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25 11:54최종 업데이트 26.06.2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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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46주년 및 위르겐 힌츠페터 10주기를 맞아 다큐멘터리 영화 <내 이름은 원덕기>를 제작하기 위한 펀딩을 진행합니다. 엔딩 크레디트에 펀딩 참여자의 이름을 기재합니다. 대한민국, 그리고 광주를 사랑한 팀 원버그(한국 이름 원덕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펀딩 바로가기 https://omn.kr/2i36q[편집자말]
노병유 전 광주CBS 기자가 지난 3월 10일 전일빌딩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중 팀 원버그의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오른쪽은 나경택 전 <전남매일> 기자가 촬영한 것으로 금남로에서 노 기자와 팀 원버그가 함께 부상자를 실은 들것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노병유 전 광주CBS 기자가 지난 3월 10일 전일빌딩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중 팀 원버그의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오른쪽은 나경택 전 <전남매일> 기자가 촬영한 것으로 금남로에서 노 기자와 팀 원버그가 함께 부상자를 실은 들것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강상우·나경택

이젠 할아버지가 된 두 기자가 46년 전 참혹함 그 자체였던 금남로 한복판에 다시 섰다. 두 기자의 뇌리엔 1980년 5월 이곳에 있던 한 외국인이 선명히 박혀 있다. 한 기자는 카메라 렌즈에 바짝 갖다 댔던 눈의 감각으로, 다른 기자는 들것에 함께 얹었던 손의 촉감으로 그때 그 시공간을 또렷이 소환했다.

"입가에 피를 흘리며 광주 시민을 구한 고마운 친구입니다."
- 노병유 전 광주CBS 기자

"그 모습을 보고 '이건 역사다' 해서 셔터를 눌렀습니다."
- 나경택 전 <전남매일> 기자

두 기자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항쟁 중 갖은 압박 속에서도 끝까지 광주를 지켰다. 또한 두 사람이 포착한 미국인 팀 원버그(Tim Warnberg, 당시 25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나경택 당시 <전남매일> 기자가 보안사에 뺏겼던 사진(아래)이 약 40년 만에 공개됐을 때 그 흔적이 확실히 드러났다.

5·18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 5월 19일, 들것에 실린 환자를 옮기는 미국 평화봉사단원 팀 원버그(Tim Warnberg, 체크무늬 셔츠)와 노병유 당시 광주CBS 기자(하얀 가운)를 비롯한 광주 시민들. 전일빌딩에 있던 나경택 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가 건너편 당시 광주관광호텔(현 무등빌딩)을 지나는 이들을 촬영했다. 이 사진은 2019년 말 공개된 '보안사 사진첩'에도 담겨 있었다.
5·18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 5월 19일, 들것에 실린 환자를 옮기는 미국 평화봉사단원 팀 원버그(Tim Warnberg, 체크무늬 셔츠)와 노병유 당시 광주CBS 기자(하얀 가운)를 비롯한 광주 시민들. 전일빌딩에 있던 나경택 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가 건너편 당시 광주관광호텔(현 무등빌딩)을 지나는 이들을 촬영했다. 이 사진은 2019년 말 공개된 '보안사 사진첩'에도 담겨 있었다.나경택 제공

1978년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온 팀은 전남대병원 등 광주·전남 일원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마주했고 자신과 함께 일상을 이어가던 광주 시민을 위해 항쟁에 몸을 담갔다.

항쟁 초기 팀은 외국인 신분을 적극 활용해 계엄군 곤봉에 맞던 시민을 구했고 길가에 방치된 부상자를 병원에 옮겼다. 고 위르겐 힌츠페터(2016년 작고) 등 여러 외신기자가 광주로 진입한 후엔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통역을 맡았고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본인도 기꺼이 얼굴을 내놓고 인터뷰에 응했다. 항쟁 직후에도 관련 자료·증언을 동료에게 건네 5·18의 진실을 알리는 북유럽 지역의 외신보도를 이끌기도 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3월 10일과 11일 노병유(81) 당시 광주CBS 기자와 나경택(77) 당시 <전남매일> 기자를 만났다. 두 기자는 들것을 든 팀의 모습을 현장에서 목격한 이들이다. 당시 노 기자는 팀과 함께 들것을 든 채 금남로를 지나 전남도청 앞으로 이동했고 이 모습을 나 기자는 전일빌딩에서 촬영했다. 두 기자는 모두 외국인 신분으로 항쟁 복판에 있던 팀의 "용기"를 힘주어 설명했다.

최루탄 뚫고 들것 든 팀과 시민들

노병유 전 광주CBS 기자가 지난 3월 10일 전일빌딩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던 중 5·18민주화운동 당시 자신과 팀 원버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 속 팀 원버그가 최루탄 때문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해당 사진은 나경택 전 <전남매일> 기자가 촬영했다.
노병유 전 광주CBS 기자가 지난 3월 10일 전일빌딩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던 중 5·18민주화운동 당시 자신과 팀 원버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 속 팀 원버그가 최루탄 때문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해당 사진은 나경택 전 <전남매일> 기자가 촬영했다. 강상우

위 사진의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이가 팀,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이가 노 기자다. 사진 속 광주관광호텔(현 무등빌딩) 자리에 취재팀과 함께 선 노 기자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팀의 모습을 가리키며 "굉장히 어마무시"했고 "최루가스가 난무했다"며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

항쟁 둘째날인 19일 오전, 취재를 마치고 광주CBS(당시 가톨릭센터에 위치, 현 5·18민주화운동기록관)로 향하던 노 기자는 최루탄을 피해 근처 외과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노 기자는 들것에 실린 환자를 두고 병원장과 대화를 나누는 외국인을 발견했다. 그가 팀이었다. 노 기자는 "병원장한테 들어보니, 이 외국인이 혼자 환자를 부축해 왔다고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단한 일이죠. 지금도 생각하면 감사한 것이, 그렇게 중상을 입은 사람을 보면 무서워서 접근을 못하잖아요. 그런데 그 외국인은 피를 흘리면서까지 그 사람을 부축해서 병원에 왔거든요. 병원에 우리나라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 외국인 혼자서 (환자를) 데리고 왔어요."

고 위르겐 힌츠페터가 1980년 5월 24일 전남대병원 옥상에서 촬영한 팀 원버그 인터뷰 영상을 갈무리한 것. 5·18기념재단이 보관하고 있던 이 영상은 그 동안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으며, 항쟁 한복판에 있던 인물의 현장 인터뷰는 5·18 관련 기록물 중 이 영상이 유일하다.
고 위르겐 힌츠페터가 1980년 5월 24일 전남대병원 옥상에서 촬영한 팀 원버그 인터뷰 영상을 갈무리한 것. 5·18기념재단이 보관하고 있던 이 영상은 그 동안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으며, 항쟁 한복판에 있던 인물의 현장 인터뷰는 5·18 관련 기록물 중 이 영상이 유일하다.위르겐 힌츠페터, 5·18기념재단 제공

병원장은 "당장 종합병원에 가서 수술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하다"고 다급히 말했다. 곧장 노 기자는 병원장에게 "의사 가운을 벗어달라"고 부탁했고 팀에게는 들것의 "앞을 들라"고 말했다. 생사가 오가는 긴박했던 상황에 노 기자와 외국인의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무 말 없이 그냥 따르더라고요. 그때 보니까 입술에 피가 이렇게 묻어있어요. 흘러내린 피를 내가 확실히 봤거든요. 그래서 내가 '당신 누구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평화봉사단 (팀) 원버그'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때 병원에 머무른 시간이 거의 2~3분? 심각한 상황이라서 대화했던 시간이 길지 않았어요."

노 기자가 병원장에게 의사 가운을 달라고 했던 이유는 "곳곳에 군인들만 있던 금남로를 지나려면 의사 행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앞에 외국인을 세워야 (상대적으로 계엄군 등의 위험으로부터) 괜찮겠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그때의 팀을 떠올리며 "상당히 긴장한 모습이었다"면서도 "(그럼에도) 묵직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병원을 나온 뒤 상황을 두고 노 기자는 "단둘이 들것을 들고 가다 무거워서 가는 길에 '도와달라'고 악을 쓰니, 용감한 시민 세 명이 나와서 함께 들었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팀과 함께 도청 앞 분수대까지 환자를 이송한 후 전남대병원으로 향하는 앰뷸런스에 환자를 태웠다"며 "피를 흘리면서도 아무 말 없이 환자를 옮긴 팀에게 너무나 고마웠다"고 덧붙였다.

공수부대에 맞을 각오한 그의 용기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날(1980년 5월 27일) 나경택 당시 <전남매일> 기자(왼쪽)의 모습과 지난 3월 11일 전일빌딩에서 만난 그.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날(1980년 5월 27일) 나경택 당시 <전남매일> 기자(왼쪽)의 모습과 지난 3월 11일 전일빌딩에서 만난 그.나경택 제공, 강상우

이러한 두 사람의 모습을 맞은편 전일빌딩에서 지켜본 이가 나 기자다. 렌즈로 팀의 움직임을 따라간 나 기자는 "공수부대에게 맞을 각오를 하고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 기자는 18일 첫날부터 계엄군의 만행을 취재했고 그들에게 붙잡혀 군홧발로 맞다 겨우 풀려나기도 했다. 위 모습을 포착한 19일에도 계엄군의 눈을 피해 카메라 두 대를 점퍼에 숨겼고 고층빌딩이었던 진일빌딩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는 팀을 발견하기 전 상황을 이렇게 떠올렸다.

"가톨릭센터 앞에서 꽃집을 했던 사람이 공수부대원에게 쫓겨 꽃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곤봉으로 두들겨맞았는지 눈알이 빠질 것만 같았어요. 그리고 곧 쓰러졌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 5월 19일, 들것에 실린 환자를 옮기는 미국 평화봉사단원 팀 원버그(Tim Warnberg, 체크무늬 셔츠)와 광주 시민들. 전일빌딩에 있던 나경택 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가 건너편 당시 광주관광호텔(현 무등빌딩)을 지나는 이들을 촬영했다.
5·18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 5월 19일, 들것에 실린 환자를 옮기는 미국 평화봉사단원 팀 원버그(Tim Warnberg, 체크무늬 셔츠)와 광주 시민들. 전일빌딩에 있던 나경택 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가 건너편 당시 광주관광호텔(현 무등빌딩)을 지나는 이들을 촬영했다.나경택 제공

이후 나 기자는 이 부상자가 들것에 실려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들것을 든 이들은 외국인 1명, 의사 가운을 입은 1명, 광주 시민 3명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외국인은 팀, 의사 가운을 입은 이는 노 기자였다. 나 기자는 당시 팀의 모습을 두고 "망원렌즈로 당겨서 봤을 때 아주 긴박한 표정이 보였다"라며 "내가 살아야겠다는 마음보다 어떻게든 이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고회상했다.

"외국인이 저렇게 광주 시민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환자를 이송)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나도 내려가서 같이 (들것을) 들어주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다만 저는 기자이기 때문에 기록하겠다는 마음이 더 앞서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러면서 나 기자는 "그 마음과 용기에 (감탄해) 정말 사진 기자로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저건 역사다' 싶어 기록했다"라고 덧붙였다.

긴박했던 이 상황은 광주 동구청이 당시 작성한 '5·18사태 일지'에도 선명히 남아 있다. <오마이뉴스>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람한 이 일지에는 "19일 오후 3시 50분 : CBS 노병유(보도부 차장), 미국인 1명, 남자 1명 머리 박살. 단가(담가[擔架]의 오기, '들것' 의미)에 싣고 관광호텔 쪽으로 감'이라고 적혀 있다.

"광주 위해 고생, 우리에게 큰 힘 됐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기록한 광주 동구청 일지. "CBS 노병유(보도부 차장), 미국인 1명. 남자 1명 머리 박살. 단가(담가의 오기, 들것 의미)에 싣고 관광호텔 쪽으로 감"이라고 적혀 있다. 이 기록에서의 "미국인 1명"은 평화봉사단 자격으로 광주에 머물던 팀 원버그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기록한 광주 동구청 일지. "CBS 노병유(보도부 차장), 미국인 1명. 남자 1명 머리 박살. 단가(담가의 오기, 들것 의미)에 싣고 관광호텔 쪽으로 감"이라고 적혀 있다. 이 기록에서의 "미국인 1명"은 평화봉사단 자격으로 광주에 머물던 팀 원버그이다. 강상우

팀은 광주 한복판에서 5·18일 경험하고 본래 꿈이었던 의사의 길 대신 '한국학 연구자'로 진로를 바꿨다. 그러면서 하와이대학 재학 중이던 1987년 영어권 최초로 5·18을 다룬 논문 < The Kwangju Uprising: An Inside View(광주항쟁: 목격자의 견해) >을 발표했다. 그는 "군인들 사이를 뚫고 가장 심하게 다친 사람들 중 몇몇을 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다"고 이 논문에 적었다.

5월 19일 (월요일)

군인들이 길을 통제하고 있는 가운데 부상자들은 길바닥에 방치돼 있었는데, 그 중에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중략) 우리는 군인들 사이를 뚫고 가장 심하게 다친 사람들 중 몇몇을 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 의사(노 기자를 오인한 것으로 추정)와 나는 매우 심하게 부상당한 사람 한 명을 들것을 이용해 군인들 사이를 뚫고 내가 일하던 전남대학교 병원으로 그를 옮겼다. 내가 후송했던 환자는 카톨릭센터 앞에서 작은 꽃집을 운영하던 남자였다. 당시 그의 부상이 얼마나 심각했냐면, 내가 2년 후에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11번의 수술을 거친 후였고 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팀의 고향 친구인 로버트 그라찬(전남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도 그로부터 들었던 당시 상황을 지난 3월 24일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전했다.

"한 번은 팀과 제가 광주 금남로를 걷고 있었는데, 길가에서 꽃을 팔던 한 남자가 우리를 불러 세워 팀을 가족 모임에 초대했습니다. 그 남자는 항쟁 초기에 팀이 진료소로 옮겨줬던 부상 당한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를 기억한 남자는 팀에게 '당신이 내 목숨을 구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987년 하와이대학 한국학 학술지에 실린 팀 원버그의 논문 의 원본. 2026. 03. 04.
1987년 하와이대학 한국학 학술지에 실린 팀 원버그의 논문 의 원본. 2026. 03. 04.이희훈

1986년 하와이대학 한국학 석·박사과정에 입학했던 팀은 앓고 있던 지병이 악화돼 1993년 2월 고향 미네소타에서 숨을 거뒀다. 그를 기억하는 두 기자는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노 기자는 "외국인이었지만 생명을 존중했던 그 자세를 참 존경했다"라며 "살아 있다면 한 번쯤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 굉장히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이어 "5·18을 현장에서 몸소 겪은 모습을 생각해보면 나와 함께 병원으로 옮긴 그분 말고도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줬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며 "정말 한국을 위해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나 기자는 팀이 외신기자 통역을 돕고 이후 외신보도까지 이끈 점을 언급하며 "우리(기자)가 해야 할 일을 저분이 대신 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런 분들이 광주의 진실 하나하나를 전 세계에 알린 덕분에 우리에게 큰 힘이 됐다"며 "더 오래 살아 5·18의 진실을 더 많이 알렸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다. 마음 속으로나마 큰 감사를 드리며 영혼의 안식을 바란다"라고 위로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팀 원버그와 들것에 실린 환자를 이송한 노병유 전 광주CBS 기자(왼쪽)와 나경택 전 전남매일 사진기자를 지난 3월 금남로 일대에서 만났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팀 원버그와 들것에 실린 환자를 이송한 노병유 전 광주CBS 기자(왼쪽)와 나경택 전 전남매일 사진기자를 지난 3월 금남로 일대에서 만났다.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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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소중한 취재 소중한·전선정·김화빈·이진민·유지영
촬영 강상우·이희훈 편집 콘텐츠팜 호미
CG 김수연 타이틀 김소설 음향 DMC 사운드 비전 내래이션 이승준
펀딩 기획 장유정·이기종·봉주영
영상 제공 5·18기념재단·루먼 형제(Ben&Sam Luhmann)
영상 번역 자문 로버트 그라찬
사진·자료 제공 고진석·나경택·서나래·유경남·변재원·안영주·록산 원버그 윌슨·데이비드 돌린저·폴 코트라이트·캐롤린 투르비필·케빈 페어뱅크스·로버트 그라찬·5·18기념재단·5·18민주화운동기록관·외교사료관·박지원 의원실
촬영 협조 5·18기념재단·5·18민주화운동기록관·전남대병원·전일빌딩245·국가보훈부·별밭·필로스팅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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