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뿐 아니라 전국의 송전선로는 모두 수도권으로 향한다. 도계에서 묵호항까지 가는 철도가 석탄 수탈의 통로였듯, 전국에서 서울로 가는 송전선로는 한국전력(한전)이 세운 에너지 수탈의 통로였다.
정윤영
땅끝 해남부터 용인까지, 장거리 송전용인 34만 5천 볼트 송전선로 70개와 변전소 29개가 들어설 계획이다. 송전선로의 길이만 3855km, 그 길을 따라 60m짜리 송전탑이 약 8000개가 세워질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나서니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특별법'으로 30여 개의 법 인허가, 입지선정위원회나 환경영향평가 등이 간소화됐다.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는 권한도 있다. 노선이 확정되고 나서야 주민들은 내 집 위에 송전선로가 지나가게 됐다는 걸 알게 된다.
약 72조 원을 들여 전국에 송전탑 8000여 개를 짓겠다는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한 첨단산업단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송전선로 건설사업에는 국민주권도, 에너지 지산지소(地産地消)도, 국가 균형발전도 보이지 않는다. 국가기간 전력망이 아니라
'수도권 특혜 전력망'이었다.
탈탈탈, 그리고 쇠사슬 줍는 소리
핵시설을 세 번이나 막은 삼척은 신규 석탄발전소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핵발전소를 막았다고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삼척만 막는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지역은 늘 일자리가 필요하고, 그래서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되면 발전소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고, 여기에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들끼리 갈등하게 만든다.
발전소는 초고압 송전선을 필요로 한다. 핵발전소와 석탄발전소, 송전탑은 별개가 아니었다. 지역이 에너지 식민지로 살아가는 한 끝나지 않을 문제였다. 이 고리를, 수탈의 경로를 끊어내야만 했다. 지역 식민화에 맞서 함께 싸워야 할 일이었고, 발전소와 송전탑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삼척핵발전소 반대투쟁위원회는 매일 삼척 우체국 앞에서 탈핵, 탈석탄, 탈송전탑을 희망하는 탈탈탈 순례와 피켓 시위를 한다. 천 일을 훌쩍 넘겼다. 최근에는 신규 핵발전소 저지와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 송전탑 건설 백지화를 요구하는 광화문 탈핵행동도 함께하기 시작했다.
용인 산단을 위한 송전선로 건설사업이 빠르게 추진되면서 해남부터 충남, 대전, 경기까지 20개가 넘는 송전탑 건설 반대 대책위가 꾸려졌고, 지금도 매일같이 생기고 있다. 송전탑과 용인 산단이 별개가 아니라는 걸 확인한 지역 대책위와 전국의 100여 개 단체들이 모여 2026년 1월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재검토와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 전국행동'(전국행동)을 출범했다. 더 이상 수도권의 식민지로 살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2014년 6월,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 천막 농성장에는 경찰 공권력의 행정대집행 예고로 밀양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모여 있었다. 새벽 3시가 넘어 3천 명 가까운 경찰과 공무원들이 왔고, 거침없이 천막을 철거했다. 밀양 할매들과 연대자들은 천막을 지키려고 서로의 몸을 쇠사슬로 묶어 땅에 누웠다. 천막은 모두 부서졌고, 사람들을 연결한 쇠사슬도 절단기에 잘려 나갔다. 다 끝났다는 생각에 허탈해할 때 어디선가 절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에 쓸 거라고, 다시 써야 된다고 밀양 할매가 끊어진 쇠사슬을 주워서 가방에 넣는 소리(김영희, <전기, 밀양-서울>)였다.
밀양 할매들 눈에는 송전탑이 '일본 놈들이 쇠말뚝 박아 놓은 것'(김영희 외, <송전탑 뽑아줄티 소나무야 자라거라">)것처럼 보였다. 일제에 저항했던 삼척 근덕면의 농민들은 핵발전소가 들어선다고 했을 때 목숨을 걸고 투쟁해 막아냈다. 삼척 농민회도, 한전에 맞서 끝까지 싸운 밀양 할매들도 이 땅의 원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송전탑이 박힌 땅은 '나무와 풀, 새와 꽃들의 것'이었고, 우리는 땅에서 나는 걸 먹고 산다는 것을 아는 지혜가 있었다.
밀양에는 765kV 송전탑이 들어섰고, 삼척에는 6월 지방선거에 신규 원전과 핵폐기장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이 또 나왔지만, 삼척 농민과 밀양 할매들이 알려준 것을 물려받은 사람들이 있다. 탈탈탈 깃발을 들고 걷는 삼척에서, 전국행동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송전탑 반대 투쟁에서, 밀양 할매가 주웠던 쇠사슬을 본다. 주권을 되찾을 때 에너지 민주주의가, 정의로운 전환이 가능할 것이다. 그때까지 떨어지면 줍고, 잘리면 또 줍고 쇠사슬은 이어질 것이다. 싸움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