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02 11:07최종 업데이트 26.07.02 11:20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6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계획 발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6.29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연합뉴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열었다. 반도체 클러스터의 수도권 거점을 조기에 완성하고, 이를 서남권과 충청권 등으로 확장하며, 피지컬 AI와 거대 AI 데이터센터를 함께 육성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발표의 규모는 컸다. 삼성과 SK는 향후 10년에서 15년 이상을 내다본 초대형 장기 투자계획을 제시했고, 정부는 전력과 용수의 적기 공급, 기업형 첨단도시 조성, 교통망 구축 등을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서남권 발표에서는 전력·용수 등 기반시설 구축 비용을 정부가 최대 100%까지 지원하고, 비수도권 우대와 지역별 차등 지원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 나왔다. 민간의 공급망 다변화 시도에 정부가 전폭적인 인프라로 부응하는 구도다.


지역 발전의 핵심이 결국 좋은 일자리와 정주여건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이번 발표는 국토 균형발전에도 긍정적 신호로 읽힌다. 국가 균형발전과 첨단기술력 확보를 통해 "대한민국의 20년, 30년을 책임지게 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에 공감하며, 미래를 위한 민과 관의 투자 의지를 환영한다.

현장의 질문이 보여준 정책의 축적

대국민 보고회에서 주목을 끌었던 또 한 가지는 두 기업인의 요청이었다. 삼성전자의 전영현 부회장은 국가산단 조성 과정에서 여러 부처에 흩어진 절차를 한 곳에서 처리하는 '원스톱 행정' 지원을 요청했고, SK하이닉스의 곽노정 사장은 이미 조성 중인 용인·청주를 반도체특별법 지원 대상에 포함해 달라고 건의했다.

언뜻 개별 기업의 현장 애로처럼 보이는 이 요청들은, 실은 세 정부를 거치며 반도체 클러스터 정책이 밟아온 축적의 경로를 압축해 보여준다.

반도체 클러스터의 시초라 할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는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8년 12월, "10년간 120조 원 민간투자를 통한 대·중소 상생형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구상에서 출발했다. 당시 세계는 이미 반도체를 둘러싼 거대한 전환기에 들어서고 있었다. 미중 무역전쟁은 반도체와 통신장비를 직접 겨냥하기 시작했고, 중국은 '중국제조 2025'를 통해 반도체 자립을 국가전략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후발국의 추격과 기술·인력 유출 우려 속에서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초격차를 지키고, 국내에 더 단단한 생산기반과 협력 생태계를 구축해야 했다.

첫 클러스터는 민간이 토지 보상과 산단 조성을 주도하는 '일반산단' 방식이었다. 클러스터 정책의 퍼스트무버로서 민간도 정부도 토지 보상과 용수 확보를 위해 지자체·주민과 지난한 중재를 벌이고 제도 개선을 진행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는 비수도권의 거센 정치적 반발 속에서도 2019년 2월 수도권정비위원회에 산업단지 공급물량 추가 배정을 요청하며 수도권 물량 규제를 풀었고, 원수부터 초순수까지 한 번에 공급하는 최초의 통합물공급 모델을 도입해 용수 문제에 대응했다. 첫 주자로서 규제와 씨름하며 길을 닦은 셈이다. 2019년 3월 용인 프로젝트가 수도권정비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뒤 SK하이닉스는 120조 원 규모의 투자를 확정했다.

같은 해 중반,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의 대한국 수출을 규제하면서 우리 공급망의 취약성이 드러난 이른바 '소부장 사태'가 터졌다. 이 위기는 역설적으로 용인 클러스터가 소부장 자립과 공급망 안정화라는 국가 안보적 전략과 강하게 결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어 2022년 초, 특정 첨단산업을 안보 차원에서 지원할 근거가 되는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이 제정되며 제도적 뼈대가 갖춰졌다.

이후 윤석열 정부 출범 뒤인 2023년 3월, 정부는 "수도권에 삼성이 향후 20년간 300조 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한다"라고 발표했다. 그 배경에는 한층 강화된 미중 반도체 갈등과, 그로 인해 절박해진 자국 내 생산거점 확보 수요가 있었다.

2022년 10월 미국은 첨단 컴퓨팅 칩과 슈퍼컴퓨팅, 첨단 제조장비의 대중국 유입을 막는 광범위한 수출통제를 발표했다. 미국 반도체법(CHIPS Act)의 가드레일 조항은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중국 등 우려국에서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데 제약을 걸었다. 중국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둔 우리 기업들로서는 중국 공장의 증설과 첨단화가 어려워질 가능성에 대비해, 이를 대체할 국내 생산기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2023년 1월에는 일본과 네덜란드가 대중 첨단 장비 수출 제한에 동참했고, 미국 애리조나, 일본 구마모토, EU 반도체법 등 주요국이 일제히 자국 영토에 첨단 클러스터를 짓는 '본토 경쟁'에 돌입했다. 세계 반도체 질서가 시장 효율에 따라 공장을 짓는 시대에서 동맹과 안보 기준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는 시대로 넘어가던 국면이었다. 이에 부응해 정부는 대기업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단계적으로 끌어올린 '반도체특별법(K칩스법)'으로 지원 근거를 강화했다.

앞선 정책의 병목과 시행착오는 다음 정책 설계의 자산이다

주목할 점은 클러스터를 거듭하며 정책의 방식도 계속 진화해 왔다는 점이다.

2018년 첫 클러스터는 민간이 주도하는 일반산단으로 출발했다. 토지 보상, 용수 확보, 수도권 규제, 지자체 협의라는 벽과 씨름하며 길을 낸 과정이었다. 그 경험은 이후 두 번째 클러스터 사업에서 정부가 입지·인허가·기반시설 조율에 더 전면적으로 나서는 국가산단이라는 다음 방식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첨단전략산업 지원 제도, 세액공제 확대, 인허가·예타 특례가 결합하면서 대규모 투자를 더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 정책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국가산단 추진 과정은 또 하나의 과제를 남겼다. 중앙정부가 더 큰 책임을 지는 제도이지만, 실제 클러스터 조성에는 인허가·전력·용수·도로·정주여건처럼 여러 중앙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에 걸친 절차가 뒤따랐던 것이다.

이번 보고회에서 나온 '원스톱 행정' 요청은 바로 이 실행 단계의 조율을 더 빠르고 일관되게 해 달라는 요구였다. 또한 일반산단에 대한 추가 지원 요구는, 뒤따라 만들어진 제도의 혜택이 후속 사업에만 머물지 않고 선행 사업의 경험과 기여까지 국가전략 안에 함께 반영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결국 이번에 발표된 서남권 등 세 번째 클러스터 사업은 첫 일반산단에서 축적된 입지·보상·용수 조율의 경험과, 첫 국가산단에서 확인된 중앙부처 간 통합 조정의 필요성을 모두 자산으로 삼아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정책도 과학기술처럼 축적된다. 앞선 정책의 성과와 한계는 다음 주자를 위한 정부의 역할과 지원 방식을 설계하는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20년 뒤의 성과를 위한 오늘의 밭 갈기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메가프로젝트를 정부의 시그니처 사업으로 삼고,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조직을 통해 속도전을 벌이겠다고 했다. 그 의지를 응원하며 추진력을 기대한다.

다만 이 프로젝트의 성과는 한 정부 안에서 모두 거두기 어렵다. 반도체 팹 하나를 짓는 데도 수년이 걸리고, 전력망과 용수망, 교통망과 정주여건을 갖추는 데는 더 긴 시간이 걸린다. 혁신도시가 생기고 인재가 모이고 협력업체가 자라 지역의 좋은 일자리로 이어지기까지는 십수 년 이상이 필요하다.

이번에 발표된 초대형 투자계획도 대부분 10년, 15년 이상을 내다본 장기 계획이다. 그 시간은 최소 두 번 이상의 정권 교체를 건너야 한다. 서남권 클러스터는 앞선 수도권의 성과와 한계를 발판 삼아 더 진화된 형태로 추진되겠지만, 첨단산업을 지역으로 확장하는 첫 시도인 만큼 여기서도 치러야 할 몫과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뒤이어 계속되어야 할 국가 균형발전 정책이 도약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렇게 이번 메가프로젝트가 이재명 정부의 시그니처 사업인 동시에, "20년, 30년 후 국토 균형발전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성과의 밭을 갈아둔 '레거시'로 남기를 기대한다.

박수경KAIST 기계공학과 교수박수경

* 필자 소개 : 박수경은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로, 생체역학 및 웨어러블 헬스케어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정책 분야에서는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과 문재인 정부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으로서 산·학·연 전문가 집단의 싱크탱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저서로 과학기술인의 정책 참여를 위한 안내서 <정책실의 과학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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