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06 14:45최종 업데이트 26.07.0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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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루에다(Rueda)의 보데가스 모센(Bodegas Mocen) 미술관. 와이너리 한쪽에 작은 전시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문이 열리자 높은 목조 천장 아래로 그림과 조각이 가득한 별도의 문화 공간이 펼쳐졌다. 이곳에서 와인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예술과 기억, 수집과 환대를 통해 하나의 문화로 확장되고 있었다. 와이너리가 양조공장을 넘어 문화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스페인 루에다(Rueda)의 보데가스 모센(Bodegas Mocen) 미술관. 와이너리 한쪽에 작은 전시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문이 열리자 높은 목조 천장 아래로 그림과 조각이 가득한 별도의 문화 공간이 펼쳐졌다. 이곳에서 와인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예술과 기억, 수집과 환대를 통해 하나의 문화로 확장되고 있었다. 와이너리가 양조공장을 넘어 문화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이찬재

와인은 어떻게 문화가 되는가.

루에다(Rueda)를 걷는 동안 이 질문이 점점 선명해졌다. 처음에는 발효 용기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땅속 동굴의 서늘함, 스테인리스 탱크의 차가운 광택, 오크 배럴의 묵직한 존재감, 콘크리트 에그의 둥근 몸체, 햇볕 아래 놓인 다마후아나, 그리고 흙빛 티나하까지. 와인은 그릇을 바꿀 때마다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어떤 용기는 포도의 신선함을 지켜주고, 어떤 용기는 산소와 질감을 조절했다. 어떤 용기는 빛을 받아들이고, 어떤 용기는 흙의 미세한 호흡을 빌려주었다. 같은 포도라도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시간의 흐름도, 맛의 표정도 달라졌다.

하지만 루에다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질문은 그릇 밖으로 흘러나왔다.

와인은 그릇 안에서만 완성되는가.
와이너리는 어떻게 양조공장을 넘어 문화 공간이 되는가.
발효의 이야기는 저장고에서 끝나는가, 아니면 사람들의 식탁에서 다시 시작되는가.

보데가스 모센(스페인어 원명: Bodegas Mocén)에 도착하면서 그 질문은 더욱 또렷해졌다. 와인은 누군가 설명하고, 공간이 기억하고, 그림과 책이 이야기를 보탤 때 달라졌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식탁이 그 모든 시간을 받아주었다.

그때 와인은 상품을 넘어 문화가 된다. 보데가스 모센은 와인을 만드는 양조공장만이 아니었다. 와인을 기억하게 만드는 장소였다.

보데가스 모센, 와인을 넘어 문화가 된 공간

보데가스 모센(Bodegas Mocén)에서 우리를 맞은 사람은 수출 담당 부장 후안 아리아스(Juan Arias)였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그의 안내 덕분에 모센이라는 와이너리는 처음부터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루에다의 와인은 이 지역의 땅과 기후에서 태어났지만, 그 이야기를 세계의 언어로 설명하는 사람들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처음에는 평범한 와이너리 방문이라고 생각했다. 와인을 시음하고, 관계자를 만나 설명을 듣고, 생산 시설을 둘러보는 일정일 줄 알았다. 10여 병의 와인 테이스팅을 마친 뒤 후안 아리아스가 조용히 말했다.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박물관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익숙한 장면이 먼저 떠올랐다. 오래된 포도 압착기, 낡은 삽, 포도밭에서 쓰던 도구들, 오래된 오크 배럴과 흑백사진들. 와이너리마다 한쪽에 마련해두는 작은 역사 전시실 같은 곳일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와인이 쌓인 공간을 빠져나와 안뜰을 걸었다. 루에다의 햇빛과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후안 아리아스는 안뜰 건너편의 다른 건물로 우리를 안내했다. 나무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와이너리 안에 딸린 조용한 별채처럼 보였다.

그런데 문이 열리는 순간,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눈앞에 거대한 미술관이 펼쳐졌다. 높은 목조 천장 아래 넓은 홀이 열려 있었고, 벽마다 그림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다. 2층 난간을 따라 또 다른 작품들이 이어졌고, 붉은 천으로 덮은 받침대 위에는 조각들이 놓여 있었다. 바닥은 짙은 나무빛으로 반짝였고, 조명은 작품과 공간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여기가 정말 와이너리인가.
아니면 어느 도시에 숨어 있는 사립 미술관인가.

후안 아리아스 부장은 우리를 박물관 안으로 들인 뒤 문을 잠갔다. 그 큰 건물 안에 남은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넓은 홀은 조용했고, 발걸음 소리만 나무 바닥 위로 낮게 울렸다. 그는 천천히 우리를 안내하며 컬렉션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쪽 벽에는 후안 부장이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이라고 소개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그 옆으로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이라고 소개한 작품들이 이어져 있었다. 호아킨 소로야 등 스페인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소개됐다. 작품의 진위와 소장 내역을 현장에서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이 공간이 단순한 장식용 전시장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와인 시음을 하다가 갑자기 예술 작품들 앞에 서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관광객들로 붐비는 공개 전시장이 아니라, 문을 닫고 우리만 들어간 조용한 공간에서였다.

"와…"

우리에게서 나온 말은 그 정도였다. 작품 하나하나를 제대로 감상하기보다, 먼저 공간이 주는 압도감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때 후안 부장이 문득 말했다. 자신이 모센 와이너리에서 일하며 느끼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가 바로 이곳이라고 했다. 일이 끝난 뒤, 혹은 잠시 시간이 날 때 이 박물관에 혼자 들어와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이 그렇게 좋다고 했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이 미술관은 방문객을 놀라게 하기 위한 공간만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도 위로와 자부심이 되는 공간이었다. 와이너리 직원이 자신의 일터 안에 있는 미술관을 사랑하고, 그곳에서 혼자 작품을 보는 시간을 가장 큰 기쁨으로 말하는 장면. 그 순간 모센은 더 이상 와인을 만드는 회사로만 보이지 않았다. 예술이 일상 속에 들어와 있는 기업, 문화가 직원의 삶 속에서도 숨 쉬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외식업의 감각이 와이너리를 미술관으로 만들다

스페인 루에다(Rueda)의 보데가스 모센(Bodegas Mocen) 내부 미술관. 넓은 목조 바닥 위로 액자들이 낮게 비스듬히 세워져 있고, 벽면과 2층 난간 아래에는 크고 작은 그림들이 빈틈없이 걸려 있었다. 한쪽에는 조각 작품들이 붉은 받침대 위에 놓여 있고, 오래된 의자와 테이블, 난간과 조명이 어우러져 와이너리 안의 전시장이라기보다 사적인 컬렉션 룸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사진은 와인 시음 중 예기치 않게 미술관 한가운데로 들어선 여행자의 놀라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스페인 루에다(Rueda)의 보데가스 모센(Bodegas Mocen) 내부 미술관. 넓은 목조 바닥 위로 액자들이 낮게 비스듬히 세워져 있고, 벽면과 2층 난간 아래에는 크고 작은 그림들이 빈틈없이 걸려 있었다. 한쪽에는 조각 작품들이 붉은 받침대 위에 놓여 있고, 오래된 의자와 테이블, 난간과 조명이 어우러져 와이너리 안의 전시장이라기보다 사적인 컬렉션 룸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사진은 와인 시음 중 예기치 않게 미술관 한가운데로 들어선 여행자의 놀라움을 그대로 보여준다.이찬재

보데가스 모센을 이해하려면, 이 와이너리 뒤에 있는 한 사람을 먼저 보아야 한다. 현장에서 반복해서 들은 이름은 호세 루이스 루이스 소라구렌(José Luis Ruiz Solaguren)이었다. 그는 단순한 와인 생산자가 아니었다. 스페인 외식업계에서 성공한 기업가이자,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여러 레스토랑을 운영한 미식과 가스트로노미 분야의 인물로 소개됐다.

후안 아리아스 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호세 루이스 루이스 소라구렌은 1988년 루에다의 오래된 지하 동굴 와이너리였던 옛 보데가스 안타뇨(Bodegas Antaño)를 인수해 오늘의 보데가스 모센으로 키워냈다. 그의 조상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 리오하(Rioja)와도 연결돼 있었다고 한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그에게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식탁과 사람, 기억과 문화를 이어주는 매개였다.

외식업은 본래 맛만 파는 산업이 아니다. 공간, 서비스, 분위기, 대화, 환대, 기억을 함께 만드는 산업이다. 호세 루이스는 바로 그 외식업의 감각을 와이너리로 가져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모센은 와인을 만들고 시음하는 곳이자, 그림을 전시하는 곳이자, 책을 보관하는 곳이자, 사람을 초대하는 살롱이 되었다.

후안 아리아스 부장은 모센의 문화 후원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신진 작가들이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면, 모센은 종종 음식 케이터링을 무료로 지원한다고 했다. 단순히 와인을 팔기 위해 전시장에 병을 가져다 놓는 방식이 아니었다. 외식업에서 출발한 기업답게 음식과 와인으로 젊은 예술가들의 현장을 받쳐주고, 그 과정에서 마음에 닿는 작품을 컬렉팅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았다. 이곳의 미술관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장식이 아니었다. 전시를 후원하고, 음식을 내고, 예술가들과 관계를 맺고, 작품을 모으는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와인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문화를 후원하는 기업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았다.

스페인에는 와인과 예술을 결합한 와이너리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모센이 특별했던 것은 그것이 관광 상품처럼 꾸며진 전시가 아니라, 한 외식업가의 취향과 후원, 수집과 환대가 오래 쌓여 만들어진 사적인 문화의 방처럼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방은 외부 손님만을 위한 전시장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도 사랑받는 공간이었다. 후안 부장이 혼자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모센에서 일하는 큰 기쁨으로 말했을 때, 이곳의 문화는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화는 벽에 걸린 작품의 숫자로만 증명되지 않는다. 그 작품을 누군가가 사랑하고, 다시 찾아가고, 혼자 조용히 바라보는 시간이 있을 때 살아난다.

그곳에서 와인은 병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책과 그림, 기록과 공간 속에서 지역의 기억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도서관, 와인의 또 다른 숙성고

보데가스 모센(Bodegas Mocen)의 도서관. 1층과 2층을 감싸는 목조 서가에는 수많은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고, 오래된 타자기와 고풍스러운 조명이 공간의 분위기를 더했다. 진아에프앤씨 송연실 대표(사진 왼쪽)와 보데가스 모센 후안 아리아스 수출 담당 부장, 이찬재 실장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보데가스 모센(Bodegas Mocen)의 도서관. 1층과 2층을 감싸는 목조 서가에는 수많은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고, 오래된 타자기와 고풍스러운 조명이 공간의 분위기를 더했다. 진아에프앤씨 송연실 대표(사진 왼쪽)와 보데가스 모센 후안 아리아스 수출 담당 부장, 이찬재 실장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이찬재

미술관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웠다. 그런데 모센의 안쪽에는 또 다른 공간이 있었다. 도서관이었다.

문을 지나 들어가자 벽면 전체를 가득 채운 책장이 나타났다. 1층과 2층을 감싸는 목조 서가에는 수많은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긴 사다리와 난간, 고풍스러운 조명, 오래된 타자기, 펼쳐진 책, 붉은 천 위에 놓인 전시물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마치 유럽의 어느 오래된 사설 도서관에 들어온 듯했다.

이곳에서도 우리는 다시 말을 잃었다. 와이너리 안에 미술관이 있는 것도 놀라운데, 그 안쪽에 이런 규모의 도서관까지 있다니. 보데가스 모센은 와인을 만드는 곳이면서 동시에 그림을 모으고, 책을 보관하고, 사람을 초대하는 공간이었다.

와인 숙성고에서는 시간이 보이지 않는다. 배럴 속에서 와인은 천천히 변하지만, 그 변화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도서관에서는 시간이 눈앞에 보였다. 낡은 책의 색, 서가의 나무 결, 오래된 타자기의 묵직함, 책장을 따라 이어지는 조명, 펼쳐진 책 위에 내려앉은 공기까지. 그것은 또 다른 방식의 숙성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와인을 숙성시키는 곳이 배럴룸이라면,
문화를 숙성시키는 곳은 이런 도서관일지도 모른다.

책은 읽히기 위해 존재하지만, 동시에 기다리기 위해 존재한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만들어지자마자 소비되는 술이 있는가 하면, 시간을 기다려야 제 모습을 드러내는 술도 있다. 책과 와인은 모두 시간과 어울린다. 둘 다 사람을 멈춰 세우고, 천천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모센의 도서관은 와인 산업이 단순한 제조업을 넘어 지식과 기억의 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안타뇨, 루에다의 지하 미로

모센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지상의 미술관과 도서관만이 아니었다. 이곳에는 지하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었다. 안내를 맡은 후안 아리아스 부장은 모센의 모태가 된 옛 와이너리의 이름, '안타뇨(Antaño)'를 들려주었다. 스페인어로 '아주 먼 옛날' 혹은 '지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다. 이름처럼 안타뇨는 보데가스 모센이 품고 있는 오래된 뿌리이자, 루에다의 옛 지하 동굴 와이너리의 기억을 가리키고 있었다.

후안 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 지하 세계 아래에는 약 4킬로미터에 이르는 터널이 이어져 있다고 했다. 오래전 루에다 사람들은 와인을 안정적으로 보관하기 위해 땅속으로 들어갔다. 지상은 계절에 따라 덥고 춥지만, 지하의 온도와 습도는 비교적 일정했다. 냉장 설비가 없던 시절, 땅속은 와인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기술이었다.

호세 루이스 루이스 소라구렌은 이 오래된 지하 동굴 와이너리를 인수한 뒤 복원과 재구성에 나섰다고 한다. 무너지고 잊혀가던 지하 터널과 붉은 벽돌의 아치, 오래된 저장 공간은 다시 와이너리의 중심이 되었다. 그는 과거의 동굴을 단순히 보존한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미술관과 도서관, 식탁과 테이스팅 공간을 얹어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바꾸었다.

그 지하 터널은 단순한 저장고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루에다의 미로'라고 불렀다. 서로 이어지고, 갈라지고, 다시 만나는 지하의 길들은 와인을 보관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루에다 사람들의 생존 방식이었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산소와 습도, 어둠과 시간의 조건을 다스리기 위해 사람들은 땅 아래에 또 하나의 도시를 만들었다.

이 장면은 앞서 보았던 데 알베르토의 지하 동굴을 떠올리게 했다. 루에다의 와인은 지상에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포도밭은 태양 아래 있었지만, 와인의 시간은 오랫동안 땅속에서 흘렀다. 안타뇨라는 이름은 그 기억을 붙잡고 있었다. 오래된 와인의 이름이자, 사라지지 않은 지하의 시간이었다.

아래에는 터널과 오래된 저장의 기억이 있고, 위에는 미술관과 도서관이 있다. 땅속에서는 와인이 숙성되고, 지상에서는 예술과 지식, 그리고 경험이 숙성된다. 그 둘이 한 와이너리 안에서 겹쳐 있었다.

팔라시오 데 보르노스, 손님이 통역해준 와이너리

스페인 루에다의 팔라시오 데 보르노스(Palacio de Bornos) 시음 공간. 와인병과 잔, 테이블이 자연스럽게 놓인 이곳은 딱딱한 테이스팅룸이라기보다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들르는 작은 와인바처럼 느껴졌다. 영어 소통이 어려워지자 그 자리에 있던 손님이 기꺼이 통역을 도와주었고, 직원과 손님은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와인은 이곳에서 술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환대의 언어가 되고 있었다.
스페인 루에다의 팔라시오 데 보르노스(Palacio de Bornos) 시음 공간. 와인병과 잔, 테이블이 자연스럽게 놓인 이곳은 딱딱한 테이스팅룸이라기보다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들르는 작은 와인바처럼 느껴졌다. 영어 소통이 어려워지자 그 자리에 있던 손님이 기꺼이 통역을 도와주었고, 직원과 손님은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와인은 이곳에서 술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환대의 언어가 되고 있었다.이찬재

모센이 와이너리의 문화적 깊이를 보여주었다면, 팔라시오 데 보르노스(Palacio de Bornos)는 와이너리가 지역 주민과 여행자를 어떻게 맞이하는지 보여주었다.

팔라시오 데 보르노스는 처음부터 조금 달랐다. 딱딱한 테이스팅룸이라기보다,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와인 공간처럼 꾸며져 있었다. 벽에는 'PALACIO DE BORNOS'라는 이름이 또렷했고, 내부에는 와인병과 잔, 판매대와 테이블이 자연스럽게 놓여 있었다. 한쪽에는 오래된 와인 압착기처럼 보이는 큰 목재 구조물이 공간을 가로질렀고, 아래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마치 와이너리 안에 작은 레스토랑이나 와인바를 들여놓은 듯했다. 주민과 관광객이 큰 부담 없이 들어와 잔을 들고, 병을 고르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였다. 와인은 높은 유리벽 안에 갇힌 특별한 물건이 아니라, 생활 가까이에 놓인 술처럼 보였다.

그곳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영어로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자, 와이너리 직원은 그 자리에 손님으로 와 있던 젊은 여성에게 양해를 구하고 통역을 부탁했다. 그는 기꺼이 잔을 내려놓고 우리를 도와주었다. 와이너리 직원과 그 손님은 스페인식 뺨 인사인 '도스 베소스(Dos besos)'를 자연스럽게 나눴고, 공간에는 이내 흐뭇한 온기가 감돌았다.

그 장면이 오래 남았다. 보통의 상업 공간이라면 직원과 손님, 판매자와 방문객의 경계가 분명하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그 경계가 잠시 사라졌다. 와인을 마시던 손님이 자연스럽게 통역자가 되었고, 와이너리는 처음 만난 사람들이 서로를 도와주는 마을의 거실처럼 변했다.

그 순간 와이너리는 술을 파는 매장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환대의 공간이었다. 팔라시오 데 보르노스는 화려한 박물관이나 거대한 컬렉션으로 우리를 압도하지 않았다. 대신 와인이 지역 생활 속으로 어떻게 들어가는지 보여주었다. 주민이 들르고, 여행자가 앉고, 누군가가 통역을 도와주고, 직원과 손님이 함께 이야기를 이어가는 공간. 그것도 와인이 문화가 되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바야돌리드, 시간과 서사가 머무는 도시

스페인 바야돌리드(Valladolid)의 라 파리야 데 산 로렌소(La Parrilla de San Lorenzo) 입구 앞에서 진아에프앤씨 송연실 대표와 이찬재 실장이 마리아노 데 후안(Mariano De Juan) 부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낮 동안 와이너리에서 발효와 숙성의 기술을 설명해주던 마리아노 부장은 이날 저녁, 루에다 와인이 실제 식탁 위에서 어떻게 음식과 어울리는지 보여주기 위해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했다.
스페인 바야돌리드(Valladolid)의 라 파리야 데 산 로렌소(La Parrilla de San Lorenzo) 입구 앞에서 진아에프앤씨 송연실 대표와 이찬재 실장이 마리아노 데 후안(Mariano De Juan) 부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낮 동안 와이너리에서 발효와 숙성의 기술을 설명해주던 마리아노 부장은 이날 저녁, 루에다 와인이 실제 식탁 위에서 어떻게 음식과 어울리는지 보여주기 위해 우리를 이곳으로 안내했다.이찬재재

우리는 루에다 와인을 조금 더 깊이 알고 싶었다. 낮 동안 와이너리에서 들은 설명만으로는 부족했다. 지하 동굴과 스테인리스, 오크 배럴과 다마후아나, 콘크리트와 티나하의 이야기가 실제 식탁 위에서는 어떻게 살아나는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보데가 데 알베르토(Bodega De Alberto)의 수출 책임을 맡고 있는 마리아노 데 후안(Mariano De Juan) 부부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식당 예약은 현지 사정에 밝은 마리아노 부장에게 부탁했다. "루에다 식문화의 정수를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면 좋겠다"고 했다. 약속 시간이 되자 마리아노는 러시아 시베리아 출신의 아내와 함께 바야돌리드(Valladolid)의 한 식당에 도착했다.

첫인사부터 놀라웠다. 그의 아내는 영어가 무척 유창했다. 러시아 출신이라는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미국 뉴욕이나 다른 영어권 도시에서 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함께 마주 앉은 저녁 식탁의 공기는 낮의 와이너리 투어와 전혀 달랐다. 낮에는 발효와 숙성의 기술을 들었다면, 밤에는 그 와인이 사람의 삶 속에서 어떻게 놓이는지를 볼 수 있었다.

바야돌리드는 카스티야 이 레온(Castilla y León)의 중심 도시다. 17세기 초에는 잠시 스페인 왕실의 수도이기도 했다. 『돈키호테』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는 1605년 『돈키호테』 1부가 세상에 나올 무렵 이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지금도 시내에는 그가 머물던 집을 보존한 카사 데 세르반테스(Casa de Cervantes)가 남아 있다.

바야돌리드는 또 다른 거대한 운명의 마지막 장면도 품고 있다. 신대륙 항해로 세계의 지도를 바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는 1506년 이 도시에서 생을 마쳤다. 바야돌리드에는 문학과 항해, 이상과 실패, 출발과 귀환의 이야기가 겹쳐 있었다.

그런 도시에서 마리아노 부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 끼를 먹는 일이 아니었다. 루에다의 와인이 포도밭과 지하 저장고를 떠나 사람들의 식탁 위로 내려오는 순간을 경험하는 일이었다. 세르반테스가 책이라는 그릇에 인간의 꿈과 광기를 담아냈다면, 루에다의 양조가들은 스테인리스와 오크, 유리와 흙이라는 그릇에 땅과 태양의 시간을 담고 있었다.

수도원의 지하가 식탁이 되다 — 라 파리야 데 산 로렌소

스페인 바야돌리드(Valladolid)의 라 파리야 데 산 로렌소(La Parrilla de San Lorenzo)에서 마리아노 데 후안(Mariano De Juan) 부부와 함께한 저녁 식사. 흰 식탁보 위에는 루에다 화이트 와인잔들이 놓였고, 가운데에는 카스티야 지역의 대표 음식인 어린양 구이, 레차소 아사도(Lechazo asado)가 커다란 질그릇 접시에 담겨 나왔다. 노릇하게 구워진 고기와 맑은 화이트 와인, 오래된 석조 벽과 붉은 장식의 접시가 한 장면 안에 어우러졌다.
스페인 바야돌리드(Valladolid)의 라 파리야 데 산 로렌소(La Parrilla de San Lorenzo)에서 마리아노 데 후안(Mariano De Juan) 부부와 함께한 저녁 식사. 흰 식탁보 위에는 루에다 화이트 와인잔들이 놓였고, 가운데에는 카스티야 지역의 대표 음식인 어린양 구이, 레차소 아사도(Lechazo asado)가 커다란 질그릇 접시에 담겨 나왔다. 노릇하게 구워진 고기와 맑은 화이트 와인, 오래된 석조 벽과 붉은 장식의 접시가 한 장면 안에 어우러졌다.이찬재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바야돌리드의 라 파리야 데 산 로렌소(La Parrilla de San Lorenzo)였다. 낮은 입구 위로 식당 이름이 걸려 있었고, 그 옆에는 'Restaurante'와 'Bar'라는 글자가 보였다. 문 아래로는 이미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밖에서 보면 오래된 건물의 지하로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식당이라기보다 오래된 수도원이나 성당의 한쪽 문을 여는 기분이었다.

마리아노 데 후안 부장은 이곳이 단순히 고풍스럽게 꾸민 식당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레스토랑은 바야돌리드의 유서 깊은 산 호아킨과 산타 아나 왕립 수도원(Real Monasterio de San Joaquín y Santa Ana)의 지하 하부 구조를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공간이었다. 오래된 석조 저장고와 벽돌 아치, 지하 공간의 묵직한 구조를 살려 그 안에 식탁을 들여놓은 곳이라는 설명이었다.

그 말을 듣고 공간을 다시 바라보니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낮고 두꺼운 석재 벽, 붉은 커튼, 금빛 장식, 샹들리에와 종교화들이 조화롭게 놓여 있었다. 아치형 천장 아래로 흰 식탁보가 깔린 테이블들이 이어졌고, 고풍스러운 접시와 장식장은 공간의 무게를 더했다. 마치 오래된 수도원의 지하 저장고나 작은 미술관 안에 식탁을 차려놓은 듯했다.

산 호아킨과 산타 아나 왕립 수도원은 1596년에 기원을 둔 유서 깊은 종교 건축이다. 18세기 후반에는 국왕 카를로스 3세의 후원 아래 궁정 건축가 프란시스코 사바티니(Francisco Sabatini)의 설계로 재건됐고, 1956년에는 스페인 국가 역사예술기념물로 지정됐다. 수도원 박물관에는 고야의 초기 회화가 소장돼 있을 만큼 예술적 가치도 높은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라 파리야 데 산 로렌소는 그런 수도원과 도시의 역사적 분위기를 식탁 위로 끌어온 식당처럼 느껴졌다. 한쪽에는 와인병이 빼곡히 들어찬 작은 저장 공간도 있었다. 장식장 안에는 와인병들이 가득했고, 오래된 나무 상자와 병들이 공간의 분위기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그 앞에 서니 식당과 와이너리, 그리고 수도원의 경계가 흐려졌다. 이곳에서는 음식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와인의 시간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스페인 바야돌리드(Valladolid)의 라 파리야 데 산 로렌소(La Parrilla de San Lorenzo) 내부. 한쪽에는 와인병이 빼곡히 들어찬 저장 공간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검게 그을린 전통 화덕과 질그릇 접시들이 놓여 있었다. 식당 이름에 들어간 ‘파리야(Parrilla)’는 스페인어로 석쇠, 그릴을 뜻한다. 이곳에서 와인은 단순히 잔에 담긴 술이 아니라, 불과 고기, 오래된 공간과 함께 식탁의 문화를 완성하는 일부가 되고 있었다. 루에다 와인의 시간은 와이너리의 저장고를 지나, 이런 식당의 화덕과 식탁 위에서 다시 한 번 깊어졌다.
스페인 바야돌리드(Valladolid)의 라 파리야 데 산 로렌소(La Parrilla de San Lorenzo) 내부. 한쪽에는 와인병이 빼곡히 들어찬 저장 공간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검게 그을린 전통 화덕과 질그릇 접시들이 놓여 있었다. 식당 이름에 들어간 ‘파리야(Parrilla)’는 스페인어로 석쇠, 그릴을 뜻한다. 이곳에서 와인은 단순히 잔에 담긴 술이 아니라, 불과 고기, 오래된 공간과 함께 식탁의 문화를 완성하는 일부가 되고 있었다. 루에다 와인의 시간은 와이너리의 저장고를 지나, 이런 식당의 화덕과 식탁 위에서 다시 한 번 깊어졌다.이찬재

더 안쪽에는 오래된 화덕과 토기 그릇들이 보였다. 이 식당의 이름에 들어간 '파리야(Parrilla)'는 스페인어로 석쇠, 그릴을 뜻한다. 동시에 성 로렌조(San Lorenzo)의 순교 전승도 떠올리게 한다. 성 로렌조는 로마 시대 박해 속에서 석쇠 위에서 순교한 성인으로 전해지며, 이 때문에 불과 석쇠, 요리사의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라 파리야 데 산 로렌소라는 이름은 카스티야의 불의 요리, 특히 화덕에서 구워내는 어린양 구이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다.

스페인에서 수도원은 단순한 종교 공간만이 아니었다. 침묵과 절제, 노동과 저장, 농업과 음식이 함께 있던 장소였다. 포도와 밀, 올리브와 양, 치즈와 와인, 빵과 기도는 오랫동안 같은 풍경 안에 있었다. 그러니 수도원의 지하 하부 구조를 개조한 공간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낯설면서도 자연스러웠다. 오래된 건축의 기억이 현대의 식탁을 감싸는 큰 그릇이 된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마리아노 데 후안 부부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공식적인 와이너리 투어와 테이스팅은 이미 끝났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 식탁에서 시작됐다. 와인잔이 놓이고, 접시가 차려지고,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며 계속 감탄했다. 식당이라기보다 박물관 같았고, 박물관이라기보다 오랜 시간이 식탁이 된 장소 같았다.

자리에 앉아 잔을 채우던 중, 마리아노 부장이 웃으며 재미있는 말을 했다.

"이곳에서 와인의 적정량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 수에서 1을 뺀 병 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네 사람이 앉으면 세 병, 다섯 사람이 앉으면 네 병이라는 뜻이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들렸지만, 곧 그 말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그것은 많이 마신다는 자랑이 아니었다. 와인이 이곳 사람들의 일상적인 식탁과 대화 속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말이었다. 와인은 혼자 급히 마시는 술이 아니라, 음식을 나누고 말을 이어가고 시간을 길게 만드는 매개였다.

마리아노 부장의 말처럼, 그날의 와인은 잔 안에서만 움직이지 않았다. 접시가 오가고, 질문이 오가고, 서로 다른 언어가 천천히 섞이는 동안 와인은 대화의 속도를 맞추고 있었다. 한 병이 비워지면 이야기는 조금 더 깊어졌고, 잔이 다시 채워지면 낯선 사람 사이의 거리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날 바야돌리드의 식탁은 루에다 와인 여행의 마지막 설명처럼 느껴졌다. 발효는 병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래된 수도원 지하의 벽과 아치, 불과 접시, 그리고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다시 한 번 숙성되고 있었다.

어린양 구이와 루에다 와인, 식탁 위에서 완성된 발효

그날 식탁에서 가장 강하게 남은 것은 어린양 구이였다. 스페인 카스티야 지역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레차소 아사도(Lechazo asado), 곧 어린양 구이는 단순한 고기 요리가 아니었다. 고원의 바람과 목축의 시간, 오래된 화덕과 불의 기억이 함께 담긴 음식이었다.

처음에는 얇게 썬 붉은 고기와 흰 생선이 한 접시에 올라왔다. 붉은 고기의 선명한 색과 가운데 놓인 흰 생선살, 그 위의 초록색 허브가 눈에 들어왔다. 접시는 하나의 그림처럼 보였다. 고기와 생선, 올리브오일의 윤기, 와인잔의 빛이 조명 아래에서 조용히 어울렸다.

곧이어 어린양이 나왔다. 커다란 질그릇 접시 위에 노릇하게 구워진 고기가 놓였다. 길게 휘어진 뼈와 노릇하게 익은 고기, 가장자리에 맺힌 기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겉은 살짝 그을렸고, 속살은 부드럽게 풀어졌다. 입안에서는 양고기 특유의 향과 기름의 단맛이 천천히 번졌다.

그 곁에 와인이 놓였다. 낮 동안 와이너리에서 보았던 루에다의 와인들이 이제는 설명이 아니라 식탁 위의 술이 되어 있었다. 루에다 화이트 와인의 산미는 고기의 기름을 정리했고, 입안을 다시 깨웠다. 잔 안의 와인과 접시 위의 어린양이 서로를 밀어 올렸다. 와인은 말이 아니라, 음식과 만날 때 비로소 그 설명이 완성되었다.

문득 세르반테스의 문장이 떠올랐다.

"세상에 배고픔만 한 소스는 없다."

여행자의 허기 때문이었을까. 그날의 어린양과 와인은 유난히 깊게 다가왔다. 루에다의 와인은 잔 안에만 있지 않았다. 오래된 식당의 벽, 화덕의 기억, 어린양의 기름, 여행자의 허기와 함께 식탁 위에서 완성되고 있었다.

와인은 병 속에서 만들어지지만, 기억은 이런 식탁에서 태어난다. 누가 함께 있었는지, 어떤 공간이었는지, 어떤 냄새가 났는지, 어떤 말이 오갔는지가 맛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와인 문화는 결국 식문화와 떨어질 수 없다.

와이너리는 왜 레스토랑과 함께 기억되는가

루에다에서 만난 와이너리들은 서로 달랐다. 어떤 곳은 지하 동굴이 강했고, 어떤 곳은 용기의 다양성이 돋보였고, 어떤 곳은 미술관과 도서관을 품고 있었고, 어떤 곳은 주민들이 편하게 드나드는 시음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와인을 병 안에만 가두지 않았다.

전통은 혼자 살아남지 않는다. 누군가 그것을 설명하고, 후원하고, 들려주고, 식탁 위에서 다시 경험하게 할 때 살아 있는 문화가 된다.

맛은 병 안에서 태어나지만, 문화는 식탁 위에서 설득된다.

이 말은 한국 발효식품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액젓과 간장, 된장도 병과 항아리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이 어떤 밥상에서 쓰이는지, 어떤 음식의 깊이를 만드는지, 어떤 지역의 바다와 소금과 손맛에서 왔는지 함께 설명되어야 한다. 제품만으로는 세계화되기 어렵다. 조리법과 식탁, 공간과 환대가 함께할 때 비로소 문화가 된다.

한국 장독대의 미래, 생산시설을 넘어 문화 플랫폼으로

스페인 루에다(Rueda)의 보데가 데 알베르토(Bodega De Alberto)에서 마리아노 데 후안(Mariano De Juan) 부장이 와이너리 건축과 공간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진열장 위에는 옛 수도원 건물과 와이너리 구조를 보여주는 모형이 놓여 있었고, 일행은 그 앞에서 지하 동굴과 지상 건물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설명을 들었다. 이곳에서 와인은 포도와 발효 기술만이 아니라, 건축과 시간, 공간의 기억 속에서 천천히 익어가고 있었다.
스페인 루에다(Rueda)의 보데가 데 알베르토(Bodega De Alberto)에서 마리아노 데 후안(Mariano De Juan) 부장이 와이너리 건축과 공간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진열장 위에는 옛 수도원 건물과 와이너리 구조를 보여주는 모형이 놓여 있었고, 일행은 그 앞에서 지하 동굴과 지상 건물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설명을 들었다. 이곳에서 와인은 포도와 발효 기술만이 아니라, 건축과 시간, 공간의 기억 속에서 천천히 익어가고 있었다.이찬재

루에다에서 본 와이너리의 장면들은 하나로 이어졌다. 지하 동굴은 시간의 저장고였고, 스테인리스는 신선함을 지키는 기술이었다. 오크 배럴은 향의 주인공이 아니라 산소와 질감을 조절하는 숙성의 도구였다. 콘크리트 에그와 티나하는 오래된 미래였고, 모센의 미술관과 도서관은 기록의 공간이었다.

후안 아리아스의 세계적 언어는 루에다 와인이 이미 바깥 세계와 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모센의 예술 후원과 컬렉션은 와이너리가 문화를 키우는 방식도 보여주었다. 마리아노 데 후안 부부와의 저녁 식사와 라 파리야 데 산 로렌소의 식탁은 와인이 사람 사이에서 완성되는 순간을 보여주었다.

그 장면들을 지나며 자꾸 경주의 장독대가 떠올랐다. 왕신의 장독대에도 시간이 있다. 남해 멸치와 신안 소금, 경주의 바람과 햇볕, 장독의 숨과 사람의 손이 있다. 멸치와 소금은 장독 안에서 2년 이상 익어가고, 콩과 소금물은 간장과 된장으로 변한다. 여름이면 사람이 손으로 저어주고, 계절은 맛을 바꾼다.

그러나 장독대는 아직 대개 생산시설로만 이해된다. 장을 담그는 곳, 액젓을 숙성시키는 곳, 항아리가 줄지어 놓인 풍경으로 소비된다. 물론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하지만 루에다의 와이너리를 보고 나니, 장독대 역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독대는 한국 발효의 박물관이 될 수 있다.
장독대는 미생물과 시간의 교실이 될 수 있다.
장독대는 바다와 소금, 콩과 햇볕, 사람의 손을 설명하는 기록관이 될 수 있다.
장독대는 세계인들이 한국 식문화와 역사, 감정을 체험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장독을 예쁘게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 일이다. 왜 장독이어야 하는지, 장독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 변화가 한국 음식의 감칠맛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세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장독은 단순한 옛 물건이 아니다. 흙과 불, 공기와 미생물, 온도와 시간이 만나는 오래된 발효 장치다.

장독을 박물관 유물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발효 문화의 무대로 다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신 장독대의 미래도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남해 멸치가 어디에서 왔는지, 신안 소금이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경주의 바람이 장을 어떻게 숙성시키는지, 손으로 저어주는 노동이 발효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기다림이 어떻게 감칠맛이 되는지를 세계인에게 설명하는 장소. 그런 공간이 된다면 장독대는 더 이상 생산시설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 발효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플랫폼이 된다.

발효는 결국 문화를 남긴다

루에다의 여정에서 포도밭과 지하 동굴, 와이너리와 식탁을 지나며 우리는 발효가 단순히 술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자연의 시간을 빌려 기억과 문화를 남기는 일임을 다시 배웠다. 이 풍경 앞에서 경주의 왕신장독대도 언젠가 한국 발효의 시간과 철학을 세계인에게 보여주는 문화의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스페인 루에다(Rueda)의 베르데호(Verdejo) 포도밭에서 진아에프앤씨 송연실 대표와 이찬재 실장이 포도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루에다의 여정에서 포도밭과 지하 동굴, 와이너리와 식탁을 지나며 우리는 발효가 단순히 술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자연의 시간을 빌려 기억과 문화를 남기는 일임을 다시 배웠다. 이 풍경 앞에서 경주의 왕신장독대도 언젠가 한국 발효의 시간과 철학을 세계인에게 보여주는 문화의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스페인 루에다(Rueda)의 베르데호(Verdejo) 포도밭에서 진아에프앤씨 송연실 대표와 이찬재 실장이 포도나무를 살펴보고 있다.이찬재

루에다를 떠나며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와인의 맛만이 아니었다. 지하 동굴의 서늘함, 목재 전시장의 침묵, 도서관의 책 냄새, 팔라시오 데 보르노스에서 통역을 도와주던 손님의 웃음, 후안 아리아스의 유창한 설명, 신진 작가들을 후원하고 작품을 모아온 모센의 문화적 태도, 후안 부장이 혼자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사랑한다고 말하던 순간, 마리아노 데 후안 부부와의 저녁 식사, 그리고 식탁에서 이어지던 긴 대화가 함께 남았다.

와인은 병 안에 있었지만, 기억은 병 밖에서 완성되었다.

루에다에서 우리는 발효가 단순히 술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배웠다. 발효는 자연의 시간을 빌리는 일이고, 그 시간을 견디는 그릇을 만드는 일이며, 마침내 그 맛을 사람의 식탁과 기억 속으로 옮겨놓는 일이다. 스테인리스와 오크 배럴, 콘크리트 에그와 티나하, 다마후아나와 지하 동굴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문화가 되는 순간은 결국 사람이 그 앞에 서고, 이야기를 듣고, 잔을 들고, 음식을 나누는 자리에서 찾아왔다.

좋은 발효는 제품을 남긴다.
더 좋은 발효는 기억을 남긴다.
그리고 오래 살아남는 발효는 결국 문화를 남긴다.

루에다의 와이너리들은 그 사실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술을 만드는 공장이 미술관이 되고, 저장고가 이야기의 공간이 되며, 한 병의 와인이 지역 음식과 예술, 사람들의 저녁을 만나는 곳. 그곳에서 발효 산업은 제조업을 넘어 문화 산업이 되고, 관광이 되고, 교육이 되고, 지역의 자부심이 된다.

그 장면들 앞에서 우리는 자꾸 경주의 장독대를 생각했다. 남해 멸치와 신안 소금, 콩과 장독, 경주의 햇볕과 바람도 우리만의 시간을 품고 있다. 장독 안에서도 자연은 천천히 움직이고, 미생물은 보이지 않는 노동을 계속하며, 사람의 손은 그 시간을 지키고 기다린다. 다만 아직 우리는 그 시간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을 뿐이다.

루에다의 와이너리가 내게 던진 마지막 질문은 그래서 하나였다.

한국의 장독대도 언젠가 이런 문화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장을 담그는 생산시설을 넘어, 한국 발효의 시간과 철학을 세계인에게 보여주는 장소가 될 수 있을까.
바다와 소금, 콩과 항아리, 햇볕과 바람, 기다림과 감칠맛의 이야기를 사람들의 식탁 위에서 다시 완성할 수 있을까.

루에다는 조용히 대답하고 있었다.

가능하다고.
발효는 어디서나 그렇게 시작됐다고.
자연의 시간을 빌려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나누며 기억을 만들고, 그 기억이 쌓여 마침내 문화가 되는 것이라고.

루에다의 포도밭과 지하 동굴, 와이너리와 식탁을 찾은 여정은 여기서 끝난다. 그러나 발효를 찾아가는 길은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그릇을 통해 자연의 시간을 음식으로 바꾸어왔고, 그 오래된 일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제 길은 다시 남쪽을 향한다. 이베리아반도를 지나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물길을 건너면, 북아프리카 모로코가 기다리고 있다. 대륙을 넘어, 또 다른 발효의 시간 속으로 들어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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