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 지역'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고리원자력발전소. 설계수명이 다해 영구정지된 고리1호기와 계속운전 절차를 밟고 있는 2호기, 그 옆으로 3·4호기의 모습이 보인다.
김보성
다시 정원에 놓인 바위를 떠올려보자. 다른 모든 작물과 꽃과 나무가 바위의 자리를 거스를 수 없듯, 핵발전이 들어선 자리에서는 다른 모든 선택이 그 거대함을 중심으로 다시 짜인다. 바위는 다른 선택지의 봉쇄이고, 봉쇄는 곧 민주주의의 억압이다. 김현우가 에너지를 민주주의와 인권의 언어로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핵발전소가 들어선 자리는 본래 빈 땅이 아니었다. 전남 영광, 부산 기장의 고리, 경주의 나아리 모두 풍요로운 어촌이었고, 아름다운 해수욕장이었다.
"전기 들어오는 공장을 정부에서 짓는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쫓겨난 거예요. 기존 산업들은 무너지고, 주민들은 보상금 받아서 살 수밖에 없게 되고. 그러다 건설 인구 떠나니까, 핵발전소 또 유치하자, 핵폐기장 또 유치하자, 말 나오고. 계속 의존에 의존을 거듭하게 되는 거죠."
이게 한국만의 일은 아니라며, 그는 프랑스의 좌파 철학자 앙드레 고르를 언급했다. 고르는 핵발전을 본질적으로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봤다. 거대 기술과 기업, 관료가 그 거대함과 일종의 '짝사랑'에 빠져, 다른 모든 선택지를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에너지 사상가 에이머리 로빈스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1976년, 그는 논문 <에너지 전략: 가지 않은 길>에서 두 길을 제시했다. 그중 딱딱한 길(경성 경로)은 핵발전과 화석연료, 부드러운 길(연성 경로)은 재생에너지와 지역 분산형 발전이다.
"왜 경성이냐 하면, 그 길밖에 못 간다는 거예요. 다른 모든 선택지를 가로막는다는 거죠. 그래서 경성 에너지는 비민주·군사주의·관료주의 같은 경성 정치를 유발하고 촉진하게 되고, 연성 에너지는 보다 민주적이고 분산적인 길로 갈 수 있고요."
벌써 반세기 가까이 된 이야기다. 그는 이 문제적 경성 정치를 10기 이상의 핵발전소를 가진 나라들의 공통점으로 꼽았다. 프랑스도, 미국도, 캐나다도 다르지 않다. 산업계와 언론과 정치가 한 덩어리로 엉킨 구조, 흔히 '핵 마피아'라 불리는 그 구조가 이 흐름을 강화한다.
그는 문득 밀양 송전탑 투쟁에서 나온 한 문장을 떠올렸다. 한때 사람들은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고 했다. 투표로 정치적 민주주의는 이뤘지만, 노조를 만들면 극심한 탄압이 이뤄지는 현실을 가리킨 말이었다. 그런데 밀양에서 그 문장이 바뀌었다며 김현우는 씁쓸하게 웃었다. 바뀐 문장은 이것이다.
"민주주의는 핵발전소 문 앞에서 멈춘다."
재생에너지로는 끝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그 연성의 길, 부드러운 길로 갈아타기만 하면 되는가. 재생에너지와 핵발전이 공존할 수 없을 때 재생에너지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다만 김현우는 갈아타는 것이 곧 도착은 아니라 했다.
"열역학의 기본 법칙이라는 게, 뭔가를 쓰면 뭔가 나온다는 거잖아요."
재생에너지에도 물질이 들어간다. 태양광 패널 하나, LED 한 알에도 어딘가에서 자원을 캐고 나르고 녹이는 일이 따라붙는다. 생태경제학자 허먼 데일리는 이것을 '물질적 처리량(throughput)'이라 불렀다. 무엇이든 만들어내면 지구가 감당해야 할 물질의 총량은 늘어난다. 다만 그 비용이 당장의 장부에 잡히지 않을 뿐이다.
여기서 그는 '제본스의 역설'을 꺼냈다. 전구가 효율적이 될수록 더 많은 전구를 켜고, 화면이 좋아질수록 더 큰 화면을 들인다. 전기는 덜 들지 몰라도, 캐내고 만들고 버리는 일은 외려 늘어난다. 이것이 제본스의 역설이다. 이러는 동안에도 우리는 그저 '더 싸졌다'라고만 느낀다. 그가 보기에 이럴 때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을 위해'라는 물음이다.
"내가 가진 스마트폰의 그 수많은 기능과 앱 중에, 정말 나한테 필요한 거, 내가 선택한 게 뭔가 하면,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도 거기 딸려오는 앱이나 광고 같은 건 불가피한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지구 행성적 한계를 돌파한다는 그 큰 사실하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고 없고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니까, 포기하고 적응해버리는 거예요. '나는 가성비로 최대 이익을 찾는 소비자가 되겠다' 하고요. 인터넷 검색 열심히 해서 제일 싼 거 사놓고 되게 우월하게 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더 종속이 되는 거거든요."
그는 이러한 종속을 '근원적 독점'이라 불렀다.
철학자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와 이반 일리치에게서 빌려온 개념이다.
고속도로가 생기면 차가 다니고, 차가 다니면 동네 가게가 사라지고, 마트가 멀어지니 차에 더 기대고, 차가 늘어 길을 넓히면 그 길은 또 막힌다. 그 끝에서 우리는 스스로 만들고 고치고 나누던 손을 잃고,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원치 않는 노동을 더 많이 떠안는다. 하나의 선택지에만 종속당하도록 하는 필연적인 방향. 이는 또한 지극히 비민주적인 방향이기도 하다.
고리를 끊으려면 몇 가지를 내려놔야 한다. 이만큼 벌고 쓰지 않아도 산다. 핵발전이 훨씬 적어도 산다. 수출을 이만큼 안 해도 산다. 임노동을 10퍼센트, 20퍼센트 줄이고 그 시간에 마을에서 함께 놀거나 기후 집회에 나가도 괜찮다. 그는 이 결단들을 '점프'라 불렀다.
"점프를 혼자 하려면 무섭잖아요. 번지점프 같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점프를 감행하는 사람들이 눈에 보여야죠. 바로 몇십 미터를 뛸 순 없으니까 몇십 센티미터 뛰어내리는 연습부터 하고요."
생각해 보면 우리가 누려온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길어야 50~60년 정도의 일이다. 인류사의 찰나에 불과한 그 시간을 우리는 영원한 보편으로 여기고 있다.
"화석연료랑 핵에너지가 이 세계에 선사한 것처럼 보였던 그 마술, 그 착각에서 깨어나야 해요. 맞춰 살아야죠. 우리가 신이 아닌 다음에야, 있는 조건에, 제한된 관계에, 우리 수명에 맞춰 살아야 하는 거니까요. 맞춰 사는 건 원래 모든 이들의 존재 방식이었잖아요."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에서 주디스 버틀러가 쓴 문장이 떠올랐다. "살 만한 삶은, 살 만한 세계가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의 삶보다 우리를 떠받치는 세계가 먼저라는 뜻이다. 그 세계의 한계 안에서 산다는 건, 공급원을 바꾸는 일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핵발전을 줄이는 게 첫걸음, 재생에너지가 두 번째 걸음이라면, 세 번째 걸음은 '얼마나 쓸 것인가'를 우리 손으로 다시 정하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탈성장'이라는 방향이다.

▲김현우(왼쪽)가 2023년 8월 29일부터 9월 2일까지 자그레브 국제 탈성장 대회에 참가했을 당시 찍은 사진.
김현우
성장을 멈추라는 뜻밖의 사람들
탈성장은 GDP를 한가운데에 둔 세계 경제의 작동 방식 전체를 건드린다. 그래서 현실의 저항도 그만큼 거세다.
"에너지 계획 세우고 거기 들어갈 예산을 짜는 건 관료들하고 선출직 정치인들인데, 이 사람들이 경제가 마이너스거나 성장 안 할 거라는 것 자체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거죠. OECD 국가 대부분이 이미 제로 성장에 들어섰는데도요. 그런데도 'AI를 하면, 핵융합을 하면, 또 뭘 하면 성장이 회복된다'고 자꾸 자기 만족적 주문을 거는 거죠."
흥미로운 건, 성장을 줄이거나 제어하자고 말하는 기후과학자가 많다는 점이다. 행성적 경계 연구를 이끄는 요한 록스트룀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다.
"기후과학하고 지금의 경제 체제를 쭉 엮어서 얘기하다 보면, GDP 성장 자체를 억제하거나 불필요한 소비와 생산을 줄여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자가 할 법한 결론으로 가거든요. IPCC 주 저자들도 점점 그런 얘기를 하고요."
실제로 IPCC 6차 보고서의 중간 검토본에는 '라이프스타일 변화'나 '탈성장' 같은 표현이 여러 번 나왔다. 그만큼 관련 논문이 쏟아졌다는 얘기다. 그러나 최종본에서 그 표현들은 사라졌다. 각국 협상 대표단이 모두가 동의할 말로만 다듬는 과정에서, 너무 낯설다는 이유로 잘려 나갔다.
"그래도 흐름은 분명히 바뀌고 있어요. IPCC 구성도 달라졌어요. 제3세계가 늘고, 여성이 늘었죠. 몇 년 뒤 7차 보고서쯤 되면, 탈성장이 최종본에까지 공공연하게 나올 수밖에 없을 거예요. 정작 제일 늦는 게 기존 정치인하고 관료하고 언론이고요."
그래서 기후운동은 이른바 '이과'와 건설적으로 대화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쉬운 일은 아니다. 자연과학과 공학은 이미 막대한 국가 지원에 단단히 묶여 있으니까. 그럴수록 온갖 방식의 말 걸기가 필요할 것이다. 김현우는 불교의 줄탁동시(啐啄同時)를 빌려와 말했다. 알 속 병아리가 안에서 쪼고 어미 닭이 밖에서 쫀다. 그걸 동시에 해야 비로소 껍질이 깨진다.
한국에도 탈성장의 뿌리는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한살림 선언과 동학, <녹색평론> 같은 흐름을 짚으면서 그는 더 익숙한 이름까지 끌어왔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그 난쟁이, 그 존재가 무한 성장주의의 폭력에 대한 저항 아니었나 싶어요. 전태일 열사 또한 사람을 갈아 넣는 자본주의 체제, 영국의 윌리엄 블레이크가 얘기한 '악마의 맷돌' 같은 걸 청계천에서 고발한 거 아닌가 싶고요. 우리는 거기서도 탈성장을 찾아낼 수 있어요."
그는 재발견, 재해석, 재연결을 강조해 말했다. 탈성장이란 이미 우리 곁에 있던 것을 다시 발견하고 다시 잇는 일이다. 그렇다면 탈성장은 가난해지자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어린아이일 때는 열심히 먹고 자라야 되지만, 다 큰 어른이 계속 그러면 그건 지구를 부수는 거예요. 지금의 성장이 꼭 그렇거든요."
지구적 한계를 필히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나에게 정말 필요한 만큼의 충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적정 성장'이나 '공생공락(conviviality)' 같은 개념이 중요하다. 함께(con) 산다(vivere)는 뜻의 이 말을 그는 '무조건 줄이자'가 아니라 '만족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미있게 잘 살자'는 의미로 풀었다.
그런데 여기에 결정적인 단서가 하나 더 붙는다. 탈성장은 모든 인간을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는다. 기후 붕괴의 원인을 가리키며 "인간이 다 똑같이 나쁘다"고 말하는 게 위험하듯, 탈성장도 모두에게 똑같이 줄이라 하지 않는다.
"북반구는 물질적 생산과 소비를 절대적으로 줄여야 하고, 남반구는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을 더 보장받아야죠."
어디서부터 멈출 것인가

▲2020년 6월 21일 당시 안 이달고 파리 시장(가운데)이 선거운동 중에 자전거를 탄 모습. 안 이달고 시장은 '15분 도시'를 시정의 핵심으로 삼았다.
AP/연합뉴스
그렇다면 무엇부터 시작할까. 김현우는 거대한 돌파구를 찾기보다 여러 가지를 함께 해보며 쓸 만한 사례를 잇고 키워가자고 했다. 그는 서울에 있으면서 갈수록 '식품 사막'을 절감하게 된다며 공공 마르쉐 같은 대안을 그렸다. 유럽 도시의 공터에 일주일에 한두 번 장이 서듯, 비어 가는 도시의 자리에 사라진 것을 다시 세워보자는 것이다. 이런 발상의 더 큰 그림이 '15분 도시'다².
15분 도시는 콜롬비아·프랑스의 도시학자 카를로스 모레노가 2016년에 내놓은 구상이다. 일터와 집, 먹거리와 돌봄, 교육과 여가 등 삶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걸어서, 혹은 자전거로 15분 안에 닿게 하자는 생각이다. 프랑스 파리 전 시장 안 이달고는 이를 시정의 핵심으로 삼아 학교 앞 200여 곳의 찻길을 막아 작은 공원으로 바꾸고, 올림픽이 끝난 콩코르드 광장의 절반을 보행자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김현우는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서울의 따릉이, 대전의 타슈 같은 공공자전거가 보행권 운동과 더 적극적으로 만나야 한다고 했다.
그는 'AI 모라토리엄' 또한 강조했다. 잠든 핵발전을 다시 깨운 가장 큰 명분이 바로 AI였으니까. 데이터센터가 빨아들이는 막대한 전력이 그대로 새 발전소의 수요로 잡힌다. 미국에서는 그 질주에 제동을 거는 목소리가 커졌다. 2026년 3월에는 'AI 데이터센터 모라토리엄법'이 발의됐다. 안전과 노동과 전기요금과 환경을 지킬 국가적 장치가 마련될 때까지, 일정 규모 이상 데이터센터의 신설과 증설을 멈추자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2025년 여름 이후에는 100곳이 넘는 지역사회에서 데이터센터에 빗장을 걸었다³. 그런데 정작 한국 정부는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다. 그러니 멈추자는 것이다. 멈춰 서서, 묻자는 것이다.
"잠깐 멈춰서 생각을 하고 논의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 방향이 맞아? 이 목적이 맞아? 이 수단이 맞아? 유일하게 이 길밖에 없어? 그런 모라토리엄을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제안할 필요가 있어요. 다른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인구의 과반이 아니라 10퍼센트, 20퍼센트만 돼도 많은 게 변하겠죠. 그러니까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나누는 거, '나도 그렇게 해볼까'를 전염병처럼 퍼뜨리는 거, 그게 탈성장의 중요한 전술이자 방법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감자를 기다리며
누구에게나 하루는 빠듯하다. 그 빠듯함 위에 탈성장을 또 하나의 숙제로 얹을 수는 없다. 그러나 김현우는 고개를 젓는다. 탈성장은 이미 하고 있는 일을 다시 잇는 일이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일이다.
"우리가 완벽한 해결책을 각자 갖고 있는 게 아니거든요. 꾸역꾸역 그렇게 가면서, 배우고, 오류가 있으면 수정도 하고 말이죠."
정원에 먼저 굴러든 바위는 무겁고, 혼자서는 옮길 수 없다. 그러나 그 곁에서 함께 서성이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언제 새벽이 올지 몰라, 나는 모든 문을 연다"⁴는 에밀리 디킨슨의 문장이 겹친다. 새벽이 올 때를 알아서 문을 여는 게 아니다. 모르기 때문에 열어두는 것이다. 그 문 앞에서 우리는 기다릴 수 있다. 바위가 치워질 날을, 그 자리에 심을 한 알의 감자를.
[필자 소개] 희음: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 노동을 하면서 르포와 시, 에세이를 쓴다. 기후-생태운동, 동물운동, 평화운동을 여러 해 이어왔다. 르포 <공장이 사라지고 남은 얼굴들> <김용균, 김용균들>(공저)을 썼고 , 시집 <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를 펴냈으며, 에세이 <우리 힘세고 사나운 용기>, 기후 시집 <여름, 연루> 등을 동료들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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