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고용률이 금융위기 이후 최장 하락을 기록한 가운데 5월 13일 서울 시내 한 대학교 일자리플러스센터에서 학생이 취업 관련 영어단어가 적힌 계단을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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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정치 논쟁은 정책 경쟁이 아니라 해석 경쟁이다. 같은 사실을 두고도 '누가 먼저 프레임을 장악하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이 인지전의 무서움은 정치 영역을 넘어 문화 영역을 먼저 장악한다는 데 있다. 청년이 사회를 배우는 공간에서 조롱이 놀이가 되고, 혐오가 '그냥 드립'으로 소비된다. 게임, 웹툰, 힙합, 입시, 아이돌 커뮤니티, 숏폼 안에서 가치관과 정체성이 형성된다. 또래 압력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지키는 청년은 생각보다 적다.
이 모든 현상을 관통하는 사실이 있다. 1020 남성이 삶 속에서 제대로 된 어른을 거의 만나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는 마침내 '꼰대'들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자란 1020 남성의 얼굴은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민주·진보 진영의 부드러운 어른들은 평등을 말하지만 책임지지 않는다. 청년 입장에서는 거기서 어른됨의 모델을 배울 수 없다. 그리고 어른의 자리가 비어 있는 곳에서 청년 남성은 롤모델을 찾아 나선다. 유튜브 매노스피어 인플루언서, 게임 BJ, 온라인 커뮤니티의 어설픈 또래 서열에서 남자란 무엇인가를 배운다.
청년 여성이 보수화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청년 여성도 자신들 삶의 고단함에 책임지는 답을 들고 오는 어른을 찾고 있다. 민주·진보 진영은 만족할 만한 답을 꺼내지 않았다.
청년 정책의 좌표를 두고 남성 청년 보수화 vs 여성 청년 진보 잔류라는 이분법 개념이 있었다. 끝낼 때다. 청년 모두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청년이 마주한 불안과 분배 문제에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도려낼 것, 골수와 다수를 분리하라
여기까지가 진단이다. 이제 처방이다. 처방의 첫 번째 원칙은 청년 안에서 도려낼 것과 끌어안을 것을 분리하는 일이다. 청년의 반민주당 정서 안에는 두 개의 층이 있다.
반민주당 핵심층은 혐오를 기반으로 한다. '윤어게인 부정선거' 같은 반민주적 음모론을 생산하는 층이다. 유럽의 대안 우파 정당들이 원내 1당으로 부상하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다수, 대부분은 그 혐오를 '빌려 쓰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동기는 혐오 그 자체가 아니라 분배 불안, FOMO, 위선에 대한 환멸이다.
골수 층을 놔두면 다수가 점점 그쪽으로 끌려가고, 다수를 극우 취급하면 반발만 심해질 뿐이다. 분리해서 대처해야 한다. 골수 층에는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처벌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단, 익명 개인 처벌이 아니라 공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자들의 발화에 더 높은 책임을 묻는 설계가 핵심이다.
독일의 네트워크집행법(NetzDG) 모델을 참고할 수 있다. 2018년 시행 이후 대형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명백한 불법 게시물을 24시간 내, 불명확한 건은 7일 내 삭제할 의무를 진다. 위반 시 거액의 벌금을 문다. 그리고 플랫폼 알고리즘 투명화가 필요하다. 일베적 세계관이 반복 노출에 의한 학습으로 작동한다면, 학습을 자동화하는 추천 시스템 자체에 손대지 않고는 끊을 수 없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24년부터 허위조작정보와 내러티브 공격을 주요 위험 요인으로 경고해 왔다. 이 무기에 맞서려면 심리학·언어학·정보전·행동과학·플랫폼 연구·인공지능(AI) 기술이 통합된 종합 대응이 필요하다.
다만 그 톤과 설계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가짜뉴스에 속는 청년의 미디어 이해력을 높여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 그렇게 접근하면 "민주당이 이번에는 청년 머릿속까지 손보려 한다"는 선전의 먹잇감이 된다. 따라서 인지전을 대처하려면 지휘소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일은 하지 않을지를 제도로 세우고 시작해야 한다.
인지전 대응 콘트롤타워가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알고리즘·플랫폼·딥페이크·해외 정보작전에 대한 기술적·구조적 대응. 추천 시스템의 감사, 외부 정보작전 탐지, 딥페이크 표준 대응, 플랫폼 책임의 제도화. 둘째, 시민이 정보를 스스로 판별할 수 있도록 돕는 공공 인프라. 미디어 이해력 교육, 공영 팩트체크 거점, 학계·시민사회의 독립 연구 지원. 셋째, 과거 국가권력의 여론 개입에 대한 기록과 검증. 인적·자금·네트워크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공식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
이렇게 해야 할 일을 정하고, 실행에 있어서 다음을 주의해야 한다. 먼저 특정 콘텐츠·인물·진영에 대한 직접적 통제는 피해야 한다. 이건 위험하다. 정치적 메시지에 대한 공식 해석, 시민에게 무엇을 믿으라고 말하는 모든 행위도 좋지 않다. 마지막으로 인지전을 다루는 조직이 콘텐츠의 '허위' 여부를 직접 판정하기 시작하면 안 된다. 자칫하면 정말 통제 기관이 될 수 있다.
허위 여부 판정은 사법부와 독립적 팩트체크 기관, 그리고 궁극적으로 시민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컨트롤 타워의 임무는 청년이 판단할 수 있는 정보 환경 자체를 지키는 일이다.
끌어안을 것, 분배가 혐오의 수요를 줄인다
도려낼 것을 명확히 했으면, 나머지는 끌어안아야 한다. 청년의 분노가 물질적 토대 위에서 자라는 한, 법·플랫폼 규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혐오 서사가 청년의 마음에 꽂히는 이유는 그 서사가 청년의 진짜 균열인 분배 불안을 정확히 건드리기 때문이다. 분배 불안을 해결하지 않으면 혐오의 수요가 줄지 않는다. 청년 주거·고용·분배의 안정은 따라서 혐오 대응의 예방책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다.
첫째, '살 만한 임대주택'의 확보다. 청년이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의 공공임대는 평수가 좁아 가족이 늘면 살 수 없고, 소득이 조금만 올라도 나가야 한다. 오래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고, 소득이 늘어도 쫓겨나지 않으며, 가족이 함께 살기에 충분한 면적의 공공임대를 수도권에 대량으로 공급해야 한다. 청년이 임대만으로도 거주와 생애주기를 설계할 수 있다면 집값도 잡힌다.
둘째, 지방 청년에 대한 다른 처방이 있어야 한다. 지방 청년이 고향을 떠나는 이유는 우선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괜찮은 일자리가 생겨도 함께 어울릴 사람도, 즐길 문화 등 머물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지방 청년에게는 일자리와 미래가 한 묶음으로 와야 한다. 해법은 청년 창업·문화·산업 거점을 광역시·도 단위의 큰 그림이 아니라 청년이 실제로 먹고 자고 출퇴근하는 생활권 단위로 설계하는 일이다. 도시에서 생활권이 형성될 때 청년은 비로소 그 자리에 남는다.
셋째, 불안정 노동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청년의 노동은 이미 위태롭다. 2024년 8월 20대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이 43.1%로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정규직은 처음으로 200만 명 아래로 내려갔다. 이 불안정이 혐오 서사가 자라는 진짜 토양이다. 진보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이 오랫동안 이야기해 온 의제들을 더 밀고 나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AI가 몰고 올 산업 전환을 보자.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오르는 만큼 그 과실을 누가 가져가느냐가 다음 10년의 분배를 결정한다. 가만히 두면 과실은 자본과 플랫폼에 쏠리고, 일자리를 잃은 청년은 또 한 번 불안정 노동으로 밀려난다. AI 시대에는 노동을 중심에 둔 전환 설계가 필요하다.
다시 그릴 것, 욕망의 풍경에 균열을 내는 사상전

▲5일 서울 송파구 잠실한강공원에서 열린 제3회 쉬엄쉬엄 한강 3종 축제, 외국인 수영대회에서 참가한 외국인들이 역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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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안기를 했다면, 미래를 그려낼 때다. 청년의 욕망에 응답하는 일은 신뢰의 시작이지 진보의 종착지가 아니다. 그 입구에 머무르면 진보는 영원히 보수의 자장 안에서 2등 보수가 된다. 보수가 자극하는 꿈, 청년이 '나는 달라, 나는 할 수 있어'라며 좇는 욕망은 사실 허구에 가깝다. 그 허구성을 밝히는 일이 진보가 사활을 걸고 벌여야 할 사상전이다.
첫째, 보수 약속의 산수적 불가능을 드러내자. '모두가 부자가 되는 사회'는 가능하지 않다. 누군가 위로 올라가려면 누군가는 아래에 있어야 하는 게 자산 시장이다. 통계는 다 있다. 다만 진보가 청년의 귀에 닿게 충분히 '정치적'으로 번역하지 못했을 뿐이다. 능력주의와 낙수효과의 약속이 통계적으로 어떻게 깨지는지를 청년이 매일 보는 SNS의 언어로 옮기는 일. 이게 사상전의 첫 번째 스텝이다.
둘째, 주주자본주의가 약속하는 자유의 허약함을 드러내 보자. '삼성전자·SK하이닉스 주주가 되면, 미국 빅테크 상장지수펀드(ETF)에 매달 적금처럼 넣으면 경제적 자유가 온다'는 그림은 매력적이나 허약하다. 이 역시 통계가 다 나와 있다.
셋째, 다른 종류의 '좋은 삶'을 제시해 보자. 욕망과 싸우려면 대체 욕망이 있어야 한다. 비판만 있고 대안이 없는 사상전은 청년의 마음을 허무하게 할 뿐이다. 진보가 청년에게 그려 보여야 할 다른 풍경은 무엇인가?
자가와 코스피 자산으로 도달하는 자유가 아니라 '시간의 자유'다. 주 4일제와 노동시간 단축으로 회복되는 저녁과 주말, 부담 없는 돌봄과 공공의료로 가능해지는 가족생활을 상상해 보라. 또 도시 공공재(공원, 도서관, 문화 인프라, 양질의 임대주거)로 사적 자산 없이도 가능해지는 '좋은 일상'도 가능하다. 시민 배당과 기본 자산으로 모든 청년이 출발선에서 갖게 되는 최소한의 자유도 제시할 수 있다.
이런 모델들은 북유럽과 일부 유럽 국가에서 이미 작동하는 그림이고, 가능한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양질의 임대 주거' 확대가 가장 중요하다.
이런 매력적인 미래상이 진보 영역에 속해있음에도, 한국 진보는 이런 그림들을 청년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진보가 청년을 얻고 싶다면, '네가 좇는 자유 말고 다른 자유가 있다. 그 자유가 더 안정적이고, 더 많은 청년이 누릴 수 있고, 사실 더 매력적이다'라고 콘텐츠로, 문화로 보여줘야 한다.
한 세대의 욕망 풍경을 다시 그리는 데에는 긴 시간이 든다. 진보가 지금 당장 이 사상전을 시작해도 그 결실은 다음다음 선거에야 보일 것이다.
청년이 떠난 것이 아니다. 서울시장에 낙선한 정원오 옆에서 민주당 구청장 17명이 압승했다. 청년 일반이 극우화된 것은 적어도 아직은 아니다. 다만 20대 남성의 75.3%가 보수 진영에 표를 몰아주고, 30대 여성의 53.6%가 같은 길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은 균열이 이미 깊다는 신호다. 강한 꼰대들의 세대를 넘어, 꼰대가 되지 않으려 한 세대를 지나서, 우리는 좋은 꼰대가 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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