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10 12:01최종 업데이트 26.06.10 12:01
  • 본문듣기
오래전에 읽었던 기사 내용이 인상적이라 메모를 해놨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기이한 꼴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루려는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나서 그 메모가 다시 떠올랐다.

2014년 기준으로 각 국가별 사회관계 지원을 평가하는 부문에서 한국은 OECD 34개국 가운데 꼴찌였다. 어려울 때 의지할 친구나 친척이 있는지를 평가한 점수에서 한국은 72.37점을 기록해 OECD(88.02점) 평균에 크게 못 미쳤고 회원국 중 최저였다. 특히 한국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5∼29세의 점수는 93.29점으로 OECD 평균(93.16점)보다도 높았지만 30∼49세(78.38점)에서 점수가 급격하게 낮아졌다. 50세 이상의 점수는 67.58점으로 1위인 아일랜드(96.34점)보다 무려 30점가량 낮았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상황은 나아졌을까? 그렇지 않다. 청년층과 중장년층의 극심한 관계망 격차, 노년층의 사회적 고립은 더 심해졌다. 2026년 3월에 발표된 통계청의 2025년 국민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고립도는 더 높아졌다. 위기 상황에서 도움받을 사람이 없는 비율을 뜻하는 사회적 고립도는 2025년 기준 33%를 기록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27.7%)보다도 높아졌다. 국민 3명 중 1명은 갑자기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하거나, 우울할 때 속마음을 털어놓을 대상이 없다고 느낀다.

이런 통계는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고립감은 결국 자신을 지켜줄 존재는 오직 자신뿐이며, 남을 배려하는 타협이나 절충, 양보는 필요 없고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남을 딛고 올라서더라도, 자신만 살아남으면 된다는 태도를 퍼뜨린다. 그래서 세상에 자기밖에 없다는 자아비대증이 득세한다. 사회의 축소판으로서 학교는 그런 징후를 미리 보여준다. 긴급한 일이 쉴 새 없이 터지는 한국 사회에서 교육 문제는 늘 뒷전으로 밀리지만, 섬세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일이다.

얼마 전 다른 학생과 다툼으로 분리 조치돼 상담을 받던 초등학생이 교실로 돌아가고 싶다며 교사에게 주먹과 발길질을 하며 책과 사물함 자료를 집어 던진 일이 일어났다. 왜 그랬을까? 그게 한 아이의 순간적 일탈일까? 아니다. 아이는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남들과 어울려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하는 학교에서도 오직 자기 아이만 소중하다고 가르치고 교사에게 그걸 요구하는 부모들이 만들어낸 참담한 모습이다.

아이는 배운대로 행동할 뿐이다. 그렇게 자아비대증으로 충만한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수많은 비대한 자아가 충돌하면서 배려와 양보, 상호 이해에 기반한 우정의 가치를 전혀 모른 채, 자기만 소중하다고 믿는 이들로 채워진 사회는 문제가 없을까? 모든 걸 데이터로 수량화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지식만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AI 시대에 서로 다른 사람이 맺는 관계, 우정의 배움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자니 오래전 읽은, 우정에 관한 평론가 김현의 글이 생각난다.

"우정이 있는 게 아니라, 가끔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한 작가는 꼬집듯 말하고 있다. 사람의 이기적인 면을 잘 꼬집는 말이지만,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우정이니 뭐니하는 거창한 말은 빼더라도, 언제 만나도 편안하고 마음 놓이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구란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같이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중략) 우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그 작가는, 바다가 놀라운 것은 거기에 놀라운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친구가 놀라운 것은 놀라운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과연 놀랍다!"

<헤일메리>가 보여주는 '환대의 마음'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컷소니픽처스코리아

자아비대증이 만연한 시대에 이런 우정을 말하면, 요즘 유행하는 포스트휴머니즘에 기대어서 케케묵은 인간주의에 매여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과연 '인간'의 의미, 인간이 다른 인간과 맺는 관계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바로 이 질문을 파고든다. 같은 인간도 아닌 서로 다른 존재 사이에 과연 이해와 우정과 희생은 가능할까?

미국의 SF 작가 앤디 위어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헤일메리>는 지나친 낙관주의라고 비판할 수 있을 정도로 관계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제목부터가 생각거리를 던진다. 제목이 된 '헤일메리 Hail Mary'는 미식축구에서 경기가 끝나기 직전에 패배 위기에 몰린 팀의 쿼터백이 마지막 수단으로 던지는, 성공 확률이 거의 없는 롱패스를 가리킨다. 영화에서는 위기에 처한 인류가 우주로 던진 마지막 롱패스를 가리킨다.

<헤일메리>에서 과학교사인 라일랜드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는 기억을 잃은 채 우주선 안에서 깨어난다. 나중에 드러나는 진실이지만, 그레이스가 지구로 귀화할 가능성이 없는 우주로 떠난 이유는 어느 날 태양계에 나타난 미지의 생물체인 아스트로파지 때문이다.

아스트로파지는 태양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습성이 있어서, 태양은 급속히 차가워지고 지구는 수십 년 안에 빙하기를 맞고 인류는 멸종하는 상황에 처한다. 연구 결과 주변 항성 중 유일하게 에너지를 잃지 않는 타우세티에 문제를 해결할 단서가 있다고 판단하고, 그레이스를 비롯한 세 사람을 타우세티에 보내기로 결정하지만 그레이스만 살아 남는다.

이 임무가 얼마나 절박한지는 그레이스가 점차 기억을 회복하면서 알게 되는 진실에서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거부 의사와는 무관하게 그가 책임질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강제적으로 우주선에 태워졌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몇 명의 희생 정도는 괜찮다는 시각이 작동한다. 이런 시각은 영화에서 그레이스가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내리는 중요한 선택과 대조된다.

하지만 이런 얘기도 영화의 고갱이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환대와 우정의 의미를 다룬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레이스는 우연히 같은 목적으로 타우세티를 찾아온 외계 존재 로키를 만나게 되고 그들은 각기 두 행성의 운명을 건 임무를 수행한다. "너도 멀리서 왔구나? 나도 멀리서 왔어." 이들이 만나는 과정은, 특히 인간이 아닌 로키의 입장에서는 많은 배려를 전제한다. 로키는 두 우주선을 연결하는 통로가 그레이스에게 맞지 않자, 상대방에게 맞는 새로운 통로를 새로 짓는다.

로키는 그의 입장에서는 처음 만나는 낯선 존재인 인간에게 많은 수고를 기울인다. 상대가 자신을 해칠지 어떨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에서, 로키는 상대의 특성을 섬세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춰 양해하고 양보한다. 처음에 로키에게서 온 초대의 메시지를 받고 모르는 외계 존재가 자신을 공격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했던 그레이스와는 다른 태도이다. 로키는 조건을 걸지 않는 환대를 보여줬다. 그리고 참된 우정은 그런 환대의 마음에서 나온다. 자신의 이익과 계산만을 앞세우고 그에 따라서 가까이할 상대와 그렇지 않은 상태를 나누는 이 시대의 효율만능주의와는 구분된다. 지금 붕괴해 가는 학교에서는 찾기 힘든 모습이다.

서로를 살리는 우정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컷소니픽처스코리아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지구에 있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구성원이 그레이스가 얻은 정보를 얻고 그의 희생을 촉구 혹은 강요할 때 로키는 다른 선택을 한다. 로키는 자신 몫의 아스트로파지를 그레이스에게 나눠주면서 지구로 돌아가라고 한다. 그 대신에 자신은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가는데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친구를 위해 그걸 감수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로키가 위기에 처한 그레이스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장면이다. 로키가 사투 끝에 깨어났을 때 그레이스는 로키가 갇힌 유리공을 끌어안는다.

로키가 보여준 환대를 그레이스는 이어서 돌려준다. 작별을 한 뒤 그레이스는 로키의 우주선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뒤늦게 발견한다. 그리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지구로 돌아가는 행선지를 바꾼다. 그레이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둘이다. 그 하나는 그레이스가 애초에 부여받은 임무를 완수하고 지구를 구한 영웅이 되어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다. <헤일메리>가 오직 인간의 시각에서만 사태를 바라봤다면 로키는 인간 영웅의 귀환에 따라오는 부수적 희생자 정도로 취급되었을 것이다. 많은 SF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철저한 인간중심주의의 시각이다. 다른 선택지는 로키를 구하고 자신은 지구로 돌아가지 못하고 우주에서 헤매다 최후를 맞는 것이다. 그레이스는 여기서 다수 지구의 인류와 친구의 생명 사이에서 친구를 구하겠다는 일종의 윤리적 결단을 내린다.

그런 결정에서 <헤일메리>는 주인공의 이름인 그레이스(grace)가 뜻하듯, 종교적 가치인 '은혜(grace)'를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자신을 희생하려 했기에 둘 다 살게 된다. 둘은 지구가 아니라 로키의 고향인 에리드 행성으로 간다. 로키는, 그리고 에리드 행성인들은 그레이스를 위해 특별히 만든 거주 유리관을 설치해준다. 로키는 그곳에서 에리드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된다. 우정의 결실이다.

원작자 앤디 위어는 어느 인터뷰에서 작품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한다. "위기의 순간에 사람들은 함께 모여 서로를 돕는다. 그리고 그것이 본질적으로 인류로서 우리의 모습이다. 그저 현재 우리 모습에 대한 나의 믿음일 뿐이다." AI 시대가 되었든, 앞으로 어떤 새로운 기계문명이 전개되든, 인류가 겪는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서로를 돕는" 마음, 환대와 우정의 마음이다. 자신의 이익과 효율만이 지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시대에 <헤일메리>는 다시 환대와 우정이 어떻게 서로를 살리는지를 새롭게 환기시킨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