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09 06:43최종 업데이트 26.06.09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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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이름이 적힌 지방을 태우고 있다나눔과나눔

한국 사회에는 다양한 형태의 인간관계가 존재합니다. 어떤 관계는 서로의 장례를 치러주기로 약속할 만큼 각별하기도 합니다. 요양보호사가 자신이 돌보던 홀몸 어르신의 장례를 치러주려고 하는 경우도 있고, 사회복지사가, 이웃이 장례를 치러주려 하기도 합니다. 사실혼 관계나 친구는 물론이고요. 문제는 혈연관계 외에는 이 약속을 제도로 보장받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2020년 이후에 보건복지부 지침과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2조의 개정으로 제한적이지만 방법이 생겼습니다. 장사법에 따른 연고자로 인정받거나,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주관자로 지정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들이 충분하다고 이야기할 순 없습니다. 이 방법을 통해 장례를 치르려면 우선 고인이 '무연고 사망자'로 확정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전부터 이야기했듯 여기에는 평균적으로 한 달의 시간이 소요되고요.


그래서 종종 자신의 장례를 누군가에게 부탁하거나 직접 치르고 싶어 하는 내담자와 상담할 때 이런 질문을 듣게 됩니다. "그 시간을 그냥 기다려야 하는 건가요? 지금 서로 살아있을 때 확실하게 보장 받을 방법은 없는 건가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걸 제대로 된 방법이라고 하기엔 어려움이 있습니다. 꽤 극단적이고,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거든요.

방법은 하나뿐

서로의 장례를 생전에 약속하고 보장 받지 못하는 이유는 혈연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해버리면 됩니다. 서로의 이름을 혼인관계증명서나, 가족관계증명서에 올리는 겁니다. 상대가 이성일 경우에는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면 될 것이고요. 만약 동성이라면 나이가 많은 쪽이 적은 쪽을 입양하면 됩니다. 그러면 사망 이후에 아무런 문제 없이 장례를 치를 수 있습니다.

내담자의 대부분은 생부나 생모처럼 모시는 분(혹은 실제로 생부나 생모지만 공적 장부상 확인이 안 되는 분)의 장례를 치르고 싶어 하기에 상담센터는 입양을 방법으로 안내하곤 했습니다. 실제로 상담센터의 안내를 받고 입양을 통해 장례를 지체 없이 치른 경우도 있고요. 현재의 법률이 혈연 이외의 관계에게 필수적인 행정 소요를 요구한다면, 그 조건을 없애버리는 극단적인 방법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금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과연 이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의 법률과 제도는 실패했다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절차 중 서울시립승화원에서 고인을 화로로 봉송하고 있다. 무연고 국가유공자도 이처럼 ‘영구(靈柩)용 태극기’ 없이 진행한다.나눔과나눔

어떤 사람에게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입양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거나,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는 데에 정서적인, 경제적인 문제가 없는 사람에게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장례만을 위해 입양하거나 혼인하는 것에는 커다란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장례뿐 아니라 상속 관련 문제, 임종기의 돌봄 문제도 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냥 서로의 장례만 치러주고 싶은데요"라는 사람에게는 너무 과한 의무가 발생합니다.

만약 고인이 수급자이고, 장례를 치러주려는 사람 또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다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한가지 가정을 해보겠습니다. A라는 홀몸 어르신은 기초생활수급자입니다. 어르신에게는 형제자매가 있지만 관계가 단절된 지 오래고, 그들도 경제적인 형편이 좋지 않아 자신의 장례를 부탁할 수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 몇 살 어린 동네 친구 B에게 조금씩 모아놓았던 돈을 장례 비용으로 미리 건네며 자신의 장례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동네 친구 B도 흔쾌히 그 부탁을 들어주고 싶고요. 이들이 생전에 이 약속을 제도로 보장받을 현실적인 방법은 입양뿐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A어르신에게 입양으로 새로운 가족 관계가 형성된다면 수급 자격이나 각종 복지 서비스와 관련한 재검토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때문에 수급비를 받을 수 없게 되면 A어르신은 앞으로 어떻게 생활해야 할까요?

굳이 이런 가정을 하지 않더라도 장례를 위한 입양과 혼인은 방법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만약 법률과 제도가 생전에 장례를 약속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면 굳이 이럴 필요가 없습니다. 2020년 이후에 만들어진 '혈연 외의 사람에게 장례를 허용하는 방법'은 현장에서 충분한 방법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전에 지정할 수도 없고, 사후에 수반되는 행정 소요를 모두 감당해야 합니다. 당장 방법이 그것뿐이라고 하니까 따르는 것이지, 이것을 최선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현장에서 사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온 상담센터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금의 법률과 제도는 실패했습니다.

보다 확실하게 사후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해야 한다

2020년의 법률 개정과 지침 개선이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해가 가고요. 그동안 혈연에만 부여했던 '장례 치를 권리'를 혈연을 넘어 확장하는 것에 어떤 위험 요소가 있을지 아무도 몰랐으니까요. 현장에서 어떤 요구와 사례들이 생겨날지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했을 것이고요.

그러니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법률과 지침을 제정하거나 개정해야 할 시점입니다. 개정 이후 6년 가까이 흐른 지금, 현장의 사별자들과 당사자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의 제도는 충분하지 않다"라고요. 이전의 연재에서 언급했던 '사전장례주관자 지정 제도'를 비롯한 사후사무와 관련된 영역들에서 꾸준히 제기되는 한계와 문제점을 이제는 해소해야 합니다.

그동안 '어쩌면 우리의 장례이야기'를 연재하면서 공영장례와 '무연고 사망자'의 행정 절차에 대한 현장의 이야기를 꾸준히 언급했습니다.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제가 했던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스로의 장례를 준비할 수도 없고, 다른 가족의 장례조차 걱정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비 무연고 사망자'라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이제는 이 물음에 법률과 제도가 응답해야 할 때입니다. 고인과 사별자들이 충분한 사례로 방향을 제시해 주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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