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16 12:06최종 업데이트 26.06.16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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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상원 건물 계단에서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연설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민주당 지도부는 물가 상승, 이란 전쟁, 17억 달러 규모의 ‘무기화 방지 기금’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5월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상원 건물 계단에서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연설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민주당 지도부는 물가 상승, 이란 전쟁, 17억 달러 규모의 ‘무기화 방지 기금’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AFP 연합뉴스

미국 정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힘은 흔히 분노 정치, 포퓰리즘, 문화전쟁의 결과로 설명된다. 그 설명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그 설명만으로는 미국 민주당이 왜 자기편을 충분히 붙잡지 못했는지 보이지 않는다.

더 불편한 질문은 트럼프가 어떻게 그들을 설득할 수 있었느냐보다 민주당이 왜 붙잡지 못했느냐이다. 민주당이 놓친 것은 자산 가격 상승보다 임금과 생활비의 균형에 삶이 더 크게 흔들리는 서민들의 마음이었다.


이들은 물가와 집세, 병원비와 지역의 쇠퇴를 견디며 하루를 계산한다. 그런 사람들은 민주당의 말 속에서 자기 삶을 충분히 발견했는가. 이 질문은 미국 민주당에만 머물지 않는다. 서구의 여러 진보정당은 비슷한 고민 앞에 서 있다. 더 넓은 유권자를 향해 가는 동안, 오래 자신을 지탱해 온 사람들이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를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민주당의 위기는 이 사람들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임차인, 저소득층, 노조원, 대도시의 여러 생활인은 여전히 민주당의 중요한 표 기반 안에 있었다. 문제는 그들이 표 안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마음까지 남아 있다는 뜻으로 착각한 데 있었다.

표 기반 안에 남아 있는 것과 정치의 중심에서 존중받는 것은 다르다. 선거 때마다 민주당을 찍어온 사람이라도, 자기 삶이 그 정당의 말 속에서 뒤로 밀렸다고 느끼면 마음은 식는다. 사람은 자신을 덜 배제하는 정당만으로 오래 움직이지 않는다.

민주당의 패착은 바로 이 차이를 보지 못한 데 있었다. 지지층의 잔존을 신뢰의 유지로 받아들였고, 익숙한 표를 살아 있는 동의로 오해했다. 표는 남아 있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은 먼저 빠져나가고 있었다.

누구의 불편을 자기 문제로 느끼게 되었나

2014년 9월 19일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서울 신라호텔에거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2014년 9월 19일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서울 신라호텔에거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권우성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와 연구자들은 이 변화를 '브라만 좌파'라는 말로 설명했다. 과거 좌파 정당은 저학력, 저소득 유권자와 더 강하게 묶여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고학력 유권자와 더 가까워졌다. 좌파의 사회적 중심이 일터와 지역에서 대학과 대도시로 조금씩 옮겨간 셈이다.

이 말은 고학력 도시층이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뜻이 아니다. 정당은 새로운 지지층을 얻을 수 있고, 사회 변화에 따라 지지 기반도 달라질 수 있다. 진짜 문제는 그 과정에서 누구의 불편을 먼저 자기 문제로 느끼게 되었느냐이다.

미국 민주당은 민주주의, 다양성, 권리, 제도의 말에는 능숙해졌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정치는 먼저 월세, 병원비, 장바구니, 자동차 할부금, 사라지는 동네 일자리의 문제로 다가온다. 추상적인 가치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루를 버티는 압력이 먼저 몸에 닿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가치의 말을 세련되게 다듬었지만, 생활의 압력을 말하는 데는 점점 서툴러졌다. 그 틈에서 임금과 생활비 사이에 놓인 사람들은 자기 삶이 민주당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정치적 거리감은 그렇게 커졌다.

이 사람들은 단순히 지원금이나 세금 혜택만 원하는 집단이 아니다. 이들의 불안은 지갑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존중의 문제다. 얼마를 더 받느냐 못지않게, 자신의 삶이 정당하게 이해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들은 일하면 보상받아야 한다는 감각,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 지역에서 밀려나지 않고 살고 싶다는 바람을 함께 갖고 있다. 정부와 엘리트가 자기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았으면 하는 불신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에게 정치는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자리를 인정받는 문제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이 복합적 감각을 놓치면 경제정책도 마음에 닿지 않는다. 숫자로는 지원을 말하고 제도로는 보호를 말해도, 당사자는 자기 삶이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정책은 있는데 자기 편이라는 감각은 약해지는 일이 여기서 생긴다.

자기편이 왜 자기편이었는지 잊는 순간 벌어지는 일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Retour a Reims)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Retour a Reims)문학과지성사

프랑스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이 단절을 한 개인의 삶으로 보여준다. 아버지의 죽음 뒤 고향 랭스로 돌아간 그는 자신이 떠나온 가족과 지역, 그리고 한때 좌파의 언어 안에 있었던 세계를 다시 마주한다. 그 귀향은 한 지식인의 사적인 회상이 아니라, 좌파와 생활인의 세계가 어떻게 멀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좌파의 말 속에서 자기 삶이 사라졌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곧장 오른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먼저 침묵하고, 냉소하고, 투표장을 지나치며, 자기 분노를 더 거칠게 불러주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정치적 이동은 대개 이념의 선택보다 먼저 인정받지 못했다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이탈은 배신 선언처럼 오지 않는다. 오래 지지해 온 정당을 하루아침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정당의 말이 더 이상 자기 삶을 부르지 않는다고 느낄 때 마음이 먼저 식는다. 진보정당이 가장 늦게 알아차리는 변화도 바로 이 조용한 거리감이다.

진보정당이 더 넓은 유권자에게 말을 거는 일은 필요하다. 자산을 가진 사람, 전문직, 도시 중산층, 교외 유권자와도 대화해야 한다. 정당은 자기편 안에만 머물러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그러나 넓어진다는 것과 흐려진다는 것은 다르다. 새 유권자를 설득하는 동안 오래 자신을 지탱해 온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잃었다고 느끼면, 확장은 힘이 아니라 균열이 된다.

오늘날 서구 진보의 위기는 지지층이 곧장 보수로 이동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더 이상 진보정당 안에서 흡수되지 않고, 자신의 불안이 정치의 앞자리에 놓이지 않는다고 느끼는 데서 시작된다. 그 절망은 때로 오른쪽으로 향하지만, 더 자주 투표장으로 향하는 마음을 먼저 식게 만든다.

어느 나라의 진보정당이든 같은 시험대에 선다. 자산을 불리려는 사람의 불안을 먼저 달래는 동안, 임금과 생활비 사이에 놓인 사람들의 불안이 뒤로 밀리면 오래된 지지층은 자기 삶이 정치의 뒷줄로 밀렸다고 느낀다. 자기편이 왜 자기편이었는지 잊는 순간, 확장은 설득이 아니라 이탈의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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