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05 13:33최종 업데이트 26.06.05 13:33
6.3 지방선거 세종시 개표장 안은 이미 분주하게 모든 준비를 마쳐두고 있었다.뉴스피치 최병조 전문기자

선거가 끝난 6월 3일 저녁,

나는 개표참관인 자격으로 개표장에 들어갔다.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마지막 한 표를 행사한 직후였지만, 민주주의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이제 시민들의 소중한 선택을 확인하는 또 다른 과정, 즉 '개표'가 시작될 차례였다.


개표장 안은 이미 분주하게 모든 준비를 마쳐두고 있었다. 개표기와 투표지 분류기, 검표대, 참관석이 정돈되어 있었고 개표사무원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오후 6시가 넘어 개표 절차에 대한 안내가 진행되었고, 잠시 후 개표장 입구가 북적이기 시작했다. 각 투표소에서 투표함들이 속속 도착한 것이다.

투표함이 도착할 때마다 선관위 직원들은 봉인 상태를 확인하고, 참관인들에게 이상이 없음을 확인시켜 준 뒤 지정된 장소에 보관했다. 투표함 하나가 들어올 때마다 여러 사람의 확인 절차가 이어졌고, 그렇게 투표함들이 차곡차곡 모여들었다.

어느 정도 투표함이 집결하자 본격적인 개표의 막이 올랐다. 먼저 투표함이 개봉되었다. 봉인이 해제되자 투표지가 쏟아져 나왔다. 개표사무원들은 투표지를 한 장 한 장 펼쳐 방향을 맞추고, 접힌 부분을 펴서 분류기에 투입할 수 있도록 신속하게 정리해 나갔다.

정리된 투표지는 분류기로 들어갔다. 기계는 후보별로 투표지를 빠르게 분류해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이제 금방 끝나겠구나"라고 생각할 만큼 놀라운 속도였다. 하지만 실제 개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관외 사전투표지를 분류하고 있는 모습. 관외 사전투표지는 모두 회송용 봉투에 담겨 도착하기 때문에 개표사무원들이 봉투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그 안에 들어 있는 투표지를 조심스럽게 꺼내 분류작업을 해야 했다.뉴스피치 최병조 전문기자

특히 가장 많은 시간과 손길이 필요한 과정은 '관외 사전투표'였다. 일반 투표지는 투표함을 열면 바로 분류 작업을 할 수 있지만, 관외 사전투표지는 모두 회송용 봉투에 담겨 도착하기 때문이다. 개표사무원들은 봉투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윗부분을 절단한 뒤, 그 안에 들어 있는 투표지를 조심스럽게 꺼내야 했다. 이후 다시 방향을 맞추고 펼쳐서 분류기에 넣을 수 있도록 정리하는 수작업을 거쳐야 했다.

멀리서 보면 단순한 반복 작업처럼 보일지 몰라도, 수천 장의 봉투를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처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인력을 필요로 했다. 특히 세종시는 젊은 층과 이동 인구가 많아 관외 사전투표 비율이 높은 편이다. 개표가 예상보다 늦어지는 이유를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대목이다.

분류기를 통과한 투표지는 다시 사람의 손으로 직접 확인하는 '검표' 과정을 거친다. 후보별로 분류된 투표지 묶음이 검표대에 쌓여가자, 개표사무원들은 육안으로 한 장씩 다시 확인하며 숫자를 맞추고 이상 여부를 점검했다. 이 과정에서 분류기계가 판독하지 못했거나 기표가 애매한 표들은 따로 분류되었다.

바로 이 지점이 민주주의가 가장 섬세하게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인주 도장이 선에 걸쳤거나 번진 표, 혹은 두 후보 칸 사이에 애매하게 찍힌 표들은 검표위원들의 엄격한 판단을 받는다. 한 표가 '유효표'가 되기도 하고 '무효표'가 되기도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개표사무원들이 투표지를 한 장 한 장 펼쳐 방향을 맞추고, 접힌 부분을 펴서 분류기에 투입할 수 있도록 신속하게 정리하고 있다.뉴스피치 최병조 전문기자

그런데 의외로 이 중요한 순간을 집중해서 지켜보는 참관인은 많지 않았다. 이번 개표장에는 정당별 참관인과 교육감 후보 측 참관인 등을 포함해 100명 안팎의 참관인이 자리를 지켰고, 젊은 층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개표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둘러보거나 중간중간 개표 상황판을 확인하는 정도에 머물렀다. 정작 가장 치열하고 중요한 검표 구역에는 시선이 적게 닿았던 것이다.

나 역시 교육감 선거 투표지 가운데 판단이 쉽지 않은 사례를 몇 차례 발견했다. 충분히 다른 해석이 가능해 보이는 표였음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거나 유효·무효 여부를 꼼꼼히 따져 묻는 참관인은 그리 많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오히려 엉뚱한 장면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한 참관인은 자신의 지역 투표함부터 먼저 개표해 달라며 선관위 직원에게 여러 차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었다. 제 지역의 결과가 한시라도 빨리 궁금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개표는 철저히 정해진 절차와 순서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되는 법이다. 특정 지역을 임의로 먼저 처리할 수는 없다는 직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개표참관인의 본분은 개표를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개표가 정확하고 공정하게 진행되는지를 감시하고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모습은 씁쓸한 잔상을 남겼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개표장 한편에서 몇몇 참관인들이 투표지 분류기를 끊임없이 촬영하고 있던 모습이다. 처음에는 잠시 기록을 남기는 정도라 여겼으나, 자정을 넘기도록 그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분류기가 돌아가는 전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혹시 부정선거에 대한 의심을 안고 이곳을 찾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물론 참관인은 개표 전 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할 합법적인 권리가 있으며, 의문이 생기면 철저히 확인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20년 넘게 선거와 개표 현장을 지켜본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대한민국의 개표장은 부정이 개입하기 매우 어려운 구조로 짜여 있다.

밤 11시가 넘어가자 검표를 기다리는 투표지 바구니들이 여기저기 탑처럼 쌓였다.뉴스피치 최병조 전문기자

투표함의 이송과 봉인 확인부터 개봉, 분류, 검표, 최종 집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은 철저히 공개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선관위 직원과 개표사무원은 물론이고, 각 정당과 후보자 측 참관인 등 수많은 사람의 눈이 동시에 같은 과정을 감시한다. 결코 어느 한 사람이 마음대로 결과를 바꿀 수 있는 호락호락한 구조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현장에서 깊이 느낀 것은 시스템에 대한 신뢰와 사람들의 책임감이었다. 개표사무원들은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고된 작업 속에서도 단 한 장의 투표지라도 잘못 처리되지 않도록 눈을 비벼가며 반복 확인했다. 참관인들 역시 각자의 위치에서 묵묵히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단순히 일하러 나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시민의 소중한 한 표를 끝까지 온전히 지켜내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수호자'라는 자부심이 그들의 눈빛에 서려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개표장의 풍경도 무거워졌다. 처음에는 한산하던 검표대 주변이 점점 투표지로 가득 찼다. 세종시는 인구 규모가 크지 않아 개표가 금방 끝날 것이라 짐작했지만 완전히 빗나간 예상이었다. 개표기 수가 충분하지 않았고 모든 개표가 한 공간에서 진행되다 보니 처리 속도에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다.

밤 11시가 넘어가자 검표를 기다리는 투표지 바구니들이 여기저기 탑처럼 쌓였다. 어떤 곳은 바구니가 여섯 개, 일곱 개씩 포개져 있을 정도로 분류 속도를 인간의 검표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과부하 상태가 지속되었다.

잠시 야식이 제공되었고, 개표사무원들은 허겁지겁 끼니를 때운 뒤 서둘러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깊은 밤이었지만 누구 하나 서두르는 기색은 없었다. 수천, 수만 장의 투표지를 반복해서 확인하면서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절차를 생략하거나 대충 넘어가려는 모습은 결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개표사무원들은 깊은 밤이었지만 누구 하나 서두르는 기색 없이 수천, 수만 장의 투표지를 반복해서 확인했다.뉴스피치 최병조 전문기자

자정을 넘기면서 마침내 당선자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개표 상황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지상파 출구조사 결과와 달리, 세종시 교육감 선거에서는 강미애 후보가 초반부터 앞서 나가는 반전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반전의 순간에도 개표장 안의 분위기는 의외로 차분하고 엄숙했다. 섣부른 환호도, 탄식도 없었다. 그저 한 장 한 장의 투표지가 묵묵히 분류되고, 확인되고, 집계될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다시금 가슴 깊이 새겼다. 개표장은 선거의 끝을 알리는 자리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마지막 과정이라는 것을.

투표가 시민의 소중한 의사를 표현하는 행위라면, 개표는 그 의사를 왜곡 없이 정확하게 받아 적는 행위다. 민주주의는 선거 당일 투표함의 뚜껑이 닫히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 투표함 속에 담긴 주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고귀한 뜻을 끝까지 확인하고, 또 검증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완전해진다.

새벽이 깊어가는 개표장, 투표지 더미와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길들 사이에서 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가장 정직하게 작동하는 현장을 지켜보았다.

그날 내가 본 것은 단순한 행정적 개표 작업이 아니었다. 수많은 주권자의 선택을 온전히 존중하기 위해 밤을 새워가며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땀방울, 그리고 그 과정을 공개된 공간에서 투명하게 검증하는 살아있는 민주주의, 그 자체였다.

모두가 잠든 밤, 어두운 투표함의 빗장이 풀리고 나서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 투표가 끝난 한밤중에도,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치지 않고 깨어 흐르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종시 공동체 미디어 '뉴스피치'에도 실립니다.뉴스피치(Newspeach)는 세종시 중장년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창간한 지역 기반 공동체 미디어로, 젠더 관점의 보도를 통해 지역 사회의 다양한 의제를 조명하고 건강한 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는 새로운 언론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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