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아이들을 대상화하거나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그린나래미디어
아빠는 못 미덥고, 엄마와는 쉽게 만날 수 없고, 고모는 이혼 위기에 놓여 있고, 할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다. 언제까지 할아버지 집에 얹혀살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영화를 보면서 옥주와 동주 남매가 처한 불안정한 상황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한편으로는 만약 이게 현실이라면 아이들이 저렇게까지 방학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방학 내내 공부도 하지 않고, 특별한 체험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마냥 흘려보내도 괜찮은 걸까. 어느새 나는 '불행한 아이들'이라는 시선으로 옥주와 동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박상아 교사의 <어느 교실의 멜랑콜리아>는 작은 교실을 통해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에세이집이다.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출발선의 불평등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아이의 세상은 넓어지지만 경험의 기회는 결코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교사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실패는 노력 부족의 문제라고 생각했다는 저자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환경과 여건의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행이 숨 쉬듯 당연한 아이들이 있는 한편, 어디를 놀러 가본 경험 자체가 드문 아이들도 많다. 각종 체험시설에 많이 다녀서 오감이 살아있고 배경 지식이 풍부하게 차 있는 아이들이 있는 한편, 기껏해야 유튜브 속 화면이 전부인 아이들도 있다. 호기심이 스쳐 지나간 빈자리를 경험으로 꽉 채울 수 있는 아이들이 있는 한편, 경험의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아이들도 있다." -<어느 교실의 멜랑콜리아>
박상아 교사는 지금 시대에도 여행 한 번, 박물관 한 번, 동물원 한 번 못 가본 아이들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어쩌면 이 아이들에게 경험의 동아줄은 학교일지도 모른다"라는 문장이 목에 가시처럼 콱 하고 걸렸다. 어떤 아이들에게 학교는 단순히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박 교사가 "무한한 책임만 존재할 뿐 교권이 보호받지 못하는 시대에 체험학습을 반대할 수밖에 없는 한 명의 교사로서 가끔 학교의 경험이 전부였을 아이들을 떠올리면 서글퍼진다"라고 복잡한 심경을 전한 이유다.
초등학교 4학년인 우리 집 어린이는 아직까지 한 번도 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을 가보지 못했다. 소풍의 추억이 없는 것이다. 2022년 속초로 체험학습을 갔던 초등학생이 버스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뒤, 수학여행과 같은 현장체험학습 운영이 급격하게 위축됐다.
물론 학교에서의 경험과는 다른 결이겠지만, 학교에서 체험학습을 가지 못해도 어떤 아이들은 가족과 함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부모 10명 중 6명(63.3%)은 역사 체험, 생태·자연 체험, 예체능 체험 등 사설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이용한 적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말하면 10명 중 4명은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아마 옥주와 동주는 그 4명에 속했을 것이다. 공교육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을 때 아이들의 경험은 부모의 능력에 의존하게 되고, 경험의 불평등 역시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경험은 계급의 문제가 된다.
그러나 경험의 불평등 문제를 고민하는 것과 경험의 기회를 얻지 못한 아이들을 불행한 존재로 바라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 나는 후자의 시선에 가까웠다. 아이들이 갖지 못한 것, 부족한 것에만 눈길이 갔다. 이러한 관점을 바꾸게 된 계기는 카메라가 아이들을 비추는 시선을 인식하면서부터였다.
영화 속 카메라는 여름방학 동안 남매가 맞닥뜨리는 사건들을 그저 담담하게 따라간다. 아이들을 대상화하거나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나,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안 불행해. 반지하방에서도 웃고 떠들고 다 해"라는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속 황동만의 대사처럼, 아이들은 결핍 속에서도 웃고 춤추고 울고 싸우며 조금씩 자라난다. 어쩌면 아이들을 결핍과 불행이라는 틀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때 묻은 어른의 편견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런 시선이 아이들을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지도. 아이들의 삶을 평가하려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남향으로 지어진 할아버지의 2층 양옥집에는 볕이 잘 든다. 영화에는 옥주가 햇살 아래 있거나, 옥주에게 햇살이 비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지금 옥주와 동주에게 필요한 것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딱 이 만큼의 따스한 관심과 배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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