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13 10:48최종 업데이트 26.06.1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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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 <시계와 침대 사이의 자화상> 1940년
에드바르 뭉크 <시계와 침대 사이의 자화상> 1940년퍼블릭 도메인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는 미술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어도 잘 알고 있다. 특히 그의 작품 가운데 다리 위에 선 인물과 주변 환경이 온통 휘어져 출렁거리는, 정신적 공황 상태를 묘사한 <절규>를 접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그는 만성적인 불안 장애, 우울증 등 여러 정신 질환에 평생 시달렸다. 어려서부터 가족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가 정신적 상황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다섯 살 때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었다. 한 살 위의 누나에 의지하며 성장하던 중에 불과 열다섯 어린 나이에 누나가 세상을 떠났다. 몇 년 후부터 뭉크는 심각한 신경쇠약과 공황장애를 앓았으며, 악마의 환영을 보거나 자살 충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평생 만성적인 불안 장애에 시달린 뭉크

뭉크의 <시계와 침대 사이의 자화상>은 불안 장애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던 그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하다. 인물과 뒤편의 여러 사물이 고정되지 못하고 공중에 떠도는 느낌이다. 오른쪽 벽에 걸린 여자 누드 그림도 발 붙일 곳을 못 찾은 듯 허공에 둥둥 떠 있다.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불안증 위에서 부유하던 정신 상황을 반영하는 게 아닐까?

서로 아무런 연관 없이 분리된 듯 배열된 여러 사물은 그를 불안으로 몰아넣는 무의식 세계를 반영하리라. 무어라 규정할 수 없이 혼탁한 무의식은 불안 상태 그대로를 보여준다. 마치 여러 개의 무거운 물건을 한 가닥 가는 줄로 들고 버티듯이, 일상의 불안 속에서 신경이 곧 끊어질 듯한 공포를 느끼며 살아야 했던 내면을 묘사한 자화상으로 보인다.

세부 묘사를 봐도 마찬가지다. 침대 시트는 무늬까지 섬세하게 그렸으면서, 정작 자신의 눈은 뭉뚱그려 놓았다. 눈동자가 정확히 묘사되지 않아서 갈 길을 잃은 시선으로 다가온다. 왼쪽 벽에 세워둔 대형 괘종시계는 사람의 키보다 크다. 그런데 얼굴에 눈·코·입을 표시했지만, 비슷한 크기의 시계 원에는 시침과 분침이 보이지 않는다. 간단히 두 번의 붓질로 표시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일부러 생략한 듯하다.

사망하기 불과 몇 년 전, 70대 후반의 자화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이유를 나름대로 추측할 수 있다. 얼굴은 이미 노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어서 한눈에 쇠약한 노년기임을 알게 해준다. 하지만 노년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지배한 광기가 유년기·소년기에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내면은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멈추어 있었음을 나타내려는 게 아닐까 싶다.

병적인 불안이 뭉크를 예술가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신경증 때문에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난 병이 치유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의 예술에는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화가로서의 인생 전체가 불안을 껴안고 이를 작품으로 승화시켰기에, 뭉크는 자기 예술에는 병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른 자리에서도 뭉크는 거듭 자기 예술과 신경증의 관계에 대해 말했다.

"내 예술은 오로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숙고에서 나왔다. 왜 나는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은가? 왜 내 요람에는 일찍이 저주가 내렸는가? 왜 나는 이 세상에 아무런 주체적 선택도 없이 던져졌는가? 나의 예술은 이러한 나의 삶에 의미를 주기 위한 것이다."

'요람' 언급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정신적 기질 때문인 듯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아버지는 신경증적 광포함을 보였다. 어린 뭉크는 아버지의 발작적인 정신 질환을 싫어했다. 하지만 나중에 그는 결국 "나는 아버지의 신경증적인 광포함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라고 고백했다. 그러한 광기가 "나의 예술 세계에도 각인되어 있다"라고 했다.

뭉크는 일차적으로 극한의 정신적 고통을 그림을 통해 표출함으로써 자신의 신경증을 견뎌냈다. 나아가서는 병적 불안과 우울이 곧 가장 중요한 예술적 자양분이기도 했다. 죽는 날까지 예술가에게 필수적인 창의성의 원천 역할을 했다.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광기의 화가 세라핀

광기가 예술가의 창의성 원천으로 작용하는 게 뭉크를 비롯한 일부 예술가만의 특이한 사정은 아니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예술과 문화의 발전에 광기가 필수적이라고 한다.

"우리의 황량하고 지쳐버린 문화가 디오니소스적인 마력에 접할 때 어떻게 변하는가! 디오니소스라는 광풍이 불어 모든 노쇠·부패·파손·위축을 붉은 먼지구름 속에 휘감아 독수리처럼 저 멀리 허공 속으로 채어가 버린다. (…) 그들의 이름은 광기·의지·비통함이다. 친구들이여, 나와 함께 디오니소스적 삶과 비극의 재탄생을 믿자."

그리스 신화에서 디오니소스는 광기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로마 신화에서는 바쿠스로 불리는데, 어디든 포도주의 신이자 축제와 광기의 신으로 통한다. 탁월한 이성과 도덕성의 화신으로서 태양의 신과 예언의 신으로 잘 알려진 아폴론과 대비된다.

니체에 의하면 낡은 관성에서 오는, 노쇠·부패·파손·위축을 특징으로 하는 과거의 문화는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스스로 사라지지 않는다. 문명은 아폴론의 속성인 이성을 통해 기존 도덕과 문화를 체계화함으로써 유지하려는 경향을 지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혁신을 거부하는 순간 문명 자체도 점차 초기의 활력을 잃고 정체·타락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니체는 "아폴론은 디오니소스 없이는 살 수 없었다"라고 단언한다. 디오니소스의 광기야말로 활기를 잃어버려 건조하고 축 늘어진 기존 문화를 혁신하고 생동감을 불어넣는 원동력이다. 문명의 족쇄를 거부하는 '야만적인 것'으로서의 디오니소스적 삶이 보여주는 광기가 아폴론의 이성·도덕과 같은 정도로 충족되어야 문화가 발전한다.

세라핀 루이 <생명의 나무> 1928년
세라핀 루이 <생명의 나무> 1928년퍼블릭 도메인

프랑스 화가 세라핀 루이(1864~1942)도 뭉크만큼이나 평생을 광기와 더불어 살며 예술혼을 불태웠다. 서양미술에 꽤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 해도 잘 모를 만큼 생소한 화가다. 나도 2008년 프랑스 영화 <세라핀>을 통해서 처음 접했다. 영화에서도 그녀의 광기와 예술적 열망이 서로 구분이 안 될 만큼 뒤섞여 있었다.

<생명의 나무>만 봐도 심상치 않다. 흔히 접하는 나무와 너무나 다르다. 뿌리가 모두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우주 공간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다. 나뭇잎도 평범하지 않다. 마치 이파리 하나하나가 불이 켜진 전등처럼 보인다. 이즈음 파리에서 막 시작된 예술운동인 초현실주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미술계와는 아무 연관이 없었기에 초현실주의 흐름을 받아들였을 리는 없고, 내면의 표현 욕구를 그대로 드러냈으리라.

낮에는 가정부로 일해야 했기에 늦은 밤에 촛불 아래서 상상 속의 꽃과 나무를 주로 그렸다. 그래서인지 검은색처럼 어두운 색채와 원색에 가까운 강렬한 색채가 기하학적인 형태 속에서 조화를 이룬다. 성당의 창에서 햇빛을 머금어 반짝이는 스테인드글라스 특유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초현실주의보다는 신비주의 느낌이 강하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됐다. 가정부로 생계를 이어갔으니 누군가에게 그림을 배울 처지도 아니었다. 물감조차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자신이 직접 신의 부름을 받아서 그 예술적 소명에 따라 그림을 그린다고 믿었다. "천사가 성모 마리아를 위해 그림을 그리라는 사명을 전달해 주었다."

가정부로 일할 때도 이상한 외양과 행동을 했고, 길을 걸으며 내내 혼잣말을 하는 등 신경증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전쟁 중에는 "전쟁터에서 약혼자가 살아 돌아왔다"라는 망상에 빠져 웨딩드레스와 신혼집을 장식할 소품들을 사들였다. "세계는 멸망해 간다"라고 중얼거리면서 거리를 방황했다. 결국 정신 분열 증상이 심해져서 정신병원에 갇혀 생을 마감했다.

창의적 혁신과 학설에도 광기의 도움이 있었다

광기가 창의성의 자극 역할을 하는 게 예술 분야에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걸리버 여행기>로 잘 알려진 아일랜드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문제의식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여러 단편을 담은 <통 이야기>의 '광기에 관한 여담'에서 광기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새 제국의 건설, 새로운 철학의 전개와 발전, 새 종교의 창시와 전도 등을 보면 그 창시자들은 광기를 지닌 사람들이다. (…) 반대론자들에게 미치광이로 오해받는 일이 허다했다. 추종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평범한 인간 이성이 명령하는 바와는 매우 다른 방법으로 말하고 행동했다."

그에 따르면 세상을 바꾸거나 새로운 철학·종교를 만든 개척자들은 광기라 불릴만한 기질을 갖고 있었다. 절대다수의 사람이 진실이나 상식이라고 믿고 있던 바와는 전혀 다른 발상과 행동 양식을 보여주었다. 다수에게는 해괴한 상상과 행동으로 보였을 게 당연하다. 이를 "표현할 단어로서 광기, 정신착란 이외에는 아직 다른 명칭이 없다"라고 한다.

실제로 당시 세상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이들 창시자를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스위프트는 가장 이성적이고 치밀한 사고를 한다고 여겨지는 철학자들 가운데, 에피쿠로스·디오게네스·루크레티우스· 등 새로운 학설 창시자들의 예를 든다. 이들 중에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경우를 살펴보자.

제이콥 요르다엔스 <디오게네스> 1642년
제이콥 요르다엔스 <디오게네스> 1642년퍼블릭 도메인

알렉산더 대왕이 무엇이든 바라는 걸 말하라고 하자, "햇빛을 가리지 말아주시오"라고 대답한 일화로 유명하다. 개처럼 자신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따른 생활이야말로 행복한 삶이라고 주장했다. 기존의 사회적 습관과 문화를 경멸하고, 큰 술통을 거처로 삼아 구걸로 생계를 이어가는 '개 같은 삶'을 추구했기에 견유학파로 불렸다.

17세기 플랑드르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제이콥 요르다엔스(1593~1678)의 <디오게네스>는 그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반응을 잘 보여준다. 헐벗은 거지 모습의 디오게네스가 환한 대낮에 램프를 들고 다니자 조롱하는 모습이다. 대부분 손가락질하며 놀리거나 배를 잡고 비웃는다. 한 소년은 엄지손가락을 코에 대고 나머지 손가락을 펴서 흔든다. 서양에서 상대를 조롱하고 비웃는 대표적인 제스처다. 동네 광인 취급을 하는 분위기다.

대낮에 불을 켠 램프를 들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뭐하냐고 묻자, "사람을 찾고 있다네"라고 했다. 진정한 사람을 좀처럼 발견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행복은 문명이 강제하는 규범이나 외적인 조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에서 찾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하려는 행위와 말이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광기나 착란으로 보였을 뿐이다.

원래 재산이라야 물을 떠먹을 때 쓰는 표주박이 전부였는데, 개가 혀로 물 마시는 모습을 본 후에 이조차 내던졌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연회에서 뼈를 던져 주자, 돌아갈 때 개가 하는 것처럼 그에게 오줌을 갈겼다. 사람들로 가득한 광장 한복판에서 자위행위를 하면서 "배고픔도 이처럼 문질러서 해결된다면 좋았을 것을"이라고 했다는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다수의 상식이나 사회가 정상이라고 규정하는 사고방식과 행위 안에서 살아갈 때 그 사람은 평범한 형태로 생애를 보낸다. 여기에서 새로운 학설이나 종교가 생겨날 여지는 거의 없다. 새로운 흐름을 개척한 사람들은 대체로 상식의 세계를 뒤집어엎는다는 점에서 광기에 가까운 창의적 단절을 보인다. 그러므로 스위프트는 모든 광기를 배척한다면 인류는 동일 철학과 신앙 아래에서 살아가는 불행에 빠지게 된다는 문제의식을 밝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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