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모리 시내아오모리 시내 전경
김용국
6월 초, 반년간의 오사카대학 연구원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멀리 떠나보고 싶었다. 그래서 출장지 겸 여행지로 택한 곳이 일본 본섬(혼슈)의 최북단 아오모리. 오사카에서는 1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일본이 속도와 안정성을 자랑하는 신칸센 열차를 이용해도 편도 5시간 이상이 걸리고 비용도 만만찮다. 결국 일본 국내선 항공편을 택했다. 내가 탄 프로펠러 비행기는 오사카 이타미공항을 출발해 본섬을 가로질러 2시간 만에 아오모리공항에 도착했다.
일본 사과의 60%를 생산하는 곳임을 자랑하듯 아오모리는 도시 전체가 사과로 뒤덮인 듯했다. 웬만한 음식점의 후식은 사과가 기본이고 주스, 빵, 파이는 물론 햄버거, 맥주, 와인, 사케, 교자까지 사과가 들어가지 않은 데가 없다.
여긴 6월인데도 날씨가 서늘하다. 곳곳에 아직 잔설이 보였다. 내가 첫날 머문 곳은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핫코다산 근처였다. 산 정상은 물론, 등산로에도 눈이 쌓여 있어서 여름이란 사실을 잊고 살았다. 국립공원 산책 코스를 오르고 싶었으나 입구 표지판이 나를 가로막았다. '곰 주의! 각자 곰 대책을 세워서 이용해 주세요.' 일본은 요즘 곰과의 전쟁 중이다. 산속이든 시내든 가리지 않고 곳곳에 출몰하여 사람을 공격한다. 뉴스에도 자주 나오지만, 당국도 조심을 당부할 뿐 뾰족한 대책은 없는 듯하다.
자연이 아름다운 아오모리에서 푸른 숲과 계곡, 바다와 온천을 보면서도 낯선 곳의 설렘보다 긴장이 앞섰다. 나도 모르게 한국의 선거 결과에 신경이 곤두섰기 때문이다. 아오모리에서 돌아왔을 때는 6월 3일 저녁 늦은 시각이었다. 한국 언론들은 출구조사 결과를 두고 분석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개표 후 발표된 선거 결과는 나에겐 충격이었다. 그 여파는 오래 갔다. 어쩔 수 없이 일상을 버텼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세상 물정 몰랐던 내가 순진하게 느껴졌다. 오십 넘게 살아봤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일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한두 번 겪어본 것도 아니면서 매번 일희일비하고 감정에 휘둘린다.
오래된 친구는 "사람들이 계엄이니 민주주의 하는 거창한 담론보다 눈앞의 현실을 더 중시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외부 환경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고 자기 삶에 충실해지자"라며 나를 달랬다.
반년간 한국을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오모리 공항아오모리 공항에서 바라본 풍경
김용국
오사카 생활도 반년이 되어 간다. 일본의 실내 추위에 힘들어하던 겨울, 벚꽃이 사방을 뒤덮은 봄을 지나, 장마에 습도와 무더위가 시작되는 여름이 되었다. 나는 한국과, 그리고 현실과 떠나 있었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비단 선거뿐 아니다. 그동안 어쩌면 내내 나는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은연중에 몸과 마음으로 반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뉴스, 정치와 경제, 가족의 안부, 직장 동료와 지인의 소식과 경조사에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한국과 한 발 떨어져서 재충전의 기회로 삼고자 했던 나의 바람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얼마 전에는 오랜만에 직장 후배가 문자를 보내왔다. 반가운 마음에 통화를 시도하니 어지간해서는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는 후배의 말투에서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느껴졌다. 책임감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듯했다. 어쭙잖은 조언과 격려로는 힘이 되지 않을 걸 알기에 고민하던 찰나, 그는 먼저 뜻밖에 나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 "선배, 한국에 오면 나랑 같이 산에 가요. 그리고 내가 힘들 때 쳐다보면 마음의 위로가 될 수 있는 선물 하나만 사다 줘요."
흔쾌히 "그러마"라고 답했다. 문득 5월 말 나고야 아쓰타 신궁에서 봤던, 웅장한 녹나무가 생각났다. 헤이안 시대 승려가 심었다는 이 나무는 수령이 1천 년이 넘는다고 했다. 긴 세월 자연재해와 2차대전 공습 등 전란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아 경이로운 생명력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 사진을 후배에게 보내줬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 스스로에게 해주는 말이기도 했다.

▲천년이 넘은 녹나무나고야시 아쓰타 신궁의 녹나무. 헤이안 시대 승려가 심었다는 이 나무는 수령이 1천 년이 넘는다. 긴 세월 자연재해와 2차대전 공습 등 전란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아 일본인에게 경이로운 생명력을 상징하는 존재로 남아 있다. “천년 넘게 살아온 녹나무야.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었겠어. 그저 버텨온 것만 해도 대단하지. 우리도 마찬가지야. 잘하려고 할 필요도 없고 묵묵히.”
김용국
"천년 넘게 살아온 녹나무야.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었겠어. 버텨온 것만 해도 대단하지. 우리도 마찬가지야. 잘하려고 할 필요도 없고 그저 묵묵히."
반년간 수많은 일본의 절이나 신사를 다녔지만 절을 하거나 부적, 오미쿠지(길흉 제비뽑기), 에마(소원을 적는 나무판) 등에 눈길을 둔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아오모리의 발상지로 불리는 우토우 신사를 찾았을 땐 달랐다. 눈에 띄는 작은 방울을 발견했다. 후배 생각이 났다. 스이킨스즈(水琴鈴)라는 방울 부적이었는데 은은한 방울 소리로 마음을 치유하고 행운을 불러온다고 한다. 실제로 흔들어 보니 오르골처럼 맑고 영롱한 소리가 났다. 후배가 이 소리를 들으면서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지길 바라면서 품어왔다.

▲방울 부적아오모리 발상지로 불리는 우토우 신사를 찾았을 때 눈에 띄는 작은 방울(왼쪽 아래)을 발견했다. 후배 생각이 났다. 스이킨스즈(水琴鈴)라는 방울 부적이었는데 은은한 방울 소리로 마음을 치유하고 행운을 불러온다고 한다. 실제로 흔들어 보니 오르골처럼 맑고 영롱한 소리가 났다. 후배가 이 소리를 들으면서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지길 바라면서 품어왔다.
김용국
어쨌든 발 딛고 살아야 할 곳은 '한국'
오사카에 와서 여러 경로로 많은 한국인을 만났다. 짧게는 1년, 길게는 70년 넘게 여기서 살아온 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한국이었다. 마치 안테나가 한국으로만 향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며칠 전 숙소 근처 선술집에서 어느 한국 어르신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내가 한국인임을 알고 반색을 하면서 '술을 대접하겠다'고 제안을 해왔다. "결혼해서 40년 넘게 오사카에 살고 있다"라는 그는 "고국에서 온 사람 그림자만 봐도 행복하다"라며 몇 시간 동안 자신의 아픈 과거사를 들려줬다. 고국이 무엇이길래 이들은 스스럼없이 한국 사람에게 속마음을 터놓고 한국 소식에 설레는 걸까. 아마도 일본에선 평생 느끼지 못한 한국의 정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며칠 후면 반년 오사카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평생 여기 살 것처럼 이것저것 갖추려고 했는데 이젠 다 비우고 떠나야 한다. 돌아보니 주말이나 공식 일정이 없을 때는 산과 바다로 많은 곳을 찾아다녔고,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것을 겪었다. 오사카는 물론, 멀리 홋카이도에서 가까이는 고베, 교토까지 숱한 경험과 인연을 뒤로 하고 이제는 한국으로 간다. 조용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활기 넘치고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뀌듯 바삐 돌아가리라.
복귀하면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일터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다.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어쨌든 내가 발붙이고 살아가야 할 곳은 한국 사회다. 대신 이젠 세상도, 나의 미래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멀리, 묵묵히 바라보려 한다. 쉽게 지치거나 좌절하지도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긴 호흡으로.
오르막길은 결국 내리막길
▲핫코다산의 어느 좁은 나무 길국립공원인 아오모리의 대표적인 명산 핫코다산(八甲田山)에서 산책을 하다가 찾은 길. 산속에서 곧게 뻗은 나무로 된 길을 보고 걸어보았다.
김용국
모처럼 한국에서 가져온 미니벨로를 타고 언덕길을 오른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때쯤 오르막길이 끝난다. 시인 정호승은 <내리막길>이라는 시에서 "오르막길은 결국 내리막길"이라고 노래했다. "오르막길은 숨 가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빨리 올라갔지만 내리막길은 천천히 길가의 꽃을 보며 걸어가야 한다"고. 지금 내 인생은 오르막길일까 내리막길일까. 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사람은 내리막길을 걸어갈 때 가장 아름답다
사람이 가장 아름다울 때는
내리막길을 감사하며 천천히 내려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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