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06 14:44최종 업데이트 26.07.0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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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이병태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규제합리화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스타벅스 코리아의 탱크데이 이벤트에서 시작된 5·18 폄훼 논란이 광주일고와 배재고의 야구 시합으로 번지더니, 이제는 대통령이 위원장인 규제합리화위원회 이병태 부위원장도 관련되는 형국으로 바뀌었다.

이병태 부위원장은 "스타벅스 가야지"라고 외친 일로 인해 배재고에 대한 징계가 거론되자, 지난 2일 페이스북에 "5·18이 성역이 됐다"라며 "북한의 모습"이라고 썼다. 그런 뒤, 4일에는 "나는 학생들의 구호가 아니라 그들의 처벌이 광주민주화운동의 조롱과 폄훼라고 믿는다"라고 썼다. 배재고에 불이익을 주는 것이 5·18에 대한 조롱이자 폄훼라는 기괴한 발언을 한 것이다.


청와대는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그에게 공개 경고를 했다. 하지만 어떤 명의로 글을 썼건 간에 부총리급 공직자가 글을 쓴 것은 사실이다. 정부도 어느 정도는 책임을 져야 할 상황으로 5·18 폄훼 논란이 진행된 셈이다.

이병태의 망언들... "친일은 당연한 것"

이번과 같은 사안에 대해 그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사전에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걸린 사안에 대해 그가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발언에서도 나타났다. 2020년에 그가 세월호 참사를 '불행한 교통사고'로 표현한 일은 많이 알려져 있다.

2019년 5월 24일, 헝가리 다뉴브강에서 유람선이 침몰해 한국인 2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참사와 관련해 그는 "헝가리 시민들의 추모행렬을 봐라. 추모는 이렇듯 정치권력과 무관하게 조용하게 치르는 내면적 행위라야 진심이 되는 것"이라며 "세월호 추모가 더 이상 추모가 아니라 타락한 정치권력 놀음인 이유이고, 이 사회의 천박함의 상징인 이유"라고 썼다.

그는 친일 문제와 관련해서도 순리에 어긋나는 행보와 발언들을 남겼다. 2018년 10월 30일과 11월 29일에 나온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로 인해 한일 간에 긴장이 고조될 때인 2019년 3월 27일이었다. 이날 그는 '행동하는 자유시민'이라는 시민단체 창립에 참여하고 공동대표가 됐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행동하는 자유시민은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정부의 반자유·반시장 사회주의정책에 저항하는 자유시장경제운동"을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감정적·퇴행적 외세 배격론과 싸우는 근대적·발전적 외교 지향운동"을 벌이겠다고 천명했다. 당시의 한국 사회를 "감정적·퇴행적 외세 배격론"이 지배하는 사회로 바라봤던 것이다.

그 뒤 그는 일제 식민지배와 관련된 한국인들의 역사인식을 배격하는 발언들을 공표했다. 아베 신조 내각의 수출규제조치(7.1)로 인해 한국 여론이 들끓을 때인 2019년 7월 7일에는 '친일은 당연한 것이다'라는 페이스북 글을 남겼다.

글에서 그는 "국교를 정상화했으면 어느 나라이든 친하게 지내야 평화롭고 공동번영이 가능한데, 어찌해서 친일이 욕이 되냐"라고 썼다. 1965년의 국교정상화가 식민지배 문제를 무시한 채 국민적 합의 없이 강행된 사실을 외면하고, 국교를 맺었으므로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단순 논리를 개진했다.

"친일은 당연한 것이고 정상적인 것이다"라고 한 뒤 "반일이 반대로 비정상이다"라는 주장도 그에게서 나왔다. 한국인들이 일본을 비판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외면한 채, 수교국을 비판하는 것은 비정상적 행위라는 어이없는 논리를 내세웠던 것이다.

같은 날의 또 다른 글에서는 "아직도 한국과 일본이 일제시대의 독립전쟁 하듯 싸워야 할 주적으로 알고 있는 역사인식이 화석화된 저능아들이 애국자를 자처"라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외면한 데 이어 부당한 수출 규제를 가하는 상황에서, 그는 대일 비판적인 국내 여론을 그처럼 평가절하했다.

4개월 만에 또다시... 이병태의 사과, 진정성 있었나

2019년 10월 2일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가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나서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연합뉴스

친일을 당연시하는 발언은 해방 직후의 주요 친일파들에게서 쏟아졌다. 이광수가 쓴 <나의 고백>은 친일파들의 그 같은 주장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국회 반민특위가 본격 활동을 개시하기 직전인 1948년 12월에 발행된 이 책의 부록인 '친일파의 변(辯)'에서 이광수가 강조한 것은 '친일은 당연하고 부득이했다'는 논리다.

이광수는 단순히 친일파를 변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반 대중을 겨냥해 '너희가 친일파와 다를 게 무어냐'는 메시지도 전했다. 그의 말은 이랬다.

"일정에 세금을 바치고 호적을 하고 법률에 복종하고 일장기를 달고 황국신민서사를 부르고 신사에 참배하고 국방헌금을 내고 관공립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한 것이 모두 일본에의 협력이다. 더 엄격하게 말하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도 협력이다. 왜 그런고 하면 그가 협력을 아니하였던들 죽었거나 옥에 갔겠기 때문이다."

이광수는 일제 때 숨 쉬고 살아간 것 자체가 친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일반 대중이 했던 세금 납부 및 관공립학교 진학 등과 친일파들이 했던 국방헌금 납부를 동일한 카테고리로 묶은 뒤 '다를 게 무어냐?'고 강변했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 자체가 친일이라며 비장함을 연출했다. 일제에 협력하지 않았다면 죽음과 투옥밖에 없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그의 말이다. 만해 한용운처럼 친일을 거부하는 대신에 불이익을 감수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현실을 은폐했던 것이다.

이광수는 "남이 온전하기를 요구하지 말고 제가 부족한 것을 용서치 말라"라는 말도 인용했다. 친일파들을 욕하지 말고 너희 자신을 돌아보라고 대중에게 훈계를 한 셈이다.

친일파들이 일본을 지지한 것은 일본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장해 줬기 때문이다. 친일파들은 일제에 협력하는 대신, 일반 대중보다 우월한 지위를 인정받았다. 소수 지배층이 다수 대중의 권익을 억누르고 이익을 독과점하는 속에서 일제와 친일세력의 협력 구도가 유지됐다.

그렇게 기득권을 확보했기 때문에, 친일파들은 소수 지배층을 위한 일반 대중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관념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한국 서민층을 강제징용·위안부·강제징병 및 강제공출피해로 내모는 데 앞장선 일은 대중의 희생을 대수롭지 않게 치부하는 세계관의 뒷받침을 받는 것이었다.

그런 특성은 해방 이후의 대규모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서도 나타났다. 친일세력은 제주 4·3 학살, 여수·순천 집단살상, 국민보도연맹 학살 등을 주도했다. 학살에 간여하지 않은 친일파들도 이를 당연한 일인 듯이 보아 넘겼다. 일제가 한국인 대중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살상하는 것을 지지한 그들은 해방 뒤에는 자신들이 직접 한국인들을 학살하거나 아니면 학살을 묵인했다.

이는 친일을 옹호하는 것이 단순히 일본에 대한 태도만을 반영하는 게 아님을 보여준다. 친일을 옹호하는 태도는 한국 대중을 이유 없이 희생시키는 일에 대한 비판의식을 약화시킨다.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시대착오적 관념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친일을 옹호하는 인물들을 공직에서 배제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에도 중요하다.

친일 문제와 5·18광주 학살에 대해 퇴행적 역사인식을 보여준 이병태 부위원장은 지금 직책에 위촉된 뒤인 지난 3월 3일 "정제되지 않은 표현으로 불편함이나 상처를 느끼셨던 모든 분께 진심으로 이해와 용서를 구한다"라며 지난날을 반성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그랬던 그가 또다시 5·18을 폄훼했다. 사과의 진정성이 확인되는 데에 4년도 아니고 4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과거의 그와 달리 지금의 그는 민주당 정권의 일원이 되어 있다. 그의 발언은 스타벅스에서 시작된 5·18 논란을 민주당으로 옮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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