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 5월 19일, 들것에 실린 환자를 옮기는 미국 평화봉사단원 팀 원버그(Tim Warnberg, 체크무늬 셔츠)와 광주 시민들. 전일빌딩에 있던 나경택 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가 건너편 당시 광주관광호텔(현 무등빌딩)을 지나는 이들을 촬영했다.
나경택 제공
이후 나 기자는 이 부상자가 들것에 실려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들것을 든 이들은 외국인 1명, 의사 가운을 입은 1명, 광주 시민 3명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외국인은 팀, 의사 가운을 입은 이는 노 기자였다. 나 기자는 당시 팀의 모습을 두고 "망원렌즈로 당겨서 봤을 때 아주 긴박한 표정이 보였다"라며 "
내가 살아야겠다는 마음보다 어떻게든 이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고회상했다.
"외국인이 저렇게 광주 시민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환자를 이송)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나도 내려가서 같이 (들것을) 들어주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다만 저는 기자이기 때문에 기록하겠다는 마음이 더 앞서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러면서 나 기자는 "
그 마음과 용기에 (감탄해) 정말 사진 기자로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저건 역사다' 싶어 기록했다"라고 덧붙였다.
긴박했던 이 상황은 광주 동구청이 당시 작성한 '5·18사태 일지'에도 선명히 남아 있다. <오마이뉴스>가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람한 이 일지에는 "19일 오후 3시 50분 : CBS 노병유(보도부 차장), 미국인 1명, 남자 1명 머리 박살. 단가(담가[擔架]의 오기, '들것' 의미)에 싣고 관광호텔 쪽으로 감'이라고 적혀 있다.
"광주 위해 고생, 우리에게 큰 힘 됐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기록한 광주 동구청 일지. "CBS 노병유(보도부 차장), 미국인 1명. 남자 1명 머리 박살. 단가(담가의 오기, 들것 의미)에 싣고 관광호텔 쪽으로 감"이라고 적혀 있다. 이 기록에서의 "미국인 1명"은 평화봉사단 자격으로 광주에 머물던 팀 원버그이다.
강상우
팀은 광주 한복판에서 5·18일 경험하고 본래 꿈이었던 의사의 길 대신 '한국학 연구자'로 진로를 바꿨다. 그러면서 하와이대학 재학 중이던 1987년 영어권 최초로 5·18을 다룬 논문 < The Kwangju Uprising: An Inside View(광주항쟁: 목격자의 견해) >을 발표했다. 그는 "군인들 사이를 뚫고 가장 심하게 다친 사람들 중 몇몇을 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다"고 이 논문에 적었다.
5월 19일 (월요일)
군인들이 길을 통제하고 있는 가운데 부상자들은 길바닥에 방치돼 있었는데, 그 중에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중략) 우리는 군인들 사이를 뚫고 가장 심하게 다친 사람들 중 몇몇을 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 의사(노 기자를 오인한 것으로 추정)와 나는 매우 심하게 부상당한 사람 한 명을 들것을 이용해 군인들 사이를 뚫고 내가 일하던 전남대학교 병원으로 그를 옮겼다. 내가 후송했던 환자는 카톨릭센터 앞에서 작은 꽃집을 운영하던 남자였다. 당시 그의 부상이 얼마나 심각했냐면, 내가 2년 후에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11번의 수술을 거친 후였고 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팀의 고향 친구인 로버트 그라찬(전남대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도 그로부터 들었던 당시 상황을 지난 3월 24일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전했다.
"한 번은 팀과 제가 광주 금남로를 걷고 있었는데, 길가에서 꽃을 팔던 한 남자가 우리를 불러 세워 팀을 가족 모임에 초대했습니다. 그 남자는 항쟁 초기에 팀이 진료소로 옮겨줬던 부상 당한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를 기억한 남자는 팀에게 '당신이 내 목숨을 구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987년 하와이대학 한국학 학술지에 실린 팀 원버그의 논문 의 원본. 2026. 03. 04.
이희훈
1986년 하와이대학 한국학 석·박사과정에 입학했던 팀은 앓고 있던 지병이 악화돼 1993년 2월 고향 미네소타에서 숨을 거뒀다. 그를 기억하는 두 기자는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노 기자는 "외국인이었지만 생명을 존중했던 그 자세를 참 존경했다"라며 "살아 있다면 한 번쯤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 굉장히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이어 "5·18을 현장에서 몸소 겪은 모습을 생각해보면 나와 함께 병원으로 옮긴 그분 말고도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줬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며 "
정말 한국을 위해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나 기자는 팀이 외신기자 통역을 돕고 이후 외신보도까지 이끈 점을 언급하며
"우리(기자)가 해야 할 일을 저분이 대신 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런 분들이 광주의 진실 하나하나를 전 세계에 알린 덕분에 우리에게 큰 힘이 됐다"며 "더 오래 살아 5·18의 진실을 더 많이 알렸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다. 마음 속으로나마 큰 감사를 드리며 영혼의 안식을 바란다"라고 위로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팀 원버그와 들것에 실린 환자를 이송한 노병유 전 광주CBS 기자(왼쪽)와 나경택 전 전남매일 사진기자를 지난 3월 금남로 일대에서 만났다.
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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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소중한 취재 소중한·전선정·김화빈·이진민·유지영
촬영 강상우·이희훈 편집 콘텐츠팜 호미
CG 김수연 타이틀 김소설 음향 DMC 사운드 비전 내래이션 이승준
펀딩 기획 장유정·이기종·봉주영
영상 제공 5·18기념재단·루먼 형제(Ben&Sam Luhmann)
영상 번역 자문 로버트 그라찬
사진·자료 제공 고진석·나경택·서나래·유경남·변재원·안영주·록산 원버그 윌슨·데이비드 돌린저·폴 코트라이트·캐롤린 투르비필·케빈 페어뱅크스·로버트 그라찬·5·18기념재단·5·18민주화운동기록관·외교사료관·박지원 의원실
촬영 협조 5·18기념재단·5·18민주화운동기록관·전남대병원·전일빌딩245·국가보훈부·별밭·필로스팅하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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