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1986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우번 지역에서 발생한 소아 백혈병 발병 위치를 표시한 지도. 지역 환경 단체인 더 깨끗한 환경을 위한 모임(For A Cleaner Environment)이 작성한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우번 독성 물질 소송 관련 모의재판 및 교육 목적으로 칼턴대 과학교육정보센터(SERC) 웹사이트에서 제공하고 있다.
SERC
하지만 밀려난 사람들은 좀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1970년대 미국 매사추세츠주 우번(Woburn)에서 아이들이 잇따라 백혈병에 걸렸다. 오랫동안 당국은 부모들의 의심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1979년 마을의 두 우물이 산업폐기물에서 흘러나온 유기용제(TCE)에 오염된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당국은 발병이 유난히 많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그 물이 원인이라고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 목사가 지역 신문에 호소문을 싣고, 주민들이 설문을 돌려 병에 걸린 아이들이 어디 사는지를 하나하나 지도에 찍었다. 그렇게 그려진 지도 위에서 죽음은 바로 오염된 우물 주위에 몰려 있었다. 의사도, 공무원도 아닌 보통 사람들이 자신들의 아픔에서 출발해 힘을 모으고, 문제를 밝혀냈다(<워싱턴포스트>
기사).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한 일은 아픔의 원인을 말할 자격이 자신들에게도 있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사회학자 필 브라운은 이를 대중 역학(popular epidemiology)이라 부른다. 아픔의 원인을 밝히고 주장할 자격이 전문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선언이다. 우리에게도 먼 이야기가 아니다. 가습기살균제 앞에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안전한 생활용품"이라는 말을 끝내 뒤집어 낸 일도, 후쿠시마 오염수 앞에서 어민과 상인들이 들고일어난 일도, 전북 익산 장점마을에서 집단으로 발생한 암을 주민들이 밝혀낸 일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움직인 동력에는 부당함에 대한 분노가 있다. 내 삶과 일상을, 그것과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멋대로 정한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 그 감각이 사람들을 구경꾼의 자리에서 끌어내, 스스로 묻고 따지게 한다. 물론 사람들이 늘 과학적으로 타당한 말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번의 부모도, 가습기 살균제의 피해자도 끝내 옳았다. 그들이 직접 끼어들어 따지고 들었기 때문이다.
'내 건강이 결정되는 자리에서 나를 배제하지 말라.' 그 요구가 없었다면 진실은 끝내 묻혔을 것이다. 주민 참여로 건강을 개선하려던 여러 사업도, 의료생협도, 환자 모임도 결국 같은 요구에 뿌리를 둔다. 건강이란 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결정할 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다뤄지는 문제다. 비르효가 백수십 년 전에 한 일을, 우번의 부모가, 가습기살균제의 피해자가,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건강의 '불온'함은 그동안 말할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이 말할 때 비로소 실현된다. 그 자격이 전문가와 권력에 독점될 때 건강은 그저 처리할 문제로 길들여지고, 그 일을 겪는 사람들이 자리를 되찾을 때 건강은 다시 정치가 된다. 루소가 말한 노예의 시간, 투표함이 닫혀 있는 동안에도 우리의 건강은 만들어지고 또 무너진다. 그 침묵을 깨는 시작은, 내 아픔의 원인을 내가 말하겠다고 나서는 바로 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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