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7.04 14:42최종 업데이트 26.07.04 14:42
  • 본문듣기
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기자말]
등교 시간이 출근 시간으로 바뀌던 가을을 기억한다. 교복 대신 유니폼을, 선생님 대신 직장 선배를 마주했던 고교 3학년 2학기였다. 나의 열아홉은 그로부터 한 달 뒤 첫 월급으로 족발과 내복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눈썹 그리는 용도인 아이브로우를 처음 샀는데, 그리자마자 짱구가 되었다.

매사 서툴렀지만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는 것 같아 신이 났다. 수능을 준비하는 열아홉이 있듯 직장생활에 뛰어드는 열아홉이 있고, 미생을 챙겨주는 선배들 덕분에 나의 열아홉은 풍요로웠다. 현장실습생의 고3 생활을 그린 영화 <3학년 2학기>를 보며 울며 웃었던 까닭은 주인공 '창우'와 내 열아홉이 붕어빵처럼 빼닮았기 때문이다.

당당히 3학년 2학기를 버티는 특성화고 학생들

극중 창우는 집에 보탬이 되고 싶은, 되고 싶은 것보다 잘해내고 싶은 게 많은 열아홉. 동생들에게 시장 통닭 대신 브랜드 통닭을 사주고 싶고, 현장실습을 시작한 날부터 자신의 '쓸모'를 다해내고 싶지만 처음 맡은 업무에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래도 챙겨주는 동기들 곁에서 창우는 잘 자란다.

최근 출간된 청소년소설 <인트로>(2026)에도 첫 사회생활을 앞둔 열아홉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실습 현장에서 부당함을 겪지만 좋은 친구들과 소수의 좋은 어른들이 있어서 늠름하게 '일보 전진' 한다. 학업과 취업이라는 두 갈래 길 앞에서 들뜬 미디어고교의 3학년 2학기 교실, 장차 어른으로서 일 인분을 잘 해내고 싶은 '미아'는 '푸름프로덕션'이라는 중소기업에서 현장실습을 시작한다.
특성화고 학생들의 고3 생활을 그린 청소년소설 <인트로>(최이랑)책담

미아가 만난 인생 첫 사수는 '한 피디'. 실습생을 하대하기보다 '존중'할 줄 아는 인물로, 방송 제작 일이 주된 일터에서 미아의 은근한 울타리가 되어준다. 지역 꽃 축제, 건강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서 미아는 그를 도우며 영상 전문가로서 식견을 넓혀 가지만, 자신을 매몰차게 대하는 방송가 사람들을 만나며 "묵직한 돌이 가슴을 짓누르는" 통증에 숨을 고르기도 한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특성화고를 선택할 때부터 미아의 목표는 하나였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곧바로 취업하기. 그리고 돈 벌어 살림살이에 보태기."
-<인트로>(최이랑) 중에서

엄마와 할머니가 꾸리는 '어리밥상' 식당의 매출만으론 생계가 힘듦을 직감한 미아는 일찍이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한다. 하교 대신 퇴근한 얼굴로 가게에 들어서는 손녀를 안쓰럽게 보는 할머니에게 미아는 자신이 실습 현장에서 꽤 '쓸모' 있다며 주변 어른을 안심시킨다. 어른보다 더 어른 같은 미아가 낯설지 않은데, 작가는 열아홉 실습생의 패기와 기쁨, 슬픔을 생생히 버무려 놓았다.

일찍 철 들고 매사 명랑한 미아에게는 다정한 가족과 일터의 선배 말고도 좋은 친구들이 있다. 학교에서 알아주는 우등생이자 자신처럼 일찍 철 든 친구 '수지' 그리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어딘가 낙천적인 친구 '단이'. 이 셋은 다가올 스무 살을 기다리며 위풍당당 3학년 2학기를 살아낸다.

벼락처럼 닥쳐오는 실습 현장 속 부조리들

소설은 열아홉 현장실습생이 겪는 '어려움의 평균치'를 세밀하게 복원한다. '어리미디어고'에서 우등생이던 수지는 친구들이 선망하는 '판타스틱프로덕션'에 실습생으로 가지만, 도제식 교육은커녕 온갖 허드렛일에 내몰린다. 종일 택배를 싸고, 대표의 아들 선물을 사러 강남 백화점까지 다녀온다. 실습생의 안전을 보장하는 '실습표준협약서' 방침인 하루 일곱 시간 근무도 초과하기 일쑤다.


수지는 부당함을 밝히려 미아와 학교로 돌아와 선생님을 찾지만 학생들의 취업 실적에 시달리는 교사는 뜨악한 표정을 짓는다. 왜 회사에 있지 않고 학교에 돌아왔냐는 눈총을 보내며 책임감을 운운하며 말한다.

"견디는 것도 배우는 거야."

방관하는 교육 현실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가르치지 않는 상사들, 취업만 시키고 손 떼는 일부 교사들은 현장실습생들이 흔히 겪는 난관이다. 열아홉 학생들이 실습현장에서 익숙하게 맞닥뜨리는 통증을 그리는 데만 소설이 집중했다면, 조금 실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실습생을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미디어고를 다니는 주인공답게 카메라를 쥔 미아를 노동자들의 함성이 있는 곳으로 옮겨 놓아 독자의 시선을 확장시킨다.

어느 날, 사수를 따라 시사 프로그램 촬영에 나선 미아. 팬데믹 때 직원을 대거 해고한 세종호텔과 닮은꼴인 '아몬드호텔' 농성 현장에 도착한다. 한 피디는 "미아 씨가 찍는 거 아주 중요하게 쓰일 수 있으니 잘 찍어야 해." 당부하고, 미아는 농성자 무리에서 이곳 호텔서 요리사로 일하다가 부당해고된 삼촌을 발견한다. 미아는 놀란 마음을 잠재우고 '기록자'가 되어 담담히 액션캠 전원을 켠다.

일터 속 '피해자'에서 연대하는 '목격자'로

소설 <인트로>의 주목할 점은 이렇듯 미아가 현장실습을 하며 고통을 감내하는 당사자로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 미아는 친구 수지가 현장실습을 하며 겪은 부당함을 알리는 자리를 동행하고, 삼촌이 해고된 일터를 다큐멘터리로 담는다. 화물차를 몰다가 사망한 아버지의 사인이 과로사임을 밝히기 위해 어머니와 의기투합하는 장면도 '우리'라는 세계 속 컷들처럼 맞물려 펼쳐진다.

미아는 내 가족과 친구가 일터에서 어떤 부당함을 겪는지 관찰하고 기록하는 '목격자'로 우뚝 선다. 손쉽게 희생되지 않고, 친구들과 결의를 다진 끝에 학교와 기업체에 시위로 대항하며 '힘없는 현장실습생'의 자리에서 반갑게 이탈해간다. 먹고사는 삶들을 둘러싼 사태의 중심부에 당당히 선다.

누군가는 아프게 이해할 장면 속에서 실습생들은 고통에 침잠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후배들도 그 현장에 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더 나은 실습현장을 촉구하기 위해 교문 앞에서 피켓을 든다. "학생을 넘어 사회인으로 돌입하기 직전"의 그 예민한 시간에 촉각을 세우고, 망가진 시스템에 편입되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낸다. 열아홉 미아와 수지, 단이가 함께 만든 피켓 문구는 다음과 같다.

"하나, 현장 실습이 교육의 연장이라면, 그에 걸맞은 교육 프로그램과 지도자가 있어야 합니다. 둘, 현장 실습생의 근로 시간은 협약서에 적힌 대로 지켜져야 합니다. 셋, 학교는 실습 현장이 위 사항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관리, 감독할 책무를 지닙니다. 넷, 현장 실습생을 학교의 평가 지표로 삼지 마세요. 현장 실습생은 학생이며, 분명한 인격체입니다." -<인트로>(최이랑) 중에서

두근두근한 누군가의 열아홉, 선배 말 잘 듣고 자기 계발 잘해서 돈 많이 벌자는 말 대신 이런 조언을 해주면 어떨까. 미아와 수지, 단이가 쓴 피켓 문구처럼 너는 분명한 인격체고, 안전하게 배울 권리가 있다고. 그런 인기척을 내준 어른이 학교와 실습현장에 더 있었더라면 구의역 김군도, 요트에서 일하다 사망한 홍군도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으로 울창하게 존재했을 거라고 믿는다.

소설은 그 방패가 되어줄 어른이 요원한 세계에서 결코 고개 숙일 수 없는 고3 실습생들의 버라이어티한 2학기를 그려낸다. 직장인이 되어가는, '인트로'의 시간, 버티라는 말 대신 지켜줄 테니 안심하라 북돋고, 가슴 펴라 말하는 어른이 우리에게 절실하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 열아홉의 마음만큼 생업의 첫걸음을 잘 떼고 싶은 열아홉의 마음 또한 간절하니까. 지켜야 할 목숨이니까.


인트로

최이랑 (지은이), 책담(202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