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서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장수진 대표를 지난 5월 28일에 만났다. 그는 장시간 고래 조사활동을 위해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착용했다. 바다 위에서는 초여름에도 바람막이가 필수다.
정소은
"'추자도에 상괭이가 산다는 것을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기자'. 이게 연구 주제예요.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상괭이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발전 지구로 지정되기 전에 그 지역에 어떤 보호종들이 사는지 파악하는 게 올바른 순서잖아요. 추자도 쪽은 고래류 조사가 거의 되어있지 않아서 데이터가 없었어요. 추자도에 상괭이가 산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 근거가 데이터화되어 있지 않으니,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공식적 자료로 남겨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개발의 욕망은 바다를 그저 '빈 공간'으로 바라볼 뿐이다. 수익을 창출해 줄 미래의 보고(寶庫). 동물에게는 발언권도 협상권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나 여기 있어요'라고 주장할 수도 없다. 각종 특별법이 개발에 힘을 실어주고 환경영향평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기에, 그만큼 과학자의 연구 데이터는 소중하다. 바닷속 생물이 여기 살고 있음을 입증하고 개발에 맞서는 방어 논리가 되어준다.
조사 활동을 나가는 이들의 욕망은 고래 관광선 관광객과 반대로 향한다. 그날의 만남 성사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이 이 바다에 존재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서식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상괭이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한 개체라도 더 기록해 데이터에 포함하고픈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만큼 조사 방법의 엄격한 체계가 중요했다. 구체적 방법론에 관해 물었다. 장수진 대표는 '모든 공간에 동일한 노력량을 사용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조사 경로와 방법론을 세팅한다고 말했다.
"저희가 실행한 조사는 섬 주변 경로의 밀도 함수를 계산하는 방식이에요. 보통은 상괭이가 나타나면 눈에 보이는 개체를 다 카운트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연구를 위해 경로를 짜서 움직일 땐 기준을 정하죠. 배 앞쪽(선수/船首)에서 발견한 상괭이는 카운트하지만, 배 뒤쪽(선미/船尾)에서 나타난 개체는 포함하지 않는다던가. 가령, 앞에서 나왔던 개체가 물속으로 들어가 뒤쪽으로 이동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느 각도까지 관찰 범위에 포함할 것인지를 정해야 하죠. 그리고, 각 개체의 동일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숙련된 조사자가 동승했을 때와 아닐 때의 변수도 감안해야 하고요. 그런 세부적인 부분들을 조금씩 조정·보완했어요."
방법론을 다듬고, 오차를 줄이고, 계절을 넘기며 쌓아온 약 1년의 기록들. 그 데이터는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현재까지 확보된 데이터를 놓고 좀 더 고민해 봐야 하지만, 일단 '상괭이가 있다'는 게 입증된 거죠. 조사 기간이 1년이라는 걸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건 '상괭이가 추자도 바다를 계절에 따라 반복적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기가 상괭이 서식지로서 기능할 가능성이 매우 유력하다' 정도예요. 단순히 '상괭이가 여기 사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 '연구 기간 1년으로 어떻게 장담하느냐'라고 묻는다면, '그렇지, 1년밖에 못 봤으니 더 연구해 봐야겠지' 이런 생각이 들겠죠."
과학자로서 연구 결론을 표현할 때 가급적 보수적으로 눌러 말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괭이의 개체수와 규모까지 입증하려면 최소 몇 년 치 평균 데이터는 필요하다고 한다. 야생동물 연구에서 데이터는 쌓일수록 그만큼 유의미해지는 것이니까.
인간 사회에서 법이 최상위 규범으로 작용하는 건 불가피한 사실이다. 그러나 법은 스스로 현실을 관찰하지 못한다. 그래서 법조인의 손을 빌려 판결을 내린다. 국내에서 아직 생태법인이 제도화되지 않은 지금, 법 테두리 내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과학적 연구 데이터뿐. 법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상괭이편의 활동은 상괭이라는 존재가 법의 시야 안으로 들어오도록 만드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개발 위기를 앞둔 상황에서 시간이 충분치 않다. 얼마 전 위성곤 제주지사 당선인은 에너지 고속도로와 슈퍼 그리드 사업을 선언했다. 파란과 MARC를 인터뷰하는 동안, 개발을 막을 수 있을 만큼 상괭이의 존재감을 최대한 키우고픈 조바심이 커졌다. 이 데이터가 해상풍력 사업에 제동을 걸 만큼 충분한 것인지 염려스러웠다. 심지어 연구결과를 부풀리고 싶은 충동마저 생겼다.
"'추자도 바다에 상괭이가 산다'는 건 명확해요. 그런데 그간의 여러 개발사업을 보면, 보호종이 살고 있음에도 감행한 사례가 너무도 많았어요. 하지만, 추자도 해상풍력사업 문제를 놓고 볼 때, '(상괭이가)있다, 그럼에도 추진하겠다'라는 것과, '(상괭이가)있는지 없는지 아직 모른다, 그럼에도 추진하겠다'는 완전히 다른 얘기잖아요. 즉, 저희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통해 '추자도 바다에 해양 보호 생물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 연구 데이터를 통해 입증되었다, 그럼에도 당신들은 개발을 감행하였다'라는 주장을 할 수 있게 되겠죠."
국제법에서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의 핵심 요건을 가르는 기준은 '고의'냐 '과실'이냐다. 즉, '추자도에 상괭이가 산다'는 연구 기록이 인정받게 되면, 바다를 오로지 자원으로만 바라보는 개발 행위는 법적 의미의 학살에 한걸음 가까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상괭이편의 활동은 단순 생태 조사 이상으로, 무분별한 개발 세력의 면죄부를 사전 박탈하는 힘을 갖는다.
'여기 상괭이가 산다'는 짧은 한 문장을 얻기 위해, 그토록 많은 공이 필요했다. '없는' 것처럼 취급되던 존재를 '있는' 존재로 내세울 수 있는 무기를 획득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장수진 대표는 담담하게 말한다.
"저는 이 조사 결과를 통해 '그걸(해상풍력발전사업)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이전까지 국가 조사에서도 '비어 있던' 이 공간에, '상괭이가 사는지 안 사는지조차 모르던' 이 공간에, '어쨌거나 여기 상괭이가 살고 있다'는 공식적 근거 자료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대규모 해상풍력 발전단지가 들어서면, 그것이 세워진 바다의 기초 생태계는 완전히 무너진다고 봐야 한다. 공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피해는 물론, 발전기가 발생시키는 소음과 진동은 청력에 의존해 소통하고 먹이 활동하는 해양포유류에게 치명적이다. 전자기장의 영향을 받는 상어나 가오리 등을 비롯해, 유럽에서는 박쥐까지 해상풍력의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요소들에까지 영향받는 다양한 생물종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수진 대표는 '사후 평가'와 '누적 영향 평가'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해상풍력 단지가 들어서게 되더라도, 이후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시간이 지난 후 회복은 이루어지고 있는지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그 조사는 발전 지구 지정 후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형식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지역에서, 훨씬 이른 시점부터 시작됐어야 했다.
"정말 필요한 작업이었다고 생각해요. 해상풍력 발전 지구로 지정되는 상황에서도 '추자도에 상괭이가 있다'는 얘기는 계속 들려오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도 몇 번 기회를 만들어 보러 간 적도 있었죠. 어느 시기에 상괭이들이 나타난다는 걸 공식적 데이터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당시엔 자체적으로 진행할 만한 여건이 아니어서 아쉬워하고 있던 참에, 마침 파란과 돌핀맨과 함께 진행할 수 있었으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죠."

▲좌)MARC의 장수진 대표 / 중)선수: 김미연 부대표, 망루: 안현진 인턴 / 우)돌핀맨 이정준 감독 (포항에서 대형 고래 조사 중인 MARC와 돌핀맨을 만나 '베롱호'에 승선, 오전 11시 출항해 17시경 복귀했다. MARC 연구진은 선미/선수/망루 등 각자의 위치를 지키며 조사에 집중했다. 출항한지 지 서너 시간 남짓 지났을 무렵, 큰머리돌고래와 마주치는 행운도 얻었다.)
정소은
바다는 풍경이 아닌 삶터
사업 공모는 두 번의 유찰 이후 잠시 주춤한 상태이지만 멈춘 거라 보기 어렵다. 지자체장이 당선되자마자 언론을 통해 선언한 메시지(추자해상풍력 2.3GW 임기 내 착공)는 주민과의 소통도, 해양 동물의 존재도, 모두 패싱했다. 추자도 주민 공동체에 남아 있는 상처를 돌보기도 전에 선언부터 하는 것은, 개발을 확정해 놓은 채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취재 과정에서 제주에 있는 한림해상풍력과 탐라해상풍력 현장에 가보았다. 광활한 자연 앞에서 압도당해 본 적은 있지만, 인간이 만든 구조물 앞에서 그런 감각을 느껴보긴 처음이었다. 한림해상풍력발전 현장을 바라보며 '만약 추자도 앞바다에 해상풍력 단지가 들어선다면?' 하고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한림 규모의 30배에 달한다는 추자도의 광경은 상상조차 어렵다. 63빌딩보다도 높은 풍력발전기 200개가, 서울시 면적의 70%에 달하는 규모로, 추자도 앞바다를 가득 채운다. 총발전 용량 3GW. 대형 원전 3기에 가까운 용량이다. 바다 위에 하나의 산업단지가 들어서는 셈이다.
▲제주 한림해상풍력발전단지. 서울 여의도 두 배 넓이의 바다에 높이 180m짜리 발전기 18기가 서 있다.
정소은
기사에 넣을 사진을 찍다가 흠칫 놀랐다. 나도 모르게 구도를 예쁘게 담으려 애쓰고 있음을 발견했다. 바다 한복판에 들어선 거대한 풍력발전 현장을 바라보며, 나는 웅장한 현대미술 작품 앞에서나 느낄 법한 기묘한 미적 쾌감을 얻고 있었다. 그 감각이 나로 하여금 계속 셔터를 누르게 만들었다. 문득 밀양의 송전탑과 소성리의 사드를 떠올렸다. 만약 저 거대한 풍력발전단지가 바다가 아닌 우리 집 뒷산이나 논밭 한가운데 들어섰다면, 나는 과연 같은 태도로 셔터를 눌렀을까.
바다는 인간에게 너무도 쉽게 '풍경'이 되어버린다. 그 순간 추자도 어민들도, 상괭이도, 모두 배경으로 밀려나 사라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바다는 비어 있지 않다. 그리고, 추자도 해상풍력발전 사업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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