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그룹의 지주회사인 ㈜하림지주는 2019년 전라북도 익산에 건립한 신사옥에 입주했다.
하림지주
이 절망의 굴레를 끊어낼 해법은 자본의 거점 자체를 옮기는 '지역본사제(Regional Headquarters System)'의 전면적 도입이다. 단순히 건물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통제력을 잃은 지방에 경영적 의사 결정권과 혁신 역량을 이식하는 작업이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낙후 지역으로 본사를 이전할 경우 최대 12년(10년 100%, 2년 50%)의 법인세 감면 혜택을 보장한다. 서울에는 최소한의 금융 거점만 남기고 지방에 파격적인 재무·인사권이 부여된 '제2본사'를 신설하는 복수본사제 지원 입법도 시급히 완수해야 한다.
성공 사례도 있다. 전북 익산에 본사를 두고 재계 28위 그룹으로 도약한 하림, 생산 거점인 창원으로 본사를 전격 이전한 뒤 영업이익이 7배 급등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자본과 현장의 결합이 창출하는 시너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지방 살리는 또 하나의 무기
나아가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파격적인 노동 정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기후 위기 시대를 맞아 화석연료 중심의 핵심 산업도시들은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라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주 4일제 도입 등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을 통해 노동자에게 자유 시간을 부여하는 생태·복지 사회로의 대전환이 시급하다.
이는 지방 노동자들의 피로를 덜고 일과 삶의 균형을 복원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열악하다고 평가받는 비수도권의 삶의 질과 정주 여건을 끌어올리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특히 무한 경쟁과 장시간 노동에 찌든 수도권의 삶과 대비되는 '여유롭고 생태적인 지역에서의 삶'이라는 새로운 매력을 창출할 때, 비로소 떠나간 청년들의 발길을 다시 지역으로 돌려세울 수 있다. 이는 지방의 자생력을 근본적으로 복원하는 거대한 사회적 기획이다.
도린 매시는 "공간은 대단히 정치적이며 사회 불평등의 생산에 깊숙이 관여한다"라고 말했다. 자본의 수도권 독식을 방치하는 한, 지방의 KTX 역사는 청년들이 빠져나가는 '고속 탈출로'에 불과하다. 텅 빈 공단에 아스팔트만 깔아주던 정책에서 벗어나, 권력을 지리적으로 분산하는 '지역본사제'와 노동의 가치를 보듬는 '노동시간 단축'을 결합한 '공간적 정의(Spatial Justice)'를 실현해야 할 때다. 자본의 상생 결단과 노동시간 단축이 맞물릴 때, 비로소 대한민국 국토 전역은 각기 다른 생명력으로 고동치는 진정한 균형발전의 새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본인
필자 소개 :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한국지역순환경제학회 회장. 인천대 후기산업사회연구소장으로서 비주류 경제학 기반의 학제 간 연구를 통해 후기산업사회, 로컬, 순환경제, 탈성장 등의 담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2021년부터는 지역순환경제전국네트워크 공동대표를 맡아 대자본 중심의 성장에 맞서 지역 경제 순환과 자치를 위한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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