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야돌리드(Valladolid)의 라 파리야 데 산 로렌소(La Parrilla de San Lorenzo) 내부. 한쪽에는 와인병이 빼곡히 들어찬 저장 공간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검게 그을린 전통 화덕과 질그릇 접시들이 놓여 있었다. 식당 이름에 들어간 ‘파리야(Parrilla)’는 스페인어로 석쇠, 그릴을 뜻한다. 이곳에서 와인은 단순히 잔에 담긴 술이 아니라, 불과 고기, 오래된 공간과 함께 식탁의 문화를 완성하는 일부가 되고 있었다. 루에다 와인의 시간은 와이너리의 저장고를 지나, 이런 식당의 화덕과 식탁 위에서 다시 한 번 깊어졌다.
이찬재
더 안쪽에는 오래된 화덕과 토기 그릇들이 보였다. 이 식당의 이름에 들어간 '파리야(Parrilla)'는 스페인어로 석쇠, 그릴을 뜻한다. 동시에 성 로렌조(San Lorenzo)의 순교 전승도 떠올리게 한다. 성 로렌조는 로마 시대 박해 속에서 석쇠 위에서 순교한 성인으로 전해지며, 이 때문에 불과 석쇠, 요리사의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라 파리야 데 산 로렌소라는 이름은 카스티야의 불의 요리, 특히 화덕에서 구워내는 어린양 구이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다.
스페인에서 수도원은 단순한 종교 공간만이 아니었다. 침묵과 절제, 노동과 저장, 농업과 음식이 함께 있던 장소였다. 포도와 밀, 올리브와 양, 치즈와 와인, 빵과 기도는 오랫동안 같은 풍경 안에 있었다. 그러니 수도원의 지하 하부 구조를 개조한 공간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낯설면서도 자연스러웠다. 오래된 건축의 기억이 현대의 식탁을 감싸는 큰 그릇이 된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마리아노 데 후안 부부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공식적인 와이너리 투어와 테이스팅은 이미 끝났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 식탁에서 시작됐다. 와인잔이 놓이고, 접시가 차려지고,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며 계속 감탄했다. 식당이라기보다 박물관 같았고, 박물관이라기보다 오랜 시간이 식탁이 된 장소 같았다.
자리에 앉아 잔을 채우던 중, 마리아노 부장이 웃으며 재미있는 말을 했다.
"이곳에서 와인의 적정량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 수에서 1을 뺀 병 수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네 사람이 앉으면 세 병, 다섯 사람이 앉으면 네 병이라는 뜻이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들렸지만, 곧 그 말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그것은 많이 마신다는 자랑이 아니었다. 와인이 이곳 사람들의 일상적인 식탁과 대화 속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는지를 보여주는 말이었다. 와인은 혼자 급히 마시는 술이 아니라, 음식을 나누고 말을 이어가고 시간을 길게 만드는 매개였다.
마리아노 부장의 말처럼, 그날의 와인은 잔 안에서만 움직이지 않았다. 접시가 오가고, 질문이 오가고, 서로 다른 언어가 천천히 섞이는 동안 와인은 대화의 속도를 맞추고 있었다. 한 병이 비워지면 이야기는 조금 더 깊어졌고, 잔이 다시 채워지면 낯선 사람 사이의 거리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날 바야돌리드의 식탁은 루에다 와인 여행의 마지막 설명처럼 느껴졌다. 발효는 병 안에서 끝나지 않았다. 오래된 수도원 지하의 벽과 아치, 불과 접시, 그리고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다시 한 번 숙성되고 있었다.
어린양 구이와 루에다 와인, 식탁 위에서 완성된 발효
그날 식탁에서 가장 강하게 남은 것은 어린양 구이였다. 스페인 카스티야 지역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레차소 아사도(Lechazo asado), 곧 어린양 구이는 단순한 고기 요리가 아니었다. 고원의 바람과 목축의 시간, 오래된 화덕과 불의 기억이 함께 담긴 음식이었다.
처음에는 얇게 썬 붉은 고기와 흰 생선이 한 접시에 올라왔다. 붉은 고기의 선명한 색과 가운데 놓인 흰 생선살, 그 위의 초록색 허브가 눈에 들어왔다. 접시는 하나의 그림처럼 보였다. 고기와 생선, 올리브오일의 윤기, 와인잔의 빛이 조명 아래에서 조용히 어울렸다.
곧이어 어린양이 나왔다. 커다란 질그릇 접시 위에 노릇하게 구워진 고기가 놓였다. 길게 휘어진 뼈와 노릇하게 익은 고기, 가장자리에 맺힌 기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겉은 살짝 그을렸고, 속살은 부드럽게 풀어졌다. 입안에서는 양고기 특유의 향과 기름의 단맛이 천천히 번졌다.
그 곁에 와인이 놓였다. 낮 동안 와이너리에서 보았던 루에다의 와인들이 이제는 설명이 아니라 식탁 위의 술이 되어 있었다. 루에다 화이트 와인의 산미는 고기의 기름을 정리했고, 입안을 다시 깨웠다. 잔 안의 와인과 접시 위의 어린양이 서로를 밀어 올렸다. 와인은 말이 아니라, 음식과 만날 때 비로소 그 설명이 완성되었다.
문득 세르반테스의 문장이 떠올랐다.
"세상에 배고픔만 한 소스는 없다."
여행자의 허기 때문이었을까. 그날의 어린양과 와인은 유난히 깊게 다가왔다. 루에다의 와인은 잔 안에만 있지 않았다. 오래된 식당의 벽, 화덕의 기억, 어린양의 기름, 여행자의 허기와 함께 식탁 위에서 완성되고 있었다.
와인은 병 속에서 만들어지지만, 기억은 이런 식탁에서 태어난다. 누가 함께 있었는지, 어떤 공간이었는지, 어떤 냄새가 났는지, 어떤 말이 오갔는지가 맛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와인 문화는 결국 식문화와 떨어질 수 없다.
와이너리는 왜 레스토랑과 함께 기억되는가
루에다에서 만난 와이너리들은 서로 달랐다. 어떤 곳은 지하 동굴이 강했고, 어떤 곳은 용기의 다양성이 돋보였고, 어떤 곳은 미술관과 도서관을 품고 있었고, 어떤 곳은 주민들이 편하게 드나드는 시음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와인을 병 안에만 가두지 않았다.
전통은 혼자 살아남지 않는다. 누군가 그것을 설명하고, 후원하고, 들려주고, 식탁 위에서 다시 경험하게 할 때 살아 있는 문화가 된다.
맛은 병 안에서 태어나지만, 문화는 식탁 위에서 설득된다.
이 말은 한국 발효식품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액젓과 간장, 된장도 병과 항아리 안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이 어떤 밥상에서 쓰이는지, 어떤 음식의 깊이를 만드는지, 어떤 지역의 바다와 소금과 손맛에서 왔는지 함께 설명되어야 한다. 제품만으로는 세계화되기 어렵다. 조리법과 식탁, 공간과 환대가 함께할 때 비로소 문화가 된다.
한국 장독대의 미래, 생산시설을 넘어 문화 플랫폼으로

▲스페인 루에다(Rueda)의 보데가 데 알베르토(Bodega De Alberto)에서 마리아노 데 후안(Mariano De Juan) 부장이 와이너리 건축과 공간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진열장 위에는 옛 수도원 건물과 와이너리 구조를 보여주는 모형이 놓여 있었고, 일행은 그 앞에서 지하 동굴과 지상 건물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설명을 들었다. 이곳에서 와인은 포도와 발효 기술만이 아니라, 건축과 시간, 공간의 기억 속에서 천천히 익어가고 있었다.
이찬재
루에다에서 본 와이너리의 장면들은 하나로 이어졌다. 지하 동굴은 시간의 저장고였고, 스테인리스는 신선함을 지키는 기술이었다. 오크 배럴은 향의 주인공이 아니라 산소와 질감을 조절하는 숙성의 도구였다. 콘크리트 에그와 티나하는 오래된 미래였고, 모센의 미술관과 도서관은 기록의 공간이었다.
후안 아리아스의 세계적 언어는 루에다 와인이 이미 바깥 세계와 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모센의 예술 후원과 컬렉션은 와이너리가 문화를 키우는 방식도 보여주었다. 마리아노 데 후안 부부와의 저녁 식사와 라 파리야 데 산 로렌소의 식탁은 와인이 사람 사이에서 완성되는 순간을 보여주었다.
그 장면들을 지나며 자꾸 경주의 장독대가 떠올랐다. 왕신의 장독대에도 시간이 있다. 남해 멸치와 신안 소금, 경주의 바람과 햇볕, 장독의 숨과 사람의 손이 있다. 멸치와 소금은 장독 안에서 2년 이상 익어가고, 콩과 소금물은 간장과 된장으로 변한다. 여름이면 사람이 손으로 저어주고, 계절은 맛을 바꾼다.
그러나 장독대는 아직 대개 생산시설로만 이해된다. 장을 담그는 곳, 액젓을 숙성시키는 곳, 항아리가 줄지어 놓인 풍경으로 소비된다. 물론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하지만 루에다의 와이너리를 보고 나니, 장독대 역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독대는 한국 발효의 박물관이 될 수 있다.
장독대는 미생물과 시간의 교실이 될 수 있다.
장독대는 바다와 소금, 콩과 햇볕, 사람의 손을 설명하는 기록관이 될 수 있다.
장독대는 세계인들이 한국 식문화와 역사, 감정을 체험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장독을 예쁘게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 일이다. 왜 장독이어야 하는지, 장독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 변화가 한국 음식의 감칠맛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세계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장독은 단순한 옛 물건이 아니다. 흙과 불, 공기와 미생물, 온도와 시간이 만나는 오래된 발효 장치다.
장독을 박물관 유물로 남겨둘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발효 문화의 무대로 다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신 장독대의 미래도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남해 멸치가 어디에서 왔는지, 신안 소금이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경주의 바람이 장을 어떻게 숙성시키는지, 손으로 저어주는 노동이 발효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기다림이 어떻게 감칠맛이 되는지를 세계인에게 설명하는 장소. 그런 공간이 된다면 장독대는 더 이상 생산시설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 발효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플랫폼이 된다.
발효는 결국 문화를 남긴다

▲루에다의 여정에서 포도밭과 지하 동굴, 와이너리와 식탁을 지나며 우리는 발효가 단순히 술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자연의 시간을 빌려 기억과 문화를 남기는 일임을 다시 배웠다. 이 풍경 앞에서 경주의 왕신장독대도 언젠가 한국 발효의 시간과 철학을 세계인에게 보여주는 문화의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스페인 루에다(Rueda)의 베르데호(Verdejo) 포도밭에서 진아에프앤씨 송연실 대표와 이찬재 실장이 포도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이찬재
루에다를 떠나며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와인의 맛만이 아니었다. 지하 동굴의 서늘함, 목재 전시장의 침묵, 도서관의 책 냄새, 팔라시오 데 보르노스에서 통역을 도와주던 손님의 웃음, 후안 아리아스의 유창한 설명, 신진 작가들을 후원하고 작품을 모아온 모센의 문화적 태도, 후안 부장이 혼자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사랑한다고 말하던 순간, 마리아노 데 후안 부부와의 저녁 식사, 그리고 식탁에서 이어지던 긴 대화가 함께 남았다.
와인은 병 안에 있었지만, 기억은 병 밖에서 완성되었다.
루에다에서 우리는 발효가 단순히 술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배웠다. 발효는 자연의 시간을 빌리는 일이고, 그 시간을 견디는 그릇을 만드는 일이며, 마침내 그 맛을 사람의 식탁과 기억 속으로 옮겨놓는 일이다. 스테인리스와 오크 배럴, 콘크리트 에그와 티나하, 다마후아나와 지하 동굴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문화가 되는 순간은 결국 사람이 그 앞에 서고, 이야기를 듣고, 잔을 들고, 음식을 나누는 자리에서 찾아왔다.
좋은 발효는 제품을 남긴다.
더 좋은 발효는 기억을 남긴다.
그리고 오래 살아남는 발효는 결국 문화를 남긴다.
루에다의 와이너리들은 그 사실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술을 만드는 공장이 미술관이 되고, 저장고가 이야기의 공간이 되며, 한 병의 와인이 지역 음식과 예술, 사람들의 저녁을 만나는 곳. 그곳에서 발효 산업은 제조업을 넘어 문화 산업이 되고, 관광이 되고, 교육이 되고, 지역의 자부심이 된다.
그 장면들 앞에서 우리는 자꾸 경주의 장독대를 생각했다. 남해 멸치와 신안 소금, 콩과 장독, 경주의 햇볕과 바람도 우리만의 시간을 품고 있다. 장독 안에서도 자연은 천천히 움직이고, 미생물은 보이지 않는 노동을 계속하며, 사람의 손은 그 시간을 지키고 기다린다. 다만 아직 우리는 그 시간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을 뿐이다.
루에다의 와이너리가 내게 던진 마지막 질문은 그래서 하나였다.
한국의 장독대도 언젠가 이런 문화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장을 담그는 생산시설을 넘어, 한국 발효의 시간과 철학을 세계인에게 보여주는 장소가 될 수 있을까.
바다와 소금, 콩과 항아리, 햇볕과 바람, 기다림과 감칠맛의 이야기를 사람들의 식탁 위에서 다시 완성할 수 있을까.
루에다는 조용히 대답하고 있었다.
가능하다고.
발효는 어디서나 그렇게 시작됐다고.
자연의 시간을 빌려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을 나누며 기억을 만들고, 그 기억이 쌓여 마침내 문화가 되는 것이라고.
루에다의 포도밭과 지하 동굴, 와이너리와 식탁을 찾은 여정은 여기서 끝난다. 그러나 발효를 찾아가는 길은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그릇을 통해 자연의 시간을 음식으로 바꾸어왔고, 그 오래된 일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이제 길은 다시 남쪽을 향한다. 이베리아반도를 지나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물길을 건너면, 북아프리카 모로코가 기다리고 있다. 대륙을 넘어, 또 다른 발효의 시간 속으로 들어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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