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01 14:14최종 업데이트 26.07.0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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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카스티야 이 레온주 루에다(Rueda)의 포도밭. 건조한 고원의 바람과 큰 일교차, 자갈이 많은 토양은 루에다 화이트 와인의 산미와 서늘한 인상을 만드는 중요한 조건으로 꼽힌다. 바르셀로나 수산식품박람회에서 우연히 마신 한 잔의 루에다 와인은 결국 우리를 이 자갈밭 포도밭까지 이끌었다.
스페인 카스티야 이 레온주 루에다(Rueda)의 포도밭. 건조한 고원의 바람과 큰 일교차, 자갈이 많은 토양은 루에다 화이트 와인의 산미와 서늘한 인상을 만드는 중요한 조건으로 꼽힌다. 바르셀로나 수산식품박람회에서 우연히 마신 한 잔의 루에다 와인은 결국 우리를 이 자갈밭 포도밭까지 이끌었다.이찬재

처음에는 루에다(Rueda)라는 이름조차 몰랐다.

스페인 여행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바르셀로나 수산식품박람회와 전시 일정, 그리고 이후의 발효 탐방지들을 챙기느라 바빴다. 고대 로마의 가룸 흔적, 멸치와 소금의 도시, 하몽과 치즈의 산지, 장독 발효와 닮은 세계의 발효 현장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루에다는 그 목록 어디에도 굵게 적혀 있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 이름을 제대로 의식한 적조차 없었다.


그런데 여행에는 지도보다 먼저 입맛이 길을 여는 순간이 있다.

바르셀로나 수산식품박람회에서 왕신 우마미부스터와 올리브김치를 선보이던 날이었다. 한국의 멸치액젓과 지중해 올리브, 김치 발효가 낯선 사람들의 입안에서 어떻게 만나는지 확인하는 자리였다. 올리브김치와 함께 낼 산뜻한 화이트 와인이 필요했다. 우리는 숙소 인근 마트의 와인 진열대 앞에 섰고, 깊이 고민할 겨를도 없이 한 병을 골랐다. 그때 손에 잡힌 것이 루에다의 비노 블랑코(화이트 와인)이었다.

처음엔 그저 박람회 테이스팅을 돕는 조연이었다. 올리브김치의 산미와 짠맛을 받쳐주고, 우마미부스터의 감칠맛을 조금 더 가볍게 열어주는 역할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잔을 입에 대는 순간, 와인이 예상보다 선명하게 다가왔다. 가볍고 산뜻했지만 비어 있지 않았다. 청량한 산미 뒤로 허브 같은 기운이 남았고, 어딘가 서늘하고 짭짤한 감각이 혀끝에 오래 머물렀다.

그 뒤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다른 도시의 마트에서도, 식당에서도, 숙소 근처의 작은 술집에서도 우리는 자꾸 비슷한 병을 찾고 있었다. 의식해서 고른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손은 어느새 루에다라는 이름 쪽으로 가 있었다. 여행 중 몇 번이고 같은 이름을 마주치고 나서야 깨달았다. 처음에는 몰랐던 이름이 어느새 우리의 미각 속에 길을 내고 있었다.

이 산뜻함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잔 안에서 맴도는 청량한 산미와 허브의 기운, 묘하게 짭짤하고 서늘한 여운은 어떤 땅과 어떤 발효에서 온 것인가. 그 질문이 생긴 순간, 루에다는 더 이상 와인병 라벨 위의 낯선 지명이 아니었다. 맛이 우리를 부르는 장소가 되었다.

"그럼 루에다에 가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런 말이 나왔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치밀하게 짜둔 일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계의 발효를 찾아서'라는 여정에서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발효를 좇다 보면 늘 그렇게 된다. 목적지는 대개 지도에서 먼저 정해지지 않는다. 어떤 맛, 어떤 냄새, 어떤 질문이 사람을 끌고 간다.

루에다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름도 모르던 와인 산지가 어느새 하루 650km 가까운 길을 달려 찾아가야 할 장소가 되었다. 계획이 없었으므로 새로운 길이 열렸다. 맛이 먼저 도착했고, 우리는 뒤늦게 그 맛의 근원을 찾아 나섰다.

시에라 네바다에서 루에다까지, 650km의 내륙길

그날 우리는 그라나다 시에라 네바다의 고산 숙소에서 길을 나섰다. 해발 높은 산악지대의 찬 공기를 뒤로하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려와 그라나다를 지나야 했다. 목적지는 카스티야 이 레온(Castilla y León)의 와인 마을 루에다. 지도 위로는 하루에 달릴 수 있는 경로였지만, 실제로는 안달루시아의 산악지대와 올리브밭, 카스티야의 풍차 언덕, 마드리드 외곽의 거친 교통, 그리고 루에다의 자갈밭 포도밭이 차례로 펼쳐지는 스페인 내륙 종단 여행에 가까웠다.

시에라 네바다 숙소에서 루에다까지는 대략 650km에 가까운 길이었다. 차는 먼저 그라나다 북쪽의 A-44 고속도로를 타고 하엔(Jaén)과 바이렌(Bailén) 방향으로 올라갔다. 안달루시아의 붉은 흙과 올리브밭이 차창 밖으로 길게 흘러갔다. 끝없이 이어지는 올리브나무의 줄은 마치 낮은 파도처럼 고원과 구릉을 따라 움직였다.

이후 톨레도 쪽으로 방향을 틀자 풍경은 조금씩 카스티야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낮은 구릉과 넓은 평원, 드문드문 나타나는 마을, 그리고 먼 하늘 아래 서 있는 풍차가 길의 리듬을 만들었다. 안달루시아의 햇빛이 조금 더 붉고 뜨거웠다면, 카스티야의 햇빛은 건조하고 넓었다. 도시는 멀어지고, 길은 점점 대륙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듯했다.

스페인 카스티야라만차의 풍차 마을 콘수에그라(Consuegra). 세로 칼데리코(Cerro Calderico) 언덕 위에 하얀 풍차가 서 있고, 멀리 무엘라 성(Castillo de la Muela)과 카스티야의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다. 톨레도 인근을 지나던 우리는 이 풍경 앞에서 차를 세웠다. 거센 바람이 온몸을 밀어내던 언덕 위에서,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달려간 이유를 다시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허황돼 보이는 목표도, 어떤 이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명분이 된다. 발효라는 보이지 않는 목표를 찾아가던 우리의 여정도 그 바람 속에서 잠시 돈키호테의 길과 겹쳐졌다.
스페인 카스티야라만차의 풍차 마을 콘수에그라(Consuegra). 세로 칼데리코(Cerro Calderico) 언덕 위에 하얀 풍차가 서 있고, 멀리 무엘라 성(Castillo de la Muela)과 카스티야의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다. 톨레도 인근을 지나던 우리는 이 풍경 앞에서 차를 세웠다. 거센 바람이 온몸을 밀어내던 언덕 위에서,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달려간 이유를 다시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허황돼 보이는 목표도, 어떤 이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명분이 된다. 발효라는 보이지 않는 목표를 찾아가던 우리의 여정도 그 바람 속에서 잠시 돈키호테의 길과 겹쳐졌다.이찬재

톨레도 인근을 지날 때였다. 언덕 중턱에 풍차와 성이 보였다. 카스티야라만차의 풍차 마을로 알려진 콘수에그라(Consuegra)였다. 우리는 차를 세우고 세로 칼데리코(Cerro Calderico)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하얀 풍차들이 능선을 따라 서 있었고, 곁에는 무엘라 성(Castillo de la Muela)이 고원의 바람을 맞고 있었다.

바람이 거셌다. 바람은 단순히 부는 것이 아니라, 온몸을 밀어내듯 지나갔다. 언덕 위에 서자 카스티야의 벌판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과 낮은 하늘, 그리고 그 사이에 선 풍차.

돈키호테는 왜 풍차를 향해 달려갔을까. 물론 소설 속 그는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했다. 그러나 그날 언덕 위에서 맞은 바람 속에서 우리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때로 인간은 눈앞의 현실보다 더 큰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남들이 보기에는 허황되고 무모해 보이는 일도, 당사자에게는 자기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명분이 되기도 한다.

풍차 앞에서 잠시 웃었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달려갔다면, 우리는 발효라는 보이지 않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발효를 찾아서'라는 우리의 여정도 어쩌면 그런 것인지 모른다. 장독대에서 시작한 작은 발효식품 회사가 스페인까지 와서 고대 로마의 가룸 흔적을 찾고, 멸치액젓과 올리브김치를 들고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다시 루에다의 와인 발효를 보러 간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멀고 큰 꿈이지만, 우리는 그 꿈을 향해 가고 있었다.

다시 차에 올랐다. 톨레도를 지나 A-42, 이른바 '톨레도 고속도로(Autovía de Toledo)'를 타고 마드리드 남쪽 생활권으로 들어서자 도로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헤타페(Getafe), 파를라(Parla), 일레스카스(Illescas) 같은 도시 이름들이 표지판에 잇따라 나타났고, 차선은 많아졌으며 차들은 갑자기 가까워졌다. 방향지시등보다 차가 먼저 들어오는 듯했고, 뒤차는 어느새 바짝 붙어 있었다. '대도시가 가까워지면 운전도 이렇게 거칠어지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드리드의 속도를 빠져나온 뒤 우리는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A-6, 일부 구간의 AP-6로 이어지는 북서부 고속도로 축을 타고 과다라마 산맥을 넘어 아다네로(Adanero), 메디나 델 캄포(Medina del Campo), 토르데시야스(Tordesillas) 방향으로 달렸다. 도시의 긴장이 멀어지자 다시 들판이 넓어졌다. 도로의 표정은 대도시의 거친 호흡에서 대평야의 한적함으로 돌아갔다. 그 길 끝에 루에다가 있었다.

바람과 자갈이 만든 화이트 와인의 땅

스페인 루에다(Rueda)의 포도밭에서 익어가던 베르데호(Verdejo) 포도. 잎사귀 사이로 스며든 햇빛이 연둣빛 포도알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루에다 화이트 와인의 산뜻한 산미와 허브 같은 향, 서늘한 여운은 지하 저장고나 발효 탱크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시작은 건조한 고원의 바람과 큰 일교차, 자갈 많은 토양 속에서 자란 이 작은 베르데호 포도알에 있었다. 와인은 결국 포도밭에서 태어나, 발효의 그릇 속에서 완성된다.
스페인 루에다(Rueda)의 포도밭에서 익어가던 베르데호(Verdejo) 포도. 잎사귀 사이로 스며든 햇빛이 연둣빛 포도알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루에다 화이트 와인의 산뜻한 산미와 허브 같은 향, 서늘한 여운은 지하 저장고나 발효 탱크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시작은 건조한 고원의 바람과 큰 일교차, 자갈 많은 토양 속에서 자란 이 작은 베르데호 포도알에 있었다. 와인은 결국 포도밭에서 태어나, 발효의 그릇 속에서 완성된다.이찬재

루에다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은 더 단순해졌다. 화려한 관광도시의 장식은 사라지고, 들판과 포도밭, 낮은 마을과 바람만 남았다. 처음에는 이곳이 스페인의 대표적인 화이트 와인 산지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프랑스 부르고뉴나 이탈리아 토스카나처럼 눈에 띄게 낭만적인 풍경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건조하고, 더 담백하고, 더 절제된 땅이었다.

세론의 치즈도 그랬고, 트레벨레스의 하몽도 그랬다. 발효의 맛은 대도시의 화려한 간판보다 외진 땅의 바람과 침묵 속에서 깊어진다. 발효와 숙성의 성지는 왜 늘 조금 외진 곳에 있을까. 그 답은 어쩌면 간단하다. 발효의 시간은 외부의 소음과 간섭이 적은 곳에서 오래 머물기 때문이다.

루에다의 첫인상은 바람이었다. 바람은 포도밭을 낮게 쓸고 지나갔다. 구름은 빠르게 움직였고, 하늘은 한 가지 표정에 머물지 않았다. 맑다가 흐리고, 흐리다가 다시 빛이 내렸다. 여행 중 우리가 느낀 루에다의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비가 많은 곳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웠다. 루에다는 건조한 고원의 성격이 강한 곳이다. 그 건조함 위로 대륙성 기후의 큰 일교차와 바람, 때때로 빠르게 변하는 하늘이 겹쳐 있었다. 포도나무는 그런 조건 아래에서 자라고 있었다.

루에다 원산지 명칭(D.O. Rueda)은 특히 베르데호(Verdejo) 품종을 중심으로 한 신선한 화이트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포도 품종만으로 와인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베르데호의 산미와 허브 향, 서늘한 여운 뒤에는 이 고원의 토양과 바람, 그리고 그 포도즙을 받아낸 발효 용기들이 함께 놓여 있었다.

주인이 누군지도 잘 모르는 포도밭에 들어가 땅을 만져 보았다. 흙보다 자갈이 먼저 손에 잡혔다. 둥글고 단단한 조약돌이 포도나무 밑동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곳의 포도나무는 포근한 흙에 기대어 자라는 것이 아니라, 물을 오래 붙잡지 않는 자갈밭과 석회질의 마른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한 알의 포도가 와인이 되기 전, 이미 이 땅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듯했다.

좋은 포도나무는 너무 편한 땅에서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물이 넘치고 영양이 과하면 포도나무는 잎과 가지를 키우는 데 힘을 쓴다. 그러나 척박한 땅에서는 뿌리를 깊게 내린다. 루에다의 자갈밭은 포도나무를 게으르게 두지 않았다. 비가 와도 물은 오래 머물지 않고 빠져나갔고, 낮 동안 달궈진 자갈은 밤이 되면 천천히 식었다. 그 사이에서 포도는 산미를 잃지 않고, 향을 응축하며, 땅의 서늘한 기운을 품었을 것이다.

나는 그 자갈 하나를 주머니에 넣었다. 와인 대신, 그 와인이 태어난 땅의 일부를 가져오고 싶었다. 경주의 장독대에는 남해 멸치와 신안 소금의 시간이 스며 있다. 그렇다면 루에다 와인에는 이 자갈밭과 바람과 고원의 변덕스러운 하늘이 스며 있을 것이다. 발효는 저장고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이미 땅에서부터 발효의 방향은 정해지고 있었다.

발효 용기의 박물관, 루에다 와이너리들

스페인 루에다의 와이너리 ‘보데가 데 알베르토(Bodega De Alberto)’ 시음장 내부. 현대적인 와인 테이블과 조명 사이로 오래된 돌기둥들이 공간을 떠받치고 있다. 데 알베르토는 17세기 도미니코 수도회 건축의 기억을 품은 와이너리로, 이곳에서는 와인을 마시기 전부터 이미 돌과 건축, 시간이 숙성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스페인 루에다의 와이너리 ‘보데가 데 알베르토(Bodega De Alberto)’ 시음장 내부. 현대적인 와인 테이블과 조명 사이로 오래된 돌기둥들이 공간을 떠받치고 있다. 데 알베르토는 17세기 도미니코 수도회 건축의 기억을 품은 와이너리로, 이곳에서는 와인을 마시기 전부터 이미 돌과 건축, 시간이 숙성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이찬재

우리가 방문한 루에다 와이너리는 모두 네 곳이었다. 처음부터 치밀하게 짠 취재 일정은 아니었다. 현지의 인연과 소개, 갑작스러운 연락, 우연한 환대가 겹치며 일정이 만들어졌다. 이상하게도 이번 여행은 그랬다. 계획이 없으니 계획이 생겼다. 만나야 할 사람은 길 위에서 나타났고, 들어가야 할 문은 우연처럼 열렸다.

급한 연락을 받고서도 각 와이너리에서는 담당 임원이나 수출 책임자, 현장 관계자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포도밭의 흙을 만지고, 지하 저장고의 습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스테인리스 탱크와 오크배럴, 대형 목재통인 푸드르(Foudre), 유리 데미존, 콘크리트 에그와 진흙 항아리를 차례로 보고 만졌다. 와인 잔에 담긴 맛만이 아니라, 그 맛을 만들기 위해 인간이 고안해 온 발효의 도구와 공간을 따라 걸었다.

그 순간부터 루에다는 내게 단순한 와인 산지가 아니었다. 이곳은 '발효 용기의 박물관'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발효 산업이 어떻게 문화가 되는가'를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어쩌면 한국에서 좋은 장독을 찾기 위해 경북 안동으로, 전남 광주로 발품을 팔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좋은 발효는 좋은 원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원료가 머무는 그릇, 그릇이 놓인 자리, 계절과 바람,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이 함께 맛을 만든다.

데 알베르토, 수도원 건축이 품은 와이너리

와이너리의 진짜 얼굴은 대개 지상보다 지하에 숨어 있다. 그러나 데 알베르토에서는 지하로 내려가기 전, 이미 지상에서부터 시간이 말을 걸어왔다.

데 알베르토 와이너리(Bodegas De Alberto)에 들어섰을 때 처음 우리를 맞은 것은 말끔한 시음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새로 지은 현대식 쇼룸과는 전혀 달랐다. 이 와이너리 건물 자체가 오래된 수도원 건축의 기억을 품고 있었다. 데 알베르토가 자리한 건물은 17세기 도미니코 수도회가 세운 오래된 농가이자 양조 공간이었다. 지금의 와이너리는 1941년 알베르토 구티에레스가 세라다의 옛 도미니코 수도회 와이너리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와이너리 시음장은 두꺼운 돌기둥들이 떠받치고 있었다. 와인병들이 놓인 현대식 테이블과 조명 사이에서, 수도원 시절 세워진 돌기둥들은 다른 시간을 살고 있었다. 기둥 표면에는 오랜 세월의 상처와 홈, 거친 결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누군가의 손끝이 닿은 듯한 자국, 오래전 석공의 도구가 지나간 흔적처럼 보이는 작은 패임들이 돌 속에 박혀 있었다.

우리는 그 기둥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손가락으로 돌의 결을 짚어보았다. 와인을 마시기 전에 먼저 건물을 만지고 있는 셈이었다. 시음장은 단순히 와인을 설명하고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수도원의 돌기둥, 오래된 벽, 낮은 천장, 그리고 그 안에 놓인 와인병들이 함께 시간을 말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와인을 잔에 따르기 전부터 이미 숙성의 분위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400년 지하 동굴, 시간을 보관하는 공간

스페인 루에다(Rueda)의 와이너리 ‘보데가 데 알베르토(Bodega De Alberto)’ 지하 저장고. 스페인어로 쿠에바(Cueva), 곧 동굴이라 부르는 이 공간에는 낮은 아치형 천장 아래로 와인병들이 빽빽하게 누워 있었다. 어둡고 서늘한 통로를 따라 걷자 오래된 흙벽과 습기, 희미한 알코올 향이 함께 올라왔다. 와인은 병 안에서만 익는 것이 아니라, 어둠과 습도, 낮은 빛과 지하의 공기 속에서 천천히 시간을 얻고 있었다.
스페인 루에다(Rueda)의 와이너리 ‘보데가 데 알베르토(Bodega De Alberto)’ 지하 저장고. 스페인어로 쿠에바(Cueva), 곧 동굴이라 부르는 이 공간에는 낮은 아치형 천장 아래로 와인병들이 빽빽하게 누워 있었다. 어둡고 서늘한 통로를 따라 걷자 오래된 흙벽과 습기, 희미한 알코올 향이 함께 올라왔다. 와인은 병 안에서만 익는 것이 아니라, 어둠과 습도, 낮은 빛과 지하의 공기 속에서 천천히 시간을 얻고 있었다. 이찬재

마리아노 데 후안 부장이 우리를 이끈 지하 동굴은 그보다 더 깊은 시간의 공간이었다. 좁은 계단이 아래로 이어졌다. 몇 걸음 내려가자 지상의 햇빛이 금세 멀어졌다. 문 하나를 통과하자 공기가 달라졌다. 건조한 고원의 바람 대신, 서늘하고 축축한 어둠이 몸을 감쌌다.

그곳은 400년 가까운 시간을 품은 지하 저장고였다. 스페인어로 쿠에바(Cueva), 곧 동굴이라 부르는 공간이다. 천장은 낮고 둥글었다. 흙과 석회가 뒤섞인 듯한 벽면은 매끈하지 않았다. 곳곳이 패이고 벗겨져 있었고, 오래된 습기와 시간이 벽 속에 스며 있는 듯했다. 좁은 아치형 통로 안에는 오크배럴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배럴들은 마치 동굴의 중심선을 따라 천천히 누워 있는 시간의 마디처럼 보였다.

조명은 밝지 않았다. 벽면을 스치듯 비추는 낮은 빛이 배럴의 곡면과 천장의 굴곡을 드러냈다. 빛이 닿는 곳은 황금빛 나무결이 살아났고, 빛이 닿지 않는 곳은 깊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사이를 걸을 때마다 오래된 나무, 축축한 흙, 희미한 알코올 향이 함께 올라왔다. 와인이 향으로만 익는 것이 아니라, 어둠과 습도와 공기 속에서 천천히 익어간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다.

동굴은 한 줄로 곧게 뻗은 저장고가 아니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길은 갈라지고, 낮은 아치형 통로가 미로처럼 이어졌다. 마리아노 부장은 이 지하 동굴 위로 지금도 마을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땅속에서 와인 배럴 사이를 걷고 있었지만, 그 위에서는 사람들이 집 안에서 밥을 먹고, 창문을 열고, 하루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었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도 들었다. 오래전에는 동굴 곳곳에 마을 주택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막아두었다고 했다. 마리아노 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지하 통로가 개인 주택과 연결되어 있으면 소유권과 관리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데 알베르토의 지하 동굴은 오로지 와이너리 시음장으로 이어지는 좁은 계단 하나를 통해서만 오르내릴 수 있다. 땅 위에는 마을이 있고, 그 아래에는 와인이 발효하고 숙성되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동굴이 더 이상 단순한 저장고로 보이지 않았다. 마을의 지하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마을, 집과 집 아래를 지나며 와인이 익어가던 보이지 않는 시간의 길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통로들이 막혀 있지만, 한때 이 동굴은 와이너리와 마을의 생활이 땅속에서 맞닿아 있던 공간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위에서 하루를 살고, 와인은 아래에서 천천히 나이를 먹고 있었다.

시간과 기술에 밀린 시멘트탱크

스페인 루에다(Rueda)의 와이너리 ‘보데가 데 알베르토(Bodega De Alberto)’ 지하 동굴에 남아 있는 옛 시멘트 탱크의 흔적. 오늘날 와이너리들이 세척과 온도 관리가 쉬운 스테인리스 탱크를 선호하게 된 이유를, 이 오래된 지하 통로가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스페인 루에다(Rueda)의 와이너리 ‘보데가 데 알베르토(Bodega De Alberto)’ 지하 동굴에 남아 있는 옛 시멘트 탱크의 흔적. 오늘날 와이너리들이 세척과 온도 관리가 쉬운 스테인리스 탱크를 선호하게 된 이유를, 이 오래된 지하 통로가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이찬재

동굴 안에는 이제 쓰지 않는 시멘트 탱크의 흔적도 남아 있었다. 마리아노 부장은 예전에는 그 탱크도 실제 양조와 저장에 사용했다고 했다. 탱크에는 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좁은 구멍이 있었고, 작업자가 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어 내부를 직접 씻어내고 관리해야 했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둡고 습한 탱크 안으로 들어가 벽면을 닦고, 찌꺼기를 제거하고,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은 위험하고 고된 노동이었다. 마리아노 부장은 이제 그런 일을 할 사람을 구하기조차 어렵다고 했다. 동시에 그 방식 자체도 현대 양조의 위생·안전·효율 기준에서 점점 낡은 기술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와이너리들이 세척과 온도 관리가 쉬운 스테인리스 탱크를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멘트 탱크는 이제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비어 있는 탱크는 버려진 설비라기보다, 한 시대의 양조 방식이 멈춰 선 자리처럼 보였다. 와인의 역사는 새 기술이 들어오면서만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기술은 더 안전하고 정밀한 장비가 등장하면서, 또 어떤 기술은 그 고된 노동을 감당할 인력이 없어지면서 뒤로 물러난다. 동굴 속 시멘트 탱크는 바로 그 전환의 흔적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데 알베르토의 지하 동굴은 와인을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시간을 보관하는 곳이었다. 수도원의 침묵, 농부의 노동, 석공의 손길, 나무통의 호흡, 멈춰 선 시멘트 탱크, 그리고 1941년 이후 이 공간을 다시 와이너리로 이어온 사람들의 시간이 그 안에 겹쳐 있었다.

오크배럴, 나무와 산소가 만드는 숙성의 기억

스페인 루에다(Rueda)의 와이너리 ‘보데가 데 알베르토(Bodega De Alberto)’ 지하 동굴 안쪽에 놓인 대형 목재통 푸드르(Foudre). 사람보다 훨씬 큰 이 통은 와인을 담는 용기라기보다 지하 저장고 안에 다시 들어앉은 작은 건축물처럼 보였다.
스페인 루에다(Rueda)의 와이너리 ‘보데가 데 알베르토(Bodega De Alberto)’ 지하 동굴 안쪽에 놓인 대형 목재통 푸드르(Foudre). 사람보다 훨씬 큰 이 통은 와인을 담는 용기라기보다 지하 저장고 안에 다시 들어앉은 작은 건축물처럼 보였다.이찬재

이제 그 지하의 시간 속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용기는 나무였다.

마리아노 데 후안 부장은 지하 저장고의 오크배럴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오크배럴은 와인을 담아두는 단순한 나무통이 아니다. 양조학에서는 이런 목재 용기를 '활성 용기'에 가깝게 본다. 스테인리스처럼 조용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릇이 아니라, 와인과 계속 반응하는 그릇이라는 뜻이다.

나무는 금속처럼 완전히 닫힌 재료가 아니다. 아주 미세한 틈과 결을 통해 산소가 천천히 들어온다. 이 산소는 많으면 와인을 상하게 하지만, 아주 조금씩 들어오면 거친 맛을 부드럽게 다듬고 구조감을 만든다. 동시에 오크 자체의 성분도 와인 속으로 천천히 스며든다. 배럴을 만들 때 불로 굽는 토스팅 과정에서 나무의 리그닌과 셀룰로스가 변하고, 그 결과 바닐라, 토스트, 코코넛, 정향, 견과류 같은 향이 와인에 더해진다. 우리가 흔히 "오크 향"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향기가 아니라, 나무와 불과 산소가 함께 만든 숙성의 흔적이었다.

하지만 오크배럴은 매력만큼 위험도 품고 있다. 나무의 미세한 구멍은 산소를 들이는 통로이지만, 동시에 미생물이 숨어들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스테인리스 탱크처럼 매끈하게 씻고 살균하기 어렵다. 그래서 좋은 와이너리는 오크배럴을 낭만의 도구로만 보지 않는다. 위생, 온도, 이산화황 관리, 숙성 기간을 세밀하게 조율해야 한다. 나무가 와인에 깊이를 주는 만큼, 관리가 부족하면 결함도 함께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오크배럴, 특히 225L 안팎의 바리크는 와인과 나무가 닿는 면적이 상대적으로 크다. 그래서 산소와 오크 성분의 영향이 빠르고 또렷하게 나타난다. 짧은 시간 안에 풍미와 구조를 부여할 수 있지만, 자칫하면 베르데호가 가진 산뜻한 과실향과 허브 향을 나무 향이 덮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루에다에서 오크배럴은 주인공처럼 과시되기보다, 와인의 신선함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질감과 깊이를 더하는 조심스러운 도구처럼 느껴졌다.

푸드르, 느리게 흐르는 큰 나무의 시간

동굴 안쪽에는 공간을 거의 채우는 거대한 대형 목재통(푸드르)이 놓여 있었다. 오크배럴이 나무의 힘을 비교적 빠르고 선명하게 전달하는 용기라면, 푸드르(Foudre)는 훨씬 더 느리고 완만한 나무의 방식이었다. 사람보다 훨씬 큰 그 통 앞에 서자, 와인을 담는 용기라기보다 하나의 방, 혹은 지하 저장고 안에 다시 들어앉은 작은 건축물처럼 보였다. 둥근 통의 몸체는 낮은 아치형 천장과 나란히 이어졌고, 오래된 벽돌과 흙벽, 나무통의 어두운 결이 하나의 시간층처럼 겹쳐 있었다.

푸드르는 보통 수천 리터 규모의 큰 목재통이다. 크기가 커지면 같은 양의 와인에 비해 나무와 맞닿는 면적이 줄어든다. 따라서 오크 향과 산소 접촉은 더 느리고 완만하게 작용한다. 작은 배럴이 나무의 목소리를 가까이에서 또렷하게 들려준다면, 푸드르는 그 목소리를 낮추고 시간을 길게 늘여놓는다.

작은 오크배럴들이 줄지어 놓인 장면이 정교한 숙성의 리듬처럼 보였다면, 푸드르는 오래된 저장고의 심장처럼 보였다. 그 안에서는 와인이 빠르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무 향을 강하게 입히기보다, 아주 느린 산소와 긴 어둠을 통해 조금씩 둥글어질 것이다. 베르데호처럼 신선한 향이 중요한 품종에는 이런 완만함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 포도의 향은 지키면서도, 나무의 산소와 시간이 주는 질감만 천천히 빌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앞에서 우리는 '크다'는 말보다 '느리다'는 말을 먼저 떠올렸다. 큰 통은 와인을 압도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와인이 자기 속도로 변할 수 있도록 긴 시간을 내어주는 그릇 같았다. 데 알베르토의 지하 동굴에서 푸드르는 단순한 설비가 아니라, 수도원과 흙벽, 낮은 조명과 함께 늙어온 또 하나의 발효 공간이었다.

철이 통제라면, 나무는 기억에 가까웠다. 작은 배럴이 강한 기억을 빠르게 새기는 그릇이라면, 푸드르는 그 기억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큰 방 같았다.

### 효모를 저어주는 손, 왕신 장독을 떠올리다

스페인 루에다(Rueda)의 와이너리 ‘보데가 데 알베르토(Bodega De Alberto)’에서 마리아노 데 후안(Mariano De Juan) 부장이 오크배럴의 마개를 열고 긴 도구로 와인과 리스(lees)를 저어주고 있다. 리스는 발효를 마친 효모와 미세한 침전물로, 와인과 다시 섞어주면 질감과 풍미를 더 깊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스페인 루에다(Rueda)의 와이너리 ‘보데가 데 알베르토(Bodega De Alberto)’에서 마리아노 데 후안(Mariano De Juan) 부장이 오크배럴의 마개를 열고 긴 도구로 와인과 리스(lees)를 저어주고 있다. 리스는 발효를 마친 효모와 미세한 침전물로, 와인과 다시 섞어주면 질감과 풍미를 더 깊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찬재

오크배럴의 발효가 더 흥미로웠던 것은, 그 안에서 와인을 그냥 가만히 두지만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리아노 부장이 오크배럴 위의 마개를 열었다. 그는 긴 도구를 넣어 배럴 안쪽을 천천히 저어주었다. 배럴 바닥에 가라앉은 리스(lees), 곧 발효를 마친 효모와 미세한 침전물을 와인과 다시 섞어주는 과정이었다.

와인 양조에서는 이를 바토나주(bâtonnage)라고 부른다고 한다. 효모 앙금이 와인과 다시 접촉하면 질감이 부드러워지고, 향과 풍미가 깊어지며, 입안에서 느껴지는 구조감도 더 풍성해진다고 한다. 알베르토 와이너리는 이런 방식으로 와인의 맛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고, 발효와 숙성의 흐름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그 장면은 경주의 왕신 장독대를 떠올리게 했다. 왕신멸치액젓도 그냥 멸치와 소금을 장독에 넣어두고 기다리기만 하지 않는다. 장독을 열고, 멸치와 소금이 잘 섞이도록 손으로 직접 저어준다. 멸치의 살과 기름, 내장에 들어 있는 자가분해효소가 소금과 고루 만나야 비로소 발효가 깊어진다. 멸치가 스스로의 효소로 자기 몸을 천천히 풀어내고, 그 살과 기름이 장독 안에서 다시 섞이며 감칠맛의 바탕을 만든다.

알베르토의 오크배럴 안에서 효모 앙금과 와인이 다시 섞이듯, 왕신의 장독 안에서는 멸치와 소금, 살과 기름, 자가분해효소가 다시 섞인다. 와인에서는 효모의 시간이 풍미를 만들고, 액젓에서는 멸치 자신의 효소가 감칠맛을 만든다. 서로 다른 원료와 전혀 다른 문화권의 발효지만, 원리는 닮아 있었다.

좋은 발효는 그저 방치하는 시간이 아니다. 자연이 일하도록 기다리되, 사람이 손을 넣어 그 시간이 고르게 흐르도록 돕는 일이다.

장독 속 멸치를 저어주는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다. 멸치의 자가분해효소가 멸치 살과 기름을 스스로 녹이고, 소금과 함께 깊은 감칠맛으로 변해가도록 돕는 발효의 핵심 과정이다. 루에다의 오크배럴 앞에서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발효는 기다림이지만, 좋은 발효는 그냥 기다림이 아니다. 사람의 손이 자연의 시간을 깨우고, 다시 섞고, 천천히 깊어지게 만드는 일이다.

도미니코 수도회가 이곳에 남긴 것은 단지 건물이 아니었다. 포도를 거두고, 즙을 내고, 어둠 속에서 시간을 기다리는 방식이었다. 수도원은 기도와 침묵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농업과 양조의 공간이기도 했다. 포도주는 성찬의 상징이었고, 수도원 경제를 지탱하는 생산물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유럽의 여러 수도원은 포도밭과 저장고, 양조 기술을 오랫동안 축적해왔다. 데 알베르토의 지하 동굴은 그런 수도원 양조 전통이 스페인 루에다의 땅속에 남아 있는 현장처럼 느껴졌다.

냉장 장치가 없던 시대, 인간이 와인을 지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술은 땅속이었다. 지상에서는 계절이 바뀌고 낮과 밤의 온도가 출렁이지만, 지하 동굴은 비교적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한다. 햇빛도 적고, 바람도 직접 닿지 않는다. 그곳에서 와인은 빠르게 변하지 않는다. 천천히 나이를 먹는다.

나는 그 어둠 속에서 다시 경주의 장독대를 떠올렸다. 장독은 하늘 아래 놓이고, 데 알베르토의 저장고는 땅속에 숨어 있다. 겉으로는 정반대의 공간이다. 그러나 둘은 같은 질문을 품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미생물이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게 일하도록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원료가 시간과 만나 깊어지도록 도울 것인가. 발효는 인간이 자연을 완전히 지배하는 기술이 아니라, 자연이 가진 조건을 읽고 조율하는 일이다.

스테인리스 탱크, 현대 와인의 차가운 통제

지하 동굴에서 지상으로 올라오자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 우리는 수도원의 돌기둥과 400년 가까운 지하의 시간 속에 있었는데, 눈앞에는 현대식 대형 스테인리스 탱크가 줄지어 서 있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금속 표면, 온도 제어 장치, 위생적으로 정리된 배관과 설비. 현대 루에다 와인을 상징하는 주역이었다.

루에다의 오늘날 화이트 와인 스타일은 이 스테인리스 탱크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베르데호의 산뜻한 산미, 시트러스와 허브의 향, 깨끗하고 신선한 인상은 대부분 낮은 온도에서 정밀하게 관리되는 발효를 통해 살아난다. 스테인리스 탱크는 외부 산소와 오염의 영향을 최대한 줄이고, 냉각 장치를 통해 발효 온도를 일정하게 붙잡는다. 효모가 너무 뜨겁게 날뛰지 않도록 조율하고, 포도 고유의 향이 날아가거나 산화되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이다.

대형 스테인리스 탱크 앞에 서면 처음에는 차갑고 무표정한 공업 설비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금속의 차가움 안에는 현대 와인 산업의 중요한 철학이 들어 있다. 좋은 와인을 한 번 우연히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균질화된 품질로 만들 수 있게 하는 힘이다. 세척이 쉽고, 온도 조절이 가능하고, 발효 상태를 숫자로 관리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스테인리스는 와인을 개성 없는 액체로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품종의 깨끗한 출발점을 확보해주는 현대적 발효 플랫폼이었다.

스페인 루에다(Rueda)의 와이너리 ‘보데가 데 알베르토(Bodega De Alberto)’에 줄지어 선 현대식 스테인리스 발효 탱크. 지하 동굴의 흙벽과 오크배럴이 오래된 숙성의 시간을 보여준다면, 이 차갑고 매끄러운 금속 탱크들은 현대 루에다 화이트 와인의 정밀한 발효를 상징한다.
스페인 루에다(Rueda)의 와이너리 ‘보데가 데 알베르토(Bodega De Alberto)’에 줄지어 선 현대식 스테인리스 발효 탱크. 지하 동굴의 흙벽과 오크배럴이 오래된 숙성의 시간을 보여준다면, 이 차갑고 매끄러운 금속 탱크들은 현대 루에다 화이트 와인의 정밀한 발효를 상징한다. 이찬재

물론 한계도 있다. 너무 닫힌 용기는 와인을 단정하게 만들지만, 때로는 질감과 깊이를 단순하게 만들 수 있다. 산소와 너무 멀어지면 향은 깨끗해도 입안의 폭이 좁아질 수 있고, 삶은 달걀과 같은 불쾌한 환원취가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루에다의 좋은 와이너리들은 스테인리스 하나만 고집하지 않는다. 스테인리스로 신선함과 품종의 순도를 지키고, 오크배럴이나 푸드르, 리스 숙성, 콘크리트 에그 같은 다른 용기와 방법으로 질감과 복합성을 더한다. 루에다는 '전통 대 현대'의 단순한 대립이 아니라, 여러 용기를 조합해 베르데호의 표정을 넓혀가는 실험실에 가까웠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같은 유럽의 오래된 와인 산지들은 겉으로는 전통과 테루아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내부로 들어가 보면 고민의 중심에는 여전히 발효가 있다. 포도즙이 어떤 온도에서 발효되어야 하는가. 산소와 얼마나 만나야 하는가. 효모 앙금과 얼마나 오래 접촉해야 하는가. 어떤 용기가 향을 덜 가리고, 어떤 용기가 질감을 더하는가. 결국 와인의 혁신은 품종이나 마케팅의 혁신만이 아니다. 발효 용기의 혁신이기도 하다.

장독대도 미래 발효 산업의 기술 자산이다

루에다에서 처음 배운 것은 와인이 포도만으로 익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포도즙은 땅의 자갈에서 시작해 수도원 건축의 돌기둥과 지하의 어둠, 나무의 숨, 효모 앙금을 깨우는 손길, 철제 탱크의 차가운 통제를 지나 비로소 와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음 여정은 더 흥미로운 그릇들로 이어진다. 콘크리트 에그, 햇볕 아래 놓인 유리 다마후아나(Damajuana), 황금빛 산화 숙성 와인 도라도(Dorado), 그리고 진흙 항아리 티나하(Tinaja). 현대의 와이너리들은 왜 다시 둥근 용기와 흙의 숨결, 태양의 산화와 사람의 환대로 돌아가고 있을까.

우리는 루에다에서 와인을 마신 것이 아니라, 와인이 되어가는 조건들을 따라 걸었다. 포도즙이 와인으로 변해가는 그릇의 시간을 보았다. 포도밭의 자갈에서 시작된 길은 데 알베르토의 수도원 건축과 지하 동굴, 오크배럴, 푸드르, 리스, 스테인리스 탱크로 이어졌다. 같은 포도즙이라도 어떤 발효 용기를 만나느냐에 따라, 또 그 안에서 사람이 어떻게 저어주고 기다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간을 얻는다. 용기는 중립적이지 않았다. 손길도 중립적이지 않았다. 용기와 사람의 손은 발효의 방향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다.

그 길은 멀리 경주의 장독대와도 조용히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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