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지방선거에서 서울 송파구 등 일부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부근에서 열린 '선관위 해체, 재선거 실시'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권우성
요즘, 선관위뿐 아니라 검찰과 법원도 단독으로 욕을 먹고 있다. 예전에는 '정권의 시녀가 되지 말고 독립적이 되라'는 국민적 질타 혹은 응원을 많이 받았던 이런 기구들이 정권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욕을 먹는 것이 최근의 추세다. 이 기구들이 초특급 잘못을 범하면 과거에는 정권이 비판을 받았다. 지금은 그 욕을 이 기구들이 홀로 받아내고 있다.
선관위는 검찰·법원보다 훨씬 일찍 '시녀 생활'을 청산했다. 검찰·법원은 6월항쟁을 계기로 그 굴레를 벗어나기 시작한 데 비해, 선관위는 3·15부정선거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경험한 뒤부터 독립노선을 걸었다. 중앙선거위원회라는 독립 기구가 헌법에 등장한 것도 3·15부정선거 3개월 뒤인 1960년 6월 15일이다.
1952년 및 1954년 헌법의 제53조 제3항은 "대통령과 부통령의 선거에 관한 개표 보고는 특별시와 도의 선거위원회가 입후보자의 득표수를 명기하여 봉함한 후 참의원의장에게 송부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때의 선거위원회는 내무부 산하였다. 그랬던 기구가 1960년에는 중앙선거위원회라는 이름으로 헌법의 한 파트를 차지했다. 이는 선관위를 정부와 떼어놓고 힘을 실어주기 위한 국민적 의지의 산물이었다. 1960년에 헌법기관으로 격상된 중앙선거위원회는 1963년 헌법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라는 명칭을 갖게 됐다.
완벽한 의미의 선관위 독립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1960년 이후로는 국민과 정치세력들의 감시로 인해 선관위 차원의 부정선거가 종전처럼 쉽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 후로는 집권당의 부정선거가 선관위보다는 각급 행정관청에 좀 더 의존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1960년 이후로 한국인들은 선관위에 힘을 불어넣는 데 주력했다. 다른 국가기관들이 선관위를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데도 주의를 기울였다. 이는 선관위의 독립성을 제고시키는 한편, 선관위의 비대화를 조장하는 원인이 됐다. 위 논문에 따르면, 1963년에 348명이었던 선관위 직원은 1994년에 1872명, 2012년에 2677명이 됐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 숫자는 3034명으로 늘어났다.
2012년에 발표된 위 논문은 "현재의 선거관리위원회 조직 규모는 발전된 민주주의국가에 비하여 상당히 큰 편"이라면서 "방대한 조직을 유지하다 보니 많은 예산과 권한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 선거관리위원회는 보다 권력적·규제적 성격을 강하게 가지게" 됐다고 지적한다.
오늘날의 선관위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뿐 아니라 그 이상의 부조리도 양산할 위험성을 보이고 있다. 위에 언급된 2010년 지방선거 사례는 선관위가 행정부와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유권자를 억압할 소지가 있음을 알려준다. 2004년의 노무현 탄핵 사태는 중앙선관위가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을 지적한 데도 기인한다. 이는 이 기구가 충분한 근거도 없이 정권의 명운에 영향을 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지금의 선관위는 이승만 때의 내무부 선거위원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다. 정권과 무관하게 민주주의에 영향을 끼칠 만큼의 힘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선관위에 대한 견제 시스템은 3·15 부정선거의 악몽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관위를 행정부로부터 독립시키고 힘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었던 1960년의 패러다임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선관위 견제를 위해 감사원 감사 등을 허용하는 원포인트 개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하자 정권보다 선관위가 일차적으로 욕을 먹는 것은 선관위가 정권으로부터 독립돼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동시에, 이것은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시사한다. 굳이 독재자가 출현하지 않더라도 선관위 같은 헌법기관에 의해 얼마든지 침해될 수 있는 한국 민주주의의 부실한 체질을 반영한다. 검찰·법원을 개혁하듯 선관위도 개혁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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