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11 18:24최종 업데이트 26.06.1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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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짧은 숏폼 콘텐츠가 대세인 시대에 느림에 주목합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성공보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드라마나 예능에서 마음의 위로를 얻고 인생의 지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김지은의 그거 봤어?'에서 다루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즐거운 상상을 해보자. 이 글을 보는 당신과 이 글을 쓰는 나는 엄청난 능력자다. 나는 일필휘지로 소설을 써 내려갈 수 있는 능력을 숨기고 있다. 이 능력을 꺼내놓을 때는 과연 언제란 말인가. 나는 그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깜박이는 커서만 바라보고 있다. 이 이야기의 가제를 달자면, <천재 소설가가 자신의 능력을 숨김> 정도 되겠다. 자, 이제 당신의 차례다. 당신은 지금 어떤 능력을 숨기고 있는가.

웹툰이나 웹소설에서는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현재 네이버에서 연재 중인 웹툰)처럼 '능력 은폐형 주인공' 서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주인공은 천재지만, 어떤 이유로 그 능력을 드러낼 수 없다. 주변 인물들은 주인공을 과소평가하지만, 결정적 순간에 주인공의 능력이 드러난다. 독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그 짜릿한 순간을 기대하며 매 화를 놓치지 않고 본다.

'능력 은폐형 주인공' 서사가 생각나는 콘셉트

tvN 홈페이지의 <언더커버 셰프> 소개 이미지매주 목요일 저녁 방송되는 <언더커버 셰프>의 메인 이미지tvN 언더커버 셰프

이런 패턴이 예능으로 넘어온 걸까. 우리나라의 대표 스타 셰프 샘킴, 권성준, 정지선이 해외 현지 식당에 신입 직원으로 위장 취업하는 내용을 담은 리얼리티 예능 <언더커버 셰프>(tvN)가 방영되고 있다. '능력 은폐형 주인공' 서사가 생각나는 콘셉트다. 샘 킴과 권성준은 이탈리아에 있는 식당에, 정지선은 중국 청두에 있는 식당에 각각 취업한다. 세 셰프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주방 막내에서 시작해 5일 만에 신메뉴 런칭을 하는 것이다. 식당 사람들은 한국에서 본업을 은퇴한 유명인이 식당 창업 전에 일을 배워보는 다큐멘터리 촬영이라고만 알고 있다.

전문가로 활약하는 이들의 모습만 보다가 낯선 직장에서 막내로 일하는 모습을 보니 무척 새로웠다. 세 명의 셰프들은 인터뷰를 하며 자신의 막내시절에 대해 간단히 언급했는데, 선배들보다 일찍 출근했고, 빠릿하게 움직였으며 간절함이 있었다고 했다. 첫날 영상을 보니, 이들의 막내 시절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 했다.

주방에서 막내가 된 경력 24년차 정지선 셰프막대로 위장 취업한 정지선 셰프가 고추를 천천히 자르며 다른 셰프의 의견을 구하는 모습.tvN 언더커버 셰프

세 명 모두 달걀 깨기, 감자 껍질 까기, 고추 썰기 같은 쉬운 업무를 받았다. 너무 잘하면 경력이 많은 게 표시 날 테고, 너무 못하면 5일 안에 미션을 완수할 수 없다. 너무 못하지도 잘하지도 않도록 완급 조절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각 식당의 사장님은 이들이 잘 하고 있는지 수시로 감시한다.

긴장한 나머지 샘킴은 달걀물에 달걀 껍데기를 빠뜨리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권성준은 감자를 못 깎는다고 잔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주목하지 않을 때, 그들은 휙휙 주위를 둘러보고는 경력자로 변신한다. 다다다다 속력을 내서 채소를 썰고, 바닐라빈을 알아서 손질하고, 달걀 몇 십개를 한 통에 다 깬 후 손으로 샤샤샥 노른자를 분리한다.


긴장됐던 첫날 오전 근무가 끝나고 브레이크 타임이 되었다. 다른 직원들은 집에 가서 쉬는데, 샘킴과 권성준은 오전에 사수에게 배웠던 레시피를 외운다. 정지선 셰프는 메뉴판을 탐독하고 주방을 살핀다.

저녁 서비스가 시작됐다. 권성준이 직접 간을 한 콩수프를 먹어 본 사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가지의 음식이 올라가는 전체모둠 메뉴도 혼자 무리없이 진행했다. 권성준은 인터뷰 때 주어진 일을 우선 잘 해야 기회가 온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틈틈이 그를 관찰했는지, 프로그램 말미에 권성준에게 '감자 파스타 해볼래?'하고 물으셨다. 하루 근무했을 뿐인데 누구보다 먼저 미션에 성큼 다가갔다.

전채모둠을 진행하고 있는 권성준 셰프브레이크 타임에 공부한 내용을 떠올리며 혼자서 척척 전채모둠을 만들고 있는 권성준 셰프의 모습.tvN언더커버 셰프

저녁 근무를 하러 간 샘킴은 오전에 없던 파트 타임 근무자, 소렘을 보고 깜짝 놀란다. 서열이 더 뒤로 밀린 것이다. 샘킴은 자신도 모르게 자꾸 경력자 모드가 된다. 혼자 반죽기를 조절해서 오전에 배운 레시피대로 반죽 굵기를 조정해 면을 뽑는다. 소렘은 오늘이 처음이라는 샘킴의 실력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모든 썰 것은 정지선 셰프에게로못하는 것처럼 흉내를 내고 있음에도 정지선 셰프에게 칼질할 재료가 몰리는 모습tvN 언더커버 셰프

정지선도 너무 재료를 잘 써는 까닭에(나름 못하는 시늉을 했음에도) 토마토, 두부, 고추, 파채, 개구리, 닭다리까지 썰어야 할 재료들이 모두 정지선에게 몰렸다. 정지선 셰프는 플레이팅을 하면서도 틈틈이 자신이 다뤄보지 않은 양수 웍을 어떻게 다루는지 다른 셰프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샘킴은 메인 셰프들을 관찰하며 미션에 더 가까이 갈 방법을 모색했다. 플레이팅을 유심히 보고 가니시 재료에 손을 댄 후, 메인 셰프에게 눈빛으로 허락을 구했다. 무례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메인 셰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의 표시를 했다. '조용하지만 대범한 도전'이라는 자막이 깔렸다.

"'여기와서 해'라고 말하지 않아요. 막내는 터치를 하지 않으면 기회를 주지 않거든요."

성장의 재미 보여주는 '언터커버 셰프'

플레이팅에 쓸 가니시에 손을 댄 이유를 설명하는 샘킴셰프막내 1일차 샘킴 셰프의 인터뷰.tvN언더커버 셰프

<언더커버 셰프> 첫 화를 볼 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이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만을 기대했다. 이들의 숨겨진 능력이 살짝살짝 드러나는 순간들을 보며 '저들은 사실 초보가 아니라고' 하며 큭큭 웃었다.

그런데 3화까지 보니, 이 프로그램은 셰프들의 정체가 드러나는 '발견'의 순간뿐 아니라 '성장'의 재미도 품고 있다. 이미 다 성장했다고 생각한 스타 셰프들이 낯선 환경 속에서 사수들이 알려준 것을 최대한 빨리 습득하려고 노력하고, 알려주지 않은 것들을 알기 위해 관찰한다. 가만 있다가 "짜잔, 사실 나 셰프였지롱!" 하고 드러나는 순간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난 모든 사람이 다 각자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는다. 어쩌면 우리 모두 이미 '성장과 발견 서사' 속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재능이 다른 사람에 의해 발견될지 말지는 내가 지금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고 있는지, 내가 날 믿고 도전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그렇게 매일매일 지루한 그 길을 걷던 어느 날, 결국, 드디어 나의 정체가 드러난다. '와, 나 이런 사람이었어?' 하고 나도 놀라는 그 어느 날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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