는 고기 냄새를 누르고 지방의 무게를 덜었다. 하나의 맛이 튀지 않았다. 모든 재료가 서로의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고 있었다.

향으로 잡는 균형과 감칠맛으로 잡는 균형. 모로코의 향신료와 한국의 발효 조미료는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음식의 중심을 잡는다는 목표는 같았다.

해질 무렵이면 이브 학장 집의 옥상으로

해질 무렵 이브 학장 집 옥상에서 바라본 마라케시 외곽 풍경. 붉은 흙과 낮은 풀밭 너머로 해가 기울고, 아틀라스 산맥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낮의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멀리 모스크의 기도 소리가 들려오던 시간, 모로코의 건조한 공기와 석양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이찬재

저녁이면 이브 학장 집 옥상으로 올라갔다. 나탈 리가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석양을 보기 위해서였다. 집 밖으로 척박한 붉은 땅이 펼쳐졌다. 그 너머 아틀라스 산맥. 해가 기울자 빛이 바뀌었다. 붉은 흙은 더 붉어지고, 산맥은 서서히 어두워졌다.

아틀라스산맥에서 마라케시로 내려오는 바람이 불었다. 낮 동안 달궈진 흙과 먼지, 마른 풀 냄새가 그 바람에 섞였다. 거친 땅이었다. 그런데 아름다웠다.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모스크 첨탑에서 울려 나오는 기도 소리가 골목을 타고 들어왔다. 노을빛이 벽에 내려앉는 시간, 그 소리는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오래된 슬픔을 품고 있었다. 나탈리가 맥주를 들고 올라왔다. 낮의 열기가 식어가는 게 느껴졌다.

한국의 발효가 사계절과 장독, 비와 햇볕의 리듬 속에서 익었다면, 모로코의 음식은 건조한 공기와 강한 햇빛, 사막의 바람과 향신료의 열기 속에서 균형을 찾아왔다.

집의 식탁은 기억을 보여준다

이브 학장은 셰프였지만 그의 식탁은 레스토랑이 아니었다. 집이었다. 레스토랑이 완성된 기술을 보여준다면, 집의 식탁은 사람의 기억을 보여준다. 우리는 3박4일 동안 요리가 아니라 한 셰프의 삶과 가족의 시간을 함께했다.

마라케시는 그렇게 열렸다. 활주로의 뜨거운 바람, 벨바카르 상가의 향신료와 고기, 카르푸의 모로코 와인, 셰프의 무기고 같은 부엌, 아침마다 따낸 오렌지주스, 세티 파드마 강가의 타진, 옥상의 붉은 석양으로 이어졌다. 그 모든 장면 뒤엔 아틀라스 산맥이 있었다. 산은 멀리 서 있었지만 실은 식탁 가까이에 있었다. 와인 산지에 기후를 만들고, 계곡에 물을 보내고, 마라케시의 저녁에 바람을 내려보냈다.

아프리카의 대표 발효 음식은 아직 만나기 전이었다. 다만 예감은 있었다. 발효와 향신료는 서로 반대편이 아니라, 각자의 자연과 역사 속에서 음식을 깊게 만든 두 갈래의 오래된 길이라는 것. 첫날, 한국에서 가져간 왕신된장을 선물로 꺼냈을 때 그 예감은 뜻밖의 이름으로 돌아왔다.

숨발라(Soumbala).

이브 학장은 된장의 냄새와 맛에서 말리 출신 아버지의 음식을 떠올렸다. 마라케시의 향신료로 시작한 여정은 그렇게 서아프리카의 발효 조미료로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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