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진행 중인 <삶은 도서관>의 저자 이인자 작가.
최선한
- 작가님이 일하시는 도서관(정약용 도서관)에서 직접 뵈니 꼭 <삶은 도서관> 속에 들어온 기분입니다. 도서관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되셨나요?
"국문학과를 나와 광고홍보 분야에서 22년간 일하다 권고사직을 당했어요. 이후 도서관 공무직으로 일하게 됐죠. 처음엔 좋아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중년 여성에게 주어진 공공기관의 일자리라는 점에 감사한 마음이 컸어요."
- 지금 도서관은 작가님께 어떤 공간인가요?
"처음엔 대출과 반납을 판단하는 단조로운 곳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취업 준비생이 어느 날 보이지 않으면 취업한 걸까 궁금했고, 늘 오시던 어르신이 한동안 안 보이면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이용자들의 삶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지금의 도서관은 저에게 '사람을 읽는 공간'이에요."
- 근무하시다가 서가에 꽂힌 작가님의 책과 마주할 때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서가에 꽂혀 있지 않기를 바라죠. 늘 대출 중이길 바랍니다.(웃음) 한 번은 이용자 분이 헐레벌떡 책을 들고 와 대출해 달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책을 본 순간 '제가 쓴 책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책 덕분에 예상치 못한 만남과 경험이 생기는 요즘이 즐거워요."
- 책 <삶은 도서관>에 소개한 대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용자가 있다면요?
"매일 도서관을 찾으시던 어르신이 계셨어요. 어느 날 자료실에서 통화를 하시다 제지를 받고 나가셨는데, 몇 시간 뒤 직접 전화가 왔어요. 알고 보니 집에 화재가 나 소방서와 연락을 주고받는 중이셨던 거예요. 그런데도 어르신이 가장 걱정하신 건, 도서관에 다시 오지 못하게 될까 하는 것이었어요. '내가 도서관 말고는 갈 데가 없어요' 그 말을 듣고 알았습니다. 도서관이 누군가에게는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라 하루를 견디는 공간일 수도 있다는 것을요."
- '캐리어 끌고 도서관'도 연재 중이신데요. 전국의 도서관을 찾아다니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첫 책 원고를 넘기고 나서 이 시간이 그냥 흘러가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랫동안 멀어졌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만큼 거기서 멈추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쉬는 날마다 도서관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 작가님만의 도서관 즐기는 법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도서관은 자리가 중요해요(웃음). 바다가 보이면 바다 쪽, 숲이 보이면 숲이 잘 보이는 자리를 찾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자가 편해야 해요. 오래 머무르려면 결국 의자가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 낯선 도서관으로 향하는 기분은 어떤가요?
"오동숲속도서관에 갈 때도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갔는데요. 어린 시절 낯선 골목을 탐험하던 것처럼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길을 따라가는 설렘이 있더라고요. 집과 회사만 오가던 삶에서 '도서관을 기록한다'는 이유로 새로운 길을 떠날 수 있게 됐어요. 쉬는 날에도 가보고 싶은 곳이 있고, 건강하게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참 행복합니다."
흩어진 글들을 한 권으로 묶는 법

▲인터뷰를 진행 중인 <삶은 도서관>의 저자 이인자 작가.
최선한
- <삶은 도서관>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원래 제목은 '대부업은 아니지만 대출하는 사람입니다'였어요(웃음). 도서관에서 일하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대출되었습니다'라는 말을 해요. 그러다 보니 제가 마치 금융회사 직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재미있게 붙인 제목이었죠. 그런데 출판사에서 책 제목으로는 어렵겠다고 하더라고요. 온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중, 당시 고3이던 조카가 도서관에 다녀와 소파에 드러누우며 툭 한마디를 던졌어요. '삶은 도서관이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로 이거다 싶었죠."
- 도서관이라는 하나의 공간 안에서 계속 새로운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구조가 인상적이면서도 부러웠습니다. 처음부터 '도서관'이라는 큰 틀을 염두에 두고 쓰신 건가요?
"처음 브런치를 시작한 것도 다시 글을 쓰고 싶어서였어요. 매일 한 편씩 쓰자는 마음으로 일상을 기록했죠. 그런데 대출대 위에 놓인 책들을 본 순간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암 환자 식단, 청약, 자격증 같은 책들이 결국 누군가의 현재 삶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때부터 도서관은 책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보는 공간이 됐고, 그 기록들이 모여 <삶은 도서관>이 됐습니다."
- 오늘 가장 여쭙고 싶었던 질문입니다. 저도 3년 반 동안 40여 편의 글을 써왔는데요. 책으로 묶기 위해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글을 추려보니 절반 정도만 남더라고요. 그런데 덜어낸 글들 역시 제게는 소중한 기록이라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작가님도 <삶은 도서관>을 만들면서 비슷한 고민을 하셨나요? 그랬다면 흩어진 글들 속에서 하나의 결을 만들어 가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지금은 <삶은 도서관>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지만, 저도 처음부터 도서관 이야기만 쓴 건 아니었거든요. 카카오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에 올린 100여 편의 글 가운데 도서관 이야기는 10편 남짓밖에 안 됐어요. 그런데 글이 어느 정도 쌓이고 나니 결국 '이 글들을 어떤 하나의 이야기로 묶을 것인가'라는 고민이 찾아오더라고요. 그래서 경기히든작가 공모에 출품 때 여러 글 가운데 가장 주제가 선명한 게 도서관 이야기였어요.
그렇다고 이미 써둔 글들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책에 포함된) '1.5톤의 짜장면'이나 '검은 나비의 마지막 비행'처럼 도서관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무척 아끼는 글들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고민했죠. '이 글들을 어떻게 하면 <삶은 도서관> 안으로 데려올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떠올린 것이 목차였습니다. 웃음의 서가, 인생의 서가, 서가의 안쪽, 추억의 서가, 꿈의 서가처럼 큰 갈래를 만들었죠. 그러고 나니 보이더라고요. 주제는 내용으로만 묶는 것이 아니라 목차와 구성만으로도 하나의 결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요."
- 결국 글을 버린 게 아니라 심폐소생을 하신 거네요.
"맞아요. 저는 좋은 글은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책의 후반부에는 일부러 제가 아끼는 글들도 넣었습니다. 앞부분이 도서관 에피소드 중심이라면, 뒷부분에서는 '이 사람 글을 잘 쓰네'라는 인상을 남기고 싶었거든요. 주제와의 연결이 조금 약하더라도 문장과 글맛이 살아 있는 글이라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과 글쓰기

▲이인자 작가의 <삶은 도서관>
최선한
- 오랫동안 도서관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오셨습니다. 계속 쓰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요?
"당시에는 힘들고 골치 아팠던 민원도 막상 글을 쓰려고 앉으면 전혀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기도 하고,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요.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이 여러 방향으로 변주 됩니다. 저는 그 과정을 '마음이 세탁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글을 쓰기 위해 도서관을 바라본 게 아니라, 글을 쓰면서 도서관을 더 깊이 바라보게 된 것 같습니다."
- 스마트폰 하나로 대부분의 정보가 해결되는 시대인데도 사람들은 왜 여전히 도서관을 찾을까요?
"물론 책을 읽기 위해 오는 분들도 계시죠. 하지만 종일 머무는 분들을 보면 꼭 책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이 사람들은 도서관이 좋아서 오는 걸까, 아니면 지금의 삶을 잠시 벗어나고 싶어서 오는 걸까. 특히 공부하는 청년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곳으로 가기 위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닐까 하고요. 저 역시 쉬는 날이면 도서관을 찾아갑니다. 집도 충분히 조용한데 굳이 도서관으로 향하게 되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사람은 완전히 혼자 있는 공간보다 적당히 타인의 존재가 느껴지는 공간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각자의 일을 하면서도 함께 머무는 공간. 도서관에는 그런 묘한 힘이 있습니다."
나만의 서가를 향해
작가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비로소 내 캐리어 속에 흩어져 있던 글들을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가 생겼다. 하나의 주제로 묶이지 못할까 봐 미뤄두었던 글들은 저마다의 의미를 품은 채, 나만의 서가에 꽂히기를 기다리던 이야기들이었다.
책을 묶는다는 건 글들을 하나의 틀에 맞춰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함께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제 망설임을 접고, 때를 기다리며 머물러 있던 글들을 다시 꺼내보려 한다. 도서관이 누군가에게 하루를 견디게 하는 쉼터이듯, 나의 글도 누군가의 책장 한 칸을 차지할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라며 내 삶의 도서관 문을 열어본다.
삶은 도서관 - 책과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2025 경기히든작가 선정작
인자 (지은이), 싱긋(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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