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12 12:07최종 업데이트 26.06.12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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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7일 오후 개표소가 설치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을 3일째 봉쇄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권우성

"그런데 왜 참정권인가?"

지난 주말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 모인 사람들을 심란한 마음으로 보다가 월요일 새벽에서야 든 생각이다. 사실 처음 사람들이 잠실 개표소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모여들 때만 해도 그렇게 '심각하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부정선거론자들이 사회를 좀먹는 존재라는 사실을 차치한다면 사실 이들은 지난 내란 국면에서 이미 겪어본 아주 익숙한 존재들이었다. 위협적이긴 한데 규모와 성격이 가늠되고, 그들의 주장이 어디까지 전파력과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대충이라도 파악할 수 있었다. 심지어 대표적 부정선거론자인 황교안 자유와혁신 대표는 낮은 화단에 올라가 뛰어내리는 퍼포먼스를 하며 이 상황을 더욱 진지하게 볼 수 없도록 만들기도 했다.

생각이 달라진 건 여러 언론사들의 현장 스케치를 읽으면서였다. 비록 '부정선거' 집회 현장에 지금까지 젊은 층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올림픽공원에는 이들과 확연히 무관해 보이는 2030 세대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부정선거론자들이 몰려갔구나'하는 내 예상이 빗나갔다.

이들은 자신들이 부정 선거론자들이나 특정 정치 세력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특정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참정권 침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전한길씨는 시위대의 환영을 받지 못했고,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이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이어가자고 주장했지만 시위대는 움직이지 않았다.

'투표'는 왜 도화선이 되었나

6.3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7일 오후 개표소가 설치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을 3일째 봉쇄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 핸드볼경기장 주변에 참여한 시민들의 행동 지침을 적은 대자보가 붙어 있다.권우성

물론 올림픽공원의 풍경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시위대, 기성 보수 정치 세력, 심지어 나중에는 극우 개신교계 단체까지도 합류해 혼란한 모습을 만들어냈다. 주말이 지나면서 그들의 비중이 더욱 늘었다.

이 때문인지 내 주변에선 '참정권 침해'를 외치며 올림픽공원으로 뛰어나간 청년들이 결과적으로는 구심점을 잃고 와해되어, 부정선거론자 집단이나 극우 개신교계 중 한 곳으로 흡수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내 생각은 '지금까지의 단계에선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다'다. 이들이 다른 성격의 특정 정치 집단으로 변모할지 아니면 그냥 사라질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난 5일부터 7일까지의 사건과 그 속의 사람들에 대한 질문을 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새로운 현상이었고, 그렇다면 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왜 자신들이 조직되지 않은 비(非)정치적 존재들이라 주장하는 몇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올림픽공원으로 뛰쳐나갔을까. 왜 전국의 대학 학생회들은 비슷한 결의 입장문을 들불이 번지듯 내놓고 있을까. 왜 소셜미디어상에는 이전까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목소리를 잘 내지 않던 젊은 층들이 지금은 '참정권 침해'를 외치며 절차가 불공정했으니 재선거를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할까.

물론 여기에 대한 명확한 답을 지금 내리긴 어렵다. 아마 시간이 흘러 누군가 집회 참가자들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해야 실마리라도 잡힐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려는 말도 막연한 예측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

엄중한 문제, 그러나 의아했던 점

6.3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7일 오후 개표소가 설치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을 3일째 봉쇄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 참여한 시민들에게 나눠줄 태극기 구호 손피켓을 만들고 있다.권우성

선거는 우리 사회의 체제를 구성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아주 근본적인 정치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등하고 공정하게 투표할 권리를 보장받는 건 매우 중요하다. 말하자면 이건 누구나 동의할 수 있고, 훼손되었을 때 모두가 분노할 수 있는 보편적인 규칙이다.

그렇기에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으로 인한 투표 중단 사태는 사회적 분노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이참에 선관위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금 선관위가 문제라는 건 정파와 분야를 떠나 오래간만에 온 사회가 동일하게 내는 통일된 입장이다.

그리고 이것은 '왜 참정권인가'라는 질문의 답이 될 수 있다. 내가 의아해했던 건 이게 선관위에 항의할 일은 맞지만 올림픽공원에 모여서 집회를 열 만한 성격의 사건인가 하는 점이었다. 하다못해 선관위가 사태를 뭉개려고 한다거나,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사소하게 치부하거나,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책임 있는 기관들이 바싹 엎드리거나 기민하게 움직였고 정치권 또한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정조사 추진 등을 위해 나서고 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무게가 시위대가 주장하는 만큼 엄중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내 질문은 방식에 대한 것이다. 이 사태를 놓고 정파에 따라 이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권력이 요지부동인 것도 아닌데, 그렇다면 집단으로 모여 무언가 요구하며 일을 해결할 국면은 아니지 않나.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게 이유일 수도 있겠다.'

'정파적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행동에 나섰다?

6.3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7일 오후 개표소가 설치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을 3일째 봉쇄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권우성

이번 사태를 놓고 몇몇 평론가들은 문재인 정부 시절 벌어진 소위 '인천국제공항 사태'와 '조국 사태'를 언급하기도 했다. '인천국제공항 사태'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2100여 명의 비정규직 보안검색 요원 등을 정규직화하기로 하자, 이에 청년들이 반발하며 벌어진 사태다. '조국 사태'는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법무부 장관 후보 시절 자녀의 입시 과정에 부당하게 관여했다는 의혹이 문제가 되어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말한다.

이 사태의 내용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를 떠나서 당시 많은 청년들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며 반발했다. 그리고 이 반발은 당시 정부의 국정 지지율을 크게 흔들만큼 여파가 컸다. 이 시기를 지나며 우리 사회의 청년들은 '불공정' 문제에 매우 민감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이번 사태는 투표용지 부족으로 사람들이 선거에 참여하지 못한, 즉 제도의 '공정성'이 훼손된 문제였다. 일관된 흐름을 따진다면 이번에도 청년층이 크게 반발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럼 왜 집회와 같은 직접 행동에까지 나섰는가. 이들은 집회에 나서야만 해서 나왔기보다 나올 수 있기에 나온 게 아닐까.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의미하는 것(참정권 침해)은 매우 명확하고, 여기에 정파성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어떤 청년들에게 이 문제는 누구의 편이기에 행동하는 게 아니라 중립적인 입장에서 봐도 문제이기에 행동할 수 밖에 없는, 말하자면 정파적으로 '순수'하고 그래서 행동하는 자의 객관성을 해치지 않는 문제제기를 '공정'하게 할 수 있는 이슈로 보였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걸 거꾸로 얘기하면 '참정권 침해' 수준으로 근본적인 '게임의 규칙'이 치명적으로 붕괴되는 게 아니라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불공정함에 민감하지만 매우 탈정치적이며 극도의 중립을 추구하는 이 집단(올림픽공원에 나온 청년들)은, 다른 비슷한 불공정이 발생해도 그것이 정파적 문제라 판단되면 행동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인한 투표 중단' 사태에 대해 선관위에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나아가 선관위의 대대적인 개혁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참정권 침해'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가지고 거리로, 소셜미디어로 쏟아져 나왔는지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지금 올림픽공원에 나가있는 이들이 어떤 집단인지를 명징하게 설명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사회에서 우리와 함께 살며 성장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 살아갈 그 청년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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