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서울특별시장배 복싱대회 겸 제107회 전국체육대회 서울시대표 선발전
이현우
이제는 엄연히 선수로서 복싱을 즐긴다. 동시에 목표가 생겼다. 어디서도 이야기하지 않은 목표는 언젠가 전국체전에 참여하는 것이다. 서울시를 대표하는 복싱 선수라니. 늦깎이 아저씨 복서에게는 낭만이다. 과연 아저씨 복서의 낭만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전국체전에 참여하려면 시도별 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해야 한다. 그러나 시도 지자체별로 운영하는 실업팀 선수들이 선발전에 나오기 때문에 필자처럼 본업이 있는 체육관 소속 선수는 보통 출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업팀 선수는 말 그대로 '업'이 복싱인 선수들이기에, 애초에 실력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실업팀 선수들은 어렸을 적부터 엘리트 체육 교육을 받은 체중, 체고, 체대 출신이 많다. 결국 계란으로 바위를 쳐보기로 했다. 전국체전 서울시 대표 선발전에 참가신청서를 제출했다.
전국체전 서울시 대표 선발전에 참가하다
매주 스파링 훈련을 하면서 실전 경험을 위해 다른 체육관에 가서 프로선수와 실전에 가까운 풀스파링 훈련도 했다. 늘 그랬듯 채식 식단을 유지하며 시합 직전 1~2주간은 기름진 음식도 피하며 식단도 관리했다. 프로 선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정말 '선수'처럼 몸 관리를 해왔다.
지난 5일은 전국체전 서울시 대표 선발전이 열리는 날이었다. 시합이 열리는 장소는 한국체육대학교였는데, 이른 아침 7시부터 학생들이 아침 운동을 위해 우르르 나오고 있었다.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 실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문득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연차까지 쓰고 왔으니까.
시합의 첫 관문은 계체량과 건강 검진이다. 별문제 없이 통과했고 감독자 회의를 거쳐 대진표가 나왔다. 아마추어 경기의 대진표는 당일 아침에 나오기 때문에 상대를 미리 알 수 없다. 일반부 각 체급에서는 시청 소속 선수들이 출전했다.
- 65kg 체급에는 전국대회에서 다수 수상 경력이 있는 김두래 선수와 나만 출전했다. 과거에 아마추어 선수로 활동했던 다른 체육관 관장님이나 코치에게 상대 이름을 말하자, 그들은 할 말을 잃었다. 모두가 아는 이름일 정도로 유명한 선수였다. 그들이 할 말을 잃었던 이유는 아마도 머릿속에 승부의 결과가 그려졌기 때문 아닐까.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긴 했지만 막상 대결할 생각을 하니 공포감이 엄습했다. 평소 관장님은 "원래 시합 상대가 더 커 보인다"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상대는 나와 비슷한 체격 조건인데, 더욱 커 보였다.
한편으로는 영상으로 미리 접했던 선수와 시합할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솔직히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언제 엘리트 선수와 스파링도 아닌, 실제 시합을 해보겠는가. 시합 준비 전 내 마음은 두려움과 설렘을 갈팡질팡 오가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럴 때는 루틴이 효과가 있다고 했다. 장소는 바꿀 수 없지만 평소 하던 유사한 행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원리다. 농구선수가 자유투를 쏘기 전에 의미 없는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듯 말이다. 운동할 때 듣기 좋은 플레이리스트 노래를 들으면서 한국체대 운동장을 네 바퀴 정도 돌았다. 몸이 이완되니 마음도 한결 나아졌다.
이제 한 경기만이 남았다. 직전 시합은 한국체대 복싱부 선수와 실업팀 소속 선수 시합이었다. 전형적인 아웃복서와 인파이터의 대결이었다. 장내 모든 이들이 숨죽이며 시합을 지켜봤다. 유효타가 터지거나 아슬아슬한 회피 동작으로 주먹을 간발의 차로 피해내면, 함성 소리가 복싱장을 가득 메웠다. 취미복서인 관중의 눈으로만 이 시합을 봤더라면 흥미롭기 그지없었을 테다. 하지만 바로 다음 시합이 내 경기였기 때문에 또다시 가슴이 더욱 뛰기 시작했다.
링 위에 오른 순간
참 신기한 것은 긴장이 되다 가도, 링으로 오르는 계단을 딛는 순간 마음이 오히려 평안해진다는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드디어 실업팀 소속 선수와 생활 복싱 3년 6개월 차의 시합이 시작됐다. 상대 선수는 초반부터 강하고 위협적인 펀치를 뻗었다. 다행히 몸이 반응하여 가드로 막거나 백스텝으로 펀치를 피해냈다. 초반에는 치명타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후 경기 흐름도 압도적인 양상은 아니었다. 다만 훈련 때 연습했던 기술을 사용할 틈이 없었다. 셋업(유효타를 타격하기 위해 속임수와 같은 사전 동작)을 깔거나, 사이드 스텝을 쓰거나, 레벨체인지 공격(안면과 복부를 번갈아 가며 공격)을 한다거나 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
성가신 앞손이 내 얼굴 앞에 아른거리고 시야가 가려진 상태에서 상대의 뒷손은 송곳처럼 안면으로 날아왔다. 앞손 싸움과 타이밍 싸움이 이전에 했던 스파링이나 생활복싱 시합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안간힘을 쓰며 턱걸이하는 사람처럼 꺾이려는 의지를 간신히 부여잡았다.

▲필자와 상대 선수가 복싱 시합을 하는 중이다.
이현우
세컨드(관장님)는 먼저 공격하라고 주문했다. 상대가 사우스포(왼손잡이로서 오른손과 오른발을 앞쪽에 두는 자세)였기 때문에 투(오른손잡이 기준 뒷손)로 거리를 좁혀 공격하는 투원투를 주문했다. 상대는 이런 경험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백스텝으로 유유히 회피하면서 상체 움직임으로 내 주먹을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후반부로 갈수록 둘 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거리가 좁혀졌다. 접근전 상황에서 몇 차례 상대 얼굴에 펀치를 적중시키기도 했다. 운이 좋기도 했지만 체력 훈련을 잘한 덕분이다. 10분간 체력을 다 쏟아냈고, 다행히 열심히 준비했던 체력만큼은 뒤처지지 않은 것 같아서 만족스럽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바위는 깨지 못했지만 다행히 계란 또한 쉽게 깨지진 않았다. 주 4회 정도 꾸준히 복싱과 달리기로 훈련하면서 날계란을 구운 계란으로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파워가 강력한 프로선수와 스파링을 하면서 강한 펀치에 익숙해진, 예방 주사 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
비록 시합은 졌지만, 응원 와준 아내와 친구 그리고 항상 훈련과 시합에 동행해 주시는 김두협 관장님과 함께 행복한 하루였다. 파도 같은 낭만이 통째로 뒤덮은 날이었다. 잊지 못할 것이다.
도전은 살아있다는 느낌을 생생히 전해준다. 아마추어 선수로서 전적은 지난해 시합 포함 1승 1패. 올해는 일에 지장이 되지 않는 선에서 기회가 된다면 두 차례 정도 더 도전해보고 싶다. 아마추어 선수는 만 40세까지만 활동할 수 있고, 필자에게는 올해를 포함해 4년이란 시간만이 남은 셈이다.
▲복싱 훈련 중 생긴 상처
이현우
청춘을 연장시켜 준 것만 같은 복싱
생활체육대회를 포함해 패배했음에도 한 치의 아쉬움도 없었던 시합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실업팀 선수와 실력을 겨룰 수 있다는 사실도 기뻤지만, 훈련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뿌듯했다. 빈 바구니로 갔다가 바구니에 열매를 가득 채워온 느낌이랄까.
미세한 타이밍 측면에서 새로운 복싱 세계를 마주한 것 같아서 신비하기도 했다. 도전하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었던 미묘한 복싱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했다. 가장 큰 수확은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이 활동하는 아마추어 무대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진 것이다. 물론 다양한 스타일의 복싱 선수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생각만큼 나의 도전이 무모하고 위험한 도전은 아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취미는 그저 즐기면 된다는 생각도 존중한다. 취미는 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라는 인간은 성취형 인간이기 때문일까. 취미일지라도 작은 목표라도 설정하고 달성해 가는 과정을 즐긴다. 생활복싱대회 도전에서 어느덧 전국체전 도전까지.
복싱은 내 청춘을 연장 시켜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올해는 전국체전 선발전에서 선발되지 않았지만, 또 하나의 소중한 경험과 추억을 몸에 새겼다. 누가 지는 싸움을 계속하려 하겠는가. 적어도 나 자신을 통제하고 이겨가며 성장하는 복서가 되어야겠다.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면서 훈련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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