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9일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가 서울 신라호텔에거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권우성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와 연구자들은 이 변화를 '브라만 좌파'라는 말로 설명했다. 과거 좌파 정당은 저학력, 저소득 유권자와 더 강하게 묶여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고학력 유권자와 더 가까워졌다. 좌파의 사회적 중심이 일터와 지역에서 대학과 대도시로 조금씩 옮겨간 셈이다.
이 말은 고학력 도시층이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뜻이 아니다. 정당은 새로운 지지층을 얻을 수 있고, 사회 변화에 따라 지지 기반도 달라질 수 있다. 진짜 문제는 그 과정에서 누구의 불편을 먼저 자기 문제로 느끼게 되었느냐이다.
미국 민주당은 민주주의, 다양성, 권리, 제도의 말에는 능숙해졌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정치는 먼저 월세, 병원비, 장바구니, 자동차 할부금, 사라지는 동네 일자리의 문제로 다가온다. 추상적인 가치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루를 버티는 압력이 먼저 몸에 닿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가치의 말을 세련되게 다듬었지만, 생활의 압력을 말하는 데는 점점 서툴러졌다. 그 틈에서 임금과 생활비 사이에 놓인 사람들은 자기 삶이 민주당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정치적 거리감은 그렇게 커졌다.
이 사람들은 단순히 지원금이나 세금 혜택만 원하는 집단이 아니다. 이들의 불안은 지갑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존중의 문제다. 얼마를 더 받느냐 못지않게, 자신의 삶이 정당하게 이해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들은 일하면 보상받아야 한다는 감각,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 지역에서 밀려나지 않고 살고 싶다는 바람을 함께 갖고 있다. 정부와 엘리트가 자기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았으면 하는 불신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에게 정치는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자리를 인정받는 문제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이 복합적 감각을 놓치면 경제정책도 마음에 닿지 않는다. 숫자로는 지원을 말하고 제도로는 보호를 말해도, 당사자는 자기 삶이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정책은 있는데 자기 편이라는 감각은 약해지는 일이 여기서 생긴다.
자기편이 왜 자기편이었는지 잊는 순간 벌어지는 일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Retour a Reims)
문학과지성사
프랑스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는 이 단절을 한 개인의 삶으로 보여준다. 아버지의 죽음 뒤 고향 랭스로 돌아간 그는 자신이 떠나온 가족과 지역, 그리고 한때 좌파의 언어 안에 있었던 세계를 다시 마주한다. 그 귀향은 한 지식인의 사적인 회상이 아니라, 좌파와 생활인의 세계가 어떻게 멀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좌파의 말 속에서 자기 삶이 사라졌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곧장 오른쪽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먼저 침묵하고, 냉소하고, 투표장을 지나치며, 자기 분노를 더 거칠게 불러주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정치적 이동은 대개 이념의 선택보다 먼저 인정받지 못했다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이탈은 배신 선언처럼 오지 않는다. 오래 지지해 온 정당을 하루아침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정당의 말이 더 이상 자기 삶을 부르지 않는다고 느낄 때 마음이 먼저 식는다. 진보정당이 가장 늦게 알아차리는 변화도 바로 이 조용한 거리감이다.
진보정당이 더 넓은 유권자에게 말을 거는 일은 필요하다. 자산을 가진 사람, 전문직, 도시 중산층, 교외 유권자와도 대화해야 한다. 정당은 자기편 안에만 머물러서는 오래 버틸 수 없다. 그러나 넓어진다는 것과 흐려진다는 것은 다르다. 새 유권자를 설득하는 동안 오래 자신을 지탱해 온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잃었다고 느끼면, 확장은 힘이 아니라 균열이 된다.
오늘날 서구 진보의 위기는 지지층이 곧장 보수로 이동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더 이상 진보정당 안에서 흡수되지 않고, 자신의 불안이 정치의 앞자리에 놓이지 않는다고 느끼는 데서 시작된다. 그 절망은 때로 오른쪽으로 향하지만, 더 자주 투표장으로 향하는 마음을 먼저 식게 만든다.
어느 나라의 진보정당이든 같은 시험대에 선다. 자산을 불리려는 사람의 불안을 먼저 달래는 동안, 임금과 생활비 사이에 놓인 사람들의 불안이 뒤로 밀리면 오래된 지지층은 자기 삶이 정치의 뒷줄로 밀렸다고 느낀다. 자기편이 왜 자기편이었는지 잊는 순간, 확장은 설득이 아니라 이탈의 시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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