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29 06:58최종 업데이트 26.06.29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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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6일 오전 서울시청 출입구에 서울시 신규 브랜드 슬로건 'Seoul, my soul(서울 마이 소울)'이 부착되어 있다. 2023.8.16연합뉴스

7월 1일이면 민선 9기 새로운 지방정부가 공식 출범한다.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새롭게 선출된 광역·기초자치단체장들이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시정 운영에 들어간다. 앞으로 4년 동안 어떤 도시를 만들 것인지, 어떤 정책을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 청사진이 하나둘 발표될 것이다.

지방선거가 끝날 때마다 반복되는 풍경이 있다. 새로운 단체장이 취임하고 그에 맞춰 새로운 '도시 브랜드 슬로건'이 바뀌는 모습. 바뀐 슬로건에 맞춰 공공청사 외벽의 문구가 바뀌고, 홈페이지와 홍보물, 현수막, 간판이 연이어 교체된다. 시민들은 익숙했던 도시의 얼굴을 떠나보내고 또 다른 문구를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잠깐. 이 장면들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가? 도시 슬로건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단체장의 것인가, 시민의 것인가?

도시를 나타내는 브랜드 슬로건은 그저 그런 홍보 문구가 아니다. 브랜드 마케팅 이론에 따르면 슬로건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와 이미지를 모두 담은 상징이다. 슬로건이 정체성을 전달하는 핵심 수단이라면, 도시 슬로건도 마찬가지다. 그 문구는 해당 도시가 가진 고유한 이미지와 정체성을 대내외에 전달하는 '얼굴'이다.

브랜드 전문가들은 도시 브랜드 슬로건을 만들 때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짧고, 기억하기 쉬워야 할 뿐만 아니라, 도시만의 차별성과 고유성을 담아야 한다.

단체장 임기와 함께 바뀌는 도시 브랜드

우리나라에서 도시 브랜드 슬로건이 본격적으로 퍼진 시기는 2000년대 초반부터다. 서울시의 'Hi Seoul'을 시작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도시 브랜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지방자치가 정착되면서 각 도시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고 투자와 관광을 유치하기 위한 브랜드 전략에 나섰다.

문제는 그 이후다.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단체장 취임하면 슬로건을 바꿨다. 새 단체장이 취임하면 새 비전이 발표되고, 기존 브랜드 슬로건은 폐기되거나 사용이 중단되었다.

서울시는 'Hi Seoul'에서 'I·SEOUL·U'로, 다시 'Seoul, My Soul'로 문구를 바꾸었다. 부산시는 'Dynamic BUSAN'을 써오다가 지난 민선 8기가 출범하고 'Busan is good'으로 브랜드 슬로건을 변경했다. 대구시는 20년 가까이 써오던 'Colorful Daegu'를 공론화 과정 없이 '자유와 활력이 넘치는 파워풀 대구'로 변경했다. 세종시 또한 기존의 '세종을 이롭게'에서 '세종이 미래다'로 브랜드 슬로건을 변경했다. 참고로 이 브랜드 슬로건을 개발하기 위해 부산은 8억 원, 세종시는 무려 12억 원을 썼다.

서울 빛초롱축제 개막을 하루 앞둔 31일 서울 청계천에 미리 밝혀진 각종 조형물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서울관광재단이 주최하는 '2019 서울빛초롱축제'는 동화를 주제로 17일간 청계천 일대에서 열린다. 2019.10.31연합뉴스

행복, 희망, 미래… 그런데 어느 도시 이야기인가?

새로운 단체장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시대 변화에 따라 재정립해야 할 때도 있고, 기존 문구가 시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책 비전이 달라지는 것과 도시 정체성이 변화는 건 다르다. 도시의 정체성까지 선거 주기를 따라가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의 역사와 문화가 10년마다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부산과 세종의 특색은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창조되지 않는다. 도시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가치와 자산은 그대로인데, 이를 설명하는 문구만 계속 교체하고 있는 셈이다.

기초자치단체로 내려갈수록 도시 브랜드 슬로건은 '좋은 단어의 나열'에 머무르고 있다. 민선 8기 들어 새롭게 도입된 일부 슬로건을 살펴보면 도시의 역사와 문화, 산업, 자연환경 등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을 문구에 담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성북구의 '현장에서 답을 찾다', 서대문구의 '행복 100% 서대문!', 영등포구의 '희망·행복·미래도시 영등포' 등이 대표적이다. 단체장의 행정 철학과 정책 의지가 담겨 있을 수는 있겠으나, 이것이 성북구만의 특징인지, 서대문구만의 역사인지, 영등포만이 가진 도시 자산인지는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다. 해당 문구에서 도시의 이름을 지우고 다른 지방자치단체 이름을 넣어도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영등포구는 변경하기 전 사용했던 '탁 트인 영등포'가 도시 슬로건의 좋은 사례라라 할 수 있다. 영등포역 앞 노점상 정비와 보행환경 개선 등, 도시 이미지 개선 정책과 문구가 맞물리며 '답답하고 낙후된 영등포'에서 '열린 도시 영등포'로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또 바꿀 건가요, 또 돈 쓸 건가요

더욱이 도시 브랜드 슬로건 교체는 공짜가 아니다. 도시의 얼굴을 바꾸는 작업인 만큼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된다. 새로운 슬로건을 개발하는 연구용역과 디자인 비용은 시작에 불과하다. 브랜드 매뉴얼 제작, 공공시설 사인물 교체, 홍보물 제작, 홈페이지 개편 등 수많은 후속 사업이 뒤따른다.

서울시와 부산시, 전북도, 세종시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브랜드 개발과 교체 과정에서 상당한 예산을 사용했다. 전국적으로 집계된 일부 사례만 단순히 더해 보면 수십억 원 규모에 이른다. 금액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수억 원을 들여 만든 브랜드가 다음 선거 이후 다시 폐기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기업이라면 3~4년마다 브랜드를 폐기하지는 않는다. 브랜드는 장기적으로 축적해야 가치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정부에서는 아니다. 선거 주기에 맞추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문제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 세 가지로 문제를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도시 브랜드 슬로건'과 단체장의 '시정 슬로건'이 혼재되어 있다. 도시 브랜드 슬로건은 도시의 정체성을 나타내야 하지만, 실제로는 단체장의 정책 철학이나 행정 비전을 홍보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도시의 고유한 자산보다 추상적인 미래 비전을 담으려 한다. 미국 도시들의 브랜드 슬로건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성공적인 도시 브랜드 슬로건은 역사, 자연, 산업, 사람, 가치 등 도시를 대표하는 하나의 핵심 자산에 집중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도시 브랜드 슬로건은 여러 특성과 미래 비전을 동시에 담으려다 보니 정체성이 모호해지곤 한다.

셋째, 지속성이 부족하다. 도시의 핵심 가치와 정체성은 단체장이 바뀌어도 잘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도시 브랜드 슬로건은 선거 때마다 교체된다. 도시 가치와 비전은 그대로인데 말만 바뀌는 셈이다. 브랜드는 시민들이 반복해서 볼 때, 경험이 쌓일 때 비로소 자산이 된다. 몇 년마다 바뀌는 브랜드는 기억나지 않는다.

I love NewYork 문구와 기념품 가게 간판Unsplash

반세기 동안 쌓아 올린 브랜드 'I♥NY'

해외의 성공적인 도시 브랜드 슬로건 사례를 봐도 중요한 것은 완성도보다 지속성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뉴욕의 'I Love New York' 역시 도입 당시에는 디자인이 촌스럽고 유치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뉴욕시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반세기 가까이 같은 브랜드를 꿋꿋이 유지했다. 그 결과 'I Love New York'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슬로건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공식 라이선스 상품만 연간 수백억 원 규모의 매출을 창출하는 자산으로 성장했다.

암스테르담의 'I Amsterdam' 역시 마찬가지다. 이 슬로건은 암스테르담만의 개방성과 시민 정체성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오늘날 붉은색 'I am'은 암스테르담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아 글자 일부만 보더라도 도시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의 인지도를 있다.

세계적인 도시 브랜드들은 대부분 특정 시장의 임기와 함께 등장하고 사라지는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을 오랜 시간 축적하는 장기 자산으로 운영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브랜드의 힘은 새로움이 아니라 반복에서 나온다.

도시의 얼굴은 시민의 것

한편, 도시 슬로건은 공공 자산이다. 그렇기에 특정 단체장의 정치적 소유물이 아니라 시민 공동의 자산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도시 브랜드 슬로건과 시정 슬로건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도시 브랜드 슬로건 도시의 역사와 문화, 산업과 가치 등 고유한 정체성을 담아 장기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반면 단체장의 정책 비전과 행정 철학은 비교적 자주 바뀌니, 별도의 시정 슬로건으로 운영한다. 서울시는 'Seoul, My Soul'과 '동행·매력특별시 서울'을 각각 사용하며 도시 브랜드와 시정 슬로건을 구분하고 있다. 반면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브랜드와 시정 슬로건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광주시의 '내☆일이 빛나는 기회도시 광주', 강원도의 '새로운 강원! 특별 자치시대!', 전북도의 '새로운 전북 특별한 기회', 경북도의 '경북의 힘으로! 새로운 대한민국' 등이 그 예다.

도시 브랜드는 대내외적으로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인 만큼 지역의 특성을 담으면서도 짧고 기억하기 쉬운 형태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반면 시정 슬로건은 단체장의 정책 방향과 행정 목표를 시민들에게 설명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면 된다. 두 개념을 명확히 구분할 때 도시 브랜드는 오래 갈 수 있고, 단체장 역시 자신의 정책 철학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이렇게 구분하면, 시정 슬로건 변경 후 각종 시설물과 홍보물을 교체하느라 예산 지출이 반복되었던 관행도 줄어들 것이다. 정책의 연속성과 예산 효율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둘째, 도시 브랜드 슬로건 변경에 대한 사회적 통제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앞서 도시 슬로건이 공공 자산이라고 말했다. 도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공공 자산을 바꾸는 일이라면, 주민 의견 수렴과 전문가 검토, 지방의회 논의 등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마땅하다.

특히 변경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보다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개발 용역비는 물론 사인물 교체, 홍보물 제작, 홈페이지 개편 등 후속 비용까지 포함한 전체 예산 규모를 시민들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도시 브랜드 슬로건 변경을 빠르게 진행 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최소한 그 결정의 근거와 비용만큼은 시민 앞에 투명하게 설명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셋째, 도시 브랜드 슬로건 개발 이전에 도시 정체성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체성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가치와 자산에서 나온다. 역사와 문화, 산업과 공간, 그리고 시민들의 삶에 대한 이해 없이 만들어진 브랜드는 시민이 공감하기 어렵다. 도시 브랜드 슬로건은 도시의 새로운 미래를 자유롭게 제시하기보다, 도시를 이해한 뒤 만든 결과물이어야 한다.

도시의 정체성은 4년짜리가 아니다

7월 1일이면 새로운 지방정부가 출범한다. 새로운 단체장들은 저마다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단체장들이 이전 시정의 흔적을 지우고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기 위해 새로운 슬로건을 고민할 것이다.

정치인은 가도 도시는 남는다. 도시의 역사와 문화, 시민들의 삶도 선거 결과에 따라 확확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지방정부가 남겨야 할 것은 시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는 도시의 정체성이다. 민선 9기는 포부를 위해 문구를 바꾸기보다 도시를 이해하고, 공고히 하는 지방정부이기를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위 기사의 전문은 피렌체의식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3049

글쓴이 임현종은 도시공학박사로, 국회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도시정책, 국가균형발전, 지방소멸 분야를 연구해왔다. 현재 도시와 지역발전 정책을 주제로 연구와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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