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식품의약품안전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2.16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게으른 반대, 단순한 청년 담론
우선 확실히 해두자. 이 글은 급여화를 무조건 찬성하려 쓴 글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청년층 탈모약 급여화가 재정 폭탄이라고 보지 않고, 충분히 타당성을 따져볼 사안이라 생각한다. 다만 우리에겐 여전히 수요 추계 자체가 없으니 확정적 답을 내리기에는 이르다. 다만 급여화에 대한 반대가 '게으르다'는 걸 말하고 싶다. 그 태도 아래는 청년 정치를 단순하게 치부하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한국 정치, 특히 청년에 대한 정치적 담론은 얼마나 밈(meme)처럼 납작한가.
이준석이 한 반박, 혹은 그와 비슷한 반박들은 단호해 보인다. 원칙을 잘 말한 것 같다. 문제는, 이 주장의 전제가 잘못되었다. 우선 이준석의 '수천억 원'이라는 숫자는 어디서 나왔는가. 전혀 근거가 없다. 일부 언론은 '탈모 환자 1000만 명'을 들먹이며 재정 폭탄이 터질 듯 말하지만, 탈모 환자의 대부분은 30대 후반 이후다.
이번 논의의 대상인 20대에서 30대 초반 환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이번 논의는 전 국민의 탈모 치료 비용 중에서도 아주 적은 부분이다. 또 탈모약에는 부작용이 있어, 증상이 약한 사람이 무작정 약을 쓰는 것도 아니다. 정확한 정책의 영향과 소요 재정을 파악하는 것이 정책의 출발점이다. 정책을 따지려면 계산을 건너뛴 채 '수천억 원'이라며, 겁나는 숫자부터 던지지는 말아야 하지 않나.
'건강'에 대해 단정 짓는 건 위험하다
건강하다는 건 뭘까. 행정적으로 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같은 탈모라도 '스무 살 탈모'와 '마흔 살 탈모'는 다르다. 흔한 일이 아니어서 옆에 같이 겪는 친구도 없고, 정보를 구할 데도 마땅찮다. 생명을 위협하는 병은 아니지만,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는 시기의 청년에게는 사회적·정신적 건강에 큰 타격을 주는 병이다.
하지만 이준석류의 반박은 건강이 무엇인지, 건강에 대한 국가의 의무가 무엇인지를 작은 영역으로 제한한다. 이준석은 청년 탈모 환자의 반대편에 희귀·중증질환을 놓는다. 은연중에 건강보험을 받을 자격을 아주 작은 영역으로 둔 것. 겉으로는 희귀·중증질환 환자들을 위한 말이다. 그러나 저 주장은 자칫 보건복지의 영역을 줄이고, 건강에 대한 공적 책임을 줄이는 방향으로 휘두르기에도 좋은 말이다.
'국민이 보편적 권리로 가져야 하는 건강한 상태'라는 기준은 늘 바뀐다. 각 사회의 경제적 상태, 인구학적 변화, 의학적 발전, 몸에 대한 사회적 담론들이 섞이고, '건강한 모습'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건강보험이 모든 의료 비용을 지원해 줄 수 없다. 그건 맞다. 그래도 건강보험이 생명에 직접 연관된 질환만 보장해서는 안 되며, 우리 사회가 합의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지원에도 힘써야 한다. 건강보험은 지금도 희귀·중증질환만 지원하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은 많은 부침 속에서도 보장 대상자와 보장 질환을 모두 확대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한 제도의 발전을 넘어, 한국 사회의 건강 개념이 발전한 것과 연관되어 있다.
건강과 미용 역시 무 자르듯 명확히 가를 수 없다. 사회적으로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몸과 외형은 사회마다 다르고, 한 사회에서도 계속 변한다. 물론 다양한 외형을 차별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외형이 차별받는 근거가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유독 한국에서는 외모에 의한 차별이 심하다. 가령 유력 정치인조차, 수많은 문제점은 제쳐둔 채 '가발 착용 여부'로 조롱당하기도 한다. 그럴 때 차별과 혐오는 정치인 개인이 아니라 비슷한 외모를 가진 모두가 겪는다. 사회적 차별의 요인이 되는 외형적 특성을 없애는데, 공적 지원은 안 되나?
중요한 문제이다. 차별은 불편으로, 불편은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사회에 버젓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탈모 환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든 미용의 문제는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거나 '외형에 따른 차별을 두드러지게 하는 재정 집행은 안 된다'라고. 둘 다 공허하고 가혹하다. 차별을 해소하려는 사회적 노력이 아주 미흡하고, 권리를 가질 자격을 가혹하게 따지는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탈모약 논쟁이 새로운 세대가 원하는 분배 원칙을 정리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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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찬성' '무작정 반대'하는 방향은 피해야
'청년 정치 담론'이 너무나 단순한 걸 이야기했는데, 사실 청년의 목소리를 듣는 정치'도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청년은 한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탈모 치료가 필요한 청년은 이 정책을 환영할 것이다. 그러나 그 뒤로 수많은 물음이 제기된다. 상대적으로 탈모 인구가 적은 여성은? 혹은 탈모를 겪지 않는 청년은? 탈모 치료가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탈모 치료보다 월세 지원이 낫지 않나요? 창업이나 취업 지원은요?
담론이 단순한 것은 청년을 단순 소비자로 여기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의 필요를 채우고 표를 받으려는 청년 정치는 무한한 도돌이표 논쟁으로 빠져든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 공적 부담과 이익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재정 지원을 무작정 반대하는 것 역시 '우파 포퓰리즘'일 것이다. 아무것도 제공할 수 없는 국가,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정치는 결국 민주 공화국을 위태롭게 한다. '저 사람'에게만 주는 국가, 무엇도 주지 않는 국가 모두 대안은 아니리라. 시민들이 합의할 수 있는 분배의 방식이 정립되지 않는 한, 무엇을 제공하든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든 끝나지 않는, 밑 빠진 독과 같은 논쟁만 이어진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탈모약 논쟁이 새로운 세대가 원하는 분배 원칙을 정리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 앞으로 다가오는 토론회가 국가의 역할과 대한민국 국민이 가져야 할 기본권이 무엇인지를 새로 확립하는 논쟁이 될 수 있을까.
새로운 분배 방법 정하는 곳 되길
이번 지방선거와 뒤이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서 청년들은 기득권에 대한 불만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특히 민주당 주류에 대한 불신이 민주당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왜 청년이 국민의힘에 투표했을까? 국민의힘 당론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라 보기 어렵다. 더 정확히는 달리 말할 길 없는 '반기득권 정서'의 임시 거처로 국민의힘을 찍은 것에 가깝다. 그러나 임시 거처도 오래 머물면 거주지가 되기 마련이다. 그냥 넘기면 안 된다. 청년들은 스스로를 대변할 언어 없이, 퇴행의 언어로 미래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이 싫어 국민의힘을 찍거나 투표에서 이탈하는 것 외에 별다른 대변 창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다.
다음 달, 정부는 탈모약 급여화를 '모두의 토론회'의 첫 의제로 올린다. 국민참여단 200명이 모여 탈모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할지 말지를 가린다. 예산을 키우는 것보다, 질문을 키우는 자리였으면 한다. 작은 약 하나가, 한 세대가 어떤 사회에서, 어떻게 나누며 살고 싶은지 목소리를 내는 입구가 될 수 있다. 만약 그 질문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탈모약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우리는 똑같은 자리로 되돌아갈 뿐이다. 게으른 자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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