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6.08 10:03최종 업데이트 26.06.0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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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을 끝으로 현대 유니콘스는 해체되었다. 1996년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해 한국프로야구에 등장한 뒤로 12년간 4번 우승한 위업을 남겼다.현대 유니콘스

태평양 돌핀스를 매입해 리그에 참여한 1996년부터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기 시작해 1998년부터 2004년 사이에 4번 우승을 차지한 현대 유니콘스는 한국야구 역대 최강의 팀 중 하나로 꼽힌다.

그 시절에 심지어 삼성마저 돈 싸움으로 압도해 버린 무지막지한 투자를 통해 국가대표급 선수단을 구축한 현대는 3명의 선발투수를 공동 다승왕 자리에 앉힌다거나 홈런왕, 타격왕, 타점왕을 동시에 배출한다거나 하는 진기록들을 세우며 7할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승률로 리그를 초토화하곤 했다. 그런 거대한 왕조의 도읍으로 삼기에 인천이 너무 좁게 느껴진 그들은 마침내 연고지를 서울로 이전하겠다며 말없이 떠났고, 팬들은 그 일을 '야반도주'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팀의 퇴장은 등장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다. 현대전자의 부도로 시작된 그룹의 자금 위기에 대북송금특검의 수사 대상에 오른 총수 정몽헌 회장의 죽음이 덮쳤고, 한때 총수 일가의 총애를 받던 야구단이 발등에 불 떨어진 그룹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결국 돈의 힘으로 세운 제왕 히어로즈는 돈이 없어 서울 입성이 좌절된 채 수원야구장을 임시 홈구장으로 사용해야 하는 민망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돈으로 흥한 자 돈으로 망한다는 말이, 야구장에서 회자되게 만든 것이 그들이었다.

결국 모기업의 자금 지원이 모두 끊어져 버리고 비생산적인 부문들을 정리하라는 채권단의 압력이 가중되면서 유니콘스는 매물로 나왔지만, 관심을 보이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십여 년 전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할 때 470억 원으로 책정되었던 가격은, 4개의 우승 트로피까지 얹혀졌음에도 불구하고 0원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깊은 골짜기는 간신히 지나고 있었지만, 여전히 연 관중 300만 명을 채우기 빠듯했고 TV 야구 중계도 주말 오후에 간신히 두세 경기 이루어지다가 저녁 뉴스 시간이 되면 중단되던 시절이었다.

4회 우승의 명문구단, 가격은 공짜

해체된 현대 유니콘스의 유산을 승계한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의 이장석 대표. 법적 분쟁과 처벌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히어로즈의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히어로즈

자본금 5000만 원의, 거의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다시피 하던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라는 생소한 투자회사가 프로 야구단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다. 그나마 유니콘스가 공중분해 되면서 7개 구단 질서로 회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애지중지 적립해 두었던 기금마저 모두 소진해 버리며 부실 상태 직전까지 몰려있던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리그 가입금이라도 내겠다고 나선 그들에게 현대 유니콘스의 유산을 거저 넘겨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2007년 시즌 후, 해체된 유니콘스의 유니폼 대신 신생팀 히어로즈의 유니폼을 입게 된 선수들은 저마다 여러 토막이 난 연봉을 통보받았고, 겨울 훈련 역시 현대 시절 즐겨 찾던 플로리다 대신 제주도에서 소화해야 했다.

그나마 센테니얼 이장석 대표는 내기로 했던 KBO 가입금마저 분할하고, 깎고, 차일피일 미루며 야구계 전체를 불안감으로 밀어 넣기도 했다. 그리고 몇 해 동안, 효용이 떨어진 노장들이 대거 방출됐고 미래가 창창한 재목들은 팔려나갔다. 애초에 자기 자본 없이 구단을 인수한 이장석 대표는 팀에 이름을 붙일 권리를 팔아 가장 요긴한 지출을 감당했는데, 그래서 팀은 소유권이 이전된 적 없이 우리(담배), 넥센, 키움으로 바뀌는 신기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불투명한 주체가 운영하는 불안한 구단이라는, 혹 좀 더 거칠게는 '거지'나 '사기꾼'이라는 의심과 비아냥은 히어로즈가 안고 태어난 운명 같은 딱지였다. 물론 그로부터 20여 년을 운영해 오며 이런저런 의혹들이 하나씩 불식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없는 형편에서도 파격적인 시도와 성실한 육성을 통해 리그 정상급 선수들을 꾸준히 키워내며 '예상보다 강한 팀'을 만들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히어로즈가 우승보다는 생존과 수익을 목표로 하는 팀이며, 선수를 키워 비싼 값에 파는 것으로 그 가장 중요한 방편을 삼는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강정호로부터 박병호, 이정후, 김혜성을 거쳐 송성문까지. 그리고 어쩌면 조만간 안우진까지도. 2010년대 이후 한국프로야구를 거쳐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선수 중 류현진을 제외한 대부분이 히어로즈 출신이며, 그 대부분은 히어로즈가 발굴하고 키워낸 이들이었다. 물론 그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곧 소속팀 히어로즈에 각각 수백만 달러의 수입을 안겨주는 일이기도 했다.

우승보다 생존. 레전드보다 메이저리거

그렇다면 히어로즈를 응원하는 팬들이 마음 붙이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여전히 불투명하고 온갖 의혹을 사고 있는 구단과 경영진일 리는 없고, 그런 그들이 만들어온 역사와 전통이기도 쉽지 않다. 자리를 잡긴 했지만 '서울'이라는 연고지와 쉽게 연결되지 않는 이미지의 야구팀이기에 운명적인 팬 집단을 가진 것도 아니다. 선수 하나만 바라보며 울고 웃을 수는 있겠지만, '잘 되면 떠날' 선수의 '잘되기'를 응원하는 마음도 편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은 도대체 왜 히어로즈를 응원하는가.

어느 팀의 팬들은 수많은 우승의 기록을 자랑하고, 또 어느 팀의 팬들은 그 팀이 만들어온 수많은 사연과 기억을 앞세운다. 또 그 팀이 얼마나 강한지, 매력적인지, 혹은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마성을 가졌는지 설명한다.

하지만 그 대부분의 팬은 그 팀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런 팀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자신이나 부모님의 고향이 그 팀의 연고지여서, 다니게 된 직장에서 운영하는 야구단이어서, 혹은 누군가를 따라 처음 찾았던 야구장에서 마주한 것이 그 팀이어서. 우리는 그렇게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야구단의 선택을 받으며, 그 선택 안에서 그 팀을 응원하는 이유를 만들고 쌓아간다.

하지만 히어로즈의 팬들은 직접 자신의 야구팀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언젠가 사라지거나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 있음을 알면서도. 훌륭한 선수들이 끝없이 배출되지만 지나치게 훌륭해지면 곧 곁을 떠나게 된다는 점을 기억하면서도. 혹은 남들보다 조금 더 조롱받고 조금 더 무시당하며 조금 덜 보호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꺼이 선택한 이들이다. 이 팀이 좀 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기에. 그리고 좀 더 가까이에서 서로를 응원할 수 있는 팀이기에.

이룬 것을 기뻐하고, 이루어갈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

강해지기 힘든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예상을 뛰어넘는 강함을 과시하는 히어로즈.뉴시스

야구에서 대부분의 경기는 패배로 끝나고, 대부분의 시즌은 우승에 실패한다. 그래서 야구팀은 늘 승리와 우승을 목표로 삼고 달려가지만, 팬들은 더 많은 시간 동안 이룬 것을 기뻐하고 이루어갈 것을 기대하며 버텨낸다. 그렇다면 언제 사라질지 모를 구단에서, 언제 떠나갈지 모를 선수들이 이루어가는 순간순간의 기쁨과 안타까움을 생생하게 느끼는 그들은 가장 야구의 본질 가까이에 선 이들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히어로즈의 팬들은 가장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람들이며, 동시에 먼 미래까지 이어질 거대한 전통이라는 허상 대신 늘 가장 구체적인 오늘과 이 순간에 집중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언젠가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는 대신, 오늘 피어나는 것을 기뻐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히어로즈는 오늘에 집중함으로써 내일을 보장받는 팀이며, 그 팀의 팬들은 오늘을 기뻐함으로써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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