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10 06:41최종 업데이트 26.06.10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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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레바논 남부 도시 티레에서 전날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한 잔해 더미 사이에 한 남성이 서 있다.AFP 연합뉴스

레바논 남부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습과 헤즈볼라의 무장 대치 사이에서 주민들은 피난길로 밀려나고, 레바논은 전쟁과 평화의 결정권을 온전히 쥐지 못한 채 서 있다.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은 이 비극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레바논의 비극을 외부 공격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국가가 시민을 지키지 못한 자리에 헤즈볼라 같은 무장 권력이 들어섰고, 그 힘은 어느새 전쟁과 평화의 결정에도 깊숙이 관여하게 됐다.


헤즈볼라는 단순히 총을 든 조직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점령과 침공의 기억, 시아파 공동체의 오랜 주변화, 국가가 제공하지 못한 안전과 복지의 공백 속에서 사회적 기반을 넓혔다. 국가는 멀었고, 종파 공동체는 가까웠다.

질문은 그다음에 남는다. 왜 국가는 이토록 약해졌고, 왜 시민은 전쟁의 비용을 반복해서 떠안는가. 은행이 무너지고 항구가 폭발하고 청년들이 떠난 뒤에도, 왜 실패한 권력은 다시 살아남는가.

무너진 공동체, 살아남은 권력

레바논은 원래 폐허의 이름이 아니었다. 베이루트는 금융과 상업, 교육과 문화가 만나는 도시였고, 지중해 동쪽의 개방성을 상징하던 공간이었다. 전쟁과 분열의 이미지가 굳기 전, 레바논은 중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나라로 불렸다.

그러나 2019년 이후 그 이미지는 빠르게 무너졌다. 은행은 멈췄고, 돈은 가치를 잃었으며, 빈곤은 넓게 번졌다. 시민은 자기 예금을 마음대로 찾지 못했고, 일상의 계산은 환율과 물가 앞에서 무너졌다.

2020년 8월 9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항구 폭발에 책임 있는 모든 관리들을 교수형에 처할 것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지 하루 만에 반정부 시위대가 의회와 가까운 지역에서 보안군과 충돌하고 있다.연합뉴스

2020년 베이루트 항구 폭발은 그 붕괴를 한 장면으로 압축했다. 항구에 방치된 위험물질은 국가의 무능과 부패, 책임 회피를 그대로 드러냈다. 폭발은 도시를 찢었고, 레바논 시민에게 국가는 더 이상 믿을 수 있는 보호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청년들은 떠났다. 남은 사람들은 은행 앞에서 자기 돈을 찾지 못했고, 생활은 점점 버티는 일이 됐다. 한때 가능성의 도시였던 베이루트는 국가의 실패가 시민의 삶을 어떻게 갉아먹는지 보여주는 장소로 변했다.

이 정도의 붕괴라면 선거는 심판의 시간이 되어야 했다. 누가 이 지역의 삶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누가 책임을 방기했는지, 누가 다시 권력을 요구할 자격이 없는지 물었어야 했다. 그런데 레바논의 정치는 자주 다른 길을 갔다.

그럼에도 책임을 묻는 표보다 우리 편을 살리자는 표가 더 오래 살아남았다. 공동체가 흔들려도 그 표심은 삶의 손익이 아니라 오래된 소속의 깃발을 향했다. 무능한 권력은 다시 보호받았고, 붕괴 이후의 선거조차 낡은 충성을 확인하는 장면이 됐다.

종파는 어떻게 방패가 되었나

이 관성은 우연이 아니다. 레바논 정치의 바닥에는 종파별 권력분점이라는 오래된 장치가 놓여 있다. 여러 공동체가 함께 살기 위해 만든 타협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장치는 공존의 규칙이면서 동시에 책임 회피의 통로가 됐다.

레바논은 마론파 기독교, 수니파, 시아파, 드루즈 등 여러 공동체가 권력을 나눠 갖는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해 왔다. 대통령, 총리, 국회의장 같은 핵심 자리가 종파별 균형 속에서 배분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처음의 취지는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권력을 나누는 방식이 언제나 책임을 낳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각 종파의 지도자와 정당은 국가 전체의 운영자가 아니라 자기 공동체의 몫을 지키는 대리인처럼 움직인다. 나라가 잘 굴러가는가보다 우리 쪽이 밀리지 않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삶의 손익을 따지기보다 오래된 소속의 표식을 먼저 보았다. 표는 공동체의 미래를 묻는 선택이 아니라 우리 편의 몫을 지키는 방패가 됐다. 시민은 국가의 주권자에서 공동체의 피보호자로 내려앉았다.

이때 선거는 책임을 묻는 절차가 되기 어렵다. 무능한 정치인도, 부패한 엘리트도, 공동체를 망가뜨린 세력도 '그래도 우리 편'이라는 말 뒤에 숨을 수 있다. 나라 전체의 손실은 커지지만, 진영 내부의 생존 감각은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나라가 무너져도' 다시 찍는 정치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실패한 권력은 성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소속의 방패 아래에서 버틴다. 시민이 나라의 미래보다 익숙한 편의 안전을 먼저 찾는 순간, 책임은 사라지고 충성만 남는다.

선동가는 어디에서 오는가

6일(현지시간) 레바논 최북단 아카르주에 위치한 르네 무아와드 공항에 나와프 살람 레바논 총리(왼쪽 중앙)가 도착하고 있다. 레바논은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의 끊임없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몇 달 내 개장을 목표로 최북단에 위치한 두 번째 공항의 재건 공사를 시작했다.AFP 연합뉴스

포퓰리즘을 선동가의 정치로만 보면 순서를 거꾸로 읽게 된다. 선동가가 먼저 대중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시민이 스스로 책임지는 주권자로 서기보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할 때, 그 빈자리에 선동가가 들어온다.

복잡한 현실보다 적과 우리 편의 이야기가 더 쉽게 들릴 때, 선동가는 그 마음을 권력으로 바꾼다. 그는 시민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당신은 속았고 빼앗겼으니, 내가 되찾아주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시민은 주권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남는다.

레바논의 종파 정치는 바로 그 빈자리를 보여준다. 정치의 실패를 함께 따져야 할 자리에 소속의 감정이 들어섰고, 권력의 책임을 물어야 할 자리에 우리끼리라도 지켜야 한다는 결속이 들어섰다. 그 순간 정치의 질문은 나라의 미래에서 우리 편의 안전으로 좁아졌다.

정치권은 자신이 행사한 권력에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그 권력을 부르고, 맡기고, 실패 뒤에도 다시 살려낸 책임은 유권자에게 남는다. 표는 내가 주었지만, 그 표가 만든 결과는 정치권이 알아서 책임지라는 태도는 대의정치가 아니다. 그 순간 주권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고객' 민주주의의 껍데기만 남는다.

책임 없는 주권의 끝

유권자의 선택은 보편 진리가 아니다. 정치적 선택이다. 선거 결과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많은 사람이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곧 언제나 옳은 선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선택을 신성한 것으로 떠받드는 제도가 아니다. 선택이 만든 권력과 그 권력이 낳은 결과를 함께 감당하는 제도다. 주권자가 권한을 위임했다면, 그 권한이 만든 현실 앞에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역사는 긴 시간 속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는 매 순간 앞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우회하고, 멈추고, 때로는 이미 지나온 길로 되돌아간다.

그 모든 굴곡과 시행착오를 "국민의 뜻"이라는 말로 덮어버리면 민주주의는 자기비판의 힘을 잃는다. 잘못된 선택까지 역사 진보의 일부처럼 미화하는 순간,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퇴행에 대한 예찬이 된다.

레바논의 비극은 국가가 시민을 지키지 못한 데서 시작됐고, 그 실패를 바로잡아야 할 선거가 오래된 진영의 방패 안에 갇히며 더 깊어졌다. 시민은 무너진 국가를 다시 세울 책임 있는 권력을 찾기보다, 익숙한 소속을 지켜줄 편을 먼저 불러냈다. 그렇게 실패한 권력은 심판받지 않았고, 선거는 변화의 계기가 아니라 낡은 질서의 연장이 됐다.

선거는 우리 편을 다시 부르는 의식이 아니다. 권력을 맡기고, 그 권력이 만든 결과 앞에 함께 서는 일이다. 주권자가 그 책임을 피하려 할 때 민주주의는 쉽게 타락한다. 책임 없는 주권의 다른 이름, 그것이 포퓰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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