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현은 자신의 뿌리를 찾아 아빠의 고향인 강원도로 향한다.
판씨네마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동현을 인종차별한 이들은 브래디 미카코의 말처럼 동현을 둘러싼 수많은 정체성 가운데 '한국인', '동양인'이라는 한 가지 기준만으로 그를 판단하고 위계를 나눈다. 한국인은 그저 '라이스', '눈 찢어진 애'로 납작하게 소비되고 그 사람을 둘러싼 다양한 삶의 맥락은 지워진다. 차별주의자들은 사람을 한두 가지 특징으로 환원하고 타인을 자신보다 약하고 낮은 존재로 규정하면서 우월감을 느낀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서울 배재고 야구부의 '지역 비하 응원'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전라도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야구부 학생들은 혐오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특정 지역을 혐오하고 조롱하는 문화가 어느 한 학교만의 일탈이 아니라 10대들 사이에서 마치 놀이처럼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광주제일고등학교(광주일고) 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도권에 있는 다른 학교와 경기할 때도 욕설이나 지역 비하성 발언이 있었다고 말했다. 다음에 이어지는 말을 들으면서, 10대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침통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이 침통함에는 내 아이 역시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포함돼 있다.
"지금도 광주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재학생들은 서울, 수도권 쪽으로 진로를 결정하는 학생이 많습니다. 그 학생들이 수도권이랑 서울에 와서 이런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이규연 광주일고 교장
청소년들이 스포츠 경기장에서 혐오 발언을 거리낌 없이 내뱉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오랫동안 축적된 온라인 일베 문화가 있다. 일베 문화를 양지로 끌어올려 마케팅에 활용한 기업의 책임 역시 무겁다. 특정 지역을 집요하게 비하해 온 사회·정치적 문화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혐오에 빠진 학생들을 악마화하면서 더 강력한 처벌만으로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을 볼 때마다 입맛이 쓰다. 이번 사태를 특정 세대 또는 집단의 일탈로만 규정하는 순간, 혐오를 가능하게 만든 구조와 문화는 가려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만든 것은 결국 어른들이다. '요즘 아이들'을 욕하기 전에 어른의 책임을 먼저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같은 반에 있는 한국인 여자아이를 향한 인종차별을 말리던 동현은 또다시 주먹을 휘두른다. 그러나 혐오를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와 문화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주먹만으로 혐오를 멈출 수 없다. 주먹질을 할 대상만 달라질 뿐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정학을 당한 동현에게 소영은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동현의 뿌리를 찾아 아빠의 고향인 강원도로 향한다. 그곳에서 동현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삼촌을 처음 만난다. 그리고 어린 시절 자신을 그토록 괴롭게 했던 쌀이 자라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다.
추수를 앞둔 황금빛 논에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고, 가족들은 한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다. 삼촌은 "이게 다 할아버지가 키운 쌀이야. 이보다 맛있는 밥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오랫동안 부끄러움의 대상이었던 쌀은 동현이라는 한 사람과 가족의 역사를 품은 존재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자신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된 동현의 얼굴은 편하고 홀가분해 보인다. 그는 이제야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 사람인지 깨달은 것 같다. 자기혐오에서 벗어난 동현은 노랗게 염색했던 머리를 짧게 잘라낸다.
앞서 가계도 숙제를 내준 교사는 이번 과제를 통해 반 친구들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특징이나 조건이 아닌 한 사람을 둘러싼 맥락을 알게 됐을 때 우리는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다. 캐나다로 돌아간 동현은 어떤 가계도를 그려낼까. 부디 다른 친구들에게도 동현이라는 한 사람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