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27 11:50최종 업데이트 26.06.2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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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발효와 숙성의 성지는 늘 외진 곳에 있을까.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세론 치즈마을을 찾아갈 때도 그랬다. 좁은 산길을 돌아 닿은 마을에서, 나는 가난과 고립이 전통 식문화를 지워낸 것이 아니라 때로는 오래 붙잡아두는 방패막이 될 수 있음을 보았다. 이번에는 하몽이었다. 스페인 남부의 그라나다 인근, 시에라 네바다 산맥 깊숙한 곳, 트레벨레스(Trévelez)에서 같은 질문을 마주했다. 오래된 음식은 풍요와 속도, 효율의 한복판이 아니라, 느리고 불편하고 외진 곳에서 끝내 살아남아 있었다.

5월 초에도 눈이 남아 있던 시에라 네바다 프라돌라노 고산지대. 트레벨레스(Trevelez)로 향하기 전날 머문 이곳의 차가운 공기는 하몽 숙성에 필요한 고산 기후를 몸으로 먼저 느끼게 했다.
5월 초에도 눈이 남아 있던 시에라 네바다 프라돌라노 고산지대. 트레벨레스(Trevelez)로 향하기 전날 머문 이곳의 차가운 공기는 하몽 숙성에 필요한 고산 기후를 몸으로 먼저 느끼게 했다.이찬재

트레벨레스 하몽은 길 위에서 시작됐다

트레벨레스(Trévelez)를 찾아가기 전날 밤, 우리는 안달루시아의 중심 도시 그라나다 인근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프라돌라노(Pradollano)에 머물렀다. 해발 2500m대의 고산 스키 리조트였다. 리프트를 타고 더 오르면 3000m대의 설원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숙소 창밖으로는 눈 덮인 능선이 보였다. 5월 2일이었지만, 여전히 숙소 옆으로 스노보드가 지나갔다. 여기는 봄의 안달루시아가 아니었다. 눈과 바람이 아직 물러나지 않은 고산의 세계였다.


숙소 바로 위쪽, 해발 2700m대에는 '눈의 성모'라 불리는 비르헨 데 라스 니에베스(Virgen de las Nieves) 기념물이 서 있었다. 흰 눈과 검은 바위, 차가운 바람 사이에 성모상이 고요히 서 있었다. 이름 그대로 눈의 성모였다. 그곳에서는 사람의 발걸음보다 바람의 시간이 더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다.

해발 2,700m대의 ‘비르헨 데 라스 니에베스(Virgen de las Nieves)’ 기념물. 눈과 바람이 지배하는 시에라 네바다의 고산 환경은 트레벨레스 하몽을 이해하는 첫 번째 배경이었다.
해발 2,700m대의 ‘비르헨 데 라스 니에베스(Virgen de las Nieves)’ 기념물. 눈과 바람이 지배하는 시에라 네바다의 고산 환경은 트레벨레스 하몽을 이해하는 첫 번째 배경이었다.이찬재

이미 우리는 시에라 네바다 산 위에 올라와 있었다. 그래서 트레벨레스도 산길을 따라 조금만 운전하면 닿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트레벨레스는 같은 시에라 네바다의 품 안에 있었지만, 산맥의 반대편인 남쪽 알푸하라(Alpujarra)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도로는 능선을 곧장 넘어 이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먼저 눈 덮인 고산지대에서 내려와 그라나다 방향 외곽 도로와 서쪽 우회로를 따라 란하론(Lanjarón)·오르히바(Órgiva) 방면의 알푸하라로 들어간 뒤, 다시 해발 1400m대의 트레벨레스를 향해 산을 올라야 했다.

트레벨레스로 향하는 길은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가장 강하게 기억에 남은 길 가운데 하나였다. 지도 위에서는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다. 실제 길 위에서 거리는 숫자로만 계산되지 않았다. 커브 하나를 돌면 또 다른 커브가 나타났다. 산모퉁이를 넘으면 더 깊은 협곡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길은 곧장 나아가지 않았다. 산의 주름을 따라 휘어지고, 꺾이고, 다시 감겼다.

그라나다 방향 외곽도로를 벗어나자 도로의 표정이 달라졌다. 평온한 도시 주변의 길은 사라졌다. 해발 약 700m 안팎의 그라나다 일대를 지나 시에라 네바다 남쪽 자락으로 접어들자, 길은 다시 1400m를 향해 고도를 높였다. 중앙선이 있는 왕복 2차선 도로였지만, 구간에 따라 폭은 넉넉하지 않았다. 오른쪽으로는 절벽과 협곡이 이어졌다. 어떤 구간은 난간 하나가 산길의 경계를 알려주었다. 차창 아래로는 협곡이 깊게 꺼져 있었다. 지형의 굴곡을 따라 헤어핀 턴이 이어졌다.

트레벨레스로 향하는 알푸하라 산악도로. 잘 포장된 길이지만, 깊은 협곡과 이어지는 커브는 이 마을이 왜 오랫동안 외진 고산마을로 남았는지를 보여준다. 표지판 너머로 보이는 마을이 트레벨레스이다.
트레벨레스로 향하는 알푸하라 산악도로. 잘 포장된 길이지만, 깊은 협곡과 이어지는 커브는 이 마을이 왜 오랫동안 외진 고산마을로 남았는지를 보여준다. 표지판 너머로 보이는 마을이 트레벨레스이다.이찬재

코너를 돌 때마다 속도를 줄였다. 반대편에서 관광버스나 농가의 트랙터가 나타날 수도 있었다. 차창 밖 풍경은 흰 마을과 회색 바위, 검푸른 산그늘로 바뀌어 갔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산안개가 차창을 덮었다. 스페인어로 니에블라(Niebla)라 부르는 안개였다. 안개는 천천히 내려앉지 않았다. 어느 순간 앞길을 가렸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절벽과 산등성이가 흰 장막 뒤로 사라졌다. 차 안에는 말수가 줄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음만 유난히 크게 들렸다.

'정말 이 길 끝에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기는 한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무렵, 산 너머로 벼랑 끝에 매달린 듯한 하얀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색 바위와 검푸른 산그늘 사이로 흰 벽들이 떠오르듯 나타났다. 마을은 산 위에 지어진 것이 아니라, 산에 기대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긴장이 조금 풀렸다. 동시에 또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저토록 외진 곳에 사람이 살고, 저토록 험한 곳에서 한 음식이 수백 년을 버텨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때 알았다. 트레벨레스의 하몽은 마을에 도착해서야 만나는 음식이 아니었다. 이미 그 길 위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끝없이 휘어지는 산길, 절벽 아래로 꺼지는 협곡, 차창을 삼키는 안개, 차갑고 건조한 바람. 이 모든 것이 트레벨레스 하몽의 첫 번째 설명이었다. 길 자체가 이 마을의 고립을 증언하고 있었다. 그 고립이야말로 이곳의 숙성 문화를 오래 지켜낸 첫 번째 성벽이었다.

산비탈에 자리한 트레벨레스 마을. 해발 1,400m대의 고산 지형과 차갑고 건조한 바람은 이곳 하몽 숙성 문화의 가장 중요한 자연 조건이다.
산비탈에 자리한 트레벨레스 마을. 해발 1,400m대의 고산 지형과 차갑고 건조한 바람은 이곳 하몽 숙성 문화의 가장 중요한 자연 조건이다.이찬재

해발 약 1476m.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고산 마을 중 하나로 알려진 트레벨레스에 당도했다. 차 문을 여는 순간, 차갑고 건조한 산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그 바람은 단순한 공기가 아니었다. 수백 년 동안 돼지 뒷다리를 말리고, 소금을 고기 깊숙이 밀어 넣고, 고기 자체의 효소가 단백질과 지방을 천천히 감칠맛과 향으로 바꾸도록 기다려 준 보이지 않는 장인 같았다.

하몽으로 살아온 산악 마을

마을 입구 광장에 차를 세웠다. 우리를 먼저 맞이한 것은 커다란 돼지다리 조형물이었다. 그 옆에는 'Jamón de Trévelez'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뒤로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펼쳐졌다. 스페인과 안달루시아, 유럽연합의 깃발도 나란히 펄럭이고 있었다. 그 조형물은 단순한 관광지의 인증샷 명소가 아니었다. 마을이 무엇으로 살아왔는지를 가장 솔직하게 말해주는 표식이었다.

트레벨레스 마을 입구의 하몽 조형물. 이곳에서 하몽은 단순한 특산물이 아니라 마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전통 장독 발효식품 기업 진아에프앤씨의 송연실 대표와 이찬재 실장이 조형물 앞에서 마을을 조망하고 있다.
트레벨레스 마을 입구의 하몽 조형물. 이곳에서 하몽은 단순한 특산물이 아니라 마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전통 장독 발효식품 기업 진아에프앤씨의 송연실 대표와 이찬재 실장이 조형물 앞에서 마을을 조망하고 있다. 이찬재

트레벨레스는 하몽을 만들어 파는 마을이 아니었다. 하몽으로 살아온 산악 마을이었다. 마을 초입은 관광객으로 북적거렸다. 그러나 그 북적거림 속에도 산악마을이 오래 품어온 밀도가 느껴졌다. 하얀 벽, 좁은 골목, 산비탈을 따라 이어진 집들, 간판마다 걸린 하몽 사진,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짭조름한 고기 향기. 차가운 바람은 골목을 통과해 다시 산 쪽으로 흘러갔다. 마을 전체가 거대한 숙성실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액젓과 된장, 간장을 장독으로 발효하면서, 원료보다 먼저 보는 것이 있다. 그 환경이다. 같은 멸치, 같은 콩이라도 어느 장독에 담느냐에 따라 맛은 달라진다. 장독대의 위치에 따라 햇빛을 받는 시간이 다르다.

바람이 드나드는 방향도 다르다. 낮과 밤의 온도 변화도 조금씩 다르다. 같은 마당 안에서도 하루 종일 햇볕을 받는 장독과 그늘이 먼저 드리우는 장독의 맛은 같지 않다. 발효와 숙성은 원료만의 일이 아니다. 원료가 놓인 자리와 빛, 바람, 시간, 장독의 모양까지 함께 빚어내는 오케스트라다.

하몽도 마찬가지였다. 된장과 액젓이 미생물의 작용을 중요한 축으로 삼는 발효식품이라면, 하몽은 소금과 건조, 그리고 고기 자체에 들어 있는 효소가 긴 시간 동안 단백질과 지방을 분해하며 맛과 향을 만들어가는 건조숙성 식품에 가깝다. 같은 돼지 뒷다리라도 어느 고도에서, 어떤 공기를 맞으며, 어떤 속도로 수분을 잃고, 어떤 장인의 손을 거쳤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된다.

트레벨레스 하몽의 특별함은 돼지가 반드시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데 있지 않다. 이베리코 흑돼지처럼 원료의 희소성으로 프리미엄을 설명하는 방식과도 다르다. 핵심은 돼지다리가 해발 1200m 이상 알푸하라 고산지대의 공기와 소금, 건조한 바람, 긴 숙성 시간을 통과하며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있다.

시에라 네바다, 거대한 천연 숙성실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거대한 산맥을 올려다보았다. 스페인어로 '시에라(Sierra)'는 톱날 모양의 산맥을 뜻하고, '네바다(Nevada)'는 눈이 덮인 산을 뜻한다. 이름 그대로 시에라 네바다는 '눈을 인 톱날 산맥'이다. 이 산맥은 해발 약 3,482m의 최고봉 물하센(Mulhacén)을 품고 있다. 스페인 본토의 최고봉을 품은 고산 지대다.

숙성의 관점에서 시에라 네바다는 기묘한 테루아(Terroir)를 가졌다. 산맥 남쪽 아래는 지중해와 가까운 뜨겁고 건조한 기류를 품는다. 그러나 해발 3,000m가 넘는 산맥 정상부는 계절에 따라 눈과 얼음의 기운을 오래 간직한다. 뜨거운 안달루시아의 대지 위에 하얀 눈의 왕관을 쓴 셈이다.

이 극단적인 지리적 특성은 해발 1,400m대의 트레벨레스에 독특한 교차 기후를 선물했다. 낮에는 안달루시아의 강한 태양이 하몽 표면의 수분을 말려준다. 밤에는 산맥에서 내려온 찬바람이 숙성 속도를 안정시킨다. 고온다습한 평지라면 더 강한 염장과 인위적 관리가 필요할 수 있다. 반면 시에라 네바다의 차갑고 건조한 공기는 고기의 수분활성도를 낮추고, 안전한 건조숙성이 진행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산맥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천연 숙성실이자 공조 장치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단순한 건조가 아니었다. 고기의 수분을 빼는 일이 맛을 빼앗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감칠맛을 농축하는 과정이 되는 순간이었다. 숙성식품의 세계에서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자연은 보이지 않는 작업자다.

트레벨레스에서 만난 하몽 업체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무첨가 프리미엄 하몽 숙성의 핵심은 수분 조절"이라고 말했다. 돼지 뒷다리에 소금을 입히면 삼투압에 의해 고기 내부의 수분이 빠져나오고, 소금은 서서히 안쪽으로 스며든다. 이 과정에서 수분활성도는 낮아지고, 부패 미생물이 급격히 늘어나기 어려운 조건이 만들어진다. 소금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너무 많은 소금은 맛을 거칠게 만들고, 너무 빠른 건조는 표면만 딱딱하게 굳어 내부 숙성을 방해한다. 좋은 하몽은 소금, 온도, 습도, 바람, 시간의 균형 위에서 태어난다.

트레벨레스의 바람은 바로 그 균형을 잡아주는 자연의 손이었다. 바람은 고기가 천천히 변할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고기 자체의 효소가 단백질을 펩타이드와 아미노산으로 풀고, 지방이 서서히 향으로 바뀌는 시간을 허락했다. 보존료와 색소, 질산염 계열 첨가물에 기대지 않는 자연 건조숙성이었다. 하몽의 감칠맛은 단지 고기의 맛이 아니었다. 산맥이 만든 환경과 장인이 기다린 시간이 결합한 맛이었다.

하몽에 겹쳐진 산악마을의 역사

한국의 장독처럼, 전통 식품은 종종 척박한 환경과 생존의 필요 속에서 피어난다. 시에라 네바다의 매서운 산풍 속에 익어가는 트레벨레스 하몽에도 스페인 남부의 복잡한 종교사와 내전의 역사, 산악 공동체의 처절한 생존 이야기가 겹쳐 있다.

1492년 1월 2일, 이슬람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은 가톨릭 왕조에게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의 열쇠를 넘겨주고 항복했다. 당시 가톨릭 왕조는 이슬람교도들의 종교와 관습을 보장해 주겠다는 '그라나다 협정(Capitulaciones de Granada)'을 맺었다.

알푸하라 산악 지방은 패배한 무어인과 그 후손들이 머물게 된 피난처가 되었다. 그러나 평화는 길지 않았다. 1499년 이후 가톨릭 왕정은 점차 강경한 개종 정책을 폈고, 무슬림과 개종 무슬림에 대한 압박은 거세졌다. 겉으로는 가톨릭으로 개종했지만 이슬람적 생활 관습을 유지한 사람들을 모리스코(Moriscos)라고 불렀다.

이슬람 율법에서 돼지고기는 금기였다. 가톨릭 사회 안에서 돼지고기를 먹거나 집 안팎에 내거는 행위는 때로 자신이 '옛 신앙'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드러내는 사회적 신호가 되었다. 금기의 음식이 정체성을 증명하는 언어가 된 셈이다. 스페인 남부의 돼지고기 문화는 이렇게 종교와 정복, 개종과 재정착의 역사 속에서도 읽힌다.

종교적·문화적 압박이 극에 달하자, 1568년 알푸하라 산골에 숨어 살던 모리스코들은 시에라 네바다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대규모 무장 봉기인 '알푸하라 반란'을 일으켰다. 3년 동안 이어진 이 항전은 결국 가톨릭 군대의 진압으로 끝났다.

이후 많은 모리스코들은 그라나다 왕국(Reino de Granada) 밖으로 강제 이주되거나 흩어졌다. 비워진 마을에는 카스티야 등 다른 지역에서 온 가톨릭 정착민들이 들어왔다. 돼지 사육과 염장 문화는 그런 재정착의 역사, 그리고 알푸하라의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와 결합하며 이 산악마을의 생활 속에 자리 잡았다.

트레벨레스 마을의 하몽 간판과 흰 벽의 집들. 이 마을에서 하몽 저장문화는 단순한 식품 산업이 아니라 종교와 재정착, 내전, 산악 생활사가 겹쳐진 식문화의 흔적이다.
트레벨레스 마을의 하몽 간판과 흰 벽의 집들. 이 마을에서 하몽 저장문화는 단순한 식품 산업이 아니라 종교와 재정착, 내전, 산악 생활사가 겹쳐진 식문화의 흔적이다. 이찬재

이 마을의 고립된 서사는 20세기까지 이어졌다. 스페인 내전은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비극이다. 그 전쟁은 미술관의 그림이나 문학 속 장면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전쟁의 긴 그림자는 시에라 네바다의 깊은 산악지대, 알푸하라의 고산마을에도 드리워졌다.

1936년 여름 공화파 군대는 알푸하라의 트레벨레스를 장악한 뒤 물하센 능선 쪽으로 올라갔고, 알토 델 초리요(Alto del Chorrillo)와 카스카하르 네그로(Cascajar Negro) 일대의 시에라 네바다 남쪽 사면에는 전선이 형성되었다. 이 일대에는 참호와 초소, 사격 진지 같은 군사 구조물이 만들어졌다. 눈과 바람이 지배하던 산은 한때 군인들이 몸을 숨기고, 서로를 겨누고, 보급과 통신의 어려움 속에서 버텨야 했던 전장의 공간이기도 했다.

전쟁이 끝났다고 산이 곧바로 고요해진 것은 아니었다. 스페인 내전은 1939년 4월 프랑코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패배한 공화파와 반프랑코 세력 일부는 도시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들은 산으로 들어갔다. 스페인에서는 이들을 '마키스(maquis)'라 불렀다.

시에라 네바다와 알푸하라의 산악지대에서도 1940년대 내내 은신과 토벌, 감시의 시간이 이어졌다. 산은 패배한 사람들을 숨겨주었다. 프랑코 군대는 그 산을 끝까지 추적해 들어갔다. 산골 마을 사람들은 그 사이에 놓였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말하기보다, 살아남기 위해 말을 아껴야 했던 시간이었다.

이런 스페인 내전의 역사는 멀리 떨어진 한국과도 데칼코마니처럼 느껴졌다. 제주에서는 1947년부터 1954년까지 4·3의 비극이 이어졌다. 지리산 일대에서는 1948년 여순사건 이후부터 한국전쟁과 전후를 거치며 1950년대 중반까지 빨치산 활동과 군·경 토벌이 계속됐다. 나라도, 땅도 달랐다. 그러나 산이 맡은 역할은 낯설지 않았다. 산은 패배한 이들의 피난처였고, 동시에 국가 권력이 끝까지 추적해 들어간 장소였다.

프랑코 체제 아래에서 이 산악지대는 국가 개발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전후 스페인은 자급자족 정책과 빈곤, 배급과 감시의 시간을 통과했다. 국가는 산골 마을에 근대 산업의 속도를 먼저 가져오지 않았다. 오히려 치안과 통제의 시선이 더 먼저 닿았다. 험한 길과 깊은 협곡, 늦은 교통, 작은 농가 경제는 이 지역을 바깥 세계와 쉽게 연결하지 못하게 했다.

고립은 사람들에게는 불편과 가난의 시간이었지만, 음식의 관점에서는 오래된 숙성 방식을 지켜준 뜻밖의 보호막이 되었다. 산업자본이 빠르게 들어와 공장을 세우고, 표준화된 대량생산 체제를 주입하기에는 이곳의 지형도, 역사도, 생활 방식도 너무 거칠고 느렸다. 산악마을의 고립은 때로는 오래된 방식을 붙잡아두는 힘이 되기도 했다.

트레벨레스 하몽의 오래된 방식도 그 느린 시간과 고립 속에서 살아남았다. 돼지다리에 소금을 입히고, 고산의 건조한 바람으로 말리고, 고기 자체의 효소가 천천히 맛을 만들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 이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공기와 창문, 계곡의 바람과 숙성실의 온도를 읽으며 하몽을 만들어왔다. 산업화가 늦었다는 것은 경제와 효율의 언어로는 결핍일 수 있다. 그러나 전통 숙성과 발효의 언어로 보면, 그것은 오래된 기술이 쉽게 지워지지 않은 조건이기도 했다.

그래서 트레벨레스의 하몽은 단순한 지역 특산물이 아니었다. 산악지대의 고립, 내전과 전후의 그늘, 국가 개발의 중심에서 비켜난 시간, 그리고 생계를 잇기 위해 소금과 바람과 시간을 붙잡은 사람들의 기술이 겹쳐진 음식이었다. 산 아래 세계가 더 빠르고 더 균일한 식품, 대량 생산과 효율성을 향해 달려갈 때, 이 마을의 하몽은 여전히 천천히 말라갔다.

그 느림은 낙후의 흔적이 아니라, 오늘날 오히려 프리미엄의 언어가 되었다. 가혹한 역사는 사람을 밀어붙였지만, 그 절박함 속에서 저장과 숙성의 기술은 오히려 더 오래 살아남았다. 전쟁의 상처와 주변화의 시간이 의도하지 않게 산악 식문화의 원형을 보존해낸 셈이다.

비극과 고립의 역사가 오늘날 하나의 식문화 원형을 보존하는 배경이 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발효와 숙성의 현장을 찾아온 사람으로서 묵직한 감정을 느꼈다. 처마 밑에 매달린 돼지다리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소금과 바람, 시간에 기대는 숙성 방식은 고립이 낳은 낭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계를 잇기 위해 붙들어온 생활의 기술이었다.

트레벨레스의 첫인상은 그래서 오래 남았다. 그곳은 하몽을 만드는 마을이기 전에, 고립을 견디며 시간을 숙성시켜 온 마을이었다. 시에라 네바다의 산바람은 오래된 비밀을 들려주듯, 내 귓가에 속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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