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서 석방된 활동가, 증언 기자회견가자지구행 구호선에 탑승했다가 이스라엘군에 나포됐던 활동가 김아현씨와 김동현씨가 5월 28일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나포 당시 가혹행위 증언 및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구체적 의무 앞에서 해야 할 일은 활동가들에 대한 연대와 지지 이외에도 더 있다. 한때 식민지배와 저개발국가의 어려움을 겪었으나, 지금 고소득국가의 일원으로 자리한 한국이라면, 시민이 해야 할 의무의 범위는 더 커진다. ICJ 보스니아 사건(
2007)이 확인했듯이 이는 영향력 있는 국가가 가용한 모든 수단을 다해야 하는 구체적 의무, 그리고 국제공동체 전체에 지는 대세적 의무인 까닭이다.
이미 많은 활동가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한국은 유명한 무기 수출국이며, 이스라엘에도 총기·폭탄류를 수출해 온 것으로 확인된다(관련 기사:
한국, 2024년 이스라엘에 무기 84억원 팔았다). 만약 그러한 이전이 학살에 쓰일 것을 알면서 이뤄진다면, 그것은 도의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합의에 관한 도전이다. 무기거래조약 제7조는 중대한 인도법·인권법 위반에 쓰일 '압도적 위험'이 있으면 수출을 거부하도록 명한다. 더욱이 제노사이드협약 제3조는 공모를 처벌 대상으로 명시하고, 국가책임 법리(ILC 위법행위책임 초안 제16조)는 타국의 위법행위를 알면서 원조·지원한 국가에 책임을 지운다. 무엇보다 한국이 가입한 무기거래조약(ATT)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사안이다.
그렇기에 연대하는 시민들은 취소된 활동가의 여권 효력을 복구하도록 정부를 압박하는 일, 전쟁범죄에 전용될 수 있는 무기·전략물자의 이전을 점검·중단하도록 촉구하는 일, 무엇보다 자국 정부가 가장 평화로운 행동에 부끄러운 침묵으로 답하지 않도록 요구할 수 있다.
흔한 냉소가 있다. '국제법에 무슨 강제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절반만 맞다. 국제법에는 중앙집권적 경찰도, 강제관할권을 가진 상위 법원도 없다. 그러나 구속력이 비단 강제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합의는 준수되어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원칙은 조약법의 토대이고(조약법협약 제26조), 관습법과 강행규범은 가입 여부와 무관하게 모든 국가를 구속한다. 역설적이게도, 국가들이 자신의 행위를 끊임없이 '합법'이라 변호한다는 사실 자체가 국제법이 행동을 규율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무엇보다 한국 시민들이 가장 잘 아는 것처럼, 한국은 식민지배와 혼란스러운 근대를 거치며 인권과 평등, 인간의 존엄이라는 인류의 근대적 합의에 오랫동안 기대 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연대 끝에 이제 그 합의를 지키고, 확산시킬 수 있게 된 위치에 섰다. 지금 한국 시민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그리고 형평하게 배분돼야 한다고 여기는 사회적 자원의 상당 부분도 이와 같은 합의에 힘입어 한국에서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 역시 이와 같은 연대의 뜻을 돌려주는 데 있다.
스스로 저소득 국가의 공중보건 재난 현장에서 일해 온 의사이자 의료인류학자인 폴 파머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기본적인 권리, 곧 살아남을 권리가 거대한 풍요의 시대에 짓밟히고 있다." 세계화와 '과학적' 진보가 넘치는 것과 같은 시대에, 오히려 인류가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당하는 현장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나온 말이다. 파머의 말대로, 그 대책이 불평등하게 배분되었을 뿐, 인류는 폭력에 대응할 힘과 책임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한국시민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역시, 이러한 연대의 기반 위에 존재해야 지속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 될까? 국제사회가 그 응답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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