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시간) 레바논 최북단 아카르주에 위치한 르네 무아와드 공항에 나와프 살람 레바논 총리(왼쪽 중앙)가 도착하고 있다. 레바논은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의 끊임없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몇 달 내 개장을 목표로 최북단에 위치한 두 번째 공항의 재건 공사를 시작했다.
AFP 연합뉴스
포퓰리즘을 선동가의 정치로만 보면 순서를 거꾸로 읽게 된다. 선동가가 먼저 대중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시민이 스스로 책임지는 주권자로 서기보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할 때, 그 빈자리에 선동가가 들어온다.
복잡한 현실보다 적과 우리 편의 이야기가 더 쉽게 들릴 때, 선동가는 그 마음을 권력으로 바꾼다. 그는 시민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당신은 속았고 빼앗겼으니, 내가 되찾아주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시민은 주권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남는다.
레바논의 종파 정치는 바로 그 빈자리를 보여준다. 정치의 실패를 함께 따져야 할 자리에 소속의 감정이 들어섰고, 권력의 책임을 물어야 할 자리에 우리끼리라도 지켜야 한다는 결속이 들어섰다. 그 순간 정치의 질문은 나라의 미래에서 우리 편의 안전으로 좁아졌다.
정치권은 자신이 행사한 권력에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그 권력을 부르고, 맡기고, 실패 뒤에도 다시 살려낸 책임은 유권자에게 남는다. 표는 내가 주었지만, 그 표가 만든 결과는 정치권이 알아서 책임지라는 태도는 대의정치가 아니다. 그 순간 주권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고객' 민주주의의 껍데기만 남는다.
책임 없는 주권의 끝
유권자의 선택은 보편 진리가 아니다. 정치적 선택이다. 선거 결과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많은 사람이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곧 언제나 옳은 선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선택을 신성한 것으로 떠받드는 제도가 아니다. 선택이 만든 권력과 그 권력이 낳은 결과를 함께 감당하는 제도다. 주권자가 권한을 위임했다면, 그 권한이 만든 현실 앞에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역사는 긴 시간 속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는 매 순간 앞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우회하고, 멈추고, 때로는 이미 지나온 길로 되돌아간다.
그 모든 굴곡과 시행착오를 "국민의 뜻"이라는 말로 덮어버리면 민주주의는 자기비판의 힘을 잃는다. 잘못된 선택까지 역사 진보의 일부처럼 미화하는 순간,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퇴행에 대한 예찬이 된다.
레바논의 비극은 국가가 시민을 지키지 못한 데서 시작됐고, 그 실패를 바로잡아야 할 선거가 오래된 진영의 방패 안에 갇히며 더 깊어졌다. 시민은 무너진 국가를 다시 세울 책임 있는 권력을 찾기보다, 익숙한 소속을 지켜줄 편을 먼저 불러냈다. 그렇게 실패한 권력은 심판받지 않았고, 선거는 변화의 계기가 아니라 낡은 질서의 연장이 됐다.
선거는 우리 편을 다시 부르는 의식이 아니다. 권력을 맡기고, 그 권력이 만든 결과 앞에 함께 서는 일이다. 주권자가 그 책임을 피하려 할 때 민주주의는 쉽게 타락한다. 책임 없는 주권의 다른 이름, 그것이 포퓰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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