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참교육> 관련 이미지.
넷플릭스
시험 점수로 평가받고, 그 결과가 나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공포감으로 가득한 곳이 우리나라의 학교다. 그 문화 안에서 가르치는 교사도, 배우는 학생도, 지켜보는 학부모도 모두 예민하고 날카롭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에서 목격하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교육학 분야에서는 우리나라를 '시험공화국'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정말 시험이 많고, 시험이 어렵고, 시험 결과에 목숨을 건 듯한 문화가 있다. 많은 사람이 과거시험 탓, 심지어는 민족성 탓으로 돌리지만 그건 아니다. 우리가 만든 교육 구조와 사회 구조 탓이다. 역사도 민족성도 잘못이 없다. 이런 문화를 만든 우리의 잘못이다.
문제는 이런 문화를 만든 것이 분명 우리인데 반성하는 사람은 없고, 질타하는 사람만 많다는 것이다. 특히 수많은 교육학자와 교육 관료들은 이런 숨 막히는 제도와 정책을 만든 장본인임이 분명한데 사과하거나 책임진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교육부 장관 청문회나 교육감 선거에 등장하는 후보자 대부분이 어디에선가 이런 잘못된 문화를 만든 주인공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스스로 져야 할 책임은 이야기하지 않고, 마치 자신은 어딘가 다른 미지의 땅에서 온 사람처럼 화려한 '포부'만 이야기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개인이든 사회든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시험 점수'만이 존중받는 나라
우리의 교육 문화 중심에는 잘못된 시험 문화가 있다. 지금과 같은 객관식 시험 문화를 발전시킨 출발점 중의 하나는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시작된 '지능검사'다. 사람을 선별해서 군대의 다양한 영역에 배치하려는 의도로 고안한 시험에서 출발해서, 대학에 입학할 사람과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을 구분하는 시험으로 발전했다. 1916년 스탠퍼드대학의 루이스 터번 교수팀이 개발한 스탠퍼드-비네(Standford-Binet) 지능검사는 검사 결과를 지수(IQ)로 표시하여 지능검사의 대명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 지능검사가 도입되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였다. 스탠퍼드-비네 테스트의 1960년 문제 중에는 이런 질문도 있었다. "다음 중 더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인가?" 선택지에는 머리가 단정한 백인 여성과 입술이 두툼하고 머리가 산발인 흑인 여성 캐리커처가 있었다. 두 남성 중에서 더 아름다운 사람을 고르는 문제도 있었고, 여기에도 단정한 머리를 한 백인 남성과 헝클어진 머리에 코가 낮은 (비백인으로 보이는) 남성 캐리커처가 제시되었다. 두 문제의 정답은 백인으로 보이는 여성과 남성이었다.
흑인, 동양인, 라틴아메리카인이 IQ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대학에 입학하려면 이 문제에서 자기를 닮은 사람이 아니라 백인을 정답으로 택해야 했다. 인종 정체성의 일시적 포기가 대학에 들어가는 1차 조건이었다. 초기 지능검사 이야기는 조금은 극단적인 사례지만 시험이 완벽하게 공정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문제를 만들고 평가하는 누군가의 가치관이 개입되지 않는 시험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험은 가려 뽑아서 차별하기 위한 제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회적 지위가 신분에 의해 결정되던 사회에서 시험 결과에 따라 결정되는 사회로의 변화는 근대화의 한 상징이었다. 근대화가 만든 복잡한 사회를 유지하는데 시험은 필요악임이 틀림없다. 문제는 시험의 결과를 숫자로 표기하고, 그것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문화다.
시험의 결과를 존중하되, 그 결과가 주는 의미를 조금 낮추고, 시험에서 실패한 사람에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지는 교육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학교를 통해 경쟁이 주는 최소한의 가치를 가르치지만, 그것과 함께 협력과 공생이 주는 가치 또한 가르쳐야 한다.
지금처럼 시험의 결과를 점수로 표시하여 서열화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서열화된 대학에 입학하는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시험에서 얻은 점수가 아니라 교육자의 학생에 대한 엄격한 평가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교사의 권위, 즉 교권은 학생에 대한 평가권이 핵심이다. 교사의 학생에 대한 평가권이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 오직 시험 점수만이 존중받는 나라에서 교육이 교육다워질 수는 없다.
교사의 학생 평가권이 아니라 시험 점수가 학교를 지배하는데 동원되고 있는 것이 객관식 시험 제도다. 고려시대에 도입되어 조선시대 말까지 존속한 과거시험은 완벽한 주관식 출제였고, 주관적 평가였다. 출제와 평가를 담당하는 교육자의 주관적 판단이 존중 받는 문화였다. 주관식 시험 문화는 개화기,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한 세대 동안 유지되었고 교사의 권위는 나름 유지되었다.
교권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1962년 객관식 시험이 중고등학교 입시에 도입되면서였다.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명목을 앞세워 우리가 선택한 것이, 지금은 5천만이 좋아하게 된 "사지선다" 혹은 "오지선다" 형식의 객관식 시험이다. 이 제도가 등장하면서 교사의 권위는 시험 점수가 대체했다.
시험은 교육자가 활용하는 교육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교육자가 피교육자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피교육자가 성취한 것과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찾는 수단일 뿐이다. 시험이 교육자를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학교 교육에서 보이는 주객전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바리스타 시험 낙방이 가져다준 선물

▲지난 4월 1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서울커피엑스포'에서 바리스타가 시음용 커피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학 교수 30년 경험을 반성하며 커피인문학자의 길에 들어선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공권력이 감시하고 관리하는 우리나라의 학교 시험은 내가 경험한 바리스타 시험에 비해 교육적이지 못하다. 바리스타 자격은 다양한 민간단체에서 주관하는 자격증 시험을 통해 얻게 된다.
10년 전 우연히 커피를 배울 기회가 생겼다. 생두 감별, 로스팅, 원두 감별, 드립, 라테아트 등 커피에 관한 모든 과정을 가볍지만 유쾌하게 배웠다. 그리고 배운 것이 아깝다는 생각에 바리스타 시험을 보기로 했다. 필기시험은 쉽게 붙었다. 문제는 실기였다. 주어진 10분 동안 에스프레소 네 잔과 카푸치노 네 잔을 내려야 하는 과정이었다. 응시 원서를 제출하고, 에스프레소 기계로 몇 번 연습을 한 후에 시간에 맞추어 지정 시험장에 도착했다. 준비물인 앞치마와 행주 몇 장도 챙겨갔다.
그런데 입구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뭐 하러 오셨어요?" 입구에서 안내를 맡은 분이 대뜸 나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여기 바리스타 자격증 실기시험 보는 데 맞죠?"라고 물으니 "그렇긴 한데 뭐 하러 오신 거죠?"라고 반문했다. 나는 "시험 보러 왔는데요"라고 대답했지만, 그분은 의아하다는 듯 나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는 "아~ 그러세요, 그런데 복장이 규정하고 너무 다른데요"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겨울이었고, 나는 청바지 차림, 푸른색 폴라티, 그리고 발목까지 오는 앵클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분은 문서를 하나 보여주었다. 응시자 복장 규정이었다. 읽어보니 상세했다. 무늬가 없는 흰색 와이셔츠와 검은색 정장 바지나 치마, 글씨나 로고가 없는 단정한 바리스타 전용 앞치마를 입어야 했다. 그리고 검은색의 굽 낮은 정장 구두를 신어야 했다. 시계, 반지, 귀걸이, 모자, 두건 등 어떠한 액세서리도 착용 금지였고, 짙은 화장은 물론 향수나 매니큐어도 허용되지 않았다.
수험생 안내 자료 어딘가에서 본 것 같기는 한데 자세하게 살피지 않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앞치마를 보여달라는 말에 내가 내민 것은 아내가 부엌에서 사용하던 꽃무늬가 찬란한 앞치마였다. 이분은 드디어 입을 가리고 고개를 돌려 웃었다.
합격하기 어려우실 것 같은데 시험 보시겠냐고 묻기에, 그래도 왔으니까 시험을 보겠다고 했지만 이미 자신감은 반쯤 떨어진 상태였다. 아니나 다를까, 들어가서 인사를 했더니 심사위원 세 명 모두 복장에 놀란 표정이었다. 옆자리 수험생은 매우 자연스럽게 규정 시간에 맞추어 음료를 제출했다. 처음 보는 그라인더의 스위치 위치조차 몰라 심사위원에게 물어야 했던 나는 10분 조금 넘겨서 겨우 구색만 맞춘 음료를 내놓았다. 웃으며 보낸 10분이었지만,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이었다.
이날 바리스타 시험에서 쉽게 합격했으면, 커피에 대한 나의 호기심이 쉽게 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런데 불합격하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커피가 뭔데 시험 보는데 복장이 이렇게 까다롭지? 커피 맛이 얼마나 다양하기에 심사위원들이 8잔을 마셔봐야 평가를 할 수 있지? 왜 10분 안에 8잔을 만들어야 할까? 이런 질문에 답을 얻는 길은 공부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커피 책을 하나둘 사서 읽는 '커피 독서의 길' 위에 올라섰다.
낙방으로 나는 커피를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하였다. 바리스타 실기시험 낙방이 가져다준 선물이었고, 이 선물로 나는 커피 전문가로 성장하는 첫발을 단단하게 내디딜 수 있었다. 나에게 바리스타 시험 낙방은 학문적 커피 인생의 실제적인 '입문 의식'이 되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시험을 치르고, 그 결과에 따라 나의 인생이 결정될 것처럼 울고 웃는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기준에 따라 평가받아서 얻는 결과물인 합격, 불합격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다. 나를 결정하는 것은 합격이나 불합격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나를 만들고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다.
바리스타 시험 낙방은 내가 갖고 있던 커피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의 바리스타 시험 낙방의 추억은 꽃무늬 앞치마, 청바지, 앵클부츠가 섞인 꽤 달콤한 맛이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도 그랬으면 좋겠다. 낙방해도 얻을 것이 있는 시험을 웃으며 볼 수 있는 곳이 학교였으면 좋겠다. 그런 곳이어야 '참교육'이 가능할 테니까.
('커피 한잔에 담긴 문화사' 저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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